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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9

       “슬슬 겨울옷이 필요하겠습니다.”

        

       나는 까맣게 물든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완전히 어두운 건 아니다. 서울의 밤은 밝다. 식당이나 웬만한 가게들이 다 닫은 시간에도 24시간 운영되는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은 문을 열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도 차는 꽤 많았고, 야간 버스도 다닌다.

        

       제도의 밤도 그렇게까지 어두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잠들지 않는 도시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이 세상으로 돌아온 지 이제 2달 정도가 지났다. 슬슬 쌀쌀해지던 날씨도 이제는 ‘춥다’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아직 한겨울이라고 부를 정도의 날씨는 아니었지만, 이제 슬슬 겨울옷을 준비하지 않으면 진짜로 추워졌을 때 입을 옷이 없으리라.

        

       마침 내일은 월요일. 우리가 쉬는 날이다.

        

       “그리고 기왕 나가는 김에 운전면허 학원도 알아보러 가기로 하죠. 어차피 우리는 오전에는 시간이 비니 면허 따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면허를 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미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그럭저럭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기도 했다. 아마 뭔가를 운전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

        

       그리고 ‘운전면허’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눈을 빛낸 사람이 있었다.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클레어였다. 이런 건 엄청나게 좋아하니까. 지난번에 놀이공원에 갔을 때는 범퍼카를 정말 엄청나게 좋아했었다.

        

       그래서 나도 클레어가 이렇게까지 좋아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언니, 나 따고 싶은 면허 있어!”

        

       그렇게 나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따고 싶은 면허……말씀이십니까?”

        

       따고 싶은 면허라니, 그래서 지금 운전면허 얘기를 하는 거 아닌가?

        

       아, 혹시 굳이 수동면허를 따고 싶은 건가? 클레어라면 그런 조작을 좋아할 것 같기도 하다.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는 굳이 수동 자동차를 사는 사람도 있다는 모양이고.

        

       나도 첫 면허는 1종 보통이었다만, 솔직히 요즘 시대에 굳이 그런 면허를 따로 딸 필요가 있나 싶다. 수동 차가 더 싸다고는 쳐도, 일반적으로 타는 차에 그런 옵션이 따로 있긴 한가?

        

       “응! 이거!”

        

       그리고 클레어가 나에게 보여준 스마트폰에는—

        

       “안 됩니다.”

        

       “어?”

        

       —오토바이 사진이 있었다.

        

       그것도 그냥 스쿠터 같은 것이 아니라 척 봐도 자동차와 가격이 비슷할 것 같은 고급 오토바이.

        

       엑셀을 조금만 돌려도 순식간에 속도가 올라가서, 어디 한 곳에 콕 부딪히기만 해도 사람이 공성용 투석기가 던진 돌덩이처럼 날아가겠지.

        

       “……안돼?”

        

       클레어가 순식간에 기가 죽었다.

        

       내가 클레어에게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한 적이 있던가?

        

       없었던 것 같긴 하다.

        

       사실, 음…… 내가 너무 꽉 막힌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타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고, 이상하게 개조해서 소음이 지나치게 심하지 않은 이상은 타건 말건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뭐랄까. 내 동생이 타고 다닌다면 말리고 싶다고 해야 하나.

        

       “위험합니다. 우리 정도 되는 사람들이라도, 사고가 나면 크게 다치게 될 테니까요.”

        

       아니면 죽거나.

        

       “안전하게 타고 다닐게!”

        

       클레어가 나를 열심히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본인이 안전하게 타고 다닌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가 안전 수칙을 다 지켜도, 도로 위의 모두가 안전 수칙을 다 지키는 것은 아니다.

        

       교통 수칙을 지키지 않은 자동차가 오토바이와 박는다면, 자동차에 탄 사람은 안전할지 몰라도 오토바이 운전자는 그대로 사망할 수 있다.

        

       음…… 아니면 고정관념이라고 해야 할까? 요즘 장구류가 좋아져서 사망률이 줄었다는 말도 듣기는 했는데.

        

       “히잉…….”

        

       “확실히 위험해 보이긴 하네.”

        

       내가 고민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사진을 들여다본 앨리스가 말했다.

        

       “실비아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타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은데요. 여기서 지내면서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한 적이 있던가요?”

        

       어.

        

       아니, 그렇게까지 말해버리면 내가 단호하게 말하는 게 맞는 건지 의심되잖아.

        

       내가 봤던 통계 같은 것도 전부 옛날 자료들이고……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실제로 타고 다니는 사람들한테 실례인 것 같기도 하고…….

        

       “……대신에, 자동차는 클레어가 원하는 것으로 고르도록 하겠습니다. 두 대 중 한 대는 그래도 다 같이 탈 수 있어야 하니, 나머지 한 대는 클레어가 원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너무 마음이 약한 거 아니야? 바로 조금 전까지 그렇게 단호하게 말했다가.”

        

       하지만 불쌍하잖아.

        

       내가 마음이 너무 약한 건가?

        

       하지만 괜히 너무 딱 잘라 거절했다가 엇나가면 안 되니까. 대신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 것이다. 어차피 돈이야 있으니 조금 비싼 차를 한 대 사는 것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클레어를 믿는 것도 있다.

        

       클레어라면 선을 넘을 만큼 비싸거나 유지비가 많이 드는 차는 사지 않을 거라고.

        

       “정말? 그래도 돼?”

        

       금세 다시 기운을 찾는 클레어를 보니 그게 정답이었던 것 같다.

        

       뒤로 묶은 머리카락까지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아 보이는 건 내 착각이겠지?

        

       시선을 돌려 나머지 세 사람을 보니, 샤를로트와 앨리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미아는 그 쓴웃음조차 짓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애초에 본인이 운전할 생각이 없으니 고르거나 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전부 착한 애들뿐이라 다행이라니까.

        

       나는 슬쩍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

        

       *

        

       일단 밖에서 겨울옷을 샀다. 일단 각자 두꺼운 겉옷을 두 개씩 사고, 안에 입을 옷도 몇 개씩 골랐지만…… 무게는 둘째 치고 부피가 너무 커서 밖에 들고 다니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집으로 돌아와 옷걸이에 옷을 걸어두고 다시 나와, 이번에는 가까운 사진관에 가 각자 증명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우리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자세하게 보았다.

        

       “왜 그래?”

        

       “아뇨, 저희는 따로 사진을 찍은 적도 없는데 주민등록증에 사진이 어떻게 있나 해서요.”

        

       “……그걸 이제야?”

        

       그러게.

        

       왜 이제야 봤을까.

        

       사진에 있는 존재는 어느 모로 보나 나였다. 심지어 흑백사진도 아니고, 제대로 된 증명사진이었다.

        

       한동안 사진을 바라보다가, 나는 깊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지갑을 다시 주머니 안에 넣었다.

        

       어차피 더 생각해도 의미가 없다. 여신이 알아서 만든 거겠지. 그 질서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그리고 면허학원에 가 등록을 마쳤다. 아직 대학교나 고등학교 방학 기간은 아니라 사람이 미어터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우리가 마침 운이 좋았거나.

        

       안내를 들어보니, 면허시험을 보는 데 필요한 교육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긴 내가 면허를 땄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주행 시험에서 몇 번 떨어져서 그렇지.

        

       ……이전에 따본 경험도 있으니, 이번에는 그렇게 큰 문제 없으리라.

        

       그게 10년도 더 된 일이긴 하지만, 아무튼.

        

       정 안 되면 그냥 동생이 운전하는 차 타고 다니지 뭐.

        

       ……운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

        

       그리고, 일주일 뒤—

        

       “어,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 운전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잖아!”

        

       “어려운 게 아닌데 혼자 떨어읍.”

        

       앨리스가 옆에서 나를 놀리려다가 그대로 클레어에게 입이 막혔다.

        

       “다시 한번 도전하면 되는 일이니 너무 걱정하실 거 없어요. 정 안 되면 굳이 면허 없어도 되고요.”

        

       샤를로트가 위로라고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아팠다.

        

       “저, 저도 면허는 딸 생각 없으니 괜찮아요!”

        

       “…….”

        

       나는 말이다.

        

       멋지게 차를 뽑아서 친구들을 태우고 내가 운전하는 것을 꿈꿨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 세상 출신으로서 나름대로 멋지고 잘 나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고.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이전에 운전면허 딸 때도 한 번에 따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때는 장내 주행이 거의 폐지된 상태였는데. 아니, 오히려 그래서 그 여파로 이번에 떨어지게 된 걸까?

        

       아니, 생각해보면 운전은 그럭저럭했다.

        

       그보다 수동 자동차가 아니었으므로 엔진을 꺼트릴 일도 없었다. 이번에 떨어지게 된 건 순전히 내가 길을 제대로 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길을 착각했지만, 다음에는 큰 문제 없겠죠.”

        

       “음성안내로 길 안내 해주지 않았던가?”

        

       “…….”

        

       “언니한테 왜 그래!”

        

       앨리스가 굳이 옆에서 한마디 했다가 클레어에게 등짝을 맞았다.

        

       앨리스는 그래도 꽤 즐거운 모양이었다. 하긴, 어린 시절에는 나를 이겨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내가 지더라도 일부러 져줬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제가 면허를 따고 나면, 언젠가 당신에게 서킷 레이스 대결을 신청하겠습니다.”

        

       “그거 재밌겠네. 물론 내가 이기겠지만.”

        

       “……서킷에서는 길을 외울 필요가 없다는 걸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언니, 나한테 너무 빠르게 달리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어……?”

        

       결국 클레어의 말마저 그런 쪽으로 바뀌는 것을 듣고 나서야, 나는 앨리스와의 말싸움을 그만두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 운전면허 세 번만에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10년간 운전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운전하려면 연수부터 받아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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