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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5

    <395 – 스토커>

     

    조교가 일을 아주 잘했군.

    레드마운틴 교수는 마나보드의 제어술식에 신호가 잡혔음을 확인했다.

    이번에야말로 무지개초를 이용해서 오크노디를 염탐하고 약점을 파헤치자.

     

    잠복술식을 가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레드마운틴 교수는 그렇게 다짐했었다.

     

    “응? 이건… 약초케이스 너머에 더 커다란 마력반응이 주변을 감싸고 있구나.”

     

    아카데미에 기오막측한 기사가 많다지만 이 반응은 상당한 수준의 아티팩트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천고의 기연을 맞아 우연찮게 입수할 수 있는 보물 따위와는 격이 다른, 자격 없는 자가 손에 쥐거든 일생이 무너질 저주에 걸리거나 즉사할 수도 있는 끔찍한 유물.

    그런 유물에서나 발산될법한 어마어마한 마력반응이 느껴지고 있다.

     

    ‘당장이라도 3학년으로 올라와도 부족함이 없는 솜씨. 과연 용사만큼이나 주목받는 1학년이구나.’

     

    <안목키우기> 강의를 가르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누구보다 깐깐한 안목을 지닌 그 브론즈 교수가 수제자로 받을만한 천재다.

    그러나 기프트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한 분야에 한하여 천하일절을 노리거나 일좌에 올라선 이들.

    천재의 경지는, 결코 낯설지 않다.

    이만한 수준의 유물?

    몇 번이고 보아왔다.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적의 손에 들려 상대해본 유물도 있다.

     

    “후후. 오랜만에 여흥이 되겠어.”

     

    레드마운틴 교수의 눈이 사특한 마력광을 뿜어냈다.

    견문안見聞眼. 서치아이Search Eye.

    안법의 기초로 분류되는 이 기술에는 다음 경지가 있다.

    견문을 차단하는 역장에 가로막혔을 때.

    그 너머를 꿰뚫어보는 기술.

    관조안觀照眼. 피어스아이Pierce Eye.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힘이 역장을 뚫고 배낭의 내부를 염탐했다.

     

    느껴지는 구조는 100개의 칸.

    가로로 열 개, 세로로 열 개.

    각각의 칸이 동등한 크기로 이루어진 칸 속에 수많은 배낭들이 들어있다.

    놀랍게도 그 배낭들 또한 모두 유물등급의 배낭.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유물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음을 감안하면 무서울 정도로 많은 유물들이 배낭 하나에 잠들어있다.

    오크노디, 이 맹랑한 꼬맹이는 검문의 검주나 마탑의 탑주, 거대상단의 상단주마냥 어마어마한 물량의 아티펙트를 그 작은 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보통의 평교수라면 여기까지가 한계였겠지.”

     

    원격에서 관조안을 펼쳐 아티펙트의 내부를 관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에게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작업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레드마운틴 교수는 한때 동방과 서방을 잇는 천령산맥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자.

    보통의 교수들과 달리, 인간족의 수명을 초월하여 천년의 수명을 손에 얻은 장수종이다.

    게으름 속에 쌓아온 수련조차 인간의 일생을 뛰어넘으니, 거기에 천재적인 재능이 더해지거든 평교수들은 엄두도 못 낼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필독안必讀眼. 리드아이Read Eye.

    모든 제약을 뛰어넘어 대상의 실체를 명료하게 읽어낼 수 있는 기술.

    충분한 인과를 쌓지 못한 자에게는 읽는 행위만으로도 존재의 업, 카르마Karma를 모두 불살라 불운을 찾아오게 만드는 금단의 비기가 펼쳐졌다.

     

    ━━━

    <배낭배낭2호(유물(+12강), 귀속)>

    등급 – 레어 3급

    설명 – 훈련의 탑에서 쌓이고 쌓인 배낭을 강화하여 만들어낸 배낭. 이 배낭에는 배낭만 넣을 수 있다. 착용 도중에는 배낭의 저주로 인해 성장이 정지된다.

    효과1 – 수용량 확장(100칸)

    효과2 – 최대보관중량 확장(10톤)

    효과3 – 4위계 이하 물리파손보호

    효과4 – 4위계 이하 마법파손보호

    효과5 – 침수, 부식 등의 상태이상보호

    효과6 – 배낭 내 물품 중량 완전경감

    효과7 – 서치 기능으로 내용물을 검색해서 반입할 수 있다.

    효과8 – 이 배낭에는 배낭만 넣을 수 있다.

    효과9 – 이 배낭을 착용하는 동안은 키가 자라거나 체중이 늘어나지 않는다.

    감정가 – 금화 1만매, 1백만 포인트

    ━━━

    현재 보관중인 배낭목록(32)

    배낭배낭1호, 무기배낭, 방어구배낭…

    ━━━

     

    레드마운틴 교수의 시선이 배낭목록을 뚫어져라 응시하자 밑으로 수많은 창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무기배낭.

    방어구배낭.

    장신구배낭.

    목재배낭.

    광석배낭.

    어떤 배낭에는 각기 다른 형태의 수집품이 1만 개 이상 수집될 수 있는 방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어떤 배낭에는 같은 종류의 물질을 일정중량 중첩해서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100칸 존재했다.

    공간을 쪼개고 나누고 합치는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운용되는 배낭들.

    그러나 이 모든 배낭에는 공통된 역할이 있었다.

     

    수집Collect.

     

    레드마운틴 교수는 불현듯 천령산맥 시절의 일을 떠올렸다.

    산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그녀의 밑에는 숲의 영역을 나누어 소유하던 아종과 괴종들이 즐비했다.

    만인이 동등한 힘을 지니지 않듯이 그들 중에도 유독 강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런 자들은 기이하게도 하나같이 한 가지 습성을 지녔다.

    바로 수집이었다.

     

    누군가는 침략자의 뼈를 종류별로 모았다.

    누군가는 각기 다른 종족의 생명체를 하수인으로 모았다.

    누군가는 천령산맥에서 자생하는 모든 종류의 식재를, 접할 수 있는 모든 신비한 마법을, 형형색색의 화폐들을 모으기도 했다.

     

    진귀한 것을 모으거나 많은 것을 모은 이들은 확실히 다른 자들보다 강해졌다.

    뭣 모르는 이들은 부자의 사치라며 욕하기에 급급했지만 실제로는 그 사치야말로 그들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으니, 이것이 곧 세상의 섭리였다.

     

    ‘내 나이 서른둘에 천령산맥의 전부를 손에 넣으며 그 이치를 깨달았지.’

     

    레드마운틴 교수는 자신의 강함마저도 천령산맥을 손에 넣으며 자신의 소유물로 판정된 산맥의 모든 것이 ‘수집’되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자신만의 법칙으로 ‘수집’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유희를 즐기는 존재와 마주쳤을 때, 그를 결코 이길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천하제일의 수집가, 레드마운틴은 그를 향해 경외의 심정을 담아 이렇게 불렀다.

     

    “오모시로이 교장. 이 작은 것은 의적보다 그 무서운 드래곤을 더 닮았잖아?”

     

    수집품의 종류에 제한이 없다.

    세상 모든 수집품을 탐욕스럽게 수집한다.

    배낭 속에 천하를 담아내려는 것처럼.

     

    “흐응~ 이거 좀 탐나네.”

     

    수집가의 수집품을 훔친다고 반드시 수집판정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수집품은 수집판정을 허용하기도 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수집품들이 그렇다.

     

    보물. 유물. 유일. 전설. 신화.

    물품의 품계5분류에서 유일 이상에 속하는 모든 물건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원본을 모방한 위작-레플리카가 아니고서야 거대한 이야기가 담긴 전설과 신화 속 물건이 세상에 하나 넘게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값진 수집품들에서 나오는 마력반응이 각각의 배낭 속에서 잔뜩 느껴졌다.

     

    그러나 첩보용 아티펙트는 결국 첩보용으로밖에 써먹을 수 없다.

    배낭 속 물건을 멋대로 임의의 장소로 순간이동 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미 여기까지 배낭 속을 엿보는 일로도 많은 자원을 소모하였으니, 배낭 안의 유일급 몇 개의 정체를 판별해내는 선에 그쳤다.

    곧 배지에 심어둔 술식이 힘을 다하여 스스로 풀어지니 그녀의 눈도 배낭 안에 닿지 못했다.

    배지의 술식이 스스로 다시 기운을 회복하는 일정기간 동안은 내부를 엿볼 수 없다.

     

    “흐으음~ 참 웃기는 아이네. 웃기는 재단이고.”

     

    저 아이 하나가 검주나 마탑주, 상단주가 지닌 아티펙트에 버금가는 유일급 이상의 컬렉션들을 지니고 있지만 일신의 무력은 그에 버금가지 못한다.

    이제 레드마운틴 교수는 선택의 기회가 생겼다.

    이 놀라운 사실을 못 본 체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기회를 틈타 제 눈에 들어온 기연을 가볍게 손에 넣을 것인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없던 기회도 만들어야지.”

     

    레드마운틴 교수가 흉계를 꾸미기 시작했다.

     

     

    * * *

     

     

    배지에서 발산되던 희미한 기운이 사라졌다.

    엿보기는 이제 끝났나보다.

     

    “으으, 싫다 참. 스토커라는 건 이렇게 기분 나쁜 거였구나.”

    “응애.”

    “응애야, 너는 이런 거 보고 배우면 안 된다? 자기가 좋다는 사람을 염탐하는 물건을 주는 바보는 정말 혼쭐이 나야해!”

     

    응애 만드라고라는 언제나 그렇듯 응애응애 울어대며 잔뿌리의 솜털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응애도 배양액을 먹고 자란 기간이 꽤 지나서 그런지 이제는 물병 하나에 몸이 다 들어가기가 제법 버거워 보인다.

     

    “응? 응애야. 너 좀 자랐구나?”

    “으, 응애!”

     

    응애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잡아먹을 때가 아니라는 것처럼 아주 필사적이다.

    실은 응애 말고 다른 말을 할 수 있는데도 일부로 응애만 말하는 건 아닌지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빠아아안히.

     

    뚫어져라 살펴보아도 응애의 속셈은 보이지 않았다.

     

    [관찰기능이 200 이상입니다.]

    [특성전문화를 이미 선택했습니다.]

    [특별효과 <자동분석>이 발동합니다.]

     

    †응애(어린 만드라고라/격투가/오크노디의물병소속)

     

    자동분석의 결과도 똑같다.

    미심쩍은 기분을 떨쳐내지 못해 응애 주변을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며 관찰하던 도중이었다.

     

    “오크노디.”

    “넹?”

     

    2대 모자씨가 말을 걸었다.

     

    “불쌍한 만드라고라는 그만 괴롭히고 들어. 누군가 네 배낭 속 물건을 엿보았어.”

    “어라? 모자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카데미의 보안술식이 가득한 벽 내부도 돌아다니는데 배낭 속이라고 들여다보지 못할 리가 없잖아. 내가 먼저 엿보던 것을 엿보는 시선을 느꼈어.”

     

    아하.

    원조 스토커는 따로 있었구나!

     

    “내일부터 각방 쓰실래요?”

    “참아줘. 대신에 집사와의 마지막 해후에 대해 들려줄게.”

    “24시간 상시스토커를 곁에 두어야 할 정도로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일까요?”

    “<수집>에 관심이 있지? 그러면 분명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학생들이 아카데미 곳곳에 숨겨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줄곧 벽 속에서 보아왔으니까.”

    “!”

    “네가 이것저것 찾아낸 물건이 많지만 찾아내지 못한 것들은 더 많아. 이제 관심이 생겨?”

     

    정정한다.

    2대 모자씨가 스토커에서 기연탐색기로 진화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토커가 되어버린 조교피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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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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