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6

    <396 – 만나고 싶어>

     

    조나는 마음 약한 집사였다.

    세상 누구라도 죽일 수 있을 것처럼 강한 힘을 지녔지만 그의 마음은 강철처럼 단단하기만 할 뿐.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는 굽히지 못해 부러지기 직전의 철근처럼 애처로이 떨렸다.

     

    “그만 두어라. 지금이라도 돌아가거든 없던 일로 무마할 수 있다.”

    “그만 둔다면. 집사와는 영원히 작별하겠죠?”

    “그만 두지 않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그럼 역시 제가 옳았어요. 적어도 지금, 제 마지막 순간을 집사와 함께 보낼 수 있잖아요.”

    “대체 뭐가 불만이라는 거냐!”

     

    조나가 역정을 터뜨렸다.

     

    “네 부모는 은화 몇 매에 재단으로 널 팔아넘겼다. 창관에 끌려갈 수도 있었으나 집사의 선택을 받아 세계최고의 교육기관에 발을 들였다. 분에 넘치는 교육을 받으며 하급반이라도 능히 일생을 바꿀 양질의 지식들을 얻게 되었거늘. 이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단 말이냐?”

    “조나. 당신의 말이 옳아요. 부모님은 가난하셨기에 자식을 팔았고, 집사인 당신은 제가 지닌 재능을 중히 여겨 분에 넘치는 기회를 허락하였죠.”

    “그것을 아는 녀석이 왜!”

    “그래서 늘 궁금했어요. 당신은 집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 재단의 집사 사이에서 누구보다 먼저 ‘아가씨’를 고를 자격이 있었음에도 어찌하여 샤를로테가 아닌 저를 골랐는지.”

    “…!”

    “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요. 알려주지 않는다면 평생 알 길이 없겠죠. 하지만 당신의 호의가 있음을 깨달았기에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답니다.”

     

    조나의 첫 번째 아가씨.

    2대 모자씨의 과거는 처연히 웃으며 고백했다.

     

    “당신을 제 아버지라 생각하고 싶다고.”

    “!!!”

    “그러니 후회하지 않아요. 두 번째 아버지만큼은 저를 버리지 않았으니까요. 그 사실을 이 두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집사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했다.

    재단의 방침.

    그 잔인한 손속을 모를 그녀가 아니었기에.

     

    “각오는 되었어요. 해야 할 일을 해주세요.”

     

    두 눈을 감고 무방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아가씨.

    손만 뻗으면 목을 분지를 수 있는 연약한 아가씨.

    조나를 아버지라 부르며 의지해오는 가엾은 아가씨.

     

    그런 아가씨를 처분한다.

    자신의 손으로.

     

    “…”

     

    억만금의 무게와도 맞설 수 있도록 단련된 두 팔이 위로 향할수록 더뎌졌다.

    그의 손이 비틀어야 할 적은 이런 연약한 아가씨가 아니었기에.

    그럼에도 조나의 팔이 서서히 올라갔다.

     

    꽈악.

     

    그리고 붙잡았다.

    아가씨의 목.

    힘 한번만 주면 부러질 가녀린 약점.

    그 아래로 어디에 주먹을 내질러도 가볍게 구겨질 흉부.

    그 전체를 감싼 코트의 옷깃을.

     

    “바람이 찹니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십시오.”

    “조나…?”

     

    아가씨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러면 안 되잖아요.”

    “어리광을 부린 건 아가씨입니다.”

    “그렇다고 받아주면 어떡해요. 전 제가 죽을 자리를 골랐을 뿐인데.”

    “아가씨는 벌을 받을 겁니다. 당신의 어리광 때문에 집사가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 생각하며 괴로워하십시오. 그것이 아가씨에게 내리는 저의 벌입니다.”

    “조나…”

    “받으십시오. 장학생들의 눈을 피해, 육신을 버리고 의식만이라도 사물에 깃드는 스크롤입니다.”

     

    조나는 엄격한 눈으로 아가씨를 내려다보았다.

     

    “쉬운 각오로 쓰지 마십시오. 육신 없이 한평생을 사물에 갇혀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죽는 영혼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차라리 지금 죽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릅니다.”

    “그럼 지금 절 죽여주세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조나의 손에 죽는 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제발요.”

     

    조나의 거친 손을 붙잡아 자신의 목에 올리는 아가씨. 그러나 그 손에 힘이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그것이 그녀와 조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홀로 돌아온 아카데미.

    그녀는 2학년들이 <패스 월Pass Wall>, 벽 통과 주문의 실습을 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벽 통과 주문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들은 고학년의 기술을 무리하게 따라하다 죽은 불운한 1학년이라 여겼지만 찢어진 스크롤 조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궁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나의 첫 번째 아가씨, 앨리스는 육신을 잃고 정신만이나마 아카데미에 숨어들었다.

    언젠가 아카데미에 찾아올 조나의 또 다른 아가씨를 기다리며, 조나와의 재회가 가능하리라 믿으며.

     

     

    * * *

     

     

    “힝잉잉! 너무 슬퍼요!”

     

    티토소가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자 2대 모자씨가 모자챙을 내려 눈물을 슥 닦아주었다.

     

    “바보 아니야? 뭘 이런 걸로 울어.”

    “그치만 2대 모자씨는 몸을 잃을 정도의 잘못을 한 적은 없잖아요.”

    “시간문제였어. 조나가 떠난 뒤에 아카데미에 돌아오자마자 다음 지령이 도착했으니까.”

    “어떤 지령이었는데요…?”

    “<월 패스> 주문으로 실습중인 2학년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붙잡아 살해하라.”

    “그런!”

    “차라리 잘된 일이었어. 지령에 실패해서 죽었다고 자연스럽게 인식시킨 덕분에 재단에서는 조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재단은 죽고 싶은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지령을 수행했더라도 그 뒤에 생환은 어렵다.

    2학년과 1학년.

    어느 쪽이 벽 통과 주문에 더욱 숙달되었겠는가.

    사고를 당할 확률은 1학년이 더욱 높다.

     

    “복수해줄게요!”

    “누구한테?”

    “2대모자씨한테 지령을 내린 사람이요!”

    “그만둬.”

    “복수하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이 네 파파라도 복수할 수 있겠어?”

    “…!”

    “이제 와서의 이야기야. 누가 지령을 내렸을지는 모를 일이지. 지령을 내린 장본인도 그런 사소한 일은 기억하지 못할 거야. 나야 샤를로테의 성장을 위해 이용당한 말단 중의 말단 장학생이었으니까.”

     

    2대모자씨는 체념에 익숙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재단에게 버림받고.

    스스로에게마저도 자신의 몸을 버림받았으니까.

    버리고 버림받는다.

    그것은 2대모자씨의 인생 그 자체였다.

     

    “그럼 샤를로테의 뒤를 봐주는 재단인사를 찾아내면 되죠! 샤를로테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2대모자씨를 괴롭힌 장본인일 테니까요.”

    “…”

    “왜요? 혹시 복수는 하기 싫어요?”

     

    이상하다.

    원흉을 찾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그런데도 2대모자씨는 하나도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샤를로테는 나쁜 아이가 아니야.”

    “정말요?”

    “대놓고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그 아이의 일상을 지켜본 적이 있었어. 내 인생이 어떤 아이를 위해 희생되나 지켜보고 싶었거든.”

     

    아항.

    될성부른 스토커는 생전에도 싹이 나왔구나!

     

    [인물 <앨리스>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

    앨리스의 이해도

    착한사람(이해도 20) – 그녀는 타인을 원망할 줄 모른다.

    도망치는 자(이해도 40) – 부모에게 버림받은 이래, 그녀는 버림받는 고통을 피하고자 깊은 관계가 되기 전에 먼저 관계가 단절되기를 바란다.

    스토커(이해도 60) – 조심성 많은 그녀는 관심을 지닌 인물을 먼저 관찰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대상의 동의를 받는 일은 없지만.

    ━━━

     

    [인물 <앨리스>의 이해도가 20을 넘었습니다.]

    [1차 특전 <유유상종>을 받습니다.]

    [착한사람의 곁에 머무르는 당신의 마음은 조금씩 선에 가까워집니다.]

    [선 계열 캐릭터와의 관계 및 호감도가 개선될 가능성이 매주 10씩 상승합니다.]

     

    [인물 <앨리스>의 이해도가 40을 넘었습니다.]

    [2차 특전 <깊은 관계>를 받습니다.]

    [인물 <앨리스>의 호감도 상승속도가 상승합니다.]

     

    [인물 <앨리스>의 이해도가 60을 넘었습니다.]

    [3차 특전 <재단의 아가씨>를 받습니다.]

    [언제나 한 걸음 뒤에서 수동적인 태세를 취하던 그녀가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앨리스가 당신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기 시작합니다.]

    [재단과 관련된 인물, 사물, 이벤트의 감지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이해가 깊어지자 모자뿐인 아가씨의 인간시절 모습이 어렴풋이 상상이 된다.

    겉으로는 착한아이.

    속으로는 상처가 깊은 아이.

    상처가 깊어지기 두려워 몰래 숨어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 혹은 가까워지려는 사람을 관찰하고 경계하는 소동물 같은 아가씨.

     

    ‘언럭키 아가씨버전의 티토소가!’

     

    조나의 첫 번째 아가씨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했다.

    아무런 능력도 미래지식도 없는 뉴비시절의 나라면 그녀와 다를 수 있었을까.

    재능의 측면에서라면 그녀보다 뛰어날 수는 있었겠지.

    그러나 엔딩수집보상도, 도감수집보상도 누적되지 않은 백지 상태에서 쌓아올릴 수 있는 힘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재단의 주력인재로 육성되었던 샤를로테와 어떻게든 맞먹거나 조금 나은 수준으로 올라서더라도 결국 재단의 뜻대로 휘둘리는 신세에 그쳤겠지.

    역시 파파는 유능하지만 그다지 착한 어른은 아닌가보다.

     

    “그래도 샤를로테라는 선배는 만나보고 싶어요.”

    “꼭 그래야겠어?”

    “2대모자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조나는 이제 제 집사인걸요. 집사를 슬프게 만든 사람의 낯짝 정도는 봐두고 싶어요!”

    “…앨리스라고 불러준다면.”

    “앨리스 선배!”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했던 기수는 978기. 정상적으로 매해 진급했다면 4학년이 될 수 있었지.”

    “샤를로테는 지금 몇 학년인데요?”

    “3학년. 그리고 휴학 중이야.”

    “교관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랬으면 나도 지켜볼 수 있었겠지. 샤를로테는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아카데미 부지 내에서도 인접한 지면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결계 너머의 구역.

     

    “휴학생 전용구역. 아카데미를 휴학 중인 학생이 아니라면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에 있어.”

    “거기선 정상적인 아카데미 활동으로 포인트를 벌지 못하잖아요. 교관 일이 그나마 포인트가 벌릴 텐데 위험하게 거긴 왜 들어갔대요?”

     

    기프트 아카데미가 아무리 막장이라도 금기시하는 사항이 몇 가지 있다.

    타인의 생명과 포인트를 동의 없이 갈취하는 행위를 금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학칙에 의해 보호받는 재학생이 아니라면?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포인트를 벌려고 하니까 그렇겠지.”

     

    무제한적인 폭력에 노출된 치외법권에서는 진급을 위해 포인트를 모으고자 어떤 잔인한 짓도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의 심연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