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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7

       “어제 연기는 정말 최고였죠. 제가 딱 거기서 고의로 실수를 하는데…….”

       

       나는 로즈마리의 과장 섞인 무용담을 들으며 차를 마셨다. 카밀러 티는 어느 계절에도 향미가 있었다.

       

       그나저나 나도 늙었나 보군. 커피보다 차가 좋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피곤해.”

       “우리 지금 기계인데요?”

       “정신이 피곤하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쌀 뜨고 밥을 짓는다. 그렇게 아침밥을 차려놓고 먹으면 바로 과외 러시가 시작된다.

       

       주로 가르치는 과목은 수학이랑 과학이다.

       

       원래 문과였던 성현은 그쪽이 엄청 약하다. 기초부터 심화까지 차례대로 설명해 주어야만 했다.

       

       – 탄성 충돌이면 왜 에너지가 보존되는데?

       – 네가 직접 유도해 봐.

       

       아니, 생각해 보니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 이후에는 점심을 먹고 질문을 받아준다.

       

       – 이 문제는 못 풀겠다.

       – 풀릴 때까지 붙잡고 있어.

       – 도저히 못 풀겠는데?

       – 그럼 1등급 못 받는 거고.

       

       말은 이렇게 했어도 힌트는 줬다. 단, 머리를 한참 싸맸다가 한 질문일 경우에만.

       

       이렇게 해야 사고력이 는다. 수능 시험은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사고력은 곧 문제해결능력이고, 이는 창의성과도 직결된다. 그렇기에 스파르타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오후를 다 보내고 나면 하루가 지난다.

       

       “어후.”

       

       듣기만 해도 기운 빠지는군.

       

       심지어 어제는 로즈마리를 합방 장소까지 데려다주고 오는 일까지 했다.

       

       내 동생이지만 미덥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가는 도중에 옆길로 새거나 사고라도 치면 어떡할 건가?

       

       과보호일지도 모르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 없었다. 어제 하루 운전기사 역할을 한 경위였다.

       

       – 와, 언니. 골렘도 몰 줄 알아요? 언제 배웠어요?

       – 교수님이 따라고 시켰거든.

       – 하스펠트 그 사람이요?

       

       아니, 다른 사람 있어.

       

       …라는 뒷말까지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괜히 의심을 사면 머리만 아파져.

       

       컨디션 난조는 어제부터 시작되어 오늘 정점을 찍었다.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다. 기계지만 아무튼 그랬다.

       

       “피곤해 죽겠군, 피곤해 죽겠어.”

       “언니.”

       “또 왜.”

       “어제 거기서 그 사람이 끝까지 내려온 건 의외였어요. 됐다고 그만큼 거절이나 했는데…….”

       “그야 그게 매너니까 그렇지. 그래서 그게 왜?”

       “우리 들키진 않았겠죠?”

       

       그리 말하며 이맛살을 찌푸리는 로즈마리는 퍽 귀여웠다. 쓸데없는 곳에서 걱정을 해요.

       

       “들키긴 무슨. 미친년 둘이서 코스프레하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혹시 몰라서 컬러렌즈라고 밑밥까지 깔아 놓았다.

       

       그리고 설령 알아채더라도 상관은 없다. 자기가 우리 정체 알면 뭐 하려고? 경찰에 신고라도 하려고?

       

       어림도 없지. 대한민국 공권력을 너무 얕보는구나. 경찰은 그런 시답잖은 일에 나설 만큼 한가하지 않다.

       

       문제가 발생하는 건 불특정 다수가 알았을 때다. 그러면 차원의 균열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잠시간의 정적 끝에 내가 물었다.

       

       “로즈마리. 방송은 계속할 거니?”

       “으음, 글쎄요. 일단 고민 좀 해 보고요.”

       

       그렇게나 호된 꼴을 당했는데 ‘생각해 본다’라니. 어지간히 재미 들린 모양이군.

       

       아니면 한국 매스컴을 장악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아직도 버리지 않은 것일까?

       

       거기까진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 로즈마리가 진짜 이 나라 정계에 입성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저번에도 말했지? 하는 건 좋은데, 선은 지키면서 적당히 즐겨. 괜히 이쪽에 과하게 적응하다가 아렌스로 돌아가서 어색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요. 알겠다니까요.”

       

       로즈마리가 어린애는 아니니 이 정도 말하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

       

       “슬슬 시간이 됐군.”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머리를 말의 꼬랑지처럼 묶은 뒤 성현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한탕 조져야지.

       

       “오늘부터 물리2 진도 나간다.”

       “하아…….”

       

       그렇게 매일 공부, 공부, 공부.

       

       내가 휴가를 즐기는 건지, 휴가가 나를 즐기는 건지, 애초에 휴가라는 게 있었기는 한 건지.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로 과외를 하다 보니까 내 정신은 바륨 용액처럼 혼탁해졌다.

       

       한편, 성현의 학업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해졌다.

       

       암, 좋은 스승 밑에서 배우는데 그래야지.

       

       …그리 말하는 건 양심이 너무 없는 거고. 성현 개인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와… 이건 정말 대단한데.”

       

       시간은 빛과 같은 속도로 지났다. 

       

       어느덧 6월.

       

       평가원 모의고사를 치르고 온 성현의 얼굴에 해바라기가 만개했다.

       

       “국어 1, 수학 2, 영어도 2, 물리2는 3등급에, 화학1은 2등급…….”

       “아직 부족해.”

       “서울대에 가기에는 그렇지. 하지만 이것도 충분히….”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더 열지 못했다.

       

       성현의 두 눈동자가 사막의 태양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마치 어떻게 해서든 서울대에 가겠다는 눈빛이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히려 칭찬이 독이다.

       

       “…그래. 부족하지. 더 열심히 하도록.”

       

       채찍질을 해주니 그제야 수긍하고 돌아갔다.

       

       성현은 모의고사를 본 날에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공부했다. 엄청난 집요함에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적이 나온 오늘도 놀거나 하지 않고 학업 삼매경에 빠졌다. 치킨 시켜주냐고 물어봤으나 거절했다. 1년 동안 수험생 식단으로만 먹어서 수능 날 배가 아프게 되는 변수를 아예 지워버리겠다나 뭐라나.

       

       그만큼 이태연이, 내가 만나고 싶은 모양인데.

       

       “독한 놈.”

       

       이건 내 기준에서 칭찬이다. 칭찬 중에서도 더할 나위 없는 극찬.

       

       뭐 때문에 남자인 나와 만나고 싶어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편하게 느껴지는 건가 싶었다.

       

       “일단 게이는 아니겠고.”

       

       이건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다.

       

       “…흠.”

       

       아무래도 성현은 인생 멘토를 나로 삼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 내가 파인만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분 째지네.”

       

       멋대로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다. 나도 누군가의 우상이 될 수 있다니. 로즈마리가 나를 존경하는 것이나 로테가 나를 존중하는 것과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아무튼.

       

       성현도 로즈마리도 각자 방에 들어가 있겠다. 적적한 분위기 속에서 거실에 남은 건 나와 소파뿐이다.

       

       나는 소파에 몸을 던지며 성현이 건넨 성적표를 훑었다.

       

       “국어는…. 더는 잡아줄 필요는 없어. 모든 부분에서 완벽해.”

       

       최상위권에서 가장 큰 변수가 바로 국어다. 특히 독서 지문. 독해력이 후달리면 아무것도 못 하고 찍어야 한다.

       

       “영어는 킬러 문항 위주로 틀리는구나. 이것도 약점만 보완하면 9모때 1등급을 만들 수 있겠어.”

       

       다음으로 한국사. 이건 진작 1 찍은 지 오래됐다.

       

       “…수학이랑 화학이 1까지 뜨면 가능성 있겠는데.”

       

       아니, 가능성이 있다는 수준이 아니지. 지금 응시생 성적 분포를 보면 정문을 부수고도 남는다.

       

       게다가 이 시대 서울대 자과대의 입결은 교내 최하위였다. 돈 존나 안 되는 분야라서 그렇다. 슬프군.

       

       이렇게 보니 틸레트 아카데미가 선녀였구나. 이 나라는 자연과학도가 살아남기가 너무 힘들어.

       

       “여신님 감사합니다.”

       

       나는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의도치 않게 신앙심이 생겨났던 날이었다.

       

       

       **

       

       

       다시 시간이 흘러서 겨울.

       

       9모에서 11121이라는 성적을 받은 성현은 수능 시험장으로 향했다.

       

       다른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발걸음이 묵직하다. 속은 말끔하게 비워냈건만 잡념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10모 이후로 만든 오답노트를 보며 정신을 다잡는다.

       

       지난 1년간 얼마나 노력했던가.

       

       에테르의 조언을 받아들여 공부하는 과정 자체를 좋아할 수 있도록 정신머리를 고쳐왔다.

       

       그녀를, 그를 롤모델로 삼아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그 덕분에 자신은 태생 문과였다는 자의식을 버리고 어엿한 이공계의 실수(實數)로 거듭날 수 있었다.

       

       “후우.”

       

       성현은 뒤를 돌아봤다.

       

       벙어리 장갑을 낀 채 손을 흔들어주고 있는 두 명의 금안족.

       

       각각 로즈마리와 에테르였다.

       

       성현은, 아니.

       

       버멜은 코트 주머니에 쑤셔넣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서울대에 간다. 가서 내 인생의 멘토와 만난다. 그의 제자가 되어, 앞으로는 견실하게 산다.’

       

       그것이 버멜의 다짐이자 또한 성현의 다짐이었다.

       

       그렇다고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물리2는 2등급만 맞는다.’

       

       수험표를 재차 확인하며 지정된 고사실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가방은 가벼웠다.

       

       사실 물리 정도를 제외하면 더는 공부할 게 없었다.

       

       그만큼 하루 18시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했다. 보통 사람이 할 짓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했다.

       

       – 야 이 새끼야, 네가 쉴 틈이 있어? 저출산 시대라고 해도 그렇지, 서울대가 좆으로 보여?

       

       감각이 무뎌지고 해이해질 때마다 곁에서 잡아줬던 사람이 있었으니까.

       

       – 와 진짜 멍청하네요. 어떻게 이 문제를 틀려요? 자, 답 15잖아요. 눈으로 봐도 풀리는구만.

       

       수학 30번을 틀릴 때마다 암산으로 티배깅하던 건방진 꼬맹이가 있었으니까.

       

       [수험생 여러분은 지정된 고사실로 속히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식생활을 고정했던 탓에 위장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가볍게 필기구를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틸레트 입학시험을 치렀을 때의 일들이 아른거린다.

       

       ‘그때도 그랬지.’

       

       로테 살리에르가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에테르가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전부 지나간 추억이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어리바리했었는데.’

       

       세상이 게임인 줄 알았던 그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따위 건 게임도 아니었다.

       

       “시험지 넘기세요.”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기부터 완결까지 쓰기 위해 밤을 지샜습니다

    작가는 깨꼬닦하러 갈 테니까 마음껏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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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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