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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7

   붉은 머리 작은 체구의 여성이 백염의 빛이 물든 공간 속을 나뒹굴었다.

   아벨라는 생전 처음으로 타는 듯한 고통에 허덕였다.

     

   뜨겁다.

   전신이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방어 마법을 뚫고, 크라슈의 백염이 모조리 몸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영혼마저 깊숙이 새겨지는 열기는 피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흐악, 흐으.”

     

   숨을 들이켜도 내쉬어도 너무나 뜨거운 열기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그녀의 정신을 잃게 두지 않겠다는 듯.

   아벨라는 빛 너머 자신을 노려보는 백색의 눈동자와 마주하자 정신을 잃을 수도 없었다.

     

   살고 싶으면 발버둥 쳐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크라슈가 다가온다.

   자기 목을 끝장내기 위해 검을 든다.

     

   “싫, 어.”

     

   죽기 싫다.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삶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삶을 향한 갈망과 함께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그를 파훼할 수많은 마법이 머릿속을 나열하며 지나갔다.

   끝없는 주문과 마법진의 나열이 아벨라의 뇌를 가득해서 채워나갔다.

     

   천재적인 그녀의 뇌조차 과부하가 오는 듯 코피가 쏟아지고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러나 어차피 자신에게서 무엇이 흘러나오든 열기로 인해 증발해 없어질 뿐이었다.

     

   아벨라는 사고를 가속화 했다.

   세계가 정지하는 시점까지 자신이 지닌 모든 마법적 지식이 담긴 도서관을 끊임없이 파헤쳤다.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녀의 발버둥이 거세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천재성 또한 발현되기 시작했다.

     

   감정적으로도 삶으로도.

   모든 걸 내버린 채 그저, 호기심과 마법의 열망으로 살아온 고대의 마법사 아벨라다.

     

   젊고 어린 시절, 아이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원동력은 삶을 향한 성취감과 호기심에 있다.

     

   이미 너무 오랜 삶을 살아온 아벨라는 마법을 그저,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위한 도달점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순간 아벨라는 실로 몇천 년 만에 마법을 오직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아벨라라는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육체와 맞물려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아벨라의 붉은 눈동자에 초월석이 닿았다.

   지팡이는 이미 초저녁에 다 타버리고,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초월석 하나.

     

   이러한 열기 속에서도 초월석은 제 가치를 증명하듯 타오르지 않고, 그 원형을 유지했다.

     

   초월석은 사실 성검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성검의 개안과 같이 초월석 또한 일종의 힘의 촉진제와 비슷하다.

     

   이는 초월석을 이용한다면.

     

   크라슈와 같은 영역에 들어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고는 이미 안전성을 내다 버렸다.

   여기에서 살아 나가야지만 살 수 있다.

     

   그것을 각오한 시점에서 아벨라에게 이제 손속이라는 건 완전히 없어졌다.

   설령 그것이 아벨라 본인을 향한 손속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벨라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마력이 뽑혀 나왔다.

     

   환생을 거듭하며 영혼 그 자체에 새겨 놓은 끝없는 마력.

   이 모든 마력이 이 순간 초월석으로 전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초월석 내부에 새겨져 있던 은하수의 빛이 거세게 토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벨라라는 대가를 집어삼킨 초월석은 전에 없을 만큼 압도적인 힘을 토해냈다.

     

   아벨라가 이 시점에 도달한 것은.

   그녀가 크라슈의 백염에 당한 뒤 불과 0.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생존을 위해 가속된 그녀의 사고가 만들어낸 터무니 없는 결과물이었다.

     

   크라슈가 이 사실을 인식했을 때쯤.

   크라슈는 아주 잠시 세상이 정지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거대한 존재의 탄생으로 세계가 놀라 굳어 버리기라도 한 듯.

   너무나 고요한 주위 분위기 속에서 오직 크라슈만이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아벨라가 있던 곳.

   그곳에서 아벨라는 초연하게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초월석은 이제 크라슈의 백염만큼이나 별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크라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자신을 걸고, 마지막으로 발악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녀의 머리 위 무수한 별빛들이 흩날렸다.

   아벨라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며 별이 깃든 붉은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어 자유롭게 흩날렸다.

     

   천천히 떠진 아벨라의 눈동자 속에는 초월석과 같은 은하수가 깃들어 있었다.

     

   붉은색 별의 탄생이었다.

     

   하늘이 어느새 밤하늘로 바뀌었다.

   밤하늘에서 원을 따라 흘러가는 무수히 많은 별은 전부 오직 한 명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세계가 마녀 한 명에 의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벨라가 초월석을 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구나.”

     

   그녀는 이제야 지금껏 자신이 마법적 성취의 끝에 도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마법을 향한 학문적 욕심이 있음에도.

   인간이 왜 마법을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는지.

   이 본질적인 이유를 잊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에서는 알겠다.

   무슨 생물이든 저마다 자신의 목숨과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이러한 생물적 이유를 망각한 시점에서 아벨라는 마법의 끝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크라슈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생물적 이유를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마법의 정점에 도달했다.

     

   “고마워. 크라슈.”

     

   그에게는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

   세계의 만물의 원초적인 이유와 마법을 대입해 깨달은 이건 크라슈가 아니었다면 아벨라는 평생토록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니 아벨라는 기꺼이 그에게 세계에서 비롯된 마법을 보여 주는 영광을 선사하기로 하였다.

     

   아벨라의 손에 쥐어진 초월석이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끌어냈다.

     

   밤하늘 위를 무수히 채워 놓은 별빛들을 따라 선이 이어져 갔다.

   그것은 삼라만상의 공간을 삼아 진을 하나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별과 별 사이에 이어진 선들이 이어져 나갔다.

   하계와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신들이 뒤늦게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깨달았다.

     

   수많은 신들이 놀라 경악스러운 눈으로 세계를 보는 그 순간.

   그 중심에 선 아벨라가 입안 가득 인생 처음으로 가장 환한 웃음을 그렸다.

     

   “성위 마법.”

     

   별을 탄생시키고, 멸할 궁극의 마법.

   이를 완성한 아벨라는 그 웃음 속에서 마법을 발동시켰다.

     

   삼라만상이 시작된 대폭발.

   그와 같은 규모의 마법이 세계를 덮쳐왔다.

     

   그러는 순간 아벨라는 신계 너머에서 어떤 신의 시선을 하나 느꼈다.

   문제는 모든 신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지만, 그 신 하나만큼은 오직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그것에 의문을 품은 찰나.

     

   “아벨라.”

     

   성위 마법이 발동된 사이로 크라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왜 유리 대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줄 아냐?”

     

   아벨라의 눈이 깜빡여졌다.

     

   그 말을 그녀가 채 이해하지 못했을 때.

   크라슈는 손에 쥔 성검을 천천히 당겨 쥐었다.

     

   “단기 화력에서는 내가 제일이니까.”

     

   아벨라의 눈이 크라슈의 성검을 따라갔다.

   곧이어 그녀는 그의 검이 바뀌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가 쥐고 있는 검은 성검이 아니었다.

     

   우뢰성(雨雷盛).

     

   오러의 출력을 검날로 바꾸는 10대 천검.

   크라슈는 어느새인가 우뢰성을 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벨라의 눈에 서서히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몸에 있던 막대한 힘이 텅 비어 있었다.

   대신, 그의 힘은 지금 단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우뢰성에 박아 넣어 버렸다.

     

     

   우뢰성이 주인과 끝을 고하듯 쩌적 하며 갈라졌다.

   담긴 힘이 너무 많기에 이를 10대 천검인 우뢰성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녀의 목을 베기 위해 앞으로 단 한 번이면 충분했다.

     

   “유리대포는 마지막까지 유리대포 답게.”

   “머, 멈춰…….”

     

   크라슈의 눈동자가 백열을 내뿜으며 거세게 빛났다.

   그가 틀어쥔 우뢰성에서 쏟아 나오는 힘은 아벨라의 성위 마법조차 뒤틀어 버릴 만큼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냈다.

     

   “쏘면 그만이야.”

     

   오직 단 한 번.

   이 한 번을 위해 크라슈는 평생의 삶을 바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이 한 번에 크라슈는 일점의 후회조차 없었다.

     

   “멈추라고!”

     

   아벨라의 성위 마법이 발동됐다.

   세계마저 지워 버릴 마법이 크라슈를 덮쳐 온 순간.

     

   크라슈의 마음의 호수 깊은 곳.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떨어졌다.

     

   이윽고, 일어난 파문을 따라.

   그동안 평생을 쌓아온 크라슈의 모든 삶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크라슈는 비명을 지르는 아벨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했다.

     

   멸화침식(滅火浸蝕)

   극의(極意)

   멸(滅)

     

   멸망의 마녀를 자신이 멸하리라.

     

   ————!

     

   소리조차 집어삼켜진 백염이 성위 마법의 빛을 집어삼키며 모든 것을 지워 버렸다.

   그 중심에 있던 아벨라의 비명조차 집어삼킨 백염은 끝없이 하늘로 나아가 삼라만상에 도달했다.

     

   쩌적, 쨍그랑!

     

   삼라만상을 채웠던 성위 마법진이 파편이 되어 부서져 나가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천천히 드리운 것은 무척이나 맑고 밝은 푸른 하늘이었다.

     

   세상에 더는 위기는 없음을 고하듯.

   드리운 하늘은 청명하게 빛났다.

     

   그런 하늘 아래.

   한 남자가 주저앉아 있었다.

     

   결국 부서져버린 검을 손에서 놓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쉬어진 숨을 따라 크라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푸른색의 맑은 하늘이 크라슈를 반겨주듯 빛났다.

   그가 쏟아낸 마지막 힘은 완전히 산화된 채 세계와 합쳐져 가며 흩날려 갔다.

     

   그 광경은 퍽 아름다웠다.

     

   입안 가득 무언가 알 수 없는 만족감이 들어왔다.

     

   아, 그렇구나.

     

   그는 이것이 자신이 세웠던 유일한 목표를 이뤘을 때 얻을 수 있는 달성감임을 깨달았다.

     

   지켰다.

   이 망할 개 같은 세계를.

   크라슈는 기어코 지키고 말았다.

     

   그것을 깨닫고, 그는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이런 달성감 중 아직 해결되지 못한 씁쓸함이 남아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전까지 아직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크라슈가 바닥을 기듯 움직였다.

     

   몸에 남은 힘이 없다.

   정신이 자꾸만 혼미해졌다.

   인생에서 제일이라는 말을 해도 좋을 만큼 깊은 탈력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러나 크라슈는 움직여야 했다.

   기어코, 크라슈의 손아귀에 수정구 하나가 잡혔다.

     

   수정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벨라가 만들어낸 초월석이었다.

     

   성위 마법을 위해 아벨라가 자신의 모든 힘을 때려 박았던 초월석.

   거기에는 여전히 그 막대한 마력이 남아 있었다.

     

   크라슈는 이를 손에 쥔 채 숨을 간신히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자기 몸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초월석이 다시금 그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를 본 크라슈는 몰아쉰 숨을 당겼다.

     

   “이 썩을 녀석아.”

     

   대신, 그동안 자신이 봐왔던 한 명을 되살리고자.

     

   “이제 잘 좀 살아보자.”

     

   크라슈가 초월석을 발동시켰다.

   초월석에서 새어 나온 빛이 주위를 잠식했다.

     

   곧이어 크라슈는 초월석 너머.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장기를 시작으로 근육, 뼈, 피부, 머리카락까지 이어진 순간.

   곧이어 그 존재가 천천히 눈꺼풀을 떴다.

     

   황금색의 눈동자를 깜빡인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고, 이윽고 크라슈와 눈이 마주쳤다.

     

   “크, 라슈?”

     

   그녀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온 순간.

   크라슈는 그것을 끝으로 의식을 잃으며 고꾸라졌다.

     

   “크라슈!”

     

   마지막이 되더라도 구해야 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채.

   크라슈는 실로 오랜만에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라슈의 긴여정이 드디어 마쳤습니다..!

내일 마지막 화 후일담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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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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