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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5

       

       

       

       『키하앗……! 크흑!』

       

       렌까의 검격을 어렵사리 막아낸 모리꼬가 뒤로 쭉 밀려났다. 하지만 제대로 막아내지도 못한 모양인지, 렌까의 검격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오른쪽 팔뚝을 얕게 스쳐서 선혈이 가늘게 흩뿌려졌다.

       

       그리 큰 상처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칼을 휘두르기는 어려우리라. 더 큰 문제는 그녀의 검. 모리꼬의 청동검은 벌써 이가 많이 나가있는데다가 한쪽으로 휘어, 딱 봐도 더이상 버티지 못할 듯 싶었다. 

       

       한편, 

       

       『저쪽! 저쪽이야!』

       『싸움이다! 천인 부인과 모리꼬가 싸우고 있어!』 

       『천인 부인이 어째서 공격을?』

       『아까, 모리꼬의 말로는 다이토아의 마녀라고……』 

       

       이 소동을 눈치챈 부족민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열 명 남짓에 불과했지만, 수감자에게 신뢰받아 기함에 탔을 정도로 능력있는 전사들이었다. 

       

       모리꼬는 렌까에게 목을 베이기 직전이었고, 렌까 역시 일대다수의 싸움은 특기가 아니었으니, 이대로라면 두 소녀 모두 결국은 크게 다치거나 죽고 만다. 

       

       ……그럼, 그동안 나는?

       

       두 소녀가 다투는 사이에 나는 진작에 선미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다들, 나 때문에 싸우는 것은 그만둬!』

       

       ……라고 외쳤지만 그런다고 세상의 미움과 다툼이 마법처럼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미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할 이유와 막아야 할 이유가 있는 이상, 고작 말 뿐으로 싸움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우선 싸움을 막을 도구를 써야지. 내가 가져온 칼은 지금 렌까가 멋대로 쓰고 있으니 다른 도구를……

       

       ‘……승마채찍?’ 

       

       우선 생각난 것은 승마채찍이었지만, 기각. 인간을 대상으로 썼을 때의 효과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진정해서 이성적으로 대화해야 할 때였다. 

       

       그래서 나는 허리띠 오른쪽에 결속한 가죽 주머니에서 재빠르게 내용물을 꺼내서 손에 쥐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성이 길게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배 위에 있던 모두가 움찔거리며 움직임을 멈추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뭐니뭐니 해도 총은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내 손에 들린 것은 예전에 아오끼 소좌를 처음 죽였을 때 얻은 남부14식 권총. 혹시나 싶어 챙겨온 것이었는데,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챙겨오기를 잘 했다. 

       

       아. 그리고 이렇게 소란을 멈추기 위해 위협사격을 할 때는 보통 위를 향해 쏘지만, 이 위는 기낭(氣囊)이었기에 옆의 허공에다가 쐈다. 그래도 다들 싸움을 멈추고 나에게 집중했으니 제대로 효과는 봤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각자 무기를 들고 다가오던 부족민들도, 일단 칼끝을 내려트린 렌까도, 얕게 베인 오른팔의 상처를 옷으로 동여맨 모리꼬도, 여전히 주저앉아있는 수감자도—모두 나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 이 때, 뭘 어떻게 해서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할까. 

       

       우선 지금의 이 갑작스러운 싸움이 벌어진 이유는 근본적으로 시험 때문이었고, 거기다가 렌까가 나를 대신해준답시고 날뛰는 바람에 이 난리가 났다.

       

       이 비정한 시험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는 나도 나름대로 계획해둔 바가 있었지만, 그 전에 우선 이 배배 꼬인 상황부터 풀어야 했다. 

       

       그러자면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제일이리라. 

       

       『저는 수감자가 아닙니다.』 

       『시, 시라바야시 상? 그걸 밝히면!』

       

       나의 난데없는 커밍아웃에 렌까가 당황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때가 때이니만큼 솔직하게 말하죠. 부족민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얘기하자면, 저는 추방당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 아니에요. 더 구체적으로 쉽게 얘기하자면, 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간결하고 솔직하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대동아공영회, 그러니까 다이토아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치르는 중인데, 천인과 부족민 여러분을 죽이라는 시험을 받았어요.』 

       

       그 말이 아까의 총성보다 충격이었을까. 내가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가려는 사람이며 천인과 부족민들을 죽여야 하는 입장임을 밝히자, 부족민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길들이 매서워졌다. 

       

       『악마……!』

       『천인이 아니라, 다이토아의 악마였다니!』

       『악마와 마녀! 둘 다 우리를 속였어!』

       

       그리고, 주저앉아있던 수감자 역시 속았다는 듯 입가에 조소를 띄우며 나를 노려보았다. 

       

       『큭. 어쩐지 수상하다 싶었지. 세상의 어느 수용소가, 무기를 지닌 채로 죄수를 들여보내겠나? 그럼에도 나는 어쩐지, 자네가 내 편을 들어줄 것 같다는 직감에, 믿고 모든 것을 털어놓았지만…… 속았군.』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너무 따갑다. 수감자의 곁에서 나를 경계하듯 앉아있는 모리꼬 역시 나를 궤뚫을 듯한 눈빛이었고. 으윽……. 마음같아서는, 

       

       ‘들켰네. 하지만 들어보세요. 저는 대동아공영회에 분탕을 치려고 위장잠입한 거예요!’

       

       라고 더 시원하게 밝혀버리고 싶은데, 하필이면 지금 이 자리에 렌까가 있는 탓에 이렇게까진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

       

       아. 이 수감자 양반, 미군에 들어갈 셈이었다고 했었지. 나는 수감자를 향해 말했다. 

       

       ❝Hey. You speak English?❞

       

       렌까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영어로. 

       

       『……?』 

       ❝My real purpose to joining DAITOUA association, is for undercover sabotage to ruin them. I’m a CHOUSENJIN and an independent activist.❞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가려는 내 진정한 목적은 그들을 파괴하려는 잠입 사보타주이며, 나는 조선인이고 독립운동가라고.

       

       ❝Trust me and please be patient.❞ 

       

       나를 믿고 기다려보라고. 그렇게 영어로 말하자,

       

       『……!』

       

       수감자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이 수감자, 미국인 요원에게 정보를 넘겨주는 활동을 했으며 미군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으니, 이 정도의 영어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럭저럭 또박또박하게 발음했으니까. 

       

       과연, 내가 말을 마치자 수감자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분노의 감정은 사라져 있었다. 당황하고 긴가민가하는 눈치긴 했지만.

       

       그리고, 

       

       『……시라바야시 상?』

       

       렌까가 눈썹을 찡그리며 나에게 물어왔다. 

       

       『방금, 그에게 뭐라고 말했나요? 어째서 영어로……?』

       

       렌까 입장에서는, 내가 갑자기 ‘적’에게 ‘적성 언어’로 말을 건 모습이 몹시 수상하게 보였으리라. 

       

       하지만 당연히 그에 대한 대답은 내가 수감자에게 영어로 말을 전했을 때부터 미리 준비해 뒀었다.

       

       『저 사람, 미국 편에 붙은 비국민이잖아? 그래서 놈이 철썩같이 믿을 영어로 말했어. 나같은 조선인도 대동아공영회의 이상을 믿고 협력하는데, 미국편에 붙은 것을 부끄러운 줄 알라고.』

       

       렌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대동아」, 「조센진」이라는 말이 들렸던 거군요. 알겠습니다.』

       

       휴우. 렌까에게 이렇게 둘러대려고 일부러 ‘대동아’라는 말을 영어가 아닌 일본어 발음 그대로 말하고, Korean(한국인)이 아닌 Chousenjin(조선인)이라고 말해서, 영어 모르는 렌까가 이 두개만 알아듣게끔 돌려말한 것이 통했다.  

       

       그런데 수감자가 나를 향한 분노의 시선을 거둔 것도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가 있었기에, 나는 한번 더 영어로 말했다.

       

       ❝Understood this situation, right? Pretend to be angry with me(상황 이해했죠? 그럼 화난 척 하세요).❞ 

       

       『방금은, 뭐라고 말한 거죠?』 

       『협박했어.』 

       

       아까까지만 해도 조금 긴가민가하던 수감자는, 내가 두 번 씩이나 렌까를 속여먹는 모습을 보이자 나를 믿어보기로 했는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분노하는 티를 냈다. 그럭저럭 눈치는 빠른 양반이구만.

       

       아무튼 렌까와 수감자를 진정시킨 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 말을 이어나갔다, 

       

       『자아. 다시 말하죠. 저는 시험에 통과해야 하고, 시험에 통과하려면 여러분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입장입니다. 제 아내라고 주장하던 이 여자애는 그런 저를 돕기 위해 따라온 것이고요. 하지만!』

       

       나는 강하게 힘주어 말했다.

       

       『이 자리의 누구도 다른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고, 누군가가 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 선언에, 렌까가 무슨 소리냐는 듯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시라바야시 상!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저울의 한쪽 팔에는 시험의 통과가, 다른 팔에는 사람들이 올려져 있다는 것을! 이 저울의 무게를 맞추려면, 당신에게 매달린 다른 사람들을 덜어내야 한다는 것은 당신도—』

       『알아.』 

       

       나는 렌까의 말을 끊고 매정하게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걸 누가 너보고 하래?』 

       『……예?』

       『내가 할 일인데, 네가 하면 편법이잖아.』

       『이, 이미 말하지 않았나요! 편법이지만, 관계없어요! 당신이 비정한 사람이 되어버릴 바에는, 차라리 제 손이 더러워지는 것이 낫기에—』

       『아까도 한 말이잖아.』

       

       나는 이번에도 렌까의 말을 자르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모순 투성이고. 나에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바뀌었다면서, 나 대신 나쁜 일을 하겠다니, 그게 논리적으로 말이 돼? 그게 최선이었어?』

       『……예? 에에, 엣?』

       

       두 번 연속으로 말이 끊기고 자신의 논리를 부정당한 렌까는, 당황하다 못해 울먹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렌까에게 말했다.  

       

       『네 마음은 알겠어. 시험의 외부인인 너는, 나를 염려해서 내가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너 나름대로의 편법을 생각해낸 거잖아.』 

       『그렇, 습니다만……』

       『그런데, 시험 당사자인 내가 생각해둔 편법이 없겠냐고.』 

       『……예?』

       『나도 생각해둔 편법이 있단 말이야.』

       

       엊그제 안개 협곡에서 이 시험이 사람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나는 고민했었다.

       

       시험은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들을 배신하고 죽일 수 있을까?

       

       그것은 내 양심상 도무지 행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밤새워 고민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틀간의 고민 끝에, 나는 꼼수 하나를 생각해냈다. 아니, 새삼스럽게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내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이 시험을 기획한 대동아공영회의 사람들도 결코 모를, 심지어 나도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던 꼼수를.

       

       『저울을 맞추기 위해 한쪽의 무게를 덜어내야만 한다면,』 

       

       나는 그렇게 말하며 교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주먹 안에 쏙 들어오는, 루비처럼 붉은 빛의 광물. 렌까는 내 손에 들린 것의 정체를 알아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아까이시(赤石)……?』

       

       그렇다. 내 손에 들린 것은 붉은 돌—적석(赤石)이었다. 

       

       시험을 받으러 이 마문에 들어오기 전, 갑작스럽게 가게를 나서느라 깜빡하고 교복 안주머니에 넣어둔 채였고, 

       

       이 마문에 들어온 뒤로는 부족 원주민들처럼 거친 천옷과 가죽옷을 입고 살았다가, 오늘 저녁에서야 교복을 다시 입으며 새삼스럽게 주머니에서 발견한 적석이었다.

       

       나는 그 적석을 손에 쥔 채로 아까의 말을 이었다. 

       

       『버릴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도 되는 거잖아?』

       

       저울을 속이는 마법과도 같은 편법이, 나에게는 이미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이번주도 주6회 연재 성공!!!!!! 슈퍼메가울트라성실연재의화신전자강시뚜쉬뚜쉬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즐거운 주말 되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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