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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6

       ‘여신이면 다 봤을 거 아니야. 내가 얼마나 세계 평화에 공헌했는데 감히 푸대접을 해?’

        ​

        이유가 없는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다만 로즈마리에겐 이것도 중요했다.

        ​

        이 게임은 여신과의 연락책이다. 사소한 부분에 여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로즈마리보다 요르문간드의 셀렉트 넘버링이 앞에 온다는 것은, 그녀가 요르문간드를 더 챙겨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

        “조용! 웃는 문자 그만 쳐! 어쭈? 나는 경고했어. 분명히 경고했어!”

        ​

        [치킨피자조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djfls18 : ㅋㅋㅋㅋㅋㅋㅋ]

        [미르미리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크통나무 : ㅋㅋㅋㅋㅋㅋㅋㅋ]

        [두글자만침 : ㅋㅋ]

        [금안족눈알핥짝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갈때메로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ww1111 : ㅋㅋㅋㅋㅋㅋㅋ]

        ​

        “가만히 안 있으면 밴? 반? 아무튼 그거 할거야. 알겠어?”

        ​

        되도 않는 협박이라는 걸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이 방송의 호스트는 로즈마리가 아닌 하늘이다. 하늘은 ‘ㅋㅋㅋ’좀 친다고 밴을 먹이는 주인장은 아니다.

        ​

        “생각이 바뀌었어요. 얘로 한번 해 볼까요?”

        ​

        하늘은 크크크 웃으며 요르문간드를 선택했다.

        ​

        그러자 눈을 슬며시 뜨는 요르문간드. 날카로운 세로동공이 위압적이다.

        ​

        [─동족을 위해서라면, 여(余)는 수라의 길이라도 걸을 것이다.]

        ​

        마왕군 챕터 보스로 나왔을 때와는 달리 주인공스러운 대사까지 친다. 로즈마리는 그 점이 더욱더 약올랐다.

        ​

        “요르문간드로 하면 게임이 편할 것 같긴 한데… 얘로 어때요?”

        “조금 전엔 저로 한다고 했잖아요.”

        “아뇨? 저는 그런 말씀 드린 기억이 없는데요?”

        ​

        따지고 보면 하늘이 직접 ‘로즈마리를 선택하겠다’라고 한 적은 없었다.

        ​

        “이, 이런….”

        ​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차린 로즈마리의 CPU가 뜨겁게 폭주했다.

        ​

        “블루베리 님.”

        ​

        드드득.

        ​

        하늘이 의자를 가까이 끌고 오며 물었다.

        ​

        “로즈마리로 시작해 드려요?”

        “그러면 좋겠네요.”

        “그러면 좋겠네요?”

        “좋겠어요.”

        ​

        파스모, 길라흐, 오를레이앙, 리바이어던… 선택 가능한 마왕군 진영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비호감뿐이다. 에테르와 아카샤는 다른 DLC로 나와 있어서 여기엔 없었다.

        ​

        결국 로즈마리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로도 플레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

        “좋아요. 그러면 로즈마리로 플레이할게요.”

        “후, 진작 그렇게 하셨어야….”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네. 블루베리 님께서 직접 로즈마리의 보이스를 더빙하는 거예요.”

        ​

        다키스트 아카데미아는 풀보이스 지원이 안 된다. 보이스 지원을 하기에는 대사가 너무 많았다.

        ​

        심지어 DLC 하나 나올 때마다 선택지가 테트레이션으로 늘어나는데 성우들을 혹사시킬 수는 없었다.

        ​

        그 때문에 기본 보이스 말고는 없는 상황.

        ​

        “그런데 여기에 로즈마리 코스프레를 한 블루베리 님께서 직접 더빙하신다면?”

        “…….”

        “컨텐츠가 복사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죠!”

        ​

        로즈마리는 불현듯 깨달았다.

        ​

        ‘이 사람, 나로 돈복사를 할 생각이야…….’

        ​

        하늘은 방송 천재였다. 스피드런 기록을 빼앗긴 것에 좌절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하면 수입원을 다각화할 수 있을지 떠올렸다.

        ​

        그 결과가 로즈마리와의 합방. 도네이션 알림은 잠시 꺼 두었지만, 지금도 적게는 1000원에서 많게는 수백 만원까지 다양한 금액의 도네가 들어오는 중이었다.

        ​

        이대로 닼아 한 판을 시원하게 조지면 필시 일억킥이 가능할 터.

        ​

        ‘생각보다 무서운 인간이다. 대화 몇 번 하면 레니냐도 브루주아지로 타락시킬 만한 재능을 가졌어.’

        ​

        로즈마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

        “그래서 할 겁니까 말 겁니까?”

        ​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하늘은 장난기 어린 어조로 로즈마리를 타박했다. 

        ​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컨셉을 굳게 지켜야 정체를 들키지 않을 테니까.

        ​

        “할게요. 연기 하면 되잖아요. 그렇죠?”

        ​

        로즈마리는 마우스를 잡고 흔들었다. 이어서 바이올린을 든 채 여상히 웃고 있는 자기 자신을 클릭.

        ​

        셀렉트 대사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

        [─아하하하! 멍청한 인간들! 싹 다 송장으로 만들어 주마!]

        ​

        ‘아 씨발.’

        ​

        로즈마리는 순간 할 말을 잊어버렸다.

        ​

        [kk1234 :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웃사이드인 : 대사 왜이럼 ㅋㅋㅋㅋㅋㅋㅋㅋ]

        [체스메이트 : 요르문은 씹간지인데 블루베리는 왜 악당이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

        하늘이 킥 웃으며 로즈마리를 흘겨봤다.

        ​

        “블루베리 님?”

        “네, 네?”

        “대사 칠 수 있겠어요?”

        ​

        식은땀을 흘리는 로즈마리. 탄화수소 성분의 땀이라 그런지 흘러내린 자리가 번들거린다. 꼭 참기름이라도 발라놓은 것 같았다.

        ​

        [ww1111 : 설마 이걸 안 한다고?]

        [블랙말랑카우 : 더빙 안해주는 흑우 없제?]

        [수상할정도로돈이 : 하면 100만원 도네한다]

        [방장밴w : 도네 알람 켜줘ㅓㅓㅓㅓㅓ]

        [매일10시 : 방장!!!!!! 빨리!!!!! 나 급해!!!!!]

        ​

        “하아….”

        ​

        어쩔 수 없다.

        ​

        이것도 다 망할 놈의 오해를 풀기 위함이다. 진짜 로즈마리라면 여기서 못 참고 도망쳤을 테니까.

        ​

        실제로도 도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해내야 한다.

        ​

        로즈마리는 광대를 어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

        촤락!

        ​

        [─아하하하! 멍청한 인간들! 싹 다 송장으로 만들어 주마!]

        ​

        “아하하하…! 머, 멍청한 인간들! 싹 다 송장으로 만들어 주마아아아악─!!”

        ​

        [kmsf1116 : 마지막에 악센트 씨게 주는 거 보솤ㅋㅋㅋㅋㅋㅋㅋㅋ]

        [퍄퍄퍄 : 홀리몰리과카몰리보더콜리브로콜리블루베리씨이잍ㅋㅋㅋㅋㅋㅋ]

        [치킨피자조아: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캬!]

        [빠인아쁠96 : 아 ㅆㅣ바 ㅈㄴ 욱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간하늘 : 블루베리 그녀는 신인가? 블루베리 그녀는 신인가? 블루베리 그녀는 신인가? 블루베리 그녀는 신인가? 블루베리 그녀는 신인가? 블루베리 그녀는 신인가? 블루베리 그녀는 신인가?]

        ​

        아, 젠장.

        ​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

        ​

        **

        ​

        ​

        다섯시간 반에 걸친 합방도 끝이 났다.

        ​

        “모두 수고하셨어요~”

        ​

        유하늘은 능숙하게 멘트를 치며 방송을 종료했다. 시청자들은 늦게까지 빠지지 않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켁켁.”

        ​

        쉬지 않고 풀보이스 더빙을 한 로즈마리는 말 그대로 녹초가 되었다.

        ​

        게임 자체는 무난하게 잘했다.

        ​

        아니, 겉잡을 수 없이 완벽했다.

        ​

        로즈마리 본인을 조작하는 것이니 그만큼 쉬웠다. 게임은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

        “오늘 정말 최고였어요. 특히 실수하실 때마다 바이올린 한 곡씩 연주해 준 건…… 키야! 방송 천재인 줄 알았잖아요, 완전!”

        “그 실수는 고의로 한 거였어요.”

        “에이, 고의 아니셨잖아요. 거기서 메이드복 입은 에테르랑 딱 만났을 때 당황한 티가 엄청 나시던걸요.”

        “…….”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처음 하는 DLC잖아요? 오히려 한 번에 깼으니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역시 자신이 로즈마리 본인이라는 건 말 못 한다. 이 일은 에테르 언니에게도 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짐을 정리하고 현관으로 나가는 로즈마리를 하늘이 배웅한다. 하늘은 도어락을 열어주며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

        “제가 마중 나가 드릴게요.”

        “아뇨. 힘드실 텐데 그냥 여기 계세요.”

        “에이, 손님을 돌려보내는 건데 그럴 수는 없죠.”

        ​

        하늘에겐 로즈마리가 굴러온 복덩이였다. 당장 오늘 도네이션만 하더라도 1억 가까이 벌었으니까.

        ​

        다키스트 아카데미의 인기가 그만큼 대단한 것도 있지만, 로즈마리의 얼굴값도 제몫 이상을 했다.

        ​

        하늘은 수수료를 제외하고 이중 7할을 로즈마리에게 줄 생각이었다.

        ​

        ‘그래야 다음에 또 만나지.’

        ​

        물론 그런 흑심도 없잖아 있었다. 다만 가장 큰 이유는 ‘출연료’였다. 귀한 손님을 모셨으니 그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

        “출연료가 두둑해서 괜찮아요. 그만 들어가서 쉬세요.”

        ​

        로즈마리가 몇 번이고 만류했지만 하늘은 도통 들어먹질 않았다. 반어법을 쓰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

        ‘아이 씨, 왜 이리 치근대?’

        ​

        로즈마리는 일말의 귀찮음까지 느꼈다. 그렇다고는 해도 돈까지 그윽하게 받았으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대화를 이었다.

        ​

        “밤이 깊었네요. 버스 안 끊겼을까요?”

        “끊겼을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끊겼으면 제가 대신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아뇨.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

        혹시 자신의 집 주소가 알려지는 걸 엄청 꺼려하는 타입인 것일까?

        ​

        “택시라도 잡아 드릴게요.”

        “그것도 괜찮아요.”

        ​

        그건 아닌 것 같았다.

        ​

        이 뒤로도 여러 제안을 건넸지만 로즈마리는 모조리 거절했다.

        ​

        ‘왜 전부 거절하시는 거지?’

        ​

        하늘은 그 이유를 1층에 내려가서야 알 수 있었다.

        ​

        “아….”

        ​

        어둑한 밤하늘 아래로 그보다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대기하고 있다.

        ​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말끔하다. 턱선은 조각 같으며, 체형은 균형이 잡혀 있어 잡지에 나오는 모델 같았다.

        ​

        눈동자는 로즈마리와 비슷한 노란색. 달빛과도 같은 홍채 위로 볍씨처럼 박힌 한 쌍의 동공이 압도적이었다.

        ​

        “말간하늘 님께서 신경 써줄 필요는 없어요. 언니가 끝나면 데리러 온다고 연락했거든요.”

        “아….”

        ​

        하늘은 같은 탄성을 수 차례 내뱉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푹푹 터져 나왔다.

        ​

        로즈마리는 ‘언니!’ 하며 여인 곁으로 도도도 다가갔다. 여인은 로즈마리의 머리를 옅게 쓸어넘겼다.

        ​

        “합방 제대로 하고 왔니?”

        “좋았어요.”

        “사고친 건 없고?”

        “당연히 없었죠.”

        ​

        하늘의 사고가 느릿하게 흘렀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뺨을 찰싹찰싹 때려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

        로즈마리를 쓰다듬던 흑발금안의 여인이 하늘의 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

        “오늘 하루 제 동생과 같이 방송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묵직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

        ​

        뭔가 멘트를 치긴 쳐야 하는데, 모르겠다. 하늘은 말을 받아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었다.

        ​

        “아. 참고로 이거 컬러렌즈입니다. 오해하시면 안 돼요.”

        ​

        컨셉러가 두 명인 것인지.

        ​

        아니면 정말 두 사람이 그쪽 세계에서 넘어온 것인지….

        ​

        “안녕히 계세요.”

        “오늘 하루 고마웠어요.”

        ​

        두 금안족은 그런 인사를 남기고는 자리를 떴다. 하늘의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환각이라도 본 것 같았다.

        ​

        문득 유하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상천(上天)….”

        ​

        겨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랩실노예3841 님, 51+25+25 = 총 10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정성어린 장문의 감사 인사에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공대 물리학과 복수 전공이라니…엄청 대단한 길을 가시는 것 같습니다. 공부량도 만만치 않으실 텐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의 묘미는 후원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fundamental한 접근 방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으로부터 추론하여 근본적인 법칙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현상과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 때문에 물리학도가 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심지어 아인슈타인도 물리 이론에 관해 비슷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 이론이란 단순할수록, 더 많은 사물과 현상을 설명할수록, 적용할 수 있는 분야의 폭이 넓을수록 아름답다.

    아마 이런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ㅎㅎ

    때문에 물리학은 공대에 속한다는 인식이 있으면서도 엄연히 자과대에 속하고, 돈이 안 벌린다는 인식이 있으면서도 엄연히 높은 가치창출을 할 수 있습니다. 당장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고려대 물리학과를 나왔고, 일론 머스크도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하죠. 혹 전망이 안 좋다는 이야기가 있더라도 좋아해서 하는 일이고 꾸준히 하는 일이라면 분명 대성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후원자님이 제 소설을 감명 깊게 읽어주시고, 인생픽까지 찍어주셨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엄청 기뻤습니다. 저 또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가치창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신 후원자님, 그리고 다른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를 몇 번이나 드려도 부족하답니다.

    차기작도 물리학자 주인공을 내세우려고 합니다. 7~8월 바쁜 시기를 보내고 나면 캐릭터와 플롯을 다듬어서 9월 이후로 작품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차기작은 더 정교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후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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