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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8

    서드가 말한 ‘문양에 대해 알 수도 있는 자’는 다름아닌, 메를린이었다.

     

    “그 인형사가 말인가?”

    “네, 그 사람이라면 저보다는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죠.”

     

    서드의 말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녀는 지금은 일개 평범한 인형사라고는 하나, 옛날에 방황하던 서드를 주워 키운 여인이 아니던가.

    그 과정에서 들은 말이나 겪은 일들이 있을 테니, 서클을 다시 새기며 뒷세계와 관련된 기억을 대부분 잃어버린 서드 보다야 아는 것이 많을 가능성이 높았다.

     

     

    “스승님, 왜 그러시죠? 혹시 무슨 문제라도?”

     

    서드의 의아한 모습에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가자꾸나, 메를린에게.”

     

    순간적으로 그래봤자 결국 인형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만.

    뭐, 서드가 그렇다면 일단은 그런 거겠지.

     

    그리고, 가야 할 곳이 메를린이 있는 곳이라면 만일 이것이 헛걸음이라 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뭐어, 어차피 인형 때문에 조만간 개인적으로 찾아갈 생각이기도 했으니. 마침 잘 되었지.”

    “오호,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요즘은 아린세이아의 목화 농사도 막바지에 도달했고, 자금도 어느정도 확보된 상태이니 이제는 슬슬 인형의 제작 의뢰를 맡겨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메를린에게 의뢰까지 맡기면 동선을 최적화할 수 있으리라.

     

    “그럼, 앞장서거라. 서드.”

    “네, 스승님.”

     

    그렇게 루크는 서드의 안내를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다시 도착한 장난감의 거리.

    그 곳에서도 비교적 인적이 드문 외딴 거리에 위치한 메를린의 인형점은 여전히 장사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메를린, 간만이로군.”

    “너는…….”

     

    루크의 갑작스런 방문에 메를린은 살짝 놀랐지만 반가운 반응으로 맞았다.

     

    “루크인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라…….”

     

    인형점을 슬쩍 둘러본 루크는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 굉장히 크게 와닿았다.

    그녀의 인형점은 척 봐도, 장사가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장사는 잘 되는 게 맞나, 메를린?”

     

    메를린의 장사를 걱정하는 루크의 걱정은 그야말로 타당했다.

     

    그녀의 인형점은 장사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녀는 장사를 할 생각이 있기는 한 건지, 제대로 된 호객 행위는 커녕, 제대로 인형점 내부를 꾸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유리창 앞에 놓인 인형들도 죄다 박스채로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고, 인형점 내부의 인테리어도 전혀 되어있지 않은 탓에  이곳은 어린아이들이 와서 장난감을 고르는 장소라는 인상보다는 차라리 인형을 보관하기 위해 상자채로 마구 쌓아둔 창고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인형점에서 가장 결정적인 결함으로는 바로, 아직도 간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그놈의 간판은 언제 단다는 말인가.

     

    간판이 없는데 밖에서 보고 누가 이 창고를 인형점으로 알고서 들어오겠냐는 말이다.

     

    그저 파리만 날리지 않을 뿐이지, 만약 메를린이 청소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면 이곳은 하루간 들어온 손님 수 보다 당장 보이는 곤충의 수가 더 많게 될 판국이었다.

     

    ‘그나마 의자와 테이블만큼은 고급품이로군.’

     

    적어도 가구의 품질 만큼은 확실히 좋았다.

     

    하지만 메를린은 장사꾼으로서는 꽤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훗, 내 걱정은 하지 말거라. 그저, 아직은 때가 아닐 뿐이야.”

     

    ‘그’에게 당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시선을 떨쳐낼 때지, 재물을 모을 때가 아니다.

    또한 어차피 제 한 몸을 건사할 재화만큼은 충분히 남겨둔 그녀에게 물질적인 가치는 무가치했으므로, 장사에 굳이 열을 올릴 필요는 없었다.

     

    허나 그 사실을 모르는 루크의 입장에선 그저 답답한 소리일 뿐이었다.

    때를 기다린다라…….

    뭐, 장사도 타이밍이 있다는 점은 이해를 한다만, 그녀는 대체 무슨 때를 기다린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장 간판만 달아도 이 가게는 속된말로 ‘떡상’을 하게 될 텐데 말이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괜찮고, 믿음도 가고 말이다.

     

    “뭐어……. 그대가 그렇다면야, 이 얘기는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루크는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을 뿐이다.

     

    당사자가 그렇다고 한다면 자신이 굳이 나서서 아픈 상처를 후빌 필요는 없겠지.

    애초에 자신이 그녀의 인형점을 찾은 이유는 그곳을 더 나은 곳으로 탈바꿈 시켜주기 위해 온 것도 아니니,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온 이유의 첫번째는 바로 이거다.”

     

    -탁.

     

    루크는 주머니에서 예의 그 탄환을 꺼내 테이블 위에 얹으며 말했다.

     

    “서드가 그러는데, 그대라면 이 물건을 알 거라고 하더군. 맞나?”

    “흠?”

     

    그에 메를린은 테이블로 손을 뻗어 루크가 꺼낸 그 원통형 물체를 집어 눈가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내 루크가 건넨 탄환을 이리저리 돌리며 문양을 확인한 메를린은 점차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음……, 이건……?”

     

    그러나 그 물건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는 그녀 또한 알 수 없었는지, 살짝 의아한 표정이 섞인 얼굴로 루크를 바라본다.

    그에 루크는 툭 하니 내뱉는다.

     

    “드워프의 지팡이에 쓰인 탄환이지.”

     

    “뭐?”

     

    그러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외친다.

     

    “당신, 이걸 어디서 얻었지?”

     

    루크는 턱을 가볍게 쓸며 입을 열었다.

     

    “그리 질문하기 전에, 그대가 아는 것부터 먼저 말하게. 내가 필요하면 물을 테니.”

     

    서드와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편이리라는 확신이 아직은 없었다.

    루크는 이미 사람은 5000년 전과 다름없다는 것을 일전의 사건들로 뼈저리게 느낀 상태다.

    의심은 당연한 것.

    따라서 자신이 주는 정보는 최소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애초에, 그녀가 리엔느 숲이나 세이어에 대해 잘 알았다면 저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을 테고.

     

    “……그러지.”

     

    그에 메를린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이 문양. 인챈트에 이런 문양을 집어넣는 녀석은 ‘그’ 밖에 없지.”

    “’그’라니?”

     

    루크의 질문에 메를린은 조용히 덧붙였다.

     

    “뒷세계의 흑막, ‘구원자’, ‘선지자’.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저 ‘그’, 또는 ‘늙은이’라고 부르지. 나도 한때 그의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흐음, 그랬나.”

     

    루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서드가 그녀는 알 거라 확신한 이유가 있었군.

    그녀 또한 평범한 인형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라……, 그것은 자신의 흥미를 돋우는 얘기다.

     

    ‘‘구원자’, 또는 ‘선지자’라…….’

     

    루크는 가만히 턱을 쓸며 생각했다.

    자신을 구원자, 선지자등으로 칭하는 놈들 중에 제대로 된 녀석은 하나도 못 봤다.

    그 칭호는 자신이 붙이는 것이 아닌, 남이 붙여주는 것이니까.

    남들은 그를 ‘그’, 또는 ‘늙은이’라고 칭한다는 점에서 이미 그는 구원자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상태라고 봐야겠지.

     

    “그럼 그 ‘늙은이’라는 자에 대해 아는 건 더 없나? 어떤 세력을 갖고 있다던가, 어디에 주로 출몰하는 가, 등 말일세.”

    “안타깝게도, 그 정보는 나에게도 말해줄 만한 건 없어.“

     

    그에 대한 모든 정보는 베일에 감싸여 있었다.

    그는 원체 조심성이 유난히 강한 성격이기도 했으며, 매수나 세뇌와 살해, 또는 그 외의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자신에 대한 정보를 편집증적으로 감추고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에게 그야말로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일은 절대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본 사람도 아마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재력과, 마법과, 아티팩트들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음에도 마치, 뭔가에 겁을 집어먹은 사람처럼 말이다.

     

    “흠…….”

     

    그 말을 들은 루크는 계속해서 눈을 감고 생각했다.

     

    ‘과연, 그는 정말 겁이 많은 사람일까?’

     

    아마 아니리라 본다.

    그가 단순히 겁쟁이라면 절대로 무언가를 이뤄낼 수가 없으므로.

    그의 그 조심스런 행동들은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니드호그’라 불린 본 드래곤, 도플갱어를 연구하는 흑마법사 리치, ‘그’라는 흑막의 존재라…….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거대한 음모가 물 밑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과연, 제작자가 궁금했던 리엔느 숲의 그 사고, 이전에 폭주했던 그 흑마법 아티팩트도 그의 작품일까?

     

    ‘……허면 그는 분명 시가르마타를 알고 있겠지.’

     

    사실 루크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

     

    설마, 그의 목적은 시가르마타의 부활인가?

    그는 대체 그런 짓을 해서 무엇을 얻으려기에?

     

    그렇게 고민하던 루크는 문득, 툭 내뱉었다.

     

    “루체스트.”

     

    제임스가 흘러가듯 입 밖에 낸 그 이름.

    그러고보니 그는 분명 마계에서 한 기업에 의해 데이그란트에서 쫓겨나듯 철수했다고 했다.

     

    데이그란트, 마족의 첫번째 전초기지.

    현 대륙에서 가장 심했던 마계화의 영향으로 아직도 그 지역은 5000년이 지난 지금도 마계와 비슷한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다고 했었지.

     

    이는 단순히 개별적인 사건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육감적으로 그런 느낌이 든달까.

     

    루크는 비로소 감았던 눈을 뜨며 생각했다.

     

    ‘분명 ‘루체스트’도 무언가 하나는 연관이 있을 것이다.’

     

    사건이 약간씩 가닥이 잡혀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목표는 ‘루체스트’의 정보를 얻어내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전에.

    “메를린, 여기에 온 두번째 이유를 지금 말하지.”

     

    루크는 그대로 메를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되도록 많은 인형이 필요하다. 내 그대에게 보여줄 재료와 대금은 모두 준비되었다면, 오늘부터 당장 작업에 들어갈 수 있나?”

    메를린은 표정을 굳혔다.

    “……오늘부터 당장? 너무 갑작스럽지않나.”

    “내가 좀 급해서 말이지. 뭐, 당장 보아하니 인형점이 바쁠 것 같지는 않네만.”

     

    루크의 말에 메를린은 입을 다물었다.

     

    ……이 소녀, 생각보다 날카로운 혓바닥을 지니고 있다.

     

    ‘고양이의 혀는 거칠다더니…….’

     

    풋내기를 ‘인형’으로 육성해 내기엔 당장에 준비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가볍게만 보는 게 아닐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이 메를린! 그거는 진짜 인형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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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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