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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6

   멸신이라는 반신을 넘어 새로운 영역에 도달한 크라슈.

     

   이를 마주한 아벨라는 자신이 그동안 세웠던 모든 계획이 박살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라슈는 자신이 지닌 세계 침식의 힘을 전부 성검의 개안과 함께 태워 버렸다.

   그 결과, 그의 몸속에는 더 이상 세계 침식의 힘이 한 줌도 남아 있지 않다.

     

   크라슈를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할 그릇으로 삼아 신을 완성한 뒤.

   신을 이용해 회귀 인형을 창조하고, 마법의 끝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욕망.

     

   아벨라가 회귀에 집착했던 것은 마법적 성취가 환생하면 환경적 요건과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무리 환생을 반복해도 지금의 육체만큼 마법의 재능을 갖춘 육체는 처음을 빼고는 가진 적 없었다.

     

   아벨라의 마법 재능은 남다른 특출난 재능이다.

   그러니 아벨라는 현재의 육체로 더 많은 마법의 연구를 반복하고, 마법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그녀는 회귀를 집착했다.

   아서의 회귀를 손에 쥔다면 현재의 육체로 제한 없는 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 순간 아벨라가 저번 회차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할 수 없다.

   하물며 자기 손으로 직접 아서를 초월석에 갈아 넣어 버렸다.

     

   그녀는 이제 회귀를 손에 쥘 방법이 어디에도 없었다.

     

   “……네가,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이는 당연히 아벨라에게서 있어서도 감정적 격함을 드러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팡이를 쥔 아벨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의 기다란 속눈썹 또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파르르 떨림을 반복했다.

     

   방금까지 오랜만에 달성감에 취해 기쁨을 한껏 드러냈던 아벨라다.

     

   환생을 반복하며 살아온 만큼 달성감이라는 것조차 무뎌져 감정의 요동도 없어진 그녀이건만.

   그런 그녀가 분노를 드러낼 만큼 이번 계획은 오래도록 준비한 것이다.

     

   다시는 손에 쥘 수 없는 기회가 눈앞에서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그것도 자신의 계획 속에서 놀아나고 있을 거로 생각했던 한 남자에 의해서.

     

   아벨라의 붉은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분노를 마주한 크라슈는 한차례 코웃음 쳤다.

     

   “너도 화낼 줄 알았냐?”

     

   동시에 크라슈가 쥔 성검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백염이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너무 고열이라 빛에 가까운 형태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 이제는 좀 알겠네.”

     

   쿵-

     

   크라슈가 앞발을 내딛자 주위 공간이 제멋대로 일렁였다.

   그에게 공간이 뒤흔들릴 만큼 강한 힘이 집중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얼마나 열받아 있는지.”

     

   크라슈의 백색의 눈동자가 백열과 함께 거세게 타올랐다.

     

   그것을 본 아벨라의 몸이 멈칫하였다.

     

   한순간 오랜만에 솟은 분노로 이성을 잃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은 생각보다 위험한 상태다.

     

   아벨라는 분명 세계에서 범접할 수 없는 최강의 마법사다.

   그러나 지금의 크라슈는 아벨라가 보기에도 위험한 영역에 들어선 상태였다.

     

   크라슈는 명백히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

     

   저 검은 아벨라의 방어 마법도 찢고 그녀에게 닿을 것이 분명했다.

     

   아벨라는 환생 과정에서 이미 벌써 몇번이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것은 뒤가 있는 죽음이었다.

     

   아벨라는 늘 죽기 전에 환생 마법을 걸어 기억을 이행시켜 놓은 뒤에 죽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애초에 해놨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신의 영역에 도달한 크라슈의 검은 십중팔구 영혼조차 베어 버릴 게 분명했으니까.

     

   아벨라가 뒷걸음질을 쳤다.

   지금까지 죽음과 끝이라는 개념과는 무척이나 먼 삶을 살았던 그녀다.

     

   그런 그녀의 눈에 지금 그러한 끝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본능이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면 도망쳐야 한다고.

     

   그녀는 드디어 자신이 느끼고 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그녀의 육체는 아벨라의 인지 영역을 넘어 먼저 깨달은 것이다.

     

   지금 자신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벨라의 행동은 빨랐다.

   살아온 억겁의 시간이 있는 만큼 오랜만에 반응한 그녀의 본능은 이 순간 최적의 판단을 내렸다.

     

   쿵!

     

   아벨라와 크라슈를 연결해 놓았던 영혼의 주박이 풀려났다.

   급히 끊어낸 대가로 아벨라도 순간적으로 영혼이 뒤틀린 느낌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아벨라의 눈에 현실이 들어왔다.

   프레이야 산맥의 어느 숲속, 거인의 숲을 닫고 나타난 크라슈와 마주한 장소였다.

     

   아벨라는 시간을 벌기 위해 영혼 주박에서 빠져나오며 크라슈는 풀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크라슈의 몸에서는 이미 백열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결국 영혼과 육체는 이어져 있다.

     

   이미 그의 육체는 신의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그가 영혼 주박을 부수고, 깨어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여기서 공격을 해봤자 깨어난 그가 대응하고, 자기 목을 치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이 틈에 도망쳐야 한다.

     

   ‘결국 성검으로 개안한 힘.’

     

   크라슈가 지닌 힘은 결국 시간이 지난다면 자연적으로 소멸해버릴 힘이다.

   이를 알고 있는 만큼 아벨라는 그와의 교전을 포기하고, 공간 마법을 발동시키려다가 멈칫하였다.

     

   앞선 상황이 너무 당혹스러워 이제야 기억났다.

   공간 마법은 지금 크림슨가든이 쳐놓은 안티 공간 마법에 따라 막혀 있다는 걸 말이다.

     

   그녀의 얼굴이 굳은 채로 새하얗게 물들어 간 그 순간.

     

   크라슈의 눈꺼풀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백색으로 물든 그의 눈동자와 마주한 찰나 아벨라는 전에 없던 공포심이 몰아쳤다.

     

   오싹!

     

   평생토록 느껴볼 리가 없다고 생각한 아득한 죽음의 공포가 한순간에 그녀의 목을 조였다.

     

   죽음.

     

   그것을 드디어 그녀가 실감했다.

     

   크라슈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신을 죽일 것이다.

   아벨라가 계획이 어그러져 분노했듯이 크라슈 또한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으니까.

     

   그의 분노를 아벨라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든 무엇이든.

   그의 분노는 아벨라를 죽이기에 이미 충분한 영역이었다.

     

   콰광!

     

   그 순간 크라슈를 향해 낙뢰가 떨어졌다.

   눈앞을 번쩍이는 낙뢰를 본 아벨라가 굳은 몸을 채 풀기도 전에 목소리 하나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아벨라 님, 도망치세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녀의 수하로서 활동해온 지옥 선녀였다.

   크라슈에게 이미 크게 당했던 그녀는 전신이 화상을 입은 상태임에도 마지막 마력을 쥐어짜 크라슈를 향해 마법을 발동시켰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상황을 보고 있던 그녀가 상황이 잘못됨을 판단하자마자 마법을 쓴 것이다.

     

   이를 깨달은 아벨라의 몸에 순식간에 수십 중첩의 마법이 걸렸다.

   동시에 그녀는 엄청난 속도로 이 자리를 박차며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도주를 위해 끊임없이 마법을 전개한 그녀가 하늘을 질주했다.

   동시에 질주한 그녀의 눈에 사룡이 보였다.

     

   “사룡!”

     

   그녀는 사룡을 향해 바로 명령을 내렸다.

   그다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크라슈에게 부딪쳐 시간이라도 벌 작정이었다.

     

   그러나 어째선가 사룡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인지 허공에 멈춰선 채 하늘만을 부유하고 있던 사룡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벨라를 보았다.

     

   그리고 곧 아벨라는 사룡의 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아벨라는 자신의 눈앞을 가득 메우는 보랏빛 섬광을 보았다.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보랏빛 섬광이 아벨라의 방어 마법을 두드리고 지나갔다.

   그것을 본 아벨라가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왜냐하면 그 섬광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기의 브레스였으니까.

     

   사룡이 지금 자신을 향해 사기의 브레스를 쏘았다.

   차라리 사룡이 부서져 있었다면 모를까, 브레스를 쏜다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쟤야. 죽은 너를 구태여 일으킨 네 원수!”

     

   그 순간 사룡의 위에서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는 세 명의 여성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검은 머리카락의 주홍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성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힘을 과도하게 쓴 탓에 코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음에도 신이 잔뜩 났다.

     

   달성감이라는 도파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덕분이다.

     

   ‘네크로맨서.’

     

   세계에서 유일한 네크로맨서.

   에벨아스크 베나포치.

     

   그녀가 아벨라에게서 사룡의 주도권을 찬탈해 손에 쥔 것이다.

     

   문제는 사룡만이 아니었다.

   사기의 브레스 사이로 쏟아진 푸른빛의 얼음 섬광이 아벨라를 두드렸다.

     

   저 멀리 비앙카와 하링이 빙룡을 탄 채 사룡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더불어 아벨라는 하늘을 가득 메꾸고 있는 마법진을 보았다.

     

   고대 마법부터 시작해 현대까지.

   역사를 담아낸 수많은 마법진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마력을 흘리며 하늘을 가득 메꿨다.

     

   아벨라의 눈에 붉은 머리 여성이 닿았다.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어딜 그렇게 급하게 도망가는 게냐.”

     

   한때 마신이라 불렸던 마법의 또 다른 정점 중 하나다.

   아벨라조차 섣부르게 수준을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의 마법사.

     

   원래라면 이들이라도 아벨라는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사룡이야 에벨아스크를 죽이고, 다시 찬탈해오거나 아니면 사룡째로 지워 버리면 될 일이다.

   크림슨가든이야 교전하다 보면 결국 그녀의 마법의 파훼법을 알게 되어 쓰러트릴 수 있다.

     

   비앙카와 하링은 말할 것도 없다.

   둘의 재능은 천하십강에 필적하지만, 아벨라는 재능이라는 개념을 넘어선 이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두 사람이 이토록 방해될 수가 없었다.

     

   아벨라의 등 뒤.

   한 남자가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쿵쿵쿵쿵쿵쿵!

     

   아벨라는 자기 몸을 진동하는 소리를 느꼈다.

   이 소리의 출처를 쫓은 결과, 들려온 장소는 다름 아닌 자기 심장이었다.

     

   공포에 질린 그녀의 심장이 말하고 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빨리 도망치라고 말이다.

     

   아벨라의 지팡이가 휘둘러졌다.

   그녀의 지팡이에서 쏟아 나온 마력의 물결과 함께 곧바로 수천 가지의 마법이 일순간에 완성됐다.

     

   사룡이 다시금 사기의 브레스를 내뿜었다.

   크림슨가든의 마법 또한 동시에 발동되며 아벨라를 덮쳐 왔다.

     

   콰앙, 콰앙, 콰광!

     

   여러 가지 마법과 힘이 충돌하며 프레이야 산의 상공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그러나 에벨아스크와 크림슨가든은 그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비키라고!”

     

   아벨라가 성을 내듯 소리쳤다.

   하지만 에벨아스크와 크림슨가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악착같을 정도로 아벨라의 앞을 막았다.

   마법을 휘두르는 아벨라의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 찼다.

     

   기어코, 사룡의 머리를 부수고 마법을 파훼하며 나아가던 순간.

     

   그녀의 눈앞에 새하얀 빛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 빛은 아벨라가 절대로 다시 보고 싶은 빛이 아니었다.

     

   “급하게도 간다.”

     

   그 목소리가 들렸을 때.

     

   콰아아아아아아앙!

     

   아벨라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쩌적-

     

   바닥에 추락한 아벨라는 혼미한 정신 속 자신의 방어 마법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 한 번의 충격이었다.

   그 한 번의 충격이 절대라고 해도 좋을 그녀의 방어 마법에 금을 가게 했다.

     

   쿵-

     

   동시에 아벨라는 방어 마법 위를 두드린 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방어 마법을 짓밟은 크라슈가 있었다.

     

   그것도 막대한 힘을 성검에 쏟아부은 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자세로 말이다.

     

   “누워 있으니 좋냐?”

     

   도발 섞인 그의 말을 듣고, 아벨라가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도망치듯 몸을 굴리려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럼 평생 누워 있어.”

     

   그리고 아벨라의 눈앞이 곧 백색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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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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