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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6

       해설가 한도윤은 VR의 시대가 오기 전부터 여러 게임 대회의 해설로 출현하던 경력자다.

       

       과거 스포츠 경기를 해설하다가 우연찮게 게임 대회에 한 번 참여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그로부터 근 이십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해설을 해 온 도윤은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선배라거나 형님이라는 말을 듣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최근에는 원로 같은 이야기도 조금씩 듣고 있다만 아직 나이가 40대인데 원로인가.

       

       도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60이 넘기 전엔 원로 이야기를 들을 생각 없으니 그 딴 헛소리 지껄이면 회식비 너네가 다 내라는 말로 후배들을 협박하곤 했다.

       

       어쨌건 그만큼이나 긴 경력을 쌓아오면서 소위 말하는 A급 해설이 되는데 성공한 도윤에게 한국 최강의 게임 구단 QZ게이밍과 해외의 스타 구단 팀 파일의 경기를 중계하겠느냔 제안이 들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업계에선 꽤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부를 거듭하는 열정과 쉴 새 없이 오디오를 채우는 선명하고 힘찬 목소리. 그리고 그 어떤 돌발상황이 닥친다 하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까지.

       

       이 이벤트를 담당하게 된 QZ게이밍의 스태프는 이 제안이 들어왔을 때부터 도윤의 이름이 생각났다면서 꼭 맡아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도윤의 입장에서도 이 이벤트는 놓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나 일정 같은 것과 상관 없이 일단 재밌어 보이지 않은가.

       

       세계권에서 최강을 두고 다투는 두 구단이 자존심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이걸 해설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얼마나 흥분될까.

       

       두 구단의 이름을 보자마자 매혹되어 버린 도윤은 어떻게든 이 경기를 중계하고 말겠단 생각을 가지고서 계약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일정이 너무 빠듯하네요.”

       

       지금으로부터 이틀 뒤라니. 최고는 아닐지 몰라도 도윤 또한 나름 유명한 해설가다. 이런저런 일정이 자잘자잘하게 존재한다.

       

       “죄송합니다. 파이스 선수 관련해서 좀 다급하게 정해진 부분이 있어서.”

       “아. 파이스 선수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파이스라는 사람은 아피스 게임 업계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설이다.

       

       그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화제성. 광고 효과. 시청자 수. 심지어 게임 내용의 질까지 달라지는 데 어쩌겠는가.

       

       파이스가 맞춰달라면 맞춰주는 게 맞지.

       

       “다음입니다마는. 같이 해설하실 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무리 도윤이 실력있는 해설가라 할 지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는 분위기를 띄우고 소리를 채우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분석을 하는 능력은 다른 이들에 비해 떨어진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하더라도 현직에서 프로로 활동하던 이들에 비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도윤의 부족한 전문성을 채워 줄 사람이 필요할 터인데.

       

       “화령.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화령이라는 이름은 최근 아피스를 즐기는 사람. 아니 VR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단어다.

       

       특히 아피스 리그의 해설을 담당하는 도윤의 경우엔 더 그렇다.

       

       최근 QZ게이밍의 무의 이치라는 메타로 리그를 정복함에 따라 관련 지식이 필요했던 도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게 화령의 마이튜브다.

       

       어찌 그리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는 지.

       

       강의영상을 통해 이론적인 부분을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실전 영상을 통해 어떤 어떤 부분을 눈 여겨봐야 하는 지 알려주고.

       

       가끔 올라오는 초 고퀄리티의 하이라이트 영상은 아피스 리그의 하이라이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대단하기도 했지.

       

       단적으로 말해. 도윤은 배움을 위해 영상을 보다 화령의 팬이 된 사람었다.

       

       화령의 편집자로 들어간 한식에게 그 동안 내가 사먹인 것이 있으니 화령의 사인으로 보답하라는 말을 주기적으로 할 정도로.

       

       “그 분께서 맡아주실 예정입니다.”

       

       화령님께서 오신다고?!

       

       순간 눈을 번뜩인 도윤이었지만 이내 그의 머릿속에는 이성이 자리 잡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일은 일이니까. 화령님께서 해설을 하신 적이 있으셨던가?

       

       …아 기억났다. 있긴 했네. 데케이 그 녀석 대회에서 한 번. 그 때 말 엄청 잘하셔서 감탄했었어.

       

       그 때를 생각해 본다면. 음. 충분히 내가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지 않을까.

       

       “그럼 화령님. 온라인으로 참여하시는 거죠?”

       

       오프라인 활동을 거의 안 하시는 분이기에 던진 물음이었지만 스태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여기 오실 거에요.”

       “…네? 진짜요?”

       “네. 그게 QZ게이밍과 팀 파일의 이벤트 전 마지막에 화령님과 파이스 선수의 경기가 있을 예정이거든요. 거기에 참여하시는 김에 해설 역도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대외비이니만큼 다른 데서 이야기하지 말아달란 부탁과 함께 건네진 말을 들은 순간 도윤은 다른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도장을 찍었다.

       

       이 경기를 다른 사람이 해설하는 모습을 보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으니까.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날.

       

       “오늘 영 분위기가 안 좋네.”

       

       도윤은 방송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걸 느끼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벤트가 시작하기 직전 파이스 선수가 쓰러졌으니.

       

       “저기.”

       

       종이 위에 어떻게 방송 초반 분위기를 풀어낼지 도윤이 적어나가던 그 때에 옆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든 도윤이 마주한 것은 하얀 색으로 물든 여우 모양의 가면이었다.

       

       어라. 이거 어디선가 봤던

       

       “화령님?”

       “네. 화령입니다. 해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해서요.”

       

       와. 정말 한국어 쓰실 때는 공손한 어투를 사용하시는구나.

       

       평소 방송에서 보던 오만하고 당당한 어투와 예의 바르고 침착한 어투 사이의 갭에 놀라면서도 도윤은 프로답게 화령을 응대했다.

       

       “안녕하세요. 캐스터로 활동 중인 도윤이라고 합니다.”

       

       팬심은 팬심이고 일은 일이니까.

       

       인사를 끝마친 후 도윤은 화령과 이야기를 맞춰 보았다. 해설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정해두어야 할 것이 몇 가지 존재하니까.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도윤은 화령이 해설 준비가 아예 안 되어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겉으로 웃었지만 속으론 상당히 당황했다.

       

       해설을 하는 데에 준비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출현하는 여러 선수들에 대한 정보. 현재 유행하는 전략과 그 전략에 대한 상세한 지식. 구단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와 전략이 어떤 식이고 그걸 어떻게 파훼해야 하는지.

       

       이러한 정보를 모두 다 알고 있어야 제대로 된 해설을 할 수 있다. 헌데 그런 정보를 아무것도 모르신다니!

       

       아무리 화령님이 보는 눈이 좋다지만 이건.

       

       …아니지. 아냐.

       

       오히려 신선할 수도 있지 않나?

       

       모든 정보를 알고 경기를 바라보는 우리와 아무것도 모른 채 경기를 바라보는 화령님의 시선인은 전혀 다를 테니까.

       

       심지어 화령님의 보는 눈은 한서우 선수조차도 인정한 거니까 틀릴 가능성도 거의 없어.

       

       정보에 관한 부분은 내가 전담하면 되고 나머진 화령님이 프리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면.

       

       순간적으로 그리 판단을 내린 도윤은 화령에게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하란 이야기를 전했다.

       

       그 판단은 옳았다.

       

       자기 멋대로 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은 화령은 분명 재밌는 해설을 만들어 주었으니까.

       

       “윤성! 돌격합니다! 쉴 틈을 주지 않겠다! 이대로 승부를 끝내 버리겠다!”

       “급해요. 급합니다. 아직 상대에게 저항할 수단이 많거든요. 자칫 잘못하다간 공격에 취해 고꾸라질 수도 있습니다만. 이번엔 괜찮겠네요. 윤성 선수가 그 불안을 자신의 맹렬한 기세로 짓누르고 있으니.”

       

       우선 배경지식의 부족 같은 것은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화령이라는 사람은 게이머의 움직임만 보고서 그 사람의 특기와 성향. 버릇을 파악하는 건 물론 심지어 상대의 생각과 전략까지 읽어내는 괴물이었으니까.

       

       각 플레이어가 움직이기 10초 전에 미리 두 유저가 어떻게 움직일 것이며 그 결과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화령의 해설은 가히 예언과도 같았으니.

       

       도윤은 경기의 해설을 하다가 몇 번이나 말을 잊어버릴 뻔 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바란! 방어를 굳힙니다!”

       

       팀 파일의 선수 바란은 화령이 말했던 대로 윤성의 기세에 휘말려 방어를 굳히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자잘한 실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위협하겠단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깎입니다! 바란 선수의 체력이 점점 더 깎여 나갑니다!”

       “답답해하는 게 눈에 훤하네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바란 선수가 침착하기로 유명한 선수지만 그래도 사람입니다! 몰리다 보면 도박수를 두게 되거든요!”

       

       더욱이 좋았던 것은 화령이 적당히 말을 넘겨주는 법을 안다는 것이다.

       

       그녀는 도윤이 말을 하려고 튀어나가려는 걸 보면 적당히 말을 끊어버리고. 또 도윤이 입을 다물면 그 때에 필요한 설명을 해주었다.

       

       오디오가 겹치지 않게 함과 동시에 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그 때 그 때에 맞추어 적절한 이야기를 하는 재능.

       

       해설가를 꿈꾸는 이들이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그 능력을 화령은 지니고 있었다.

       

       “이제 오겠네요. 오른쪽에서 오는 공격 막고. 이어지는 공격 피하고. 지금.”

       “카운터! 기세를 붙잡고 있었던 윤성 선수가 휘청거리며 물러섭니다!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상황을 읽는 능력. 빠른 눈치. 선명하고 더듬거림 없는 발성.

       

       화령은 그야말로 해설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다. 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해설가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도 지니고 있었다.

       

       “공격하다가 너무 신이 났네요. 상대는 허수아비가 아닌데 말이에요.”

       “맞습니다! 상대. 팀 파일의 바란 선수 또한 세계 최고권의 선수! 이런 것에 당해주기만 할 리가 없죠!”

       “아. 이래서 허수아비라고 착각을 한 걸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달려들지 않다니.”

       

       단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녀의 보는 눈이 ‘너무’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평범한 일반인의 시선을 한참 벗어나 한서우조차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지경에 이른 것이 그녀의 눈이다.

       

       그 때문에 화령은 절대로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쉬움을 드러내곤 했다.

       

       ‘상대를 홀리는 검무가 아니라 자길 홀리는 검무인가요? 왜 저런 걸 하는 거죠?’

       

       또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이 그녀는 이런 자신의 시선을 조금도 포장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상대가 듣건 말건. 채팅창이 불타건 말건.

       

       화령은 조곤조곤 공손하고 선명한 어투로 제 할 말을 모두 했고 그 때마다 도윤은 그 내용을 포장하느라 식은땀을 흘려야 했지.

       

       ‘…어. 왜 저런 공격을 하고 또 왜 저런 공격에 당해주는 걸까요?’

       ‘피할 필요가 있었나요? 그냥 박살낼 수 있었을텐데?’

       ‘지금 공격 했으면 치명상이었을 텐데요.’

       ‘구멍이 가득한 공세인데 상대의 크기가 너무 커서 저 구멍을 빠져나가질 못하네요.’

       ‘승부를 결정지을 틈이 세 번이나 있었는데 하나도 잡아채질 못하다니.’

       ‘방금 끝났어요. 끝났는데.’

       

       그런데 여기서 악질적인 것이. 화령의 설명을 듣다 보면 그게 왜 각이 되는 지를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도윤은 중간중간 어떻게든 포장을 해보려다가 화령의 논리에 박살이 나곤 했다.

       

       “상황은 원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치열한 대치 상황! 화령 씨. 가만 서서 노려보기만 하는 걸 보면 뭐가 떠오르죠?”

       

       그러기를 몇 번인가 반복한 도윤은 그냥 포장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하더라도 화령에게 알못취급을 당하게 될 텐데.

       

       “허수아비요?”

       

       그럴 바에는 그냥 같이 즐기고 말지.

       

       “네! 정답입니다! 두 허수아비 중에 누가 먼저 심장을 얻고 달려나갈 것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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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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