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398

       빛바랜 호칭이 두 여인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아니, 그것은 비단 두 여인만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연 매’, 그것은 백우진과 유화연이 아직 약혼 관계일 때 쓰이던 호칭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백우진’은 어딘가 아주 오래된 과거의 그를 연상시켰다.

         

       산적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겪기 전, 힘없고 나약하여 모두의 놀림거리였던 그때.

         

       순조롭던 것들이 전부 뒤틀리고, 꼬여 운명의 실타래가 뒤엉켜버린 바로 그 순간.

         

       “가가….”

       “우진아.”

         

       그때의 백우진이 돌아와 잘 지냈냐고 묻는 듯한 느낌에 두 사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래전 잃어버리고 영영 찾지 못하리라 여겼던 연인을 만난 것만 같아서.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오래전의 백우진은 그런 사람이었다.

         

       제 연인이, 친구가 눈물을 흘리면 조용히 다가와 소매로 눈가를 훔쳐주며 등을 토닥여주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위로 그 자체가 되어주던 따스한 사람.

         

       아니나 다를까.

         

       ‘백우진’이 안쓰러운 표정과 함께 그녀들의 곁으로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려 할 때.

         

       “멈춰.”

         

       어느새 다가온 당선영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백우진’과 대치했다.

         

       손에는 독이 잔뜩 발린 비수까지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제 말에 우뚝 멈춰 선 그를 향해 날 선 어조로 물었다.

         

       “당신, 누구야.”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백우진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어대던 바로 그때.

         

       경계심 어린 표정을 한 당선영을 향해, ‘백우진’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백우진.”

         

       오랫동안 제 것이 아니었다가 돌아온 이름 석 자를.

         

       그러나 당선영은 믿지 않았다.

         

       “당장 그이의 몸에서 나가.”

         

       도리어 몸의 진짜 주인을 삿된 것으로 취급하며 나가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신선하면서도,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제 것을 제 것이라 말해도 믿지 않고, 도리어 쫓겨날 위기에 처하다니.

         

       “하하.”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분위기는 한층 더 싸늘하게 변했다.

         

       당선영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비수를 쥔 손에 힘을 주자, 등 뒤에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고 있던 유화연이 ‘백우진’을 겨누고 있는 비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핫…!”

         

       창졸간의 기습.

         

       그러나 당선영은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그녀의 출수를 피해낸 뒤, 거리를 벌리는 그녀.

         

       “이게 무슨 짓이야.”

         

       싸늘한 물음에 유화연 또한 싸늘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뭐?”

         

       눈살을 찌푸리는 당선영을 향해 유화연이 쏘아붙였다.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인가요. 독이 잔뜩 발린 비수를 가…, 백 공자에게 겨누다니.”

         

       ‘가가’라는 단어를 입에 차마 담지 못하고 돌려 말하는 유화연.

         

       “그이의 몸에 다른 무언가가 깃들었어.”

         

       당선영의 주장에 유화연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참으로 우스웠다.

         

       고작 자신이 보지 못했던 일면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무언가가 깃들었다니.

         

       “저 모습도 분명 백 공자예요.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유화연.

         

       분명 그는 백우진이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지금의 모습은 그녀가 자라오면서 지독히도 보아온 그의 모습이기에.

         

       그러나 그녀조차도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왜 갑자기 바뀌었을까.’

         

       갑작스럽게 그가 변해버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아예 달라진 사람처럼 행동하더니, 갑자기 또 왜?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하는 유화연을 보며 당선영은 잠시 망설였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녀의 말대로 자신이 지금껏 보지 못했던 백우진의 일면일 뿐일까.

         

       ‘아니, 아니야.’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명백하게 상황이 이상했다.

         

       조금 전에 몸을 부르르 떨어댄 것도 그렇고, 유화연을 ‘연 매’라고 부른 것은 더더욱 그렇다.

         

       “설령 당신의 말이 맞다고 해도 이상한 건 분명해.”

       “그건….”

         

       쉬이 대답하지 못한 채 시선을 피하는 유화연.

         

       그런 그녀의 모습에 당선영은 더욱 기세를 피워올리며 압박했다.

         

       “비켜.”

         

       그러나 유화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럴 수 없어요.”

         

       당선영의 말대로 백우진의 변화는 분명 이상하다.

         

       그것을 알면서도 유화연은 백우진에게 향하는 길을 터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불안했다.

         

       이대로 그녀를 가게 내버려 두면 또다시 따뜻했던 시절의 그를 잃게 될까 봐.

         

       그녀의 답답한 행동에 당선영이 진득한 살기를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당신을 밟고 지나가는 수밖에.”

         

       이에 유화연도 착잡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며 대답했다.

         

       “…미안해요.”

         

       미안한 걸 알면서도 양보할 수 없음에 더욱 미안하다.

         

       어쩌면.

         

       지금이라면 그와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 때문에.

         

       “조심해.”

         

       그녀가 싸움을 마음먹은 순간, 주변에 짙은 녹색의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이 시큰거릴 정도로 강렬한 독기(毒氣).

         

       “아직 다루는 게 익숙지 않으니까.”

         

       짙은 녹색의 죽음이 유화연을 향해 쇄도했다.

         

       “……!”

         

       감히 맞상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물러서서 공격을 피해내는 유화연.

         

       독은 언제, 어느 때나 까다롭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천당가에서 내려오는 지고의 경지인 독인(毒人)이라면 더더욱.

         

       그들은 한 줌의 기운만으로 수십을 중독시킬 수 있는 인간 병기와도 같은 존재.

         

       하물며 일 대 일에서도 방심하는 사이 들이켠 한 모금의 독으로 허망하게 승기를 내어줄 수 있기에.

         

       “하앗!”

         

       그녀가 손바닥으로 허공을 후려칠 때마다 진녹색의 기운이 쏟아져 나간다.

         

       유화연은 검후에게서 배운 신법으로 그녀의 독장(毒掌)을 피해내며 주변을 맴돌았다.

         

       떨어지는 낙엽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보법은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의 눈을 어지럽히는 데에도 탁월한 효과를 자랑했다.

         

       “흣…!”

         

       잠깐 현혹된 사이 다가온 유화연의 검이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몸을 비틀어 검의 권역으로부터 벗어난 뒤, 곧장 독장을 뿌린다.

         

       다시 한번 표홀한 움직임으로 벗어나는 유화연.

         

       재차 뿌려지는 수십 개의 비수들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정신없이 나누는 공방은 잠시 멈췄으나, 그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더욱 뜨거워질 무렵.

         

       “이걸 어쩌지….”

         

       두 사람의 분쟁의 원인인 ‘백우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말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한 것은 처음 느끼는 기묘한 감각 때문이었다.

         

       화경에 다다른 두 고수의 싸움.

         

       예전 같았으면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고수의 싸움이 눈에 생생하게 읽혔기 때문.

         

       ‘이게…, 지금의 내가 보는 시선이구나.’

         

       화경의 고수들이 자아내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심오하다.

         

       그리고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제 신체가 놀랍고, 경이롭다.

         

       그들이 잠시 숨을 고를 때가 되어서야 ‘백우진’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았다.

         

       자신을 이곳까지 불러낸 장본인.

         

       이 몸에 얽힌 비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그라면 말문을 트는 데에 도움이 될 터.

         

       지친 기색이 역력한 장삼을 향해 백우진의 지긋한 시선이 쏟아졌다.

         

       “…참으로 부담스러운 눈이군, 쯧.”

         

       원래의 조장이 바라볼 때와는 사뭇 다른 부담감이 그를 짓누른다.

         

       하나부터 열까지.

         

       같은 몸을 사뭇 다르게 사용하는 두 사람이지만, 한 가지는 비슷한 듯했다.

         

       “힘든 사람을 어디까지 부려 먹으려고…, 끄응.”

         

       부려 먹히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닦달하는 것 말이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장삼이 그녀들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미치지 않는 곳까지 다가가 목소리를 드높였다.

         

       “멈추시오!”

         

       또렷하게 들리는 장삼의 목소리에 손을 거둬들이는 당선영과 유화연.

         

       장삼은 속으로 안도했다.

         

       눈에 뵈는 것 없이 칼부림을 이어가면 어쩌나 했는데.

         

       “모두 이쪽으로 모이시오. 긴히 해야 할 말이 있으니.”

         

       이어지는 말에 당선영과 유화연이 들끓는 기운을 갈무리한 채 장삼에게로 향했다.

         

       이를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고 있던 조원들도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뒤.

         

       장삼은 그들에게 ‘백우진’을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백우진’ 공자요.”

         

       난데없이 던져지는 소개말에 눈살을 찌푸리는 제갈연지와 도경.

         

       “이 상황에서 갑자기 소개라뇨.”

       “가가 성함이 백우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 어딨다고 그런….”

       “아, 정정하겠소.”

         

       제 말실수를 깨달은 장삼이 성난 도경의 말을 잘라내며 다시금 ‘백우진’을 소개했다.

         

       “이쪽은 진짜 ‘백우진’ 공자요.”

         

       정정한 소개에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조원들.

         

       장삼은 작게 숨을 내쉬며 유화연과 당선영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조금 전 두 소저가 했던 말, 모두 정답이었소.”

         

       당선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타박했다.

         

       “설명을 할 거라면 제대로 해.”

       “그러니까….”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 장삼.

         

       “조금 전에 말했잖소. 조장 몸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와 있는 듯하다고.”

       “그래서, 내 말이 맞다는 거니?”

         

       고개를 끄덕이는 장삼.

         

       “그렇소. 지금 조장의 몸에는 다른 영혼이 들어와 있는 상태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유화연이 장삼을 향해 물었다.

         

       “제 말도 맞다고 하셨었죠.”

       “그렇소.”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차분하게 숨을 고른 장삼이 말을 이었다.

         

       “지금 조장의 몸에 들어와 있는 영혼이, 그대가 알고 있던 진짜 ‘백우진’ 공자의 영혼이라는 뜻이오.”

         

       그의 입이 닫히는 순간.

         

       주변이 싸늘한 적막에 휩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최근에 최대한 자정에 연재가 될 수 있도록 신경 썼는데, 낮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늦었습니다.

    내일은 자정에 연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