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화. 평범 호소인 ( 2 )
평범하다는 건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딱 남들 하는 것처럼, 남들의 수준에 맞춰서, 평균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니.
연못 아래 있는 백조의 발처럼 부단히도 노력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내, 내가…… 이제는 평범하지 않아…?’
에샤는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17살의 소년에 불과하다고.
남들이 보면 고개를 갸우뚱했을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에샤는 아주 확고하게 그 사실을 믿고 있었다.
이 뒤틀린 인지 과정은 에샤의 어린 시절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아이야테르 산에 살던 이들은 모두 산을 훌훌 날아다녔고, 카우투스며 늑대와 곰, 호랑이를 가리지 않는 짐승 사냥과 도축의 달인이었으니.
이런 인간 괴물들 사이에서 나고 자란 에샤였기에 모두가 그런 줄 알고 자랐다.
‘오히려 나는 조금 떨어지는 그런 수준이었는데……’
내심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이걸 왜 못하지? 이것도 못 한다고? 그냥 하니까 되던데?
허나 그 이상으로 뻗어가지는 못했다.
17살, 한창 자아가 팽배하며 자신만의 가치관을 구축하기 시작하는 나이.
에샤는 다른 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서툰 사춘기의 소년이었다. 하물며 산에서 홀로 살았기에 대화도 서툴렀으니 오해를 해소할 기회도 없었다.
“……”
지금 여기, 한 소년이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느끼고 있다.
‘나는………평범한 게 아니었어?’
혼란스러운 에샤의 심경은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헛.”
“……꿀꺽.”
돌처럼 굳어버린 에샤의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다.
암살단원들은 단숨에 숨을 죽였다. 그들이 섣불리 떠든 소문 때문에 에샤의 심기가 불편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장님!”
“심기를 어지럽혀서 죄송합니다!”
후다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암살단원들이 도망쳤다.
에샤에게서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한 암살단원들은 다시금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 소문 중에서… 일부분 정도는 사실인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다. 수장님 표정이 굳어지는 거 봤어?
“아마 수장님이 떠올리고 싶어 하시지 않은 과거를 우리가 들추니까… 화가 나신 거겠지.”
1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만신전의 파문이다. 평생을 몸 담았던 신앙에게서 버려지는 것이란 도대체 무슨 기분일까.
이단 심문관의 수장이었던 에샤에게 있어 잊고 싶은 상처일 것이다.
에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암살단원들의 머릿속에서는 전직 이단 심문관 수장이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
“……”
암살단원들은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에샤 앞에서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함구하자는 암묵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 * * * *
“으아.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싸이코 팀장이 시킨 일을 부랴부랴 끝내고 재빨리 사무실을 탈출했다.
싸이코 팀장의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스칼과 에샤의 싸움을 확인하고도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오잉.”
허겁지겁 게임을 켰더니 상황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조금 허탈했지만 누구 하나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대충 <세계 탐험 모드>로 슥 훑으면서 찾아봤더니 이미 둘의 결투에 대해 알만한 사람은 거의 다 아는 모양이더라.
오가는 이마다 쑥덕거리는 것이 에샤에 대한 이야기요, 그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만신전이었고, 마무리는 에샤와 이스칼의 결투였다.
이봐. 암살단의 수장 에샤에 대해 들어봤나?
아 당연히 들었지. 그러는 자네는 지난번에 에샤와 수호자 이스칼께서 결투를 했다는 건 들어봤나?
아니 뭐라고! 조금만 더 말해보게.
유흥이라고 해봐야 간혹 나타나는 방랑 서커스단에 이야기꾼, 술과 자질구레한 도박이 전부인 중세 시대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소문은 군중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잠시 훑어보니 풍문 속에서 이스칼과 에샤는 그야말로 신화적인 전투의 화신이더라.
암살검으로 어둠을 갈라서 잠깐 낮이 되었다고 하더니, 이스칼은 방패로 달빛을 모아서 발사하고… 아니. 이스칼이 언제부터 세일러문이었냐고.
“……쓰읍.”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저기 화면 구석에 있는 SD 케넬름과 리아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싸움이 어땠냐는 내 질문에 둘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 “에휴.”
– “…아하하.”
한숨을 쉬는 케넬름과 어색하게 웃는 리아.
이것만 봐도 대충 알 것 같다. ‘색안경’까지는 필요도 없다.
“이스칼이 졌구나?”
만성 운동 부족일 때부터 알아봤지.
어쩐지 이스칼이 엄청 분한 표정으로 운동하고 있나 싶었다.
– “하, 하하… 그냥 졌으면 아마 저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건데…”
– “하필이면 탈진으로 쓰러지고, 얼굴에 암살단의 표식도 그리고 갔으니 분하지 않으면 전사가 아니죠.”
케넬름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쓰러진 이스칼 얼굴에 암살단의 표식을 그렸다고?
“이야. 이런 식으로 티배깅을 한다고?”
에샤 이 녀석. 마음가짐까지 훌륭한 암살자였구나.
이 정도는 해야 암살자 평균이지.
내가 잘 골랐어.
– “저어. 그런데…”
머뭇머뭇 뜸 들이는 케넬름.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재촉했더니 어렵게 입을 연다.
– “소문에서 에샤의 출신이 조금 과장된 부분이 있기에 제가 조금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 “아이야테르 산에 살던 이들이 하나같이 좀 범상치 않은 면모가 있는 자들이더군요.”
그럴 것 같기는 했다. 딱 봐도 더럽기 험한 산에 살면서 짐승을 도축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약간 마왕성 앞에 있는 마지막 마을의 주민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사는 환경을 봐도, 그들이 키워낸 에샤를 봐도 심상치 않은 고인물들이 분명하지.’
찾아냈을까.
그런 기대를 담아 케넬름을 바라봤다.
– “찾기는 찾았는데… 10년 전, 당시 7살이던 에샤를 제외한 이들이 일제히 산을 떠났다는 것밖에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었고, 일부 살아남은 이도 노환으로 죽었습니다.”
“쩝. 아쉽네.”
에샤의 피지컬은 그야말로 치트키였다. 무기를 받은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녀석이 이스칼(자체 너프됨)과 박빙의 대결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에샤 같은 괴물이 딱 셋만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멀쩡하게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왜 산을 떠난 거야? 그것도 알아냈어?”
아이야테르 산에 오래도록 살던 이들이 갑자기 터전을 떠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어린 에샤를 홀로 남기고 떠나다니.
– “그건…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흠.”
내가 하면 죽은 사람도 입을 열 것 같기는 한데.
그건 뭔가 망자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 같으니까 일단 보류. 정 방법이 없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쓰기기로 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런 인자강 괴물들이 산에서 내려와야 했던 이유가.”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에샤보다 강한 괴물들은 도대체 왜 산에서 내려와야 했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틑림없이 범상치 않은 이유였을 것이 분명하다.
‘색안경’을 쓰면 아마 단번에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지.
– “……그으, 아무래도 저 혼자서는 단순히 보는 것밖에 못 하기에 자세히 조사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 “보는 것밖에 못 한다는 건 가끔 불편하죠. 아아. 지상에서 돌아다닐 수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케넬름이 난색을 보였다.
어째선지 리아가 은근히 눈치를 보며 떠들었다.
“…아.”
나는 깨달았다.
후후.
나는 이스칼처럼 눈치가 없는 녀석이 아니라고.
그러면 되는 거였구나?
“놀고 있는 애들을 시키면 되겠네!”
– “아.”
– “…”
가뜩이나 케넬름이랑 리아는 온종일 성지를 살피고, 지상도 보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여기에 일을 하나 더 추가할 뻔했다.
나는 싸이코 팀장처럼 사람을 막 부려 먹는 인종이 아니라고.
“둘이서 하는 일도 많을 텐데 이런 일까지 할 필요는 없어. 힘들 텐데 쉬엄쉬엄해.”
워라벨은 중대 사항이다.
– “아, 그… 예에… 감사합…니다…”
– “힝.”
케넬름과 리아가 푹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스스로에 대해 대견함이 마구마구 몰려왔다.
내가 누구?
신도의 고충과 워라밸도 챙겨주는 신.
‘자아. 그럼 이걸 누구한테 시켜야 하나.’
후보는 두 종류다.
지상에 있는 사도들을 시키거나, 성지에서 놀고 있는 녀석들을 방출할 겸 일을 시키는 것.
사실상 선택지는 하나인 셈이다.
‘너희들, 방출.’
성지 한구석에서 무한하게 뒹굴뒹굴하며 놀고 있는 밤의 일족, 녀석들을 사회로 내보낼 시간이다.
– “으헤……헤……”
– “나는… 다, 달팽……이야……”
뭉그적거리는 꼴을 보면 머리가 아팠다.
이딴 게 밤의 귀족? 이게 뱀파이어?
‘신도 사람이야 사람! 밖에 나가서 사람 좀 만나고 일해!’
유일하게 돌아다니는 밤의 일족은 단 한 명, 전직 이단 심문관이었던 5호다.
– “로드… 인제 그만 좀 일어나시는 게… 하나 된 분께서 보고 계십니다. 로드, 제발 좀…”
– “우음. 막내야… 3달… 딱 3달만 더 자게 해다오…”
하느님 맙소사.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밤의 일족을 방출했다.
《‘대규모 차원 이동 역장’의 발동이 준비됩니다!》
눈부신 빛과 함께 밤의 일족 전용 건물과 밤의 일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5호에게 임무를 내렸다.
– 《두려워 말라. 너희를 내치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었기에 너희는 지상으로 가거라. 아이야테르 산에 얽힌 10년 전의 비사를 헤아려라.》
– “어, 으앗? 에? 예, 예에?”
눈부신 빛에 휩싸인 5호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답했다.
혼자 열심히 일하던 5호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사실상 종족을 먹여 살리는 소녀 가장이었는데.
원석 가공을 하면 맨날 5호만 나와서 작업할 정도였으니까.
– 파앗!
눈부신 섬광과 함께 밤의 일족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넓어진 성지가 조금 휑하게 보였다.
“쩝. 이제는 드워프랑 이베르 밖에 안 남았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밤의 일족은 지상으로 돌려보내는 게 맞았으니까. 지금이라도 지상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진짜 달팽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이번 일로 정신 좀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 할 텐데 말이야.”
성지에서 꿀만 빨다가 지상으로 돌아가면 정신이 번쩍 들겠지.
밤의 일족이 진성 히키코모리에 만성 게으름, 대인 기피증에 사회성 제로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타고난 능력 하나만큼은 출중한 놈들이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이동하고, 자유롭게 변형해 무기로 다룬다. 거기에 타고난 미모도 아름답고 오래 산다.
이 얼마나 개사기 종족인가.
‘저 친구들이 마음만 먹으면 정보 수집은 일도 아니니까.’
이번 방출은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제발 정신 좀 차리고 멀쩡하게 살라는 나의 염원이다.
“……잘 할 수 있겠지……?”
방출한 지 1분도 안 돼서 걱정되기 시작했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요즘 눈이 많이 내립니다. 독자님들 모두 빙판에 주의하세욧…!! 넘어지면 많이 아야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클리셰는 보장된 맛도리, 정도이기에 클리셰…!! 그야말로 국밥의 든든함이죠…!!
진 것도 화나는데 상대방이 ‘너 ㅈ밥이잖아.’를 쓰고 간 상황…!! 복수를 다짐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닙니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은… 작가의 역량에서?? 잘 몰?루??
– ‘PIA1650768166992’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크아앗..! 무자비한 후원 펀치…!! 독자님의 후원 펀치에 맞은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앗… 다음 편을… 써야 하는… 데… 꼴까닥. (사인 : 후원 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