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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6

        

       “이거, 이거 빨리 계산해주세요!”

         

       “이 미친 노인네가! 이거 내가 먼저 집었잖아! 왜 남의 카트에서 물건을 빼서 계산해?! 하, 진짜 이러니까 노인이 죽어야 이 나라가 산다니까!”

         

       “빨리 계산해달라고! 거스름돈 필요 없으니까 알아서 해!”

         

       “제발 다 가져가지 마세요! 집에 아이들이 있어요!”

         

       혼란.

         

       대혼란이다.

         

       대재해 직전의 풍경처럼 마트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밀치면서 험상궂은 얼굴로 소리 높여 싸우기도 했으며, 물건의 가격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카트에 물건을 쓸어 담는 이들은 넘쳐났다. 다른 사람의 카트에 올려져 있는 물건을 슬쩍 빼서 자신의 카트에 집어넣는 사람도 있었고, 그것을 들켜서 다른 사람과 멱살을 잡고 싸우는 장면까지 보이고 있었다.

         

       딱 봐도 고급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이 이런 아비규환의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일본이 종말에 빠진 것 같이 느껴지게도 했다.

         

       이러한 풍경은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미나토구에서 시작한 오염이 순식간에 그 일대로 퍼져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에서 마법사에, 음양사에, 연금술사에…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능력자들을 모조리 끌어모아서 임시 조치로 물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았고, 그렇게 번 시간을 이용해서 다른 나라에서 장비들을 들여와서 오염지역의 수원을 격리하고 물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총리가 발에 불이 붙은 것처럼 움직여 진두지휘했기에 상황은 빠르게 수습되었고, 미나토구에서 시작된 오염이 도쿄 전역, 혹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지는 않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하지만 오염이 해결되었다고 해도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니, 도리어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집단광기.

         

       공포에 젖은 인간들이 집단으로 뭉치면서 내는, 그 끔찍한 광기의 목소리.

         

       “자민당은 이 상황을 설명하라!”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국민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위의 사람에게 복종하고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특출난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 풍조였던 일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피해를 봤던 부촌의 사람들과 하마터면 오염된 물을 마실뻔했던 도쿄의 시민들이 한곳에 모여 소리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시위.

         

       시위였다.

         

       “해명하라! 해명하라!”

         

       “정부는! 해명하라!”

         

       몇 명이나 모인 것일까?

         

       수천?

       수만?

         

       도저히 셀 수 없는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하여 소리높여 외치고 있었다.

         

       이 상황을 우리에게 이해시켜보라고.

       우리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라고!

         

       “이, 이럴 수가….”

         

       숫자는 곧 폭력이다.

       시위대의 대부분은 폭력과 거리가 먼 이들이었지만, 이미 그 숫자는 폭력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일본 정부에서는 오랜만에 등장한 대규모 시위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했다.

         

       시위에 대한 매뉴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꽤 철저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특출난 인간을 때려서 틀 안에 집어넣는 것이 일본의 교육이고,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일본인의 미덕이라고 할지라도 어딜 가나 반골은 있고,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이들은 있는 법이다.

       불만을 표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위를 선택하는 이들은 심심찮게 보였고, 그때마다 정부는 매뉴얼에 따라 시위를 효율적으로 해산시켰다. 수십이나 수백이 모인다면 경찰 인력을 동원해서 해산시켰고, 그 이상의 숫자가 된다면 ‘특별한 방법’을 이용해서 수뇌부를 잡아간 뒤 어영부영 묻어버렸다.

         

       하지만 지금은…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어 보였다.

         

       강압적으로 해산시킨다?

       그건 소규모 시위일 때나 잘 통하는 방법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폭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지금은 얌전히 소리만 지르고 있는 저 대규모 인원들이 전부 눈이 돌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들을 보라.

       하나같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과 액세서리를 걸치고 있거나,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유명 인사들이 가득했다.

       오염으로 피해를 보았던 곳은 일본 내에서도 이름 높은 부촌이었고, 그 부촌에 거주하는 이들은 당연히 한가락 하는 인간들이었다.

         

       돈이 많으며, 명성이 높고, 사회적 지위가 대단하고, 인맥이 대단하며,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들이 저기에 떡하니 자리 잡은 채 소리높여 외치고 있었다.

         

       강압적으로 제압하라고?

         

       그래.

       제압을 한다고 치자.

         

       그럼 그 후폭풍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얌전히 시위하다가 맞은 저들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저들은 자신이 받은 피해를 몇 배로 돌려주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윗선?

       높으신 분들은 어떻게든 피해 갈 수 있겠지.

       저들끼리 만나서 합의하거나, 살아있는 권력의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어떻게든 무마하거나.

         

       하지만 윗선의 명령에 따라 손발처럼 충실하게 움직인 이들은?

         

       당한다.

       무조건 당한다.

         

       저들의 분노를 풀기 위한 제물처럼 휙 던져지게 될 것이고, 저들이 휘두르는 권력 때문에 돈을 잃고 직장도 잃고 비참하게 몰락하게 되리라. 운이 좋아야 저들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조아려서 자비를 얻어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런 상황이니, 강압적인 방법은 무조건 제외해야만 했다.

         

       끝이 좋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으며, 벌통을 건드리는 것 같은 위험성까지 있는 방법을 사용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을 해야 저 사람들의 불만을 가라앉힐 수 있는가?

         

       아니.

         

       가라앉히는 것까지는 필요도 없다.

       저 분노가 가라앉을 것이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일본인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일본인은 칼과 친숙하게 지낸 민족이었다.

         

       아름다운 국화의 아래에 묻혀있는 칼날.

         

       저 칼날을, 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칼날을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

         

       잠재우는 것이 최고지만…그게 힘들다면.

         

       “…경찰청의 조사 결과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저 칼날을 다시 숨기게 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조사 결과….”

         

       저 칼날이 향하는 방향이라도 바꿔야만 하리라.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독성 물질의 흔적을 확인하였습니다.”

         

         

         

         

        * * *

         

         

       “이게 맞는 방법인지 모르겠군….”

         

       총리는 넋두리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죽기 직전의 노인처럼 매우 늙고 힘이 없어 보였고, 그가 내뱉는 말투에서는 삶의 회한이 여과 없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손은 스트레스 때문에 덜덜 떨리고 있었고, 제대로 먹은 것이 없는지 힘을 제대로 내지 못해 찻잔을 들어 올리려다가 힘이 빠져 내용물을 테이블 위에 살짝 쏟기까지 했다.

         

       절로 동정심이 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중년의 정치인들이 있었다.

         

       폭삭 늙어버린 총리와는 대조적으로, 왠지 모르는 열의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이었다.

         

       “총리님. 이게 맞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니, 애초에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총리의 앞에 앉아있던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은 그렇게 말했다.

       그의 눈은 열정인지 광기인지 모를 것 때문에 번들거리고 있었으며, 힘이 실린 목소리에서는 확고한 방향성이 느껴지고 있었다.

         

       설득력.

         

       중년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분명한 힘이 있었다.

         

       총리는 정치인을 힘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류노스케 원로….’

         

       지금 필요 이상의 확신을 가진 채 말하고 있는 정치인은, 무라타 류노스케 원로와 끈이 닿아있는 인물이었다. 듣기로는 류노스케 원로가 여는 클럽에도 수시로 참가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한데다가, 그쪽 계파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유망주라고 하였던가.

         

       과연 유망주답게 싹은 있어 보였다.

       저 짧은 말에서도 남을 끌어들이는 힘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

         

       게다가 태도 역시 열정이 넘치는 것이, 총리의 젊었을 적을 보는 듯 보였다.

         

       ‘나도 젊었을 때는….’

         

       총리 역시 젊었을 적에는 저런 모습이었다.

         

       정력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다녔고, 술을 아무리 퍼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남자의 능력 역시 출중해서 여자를 품고 다니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증거로 그는 첩이 둘이나 있었고, 아이만 여섯이나 되었다.

         

       “야마토 민족은 한 번 타오르면 쉽게 꺼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일본 민족의 분노는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이게 되어 있으니, 진화하기보다는 방향을 돌리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역사가 말해주고 있듯, 우리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중년의 정치인은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총리의 선택은 옳았었다고.

       역사적으로 효과적이었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 총리가 행한 것은, 역사적으로 실패가 없었던 ‘매뉴얼’대로 행동한 것이라고 말이다.

         

       총리는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한 중년 정치인의 말에 서서히 근심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후우, 그렇겠지…?”

         

       총리 역시 알고 있었다.

       이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그의 목숨을, 그의 당이 다음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냐고?

       있기야 했다.

         

       하지만 손해를 봐야 하는 선택지들과 잘만 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선택지 하나.

         

       이 두 가지를 비교한다면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총리는 최선을 선택했다.

       그의 상식대로.

       당의 중론대로.

         

       그렇게…그는 선택했다.

         

       왜일까.

         

       어째서 지금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일까?

         

       달그락.

         

       총리는 차를 조금 마시고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중년의 정치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일이 바쁜 것인지 왠지 퀭한 눈과 짙은 다크서클을 가지고 있는 이들.

       총리처럼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몸은 아예 비쩍 말랐거나, 통통하거나.

       일반적인 체형은 없었다.

         

       그들은 꾸며낸 듯한 미소를 지은 채 총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즈음 부상하기 시작한 파벌…류노스케 원로의 파벌과 친하게 지낸다고 했는데….’

         

       그들은 총리의 시선이 닿자, 앞서 말했던 중년의 정치인과 똑같은 말을 했다.

         

       “모든 것이 잘 될 겁니다.”

         

       “모든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겠죠. 우리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들은 안심하라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안심하십시오, 총리님. 설령 일이 잘못된다고 하여도, 우리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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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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