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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6

       

       대동아공영회가 의도했던 정답은, 내가 수감자와 부족민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나 혼자만 탈출하는 것.

       

       그렇게 정답이 정해져 있었음에도, 나는 수감자와 부족민 모두를 살릴 방도가 없을지 거듭 고민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부감은 물론이고, 대동아공영회를 증오하는 백오십 명의 사람들이라니. 나에게는 언제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지 모를 귀한 병력이다. 이들을 죽일 수는 없다.

       

       그렇게 고민했었는데, 의외로 편법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시험도 통과하고 부족민들도 살릴 수 있는 편법이, 나에게는 이미 있었던 것이다.

       

       ‘이건 아무도 몰랐겠지.’

       

       내 손에 쥐어져있는 적석. 내가 생각해낸 편법은 이 적석으로 마문을 열고, 그 너머의 이계로 수감자와 부족민들을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시험도 통과하고, 부족민들도 살린다. 

       

       나는 손에 쥔 적석에 마력을 흘러넣고, 조금 뒤로 물러났다. 어둠 속에서 강한 빛이 번쩍하더니, 갑판의 위로 생겨난 직경 2미터의 구체가 일렁거렸다.

       

       『하, 하늘의 문이 두 개……!』

       

       마문이라고는 하늘 위에 뜬 것만 알고 있던 부족민들이 놀라며 외쳤고,  

       

       『자네! 어떻게 마문을……!』

       

       수감자 역시 이렇게 인공적으로 마문을 여는 것은 못 봤는지 놀라서 내뱉었다. 나는 수감자에게 말했다.

       

       『이 너머는 다른 이계입니다.』 

       『다른, 이계……. 그렇겠지. 마문 너머에는 이계가 있으니까.』 

       

       수감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문과 나를 번걸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자네가 우리에게 이걸 보여준다는 것은, 자네는, 나와 내 부족민들이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가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 너머가, 어딘 줄 알고 우리가……?』

       『이곳에 비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乳と蜜の流れる地)이죠.』 

       『……성서의 인용이군.』 

       

       역시 미국친화적이고 교육받은 사람이라 이 정도 표현은 알아듣네.

       

       물론, 저 너머가 내 말마냥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은 아니다. 마수도 있고, 이들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보다는 낫겠지. 인간에게 가혹한 정글인데다가 시간까지 빠르게 흘러 외부와 세월 자체가 격리되는 이곳과 비교하면 젖꿀땅이나 마찬가지지. 

       

       『할아버지! 들으시면 안 돼요! 악마의 꼬드김이에요!』

       

       수감자의 바로 곁을 지키듯 웅크리고 있던 모리꼬가 외쳤다. 아니, 살려준다는데도 못 믿네. 나는 수감자에게 말했다. 

       

       ❝Just trust me. It’s going to spare all of you.❞

       (믿으세요. 당신들 모두를 살리려는 거니까.) 

       

       그렇게 말한 나는, 수감자는 물론 이곳의 부족민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일본어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아. 저 너머에는 작은 공동과 동굴이 있습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150명 정도는 어찌어찌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동굴을 빠져나가면 산악지형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곳과 마찬가지로 파란 하늘로 둘러싸인 대기를 가지고 있어 호흡도 가능하고, 자생하는 이계 식물들은 식용 가능한 종류도 몇 있었습니다.』

       

       『저번에 들어갔을 때 흙이 촉촉했던 것을 보면 건조한 환경은 아니며, 어딘가에는 강도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곳에도 마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지간한 사냥꾼이라면 쉽게 잡을 만한 중소형 중하급 마수 뿐. 이 요쿠센과 비교하자면 오히려 더 낮은 정도죠. 여러분들이라면……』

        

       거기까지 말한 나는, 선상을 둘러보며 몇몇 이름을 불렀다.

       

       『오오노. 아미야리. 야우마.』

       『……?』

       

       지목받은 녀석들이 얼굴에 의문을 띄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요 며칠간 정착지 바깥에서 함께 마수를 사냥하며 친해진 사냥꾼 청년들이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너희 정도면 충분히 잡을 만한 마수들 뿐이야. 내가 봤을 때 이 부족의 사냥꾼들이면, 저곳의 마수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어.』

       

       사실이었다. 숫자만 많은 자잘한 중소형 마수들이 나에게는 곤란했지만, 정글에서 목숨을 걸고 중대형 마수를 몰이사냥했던 이 부족민 사냥꾼들에게는 오히려 손쉬운 사냥감이자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수감자에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여러모로 봤을 때 이 요쿠센의 정글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입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이곳보다 훨씬 낫고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했다.

       

       『저곳에서는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릅니다.』 

       

       내 말에 다른 부족민들은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수감자는 내 말을 듣고는 얼굴이 굳었다. 내 말의 진의를 알아들은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수감자에게 말했다.

       

       『어쩌시겠습니까. 제가 당신들을 죽이지 않아도, 당신들이 이곳에 머물러있다면 관리자들이 당신들을 죽일 겁니다. 여기서 죽겠습니까, 아니면 새 땅에서 살아가겠습니까. 적어도 그곳에서는 시간이 빠르게 흐르지는 않으니,』

         

       거기까지 말한 나는 영어로 말을 끝맺었다.

       

       ❝you can plan the future days, in earnest.❞

       (그곳에서는, 제대로 후일을 도모할 수 있겠죠.)

       

       『……!』 

       

       이쯤하면 알아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른다는 것은, 이곳에서라면 영영 못 볼 미래를, 저곳에서는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감자의 인생이 몇년 안 남았다고 하더라도, 찰나로 스러져갈 이곳과는 달리 저곳에서는 일본제국이 몰락하는 것까지는 보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른다는 것의 가치를, 이곳에서 60여 년을 보낸 이 수감자는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알고 있으리라.

       

       수감자는 잠시 깊게 생각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받아들이지.』 

       『하지만, 부족장님!』

       『할아버지!』

       

       몇몇 부족민들과 모리꼬가 들고 일어서며 외쳤지만, 수감자는 몸을 일으키고는 손가락을 들어 부족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뒤따라오는 비행선들에게 전해라. 이곳 기함으로 건너오라고. 우리는 모두 저 너머로 이주한다.』 

       『……!』

       

       뭐니뭐니 해도, 오랫동안 믿고 따르던 부족장의 명령이었다. 부족민들은 내키지는 않는 듯하면서도 지시에 따랐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일단의 사냥꾼이 먼저 들어갔고, 순차적으로 부족민들이 뒤를 이러 들어갔다. 

       

       배의 옆으로 긴 널빤지 다리가 걸쳐졌다. 원래 공중의 마문에 도달했을 때 쓰일 목적이었던 그 널빤지 다리로, 다른 비행선에 타고 있던 부족민들도 이쪽으로 하나하나 넘어왔다.

       

       수감자는 부족민들을 독려하며 마문으로 이끌었고, 부족민들은 얼굴에 불안 반, 기대감 반을 띄우고 줄지어서 마문 너머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감자는 설득시킬 수 있어도 부족민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떡하나 조금 고민했는데, 수감자의 말을 잘 따르니 다행이었다.

       

       그렇게, 150명이나 되는 인원이 다른 배에서 이곳으로 건너와, 이곳에서 마문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시라바야시 상.』 

       

       렌까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렌까의 시선이 닿아있는 곳은 내 손에 쥐어진 적석이었다.

        

       『그 적석은…… 그 적석으로 마문을 연 것은, 대동아공영회의 기밀로 있는 인공 마문 기술이 아닌가요.』 

       『맞아.』

       

       나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렌까도 알고 있으리라. 대동아공영회는 나중에 인공 마문을 마구마구 만들어서 연쇄작용을 일으켜 강제로 카타스트로피를 일으킬 계획이라는 것을, 렌까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들었을테니까.

       

       『그것이 어째서, 당신의 손에?』

       『그건…… 음. 그때 기억 나?』

       

        나는 렌까에게 설명해주었다.

       

       『몇달 전, 동소문에 열렸던 마문에서 너랑 내가, 네 약혼자였던 아오끼 소좌를 처음 죽였을 때 말야.』

       『……아!』 

       『이건 그 때 빼돌렸던 거야.』

       

       렌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하지만 그땐, 마문 너머의 이계가 용암이 흐르는 동굴이 아니었던가요? 방금 당신의 했던 설명과는 다릅니다만.』 

       『지금은 다른 이계로 고정됐어.』 

       『인공 마문 기술은 대동아공영회에서도 극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시라바야시 상이 마력공학에도 해박할 줄은 몰랐군요.』 

       『뭐, 나도 어쩌다가 알게 된 거니까……』

       

       사실 내가 마력공학에 대해 뭘 알아서 적석을 고친 것이 아니라, 스테이터스 시스템에 내재된 기술로 고친 것이었지만. 

       

       150여 명이나 되던 부족민이 배를 건너와 마문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부족민들이 전부 넘어간 것은, 어느덧 조금씩 하늘이 푸르게 밝아져오려는 새벽 즈음. 

       

       마지막 남은 사람은 수감자와, 그를 부축하던 손녀 모리꼬였다.

       

       『…….』

       

       수감자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뭔가 말하고 싶지만 렌까가 있어서 말하지 못하는 눈치였기에, 내가 먼저 말했다.

       

       『머지 않아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지.』 

       

       수감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수감자는 나를 믿고 있었지만, 어차피 여기서는 렌까 때문에 진솔한 얘기를 나누지 못한다는 것을 수감자 역시 알고 있었으니까.

       

       『가자, 모리꼬. 나를 부축해 다오.』

       

       수감자가 진중하게 명령하자 모리꼬는, 

       

       『……칫! 마녀.』

       

       한번 곁눈질로 렌까를 흘겨주고는, 수감자를 부축하며 마문 너머로 들어갔다. 여전히 렌까를 적으로 생각하는구나. 

       

       뭐, 저 안에 들어가서는 수감자가 해명해줄테니 괜찮…… 아니, 그래도 저 사람들 입장에서 렌까는 여전히 적이 맞나? 

       

       아무튼, 두 명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나는 그제서야 손에 쥐고 있던 적석의 회로에 마력을 흘러넣어 마문을 닫았고, 갑판 위에 떠 있던 구체는 간데없이 사라졌다. 

       

       ‘후우…….’

       

       다 끝났다. 수감자와 부족민이 모두 넘어가고 마문도 사라져, 어느새 휑해진 선상(船上). 비행선에는 이제 렌까랑 나, 둘만 남았다.

       

       이제 이곳을 떠나 바깥 세계로 나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나는 렌까에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자, 우리도 올라가자.』 

       

       내가 타고있는 기선은, 이미 공중에 떠있던 옥천 마문과 선측을 접할 정도로 가까이에 있었다. 여기서 널빤지 다리를 걸고 넘어가면 된다. 

       

       『나가서, 이곳에 소이탄을 투하해 불바다로 만드는 것 까지가 시험의 정답이겠지? 어차피 이곳 사람들은 모두 옮겼으니까, 마음놓고—』

       

       내가 널빤지를 마문에 걸쳐지도록 단단히 고정시키며 그렇게 말하던 그 때, 

       

       『시라바야시 상.』 

       

       목에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닿지는 않았지만, 뭔가 예리한 것이 목에 겨누어져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내 목에 칼날을 가져다대고 있는 렌까.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사방이 푸른 빛으로 밝아져가는 그 안에서, 렌까는 붉은 안광을 빛내며 차가운 어조로 물어왔다. 

       

       『당신은 그들을, 어디에 쓸 셈인가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실패……!
    그렇게 되었습니다. 변명이지만, 제가 연참을 실패한 것은……

    비 때문입니다! 비가 잘못했어요!!! 막 천둥도 치고!!!

    …….

    아무쪼록 내일 이후는 연참을 하여 이번주도 주6회 연재를 채우도록 하겠습니당!!!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P.S. 오늘이 마침 초복이라 치킨을 시켜먹고 싶은데, 이런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 제가 치킨을 시켜먹어도 괜찮을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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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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