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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7

        

       총리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듯,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당에서 앙숙이었던 이들도 입을 모아서 총리의 결단을 축하하였고, 정치인들은 계파니, 이해관계니 상관없이 총리가 가리킨 방향으로 일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문화계 쪽에서는 한국에 대한 비난이 섞인 내용을 주로 방영하라고 지침이 내려왔고, 서점에는 혐한 서적 코너에 수많은 신간이 꽂히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위치 역시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으로 옮겨졌으며, 때로는 매대에 진열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물품들은 다른 곳으로 거래처를 옮겼고, 기간이 남아있는 경우 정부에서 은밀하게 지원금까지 건네주면서 거래를 끊어버리도록 종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계약서의 허점을 이용할 수 있을 경우 그것을 가차 없이 사용하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음습한 행동과 함께, 인터넷과 언론을 이용해서 소문을 퍼뜨렸다.

         

       『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생물병기를 실험하고 있었다. 』

         

       『 재난이 일어났을 경우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대사관의 아래에 톤 단위의 생물학 무기가 저장되어 있었다. 』

         

       『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의 비밀 금고에서 서류를 발견했다. 일본 침공 계획이었다. 』

         

       그 내용인즉, 이 모든 상황은 대한민국의 탓이라는 것.

       수질이 오염된 것은 대한민국 대사관에 비치되어 있던 생물학 무기가 화재 때문에 봉인이 깨지면서 일어난 인재(人災)였으며, 지금 한국이 일본과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일본을 침략하기 위한 한국의 술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위기감을 고조시킴과 함께, 국회에서는 보통 국가로 회귀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한국이라는 명확한 적을 인지시켰고, 불안감을 증폭시켰으며, 무장하지 않으면 한국에게 공격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어넣었다.

         

       그 결과, 국민의 지지가 모였다.

         

       국민은 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고, 국회는 이에 따라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치인들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헌법을 개정, 군대를 가질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헌법이 개정되려는 그 순간, 나서는 국가가 있었다.

         

       『 헌법 개정을 멈추도록 하시오. 이건 경고요. 』

         

       미국이었다.

         

       미국은 일본의 헌법 개정을 좌시하지 않았다.

       특히나 이런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 속에서 행하는 헌법 개정이라면 더더욱.

         

       미국은 일본과 한국이 다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절대로.

         

       애초에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대우해주고 있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다.

       그런데 두 나라가 힘을 모아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할 무력을 기르지는 못할망정, 자기들끼리 싸워서 무력을 소진하겠다는데 그것을 어찌 달갑게 여길 수 있을까?

         

       그들은 대(對)중국, 대(對)러시아 포위망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이나 공들여 만든 포위망이었기에 그들의 반응은 거세기 짝이 없었다.

         

       미국은 강력한 경고를 날렸고, 무슨 일이 있어도 헌법 개정은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히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반응에 곤란해했다.

         

       밥이 다 되기까지 코앞이거늘.

       딱 한 발자국만 걸으면 되는 일이거늘.

         

       갑자기 나타나서 방해하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미국은 강대한 나라였다.

         

       일본은 미국에 짜증을 내는 대신, 평소처럼 움직였다.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로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일본의 로비를 기꺼워했던 이들도, 이번에는 로비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돈이야 언제 받아도 좋은 것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 ‘좋은 것’을 받아먹었다가는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중국이 전 세계에 산업스파이를 뿌려서 기술을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군사를 미친 듯이 불리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둘이 동귀어진이라도 하게 된다면 중국은 그 둘을 날름 먹으며 폭발적으로 힘을 불릴 수 있을 것이고, 마침내 힘의 균형이 깨지게 되리라.

         

       그렇게 된다면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남아있을 수 없게 되리라.

         

       세계의 양분.

         

       과거 소련과 미국으로 세상이 갈라졌듯, 중국과 미국으로 갈리게 되고, 인류는 피와 죽음을 쌓아 올려서 얻은 귀중한 평화를 잃고 다시 한번 전화의 불길에 휩싸여서 신음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 헌법을 개정할 경우, 아주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게 될 것이오. 』

         

       『 그리고 제재받고서도 어리석은 짓을 벌이려고 한다면, 그 이상의 것도 있을 수 있겠지. 』

         

       『 이건 단지 우리 당의 의견이 아니오. 대통령만의 주장도 아니고, 공화당만의 주장도 아니지. 이는 민주당 역시 동의한 사안이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소? 』

         

       『 미국 전체가 이 사안에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오. 』

         

       『 그러니. 』

         

       『 허튼짓하지, 마시오. 』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

       포위망은 유지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포위망의 육군을 담당한다.

       일본은 포위망의 해군을 담당한다.

         

       이는 그들의 의무였으며, 그들이 두 나라에 내린 번영의 대가였다.

         

       두 나라가 잿더미 속에서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이며, 둘이 감당해야 할 채무.

         

       대한민국은 최전방.

       일본은 전방.

         

       둘은 제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미국은 그렇게 엄포를 놓았고, 일본의 욕망은 그대로 돈좌되었다.

         

       그렇게 다시 질서가 찾아오고,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중재 아래 예전처럼 돌아가는 듯 보였다.

         

       서로 싫어하지만, 힘센 형님 때문에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

       싫어하는 만큼이나 서로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애증과도 같은 사이.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 * *

         

         

         

       “후우….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기회를 놓쳤다.

         

       그들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보통 국가로 돌아갈 수 있을 절호의 기회였는데, 하필이면 미국의 개입 때문에 모든 것이 망쳐졌다.

         

       정치인들은 얼굴에 아쉬움을 지우지 못했다.

       극우에 속하는 이들은 아쉬움에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있었으며, 우익이 아닌 이들 역시 기회를 놓쳤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들 역시 이번이 아니면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조금이라도 반항하려 한다면 일본을 나락으로 떨구겠다고 하는데.

         

       미국이 엔화에 손을 쓰기만 해도 일본 경제는 자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미국의 말을 거역할 수 있으랴?

         

       그냥 아쉬움만 달랠 수밖에.

         

       “그래도 노림수는 통했습니다. 본래 목적은 헌법 개정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본래 노리던 일은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렇지요.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으니 말입니다.”

         

       이들이 본래 노리던 것은 바로 칼날의 방향을 바꾸는 것.

       내재한 공격성과 폭력성을 정부가 아닌, 외부의 적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

       시선을 돌려서 안전을 얻는 것.

         

       “자칫 잘못했으면 민의(民義)가 우리의 목을 조를뻔했지요. 정말 아찔했습니다.”

         

       “그렇지요. 다행히 늦지 않게 시선을 돌렸으니 망정이지….”

         

       “솔직히 조금 걱정하기는 했습니다. 이거 상황이 심각한데 이 상황에도 먹히나 싶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걸. 한국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무슨 먹이를 본 동물처럼 시선이 딱 꽂히니 원…. 하하하.”

         

       “효과 좋은 거야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요. 이거 앞으로도 좀 애용해야겠습니다. 허허허허.”

         

       헌법을 개정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그래도 따져보면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손해는커녕 이득밖에 없다.

         

       그들의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했고, 시선을 자신에게서 돌리는 것에 성공했다.

       그 덕분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었고, 목이 날아갈 뻔한 사람들은 목이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있게 되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일본인 특유의 성향을 생각해본다면, 시간이 조금만 흐른다면 이번 일은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정계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활동할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이렇게까지 불을 지펴놨는데 또 아무런 행동도 안보이고 접으면…안 되겠지요?”

         

       “흠. 그렇겠지요.”

         

       하지만 아직 일이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하기는 했는데, 딱히 국민에게 보여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접으면…. 미국이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요. 화약고 속에 불씨를 품고 있는 격이니 말입니다.”

         

       “맞습니다.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성과가 있어야 해요.”

         

       거창하게 한국 잘못이라고 선동을 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냥 입을 꾹 닫는다?

         

       그렇다면 성난 국민의 분노가 다시 일본 정부로 향하게 되리라.

         

       저 무도한 나라에 본때를 보여주기는커녕, 패배한 개처럼 꼬리를 말았다고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책임에 관한 이야기가 스멀스멀 다시 기어 나오게 될 것이고, 여러 사람의 목이 날아가게 되겠지.

         

       어쩌면 지금보다도 많이.

         

       “흠…. 미국 눈치 때문에 과한 일은 벌일 수가 없는데….”

         

       “생각 같아서는 전투기 편대를 한국 근처로 보냈다가 되돌아오게 하고 싶소만…. 왜, 러시아가 우리한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게 되겠습니까? 미국이 입에 거품을 물 겁니다.”

         

       “끙….”

         

       성과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앞에 두고 끙끙 앓았고.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다케시마(竹島)에 구축함을 보내서 한국의 신경을 긁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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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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