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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5

       한 곡을 무사히 끝낸 로즈마리.

       

       하늘은 입을 떡 벌리고 박수를 쳐대기 바빴다. 방송용 리액션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갈채였다.

       

       “어떠셨나요?”

       “엄청 대단했어요. 어떻게 이리도 잘 켜세요?”

       “어릴 때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거든요. 그때부터 취미로 하게 됐었죠.”

       

       틀린 말은 아니다. 왕족 출신인 로즈마리는 바이올린은 물론이고 피아노를 비롯한 온갖 악기를 섭렵했다.

       

       여기에 유화, 꽃꽂이, 자수, 도예 등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조예가 상당하다.

       

       혹독한 레슨을 거친데다가 마수인 시절에도 틈만 나면 바이올린을 켰다. 방송이라고는 해도 긴장할 이유는 없었다.

       

       하늘의 검은 눈동자가 별빛을 담은 듯 형형하게 빛났다.

       

       “혹시 다른 곡도 연주할 수 있으세요?”

       

       로즈마리는 씨익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더니 현을 고쳐 잡고는 핑거링을 달리했다.

       

       “흐흥, 흥.”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을 움직이자 흘러나오는 것은 우울하고도 긴박한 음악이다.

       

       차분한데 격정적이고, 밋밋한데도 개성이 있다. 또한 반복되는 구조가 없으면서도 리듬감이 느껴졌다.

       

       현대미술처럼 난해한 곡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게 뭔가 싶겠지만 하늘과 하늘의 시청자의 반응은 달랐다.

       

       ‘이건….’

       

       다키스트 아카데미아의 메인 테마곡이자, 챕터 보스인 로즈마리가 최종장에서 연주하는 독주곡.

       

       위령 제3악장.

       

       닼아를 플레이하는 모든 유저에게 트라우마처럼 자리잡은 명곡이었다.

       

       [닼아줫망겜 : 으윽 머리가….]

       [필리핀출신산타 : 크아아악]

       [알사인세타 : 읔 엌 읔]

       [점심나가서머글것 : 머리가 아파요 머리가 아파요 머리가 아파요 머리가 아파요]

       [ww1111 : 아빠 마왕이 날 따라와요 당신이 한 짓을 다 아나봐요 심판의 시간이 다가와요오오오오]

       

       로즈마리의 ‘위령’은 사람은 미치게 만들고, 마수는 멋대로 조종하도록 하는 기능이 있다.

       

       연주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같이 컨셉에 잡아먹힌 시청자들.

       

       급기야 방송 채팅 규칙까지 까먹고 짐승이 된 시청자도 넘쳐났다.

       

       [금안족눈알핥짝 : 엄마 전 커서 마수가 될래요! 엄마 전 커서 마수가 될래요! 엄마 전 커서 마수가 될래요! 엄마 전 커서 마수가 될래요! 엄마 전 커서 마수가 될래요! 엄마 전 커서 마수가 될래요! 엄마 전 커서 마수가 될래요!]

       [양말주세요 :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정신나갈것같애]

       

       “아니, 얘들아! 도배 좀 하지 마! 하 씨… 싹둑이는 왜 일 안 하는데?”

       

       유하늘은 직접 도배를 쳐냈다. 기본 10분 밴에, 조금 나댄다 싶은 녀석들은 영구밴을 먹이기도 했다.

       

       그러자 남은 것은….

       

       [얼굴천재유하늘 : 카하아아가앙ㅇ가앜ㅇ앙]

       [치즈마요옷 : 크어억… 어어억….]

       [과몰입안함 : 허어억ㅋㅋㅋㅋ 헉ㅋㅋㅋㅋ 커헠ㅋㅋㅋ]

       [짐승실격 : 으르릉! 컹! 컹!]

       [인간합격 : 캥! 케행! 푸르르르!]

       [펠X세이드 : 크르르르르르르르를르를을르릉]

       

       “하아… 사람 새끼가 없네.”

       

       로즈마리는 연주에 몰입하다 말고 현을 내려놓았다. 채팅창을 살펴보니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

       

       로즈마리의 표정이 멍청해진다.

       

       순간 자신이 마법을 사용한 줄 알았다. 실제로 위령 마법에 걸린 인간들은 저렇게 되니까.

       

       물론 아무런 마력도 느낄 수 없었기에 곧 컨셉이라는 걸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재밌네.”

       

       괴물은 사냥하는 사람은 그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거꾸로, 심연을 상대하려면 심연이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에테르 언니가 얘기해 준 것과 일맥상통하는 상황이다.

       

       로즈마리는 신이 나서 4악장을 연주했다.

       

       “블루베리 님 잠깐만요! 이거 주체가 안 되거든요? 잠시만 노래 좀 멈춰 주세요!”

       

       어림도 없지.

       

       템포를 한 단계 높인다.

       

       “아 진짜!”

       

       이날 유하늘은 3백 명의 시청자를 제 손으로 처치해야만 했다.

       

       

       **

       

       

       광란의 파티가 끝난 이후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됐다.

       

       당연하지만 하는 게임은 다키스트 아카데미아. 로즈마리가 유하늘을 가르친다는 컨셉의 방송이다. 어떻게 보면 ‘고인물 초빙석’의 파생 장르였다.

       

       “규칙을 알려드릴게요. 게임은 제가 하는 거구요, 블루베리 님이 중간중간 선택지가 나올 때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조언해 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자, 그럼 세계 최초 마수와 함께하는 방송 시작할게요!”

       

       유튜브용 멘트를 친 하늘은 곧바로 게임 화면을 켰다.

       

       그런데.

       

       “어?”

       

       메인 화면이 이상했다.

       

       평소처럼 어둠에 잠긴 아카데미의 전경이 아니라, 웬 마왕성의 모습이 메인 일러스트로 나와 있었다.

       

       메뉴 모양도 조금씩 바뀌었다. DLC를 적용하는 창에 ‘NEW!’라고 쓰인 것이 보인다.

       

       “뭐지?”

       

       [금안족눈알핥짝 : 와 ㄷㄷ 님들 신규 디엘씨 나옴 ㄷㄷㄷ]

       

       “신규 DLC가 나왔다고?”

       

       다키스트 아카데미아는 업데이트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게임 번들의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업데이트 한 번을 하면 버그를 때려잡는 데만 수개월씩 소요됐다.

       

       운영자가 대형 패치를 자주 하지 않는 이유였다.

       

       그런데 DLC라면 무조건 대규모 업데이트에 해당하는 일이었으니.

       

       “이건 못 참지.”

       

       하늘은 스토어에 들어가 10만원어치를 단숨에 결제했다.

       

       “아이 씨! 카드 한도초과 됐어!”

       

       [ddlsf1945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분당한미분상수 : zzzzzzzzzzz]

       [홀롤롤롤 : 가챠겜좀 그만하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카드 쓸게. 됐다.”

       

       DLC치고 10만원이면 비싼 값이다. 하지만 하늘은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그야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있는데다가, 용량도 어마무시하게 컸으니까.

       

       [(DLC) 파멸의 오케스트라]

       

       [설명 : 악의 조직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이제 마왕군으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마수의 군세를 육성하고, 요새와 연구시설을 구축하여, 인류를 멸망시키십시오.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DLC)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설명 : <Darkest Academia>의 히든 보스 ‘에테르’와, 그녀의 숨겨진 쌍둥이 자매 ‘아카샤’로 플레이할 수 있는 모드입니다. 세계관 최강자인 자매로 무엇이든 해 보십시오. 마왕과 협력할 수도, 반목할 수도 있습니다.]

       

       “와… 이건 못 참지.”

       

       다키스트 아카데미아는 여신이 우리와 연락하는 수단이다… 라고 로즈마리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이유로 호기심이 동했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게임을 업데이트한 것인가…….

       

       [카랑카랑 : 둘이 합방하니까 바로 업데이트한거 보소 ㅋㅋㅋㅋㅋㅋ]

       [okao016 : 이거 우연이 아닐지도…?]

       [쌀싸라디쓰 : 블루베리 님 솔직히 말씀해 보십쇼 본인 맞으시죠?]

       [금안족눈알핥짝 : 르퀴네스 그녀는 신인가? 르퀴네스 그녀는 신인가? 르퀴네스 그녀는 신인가?]

       [로즈마리스무디 : 아 로즈마리 본인 맞다고 ㅋㅋㅋㅋㅋㅋ]

       

       하늘을 포함한 모두가 흥분한 가운데, 로즈마리 혼자만이 이 상황을 면밀히 주시했다.

       

       그녀가 지닌 마수로서의 직감이 울부짖는다. 저 채팅창 중에 한 명,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있다고.

       

       “DLC 추가해서 해도 괜찮나요? 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고인물 초빙석이 안 되는데요?”

       “DLC를 깔고도 나는 순발력으로 이만큼 할 수 있다… 라는 느낌으로 어때요?”

       

       하늘이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이 마치 모스 부호를 보내는 듯했다.

       

       ‘하긴, 무작정 깨는 것만 보여주면 재미없지.’

       

       가끔은 실수하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 예능이 된다. 천부적인 직감을 지닌 로즈마리는 그 점을 이미 캐치했다.

       

       물론 고의로 실수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실력적인 방송을 할 요량이었다.

       

       “좋아요. 해 보자고요.”

       

       그렇게 두 사람의 NEW DLC 협동 공략이 시작됐다.

       

       “우선 ‘파멸의 오케스트라’부터 해 봐요.”

       “마왕군 진영에서 선택이 가능하네요?”

       “그러네요. 누구로 하시겠어요?”

       “에이. 당연한 걸 물으신다.”

       

       자유도가 높은 다키스트 아카데미아의 특성 상 캐릭터를 커스텀해서 할 수도, 원래 캐릭터로 할 수도 있다.

       

       원래 캐릭터로 할 수 있다는 말은, ‘본인’을 본인이 조종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로즈마리는 내심 기대하며 메인 캐릭터 선택 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가장 처음 보이는 것은.

       

       “아, 이 용가리 새…….”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용인이다.

       

       리버스 옴브레 헤어스타일에, 아래쪽으로 갈수록 노출도가 늘어나는 옆트임 사제복을 한 지고지순한 마수.

       

       방사룡 요르문간드였다.

       

       “용가리?”

       “아, 아니에요.”

       

       로즈마리는 말을 정정했다. 그러나 하늘의 귀에는 이미 ‘용가리’라는 세 글자가 뇌리에 박힌 뒤였다.

       

       ‘이 여자애, 컨셉 진짜 확실하네.’

       

       공식적으로 로즈마리와 요르문간드는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로즈마리가 수인을 차별하는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그래도 옛 악우의 얼굴을 보면 욕설부터 튀어나오는 것이다.

       

       하늘은 끅끅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하얀 양말을 신은 것도 그렇고, 바이올린을 가져온 것도 그렇고. 너무 로즈마리에 진심이지 않은가?

       

       “마음에 안 드네요.”

       “뭐가요?”

       “이 녀석이 셀렉트 넘버링 1번을 가져갔잖아요. 원래 여기 제가 있어야 하는 건데.”

       “푸핫─!”

       

       하늘은 그만 마시던 콜라를 뿜어버렸다.

       

       로즈마리로선 시원섭섭하면서도 미묘하게 화가 났다.

       

       [dsdlfkjff : 도랏ㅋㅋㅋㅌㅋㅋ맨ㅋㅋㅋ]

       [공성미인 :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

       [닼아줫망겜 : 이집 고증 확실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널뛰기판자 : 아니 대체 컨셉 어디까지 가는 거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래시컬클래식 : 본인 맞다고 아 ㅋㅋㅋㅋㅋㅋ]

       

       “아, 이게 웃겨? 웃지 마. 웃지 말라고─!!”

       

       울분이 쌓이고 또 쌓인다.

       

       로즈마리는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빽 내질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6월 24일입니다. 예전에 독자님과 이날까지 완결내기로 약속을 했었죠.

    그러니까 오늘은 완결내야 하는데….

    눈꺼풀에 중력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는 것이에요….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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