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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8

        

       “그거…. 나쁘지 않군.”

         

       “흠. 구축함을 보내서 무력을 과시한다…. 나쁘지 않아.”

         

       “게다가 한국은 우리가 구축함을 보내도 별다른 대응조차 하지 못할 테지. 그 정도라면 뭐….”

         

       정치인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구축함이란 무엇인가?

       일본의 자존심과 같은 해상자위대의 함정이다.

         

       구축함을 보내 무력 시위를 하는 것으로 일본의 무력이 죽지 않았음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보일 수도 있었고, 한국에 엄중한 경고도 할 수 있겠지.

         

       게다가 다케시마로 보낸다는 것 역시 아주 괜찮았다.

         

       다케시마는 한국과 일본이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섬.

       서로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이니, 그곳으로 순찰 겸 훈련을 명목으로 구축함을 보낸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여지도 없으리라.

         

       명백하게 대한민국의 영해로 들어가는 것과는 다르게, 애매모호함이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다른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허허. 해상자위대의 깃발이 그거였지요?”

         

       “한국이 보면 아주 좋아라 하겠군요.”

         

       그것은 바로 해상자위대의 깃발이 영광스러웠던 일본 제국의 욱일기(旭日旗)와 흡사하다는 것.

         

       아마 그것을 본다면 대한민국이 발작하면서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본 국민들은 깊은 만족감을 느끼게 되겠지.

         

       정치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할 정도의, 아주 깊은 만족감을 말이다.

         

       “그럼 구축함을 보냅시다.”

         

       “아, 구축함을 보낼 때 좀 오래된 것을 보내면 좋겠군요. 퇴역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녀석으로 말입니다.”

         

       “그렇겠군요. 건조한 지 얼마 안 된 녀석을 보낸다면 전쟁 의지가 강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하, 이거 생각지도 못한 지적입니다. 대단하시군요. 역시 외교 쪽에서 오래 계셔서 그런지 이런 디테일한 것을 참 잘 잡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렇게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이 유명 료칸(旅館)에서 결정이 났다.

       주고받는 술잔 속에 담긴 취기와 함께.

         

       하지만 그 취기의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말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중에는 그 극소수에 속하는 이들이 없었다.

         

         

         

         

        * * *

         

         

       머지않은 옛날.

       괴뢰 집단이 한반도의 북쪽을 점거했었다.

         

       그들은 자신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칭하며 힘을 칭했고, 창칼을 대한민국에 들이대었다.

         

       하지만 그들은 안타깝게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망했고, 나라 전체는 황무지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지금.

         

       그 망해버린 터에, 산 사람이 발을 들여놓았다.

         

       대령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생겨난 쓰레기 섬.

         

       그곳에, 거적때기를 두른 사람이 있었다.

         

       “라자 바야흐 초라 바야흐 아그니 바야흐 우다카 바야흐.”

         

       귀신 소굴이 되어 산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북쪽 지역.

       그곳에 박진성이 있었다.

         

       흘러 들어온 쓰레기로 토대가 만들어지고, 귀신이 가져다 쌓아서 발 디딜 곳이 생긴 쓰레기 섬의 위에서 악취와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한 손에는 방울을 들고 있었고, 남은 한 손에는 철판을 연마해서 만든 것 같은 투박한 검이 들려 있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고, 검 끝에 쓰레기가 걸리며 오물이 몸에 튀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미친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거적때기 아래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는데, 짐승의 피로 그린 것인지 불그죽죽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문양은 민간신앙 속 부적처럼 보이기도 했고, 밀교에서 사용하는 문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불교에 심취한 사람이 그리는 만다라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사 바야흐 사스트라 바야흐 파라 차크라 바야흐.”

         

       춤을 추는 진성의 눈은 풀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취한 듯한 눈과는 달리, 그의 몸에서는 그 어떤 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정신이 몽롱해져 있지만 그것은 취기를 빌린 것도 아니었으며, 약물을 통해서 강제적으로 진입한 것 또한 아니었다.

         

       명상.

         

       진성은 깊은 명상을 통해, 트랜스(trance) 상태에 들어간 상태였다.

         

       진성은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도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악취 가득한 쓰레기장에서 춤을 추고 있음에도 그 어떤 냄새도 맡지 않고 있었다. 썩은 액체가 몸에 들러붙어도 역겨움을 느끼지 아니하였고, 겹겹이 쓰레기장 주변을 둘러싼 어둠에도 두려움을 품지 아니하였다.

         

       그는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고,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다만 그것은 종교적인 것이 아닌 주술을 위한 수단이라.

         

       그는 주술을 위하여.

       오직 주술 의식을 위하여 정신을 도구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두르비크사 바야흐 아사니 바야흐 아카라 므르트유 바야흐.”

         

       머리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 들고, 몸 곳곳에 불꽃이 피어나 형상을 이룬다. 뼈를 불꽃으로 만드는 듯하고, 표홀히 구름이 떠다니는 듯 육체의 감각을 한없이 가볍게 만든다. 입에서는 무의식에 각인된 말이 흘러나오고, 눈은 풀린 채 현실이 아닌 현실과 정신의 경계 속에서 만다라를 그려내느니.

         

       황홀경에 돌입한 감각은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듣게 하는도다.

         

       “다라니 부미 캄파 바야흐 울카 파타 바야흐. 라자 단다 바야흐 나가 바야흐 비드유트 바야흐….”

         

       별의 속삭임이 들린다.

         

       횡사(橫死)의 별빛이 어둠을 질주하며 내는 소리가 들린다.

       횡액(橫厄)의 별빛이 사람의 운세를 질질 끌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악몽의 별빛이 바퀴처럼 굴러다니며 어둠을 검은빛으로 물들이는 것이 느껴지고, 내리쬐는 별빛이 산산이 부서지며 악몽으로 퍼져나가는 그 소리가 들린다. 소리 없는 소리가 들리고, 어둠을 품은 어둠이 사방으로 퍼지며 세상에 녹아드는 그 소리가 들린다.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는 한걸음에 재앙을 품고, 두 걸음에 악의(惡意)를 품고, 세 걸음에 증오(憎惡)를 품은 채 움직인다. 방향성 없이 이리저리 떠드는 그들은 무질서를 질서로 삼은 채 움직이고 있으며, 대상 없는 불행을 마음속에 품은 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궤적을 그려낸다.

         

       소리.

       그 소리가 참으로 기껍도다.

         

       “수파르나 바야흐 약사 그라하흐 라크사사 그라하흐. 프레타 그라하흐 피사차 부타 그라하흐. 쿰반다 그라하흐 푸타나 그라하흐 카타 푸타나 그라하흐. 스칸다 그라하흐 아파 스마라 그라하흐 운마다 그라하흐. 차야 그라하흐 흐르파트 그라하흐 자타하리남. 가르바 하리남 루드히라 하리남 맘사하리남….”

         

       들리는가?

       저 별이 속삭이는 소리가.

       8가지 대악성(大惡星)이 어둠에 걸린 채 빛을 발하며 악을 지르는 저 소리가?

       밤에 휩싸인 이들에게 악몽을 꾸게 만들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만들며,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며, 지나간 모든 일에 얽매이게 만드는 저 별들의 소리가?

         

       저기 별들이 있다.

         

       무서운 악몽을 끌고 오는 별들이 있다.

       원적을 끌고, 죽음을 데리고, 예기치 못한 불행을 빚어내느니.

         

       독약보다도 고통스럽고, 검보다도 날카롭고, 불보다도 강렬하며, 물보다도 파괴적인 불운을 소리에 담은 채 소리 없는 목소리로 속삭이는구나!

         

       별이여.

       나쁜 별이여.

       그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보니 그 숫자는 8만에 4000을 더한 숫자라.

         

       “메다 하리남 마짜 하리남 오자스 하린야흐 지비타 하리남. 바타 바사 하리남 반타 하리남 아수츠야 하린야흐 치따 하린야흐. 테삼 사르베삼 사르바 그라하남 비드얌 체다 야미. 키라 야미 파리 브라자카 크르탐 비드야 체다 야미. 키라 야미 다키니 크르탐 비드얌 체다 야미….”

         

       나쁜 별의 인도에 따라 재난이 다가온다.

       도적의 칼날이 반짝이며 다가오고, 들불이 일어나게 되리라. 물이 꿈틀대며 귀신을 토해낼 것이고, 독이 퍼지며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 무기가 피부를 헤집을 것이고, 적군이 일어나게 되리라. 나라가 어지럽게 되고 식량이 부족해 사람들이 금수에 가까워지게 되리라. 때가 아님에도 죽어야 할 자들이 죽어 나갈 것이고, 유성이 벌레처럼 꿈틀대며 궤적을 그려내게 되리라.

         

       “키라 야미 마하 파수파타야 루드라 크르탐. 비드얌 체다 야미 키라 야미 나라야나 크르탐. 비드얌 체다 야미 키라 야미 타트바 가루데세 크르탐. 비드얌 체다 야미 키라 야미 마하 카라. 마트르 가나 크르탐 비드얌 체다 야미 키라 야미. 카파리카 크르탐 비드얌 체다 야미 키라 야미….”

         

       나라를 평온케 하겠다며 가혹한 형벌이 떨어질 것이며, 그 가혹한 형벌 속에서 뱀처럼 꿈틀대며 제 이득을 챙기는 이들이 일어나게 되리라. 독수리가 허공을 거닐다 먹이를 골라 먹듯 사냥당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고, 온갖 귀신들이 창궐하여 돌아다니게 되리라.

         

       야차가 싸움을 걸고, 나찰귀가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 아귀가 식량을 먹어 사람을 굶주리게 만들고, 물속에서 튀어나온 귀신이 사람을 끌고 데려가리라. 사악한 귀신들이 사람을 홀리고,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입맛대로 조종하리라. 그들을 자기 친구로 만들고, 광기를 퍼뜨리고, 그림자로 나라를 뒤덮게 될 것이라.

         

       귀신아, 귀신아, 사람 뜯어먹지 못해 한이 쌓이고 또 쌓여 배를 굶주리고 있는 귀신들아.

       피를 빨아먹고 골수를 빨아먹고 사람의 배를 가르고 아기를 끄집어 먹는 귀신아. 살을 찢어먹고 뼈를 부숴 먹고 지방을 태워 먹고 정기를 소마(सोम)처럼 달게 마시는 귀신아. 사람의 숨을 빨아먹어 살아 숨 쉬는 것을 흉내 내고, 사람이 토해낸 것에 달라붙어 뒹굴고, 더러운 것을 먹고 더러운 것을 묻히고, 사람의 마음을 깨고 녹여 핥아먹고, 사람 목숨을 사탕처럼 골라 먹는 이 재난의 귀신들아.

         

       여기 진언(眞言)의 탈을 뒤집어쓴 주언(呪言)의 소리가 있노라.

       옛적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진언이 온 세상에 퍼져나갔듯, 썩어 죽은 나무의 아래에서 주언이 울려 퍼지고 있노라.

         

       소리를 듣고 오라.

       별의 소리를 섞은 주언을 듣고 이곳으로 오라.

       외도의 주문을 섞고, 수행자들의 저주를 섞고, 잊힌 옛 신비의 뜻을 섞었도다.

         

       “…키라 야미 라크사맘 바가반 이탐 마마스야.”

         

       귀신들은 마땅히 주문을 듣고 이곳으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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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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