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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9

    “한달 안에, 최소 15체 이상의 인형이 필요해.”

    “…….”

    이어진 루크의 말에 메를린은 입을 다물었다.

    루크가 제안한 시간은 어떻게 봐도 너무나 촉박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메를린은 그녀를 오랫동안 봐온 것은 아니나, 그녀가 자신이 하는 말이 억지인지 아니면 가능한 이야기인지 분간을 전혀 하지 못 하는 얼간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에 메를린은 생각했다.

    ‘아니면, ‘재료’가 그만큼 훌륭한 것일지도 모르지…….’

    메를린은 떠보듯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아마 준비된 재료가 꽤 훌륭한 모양이지? 그렇게 빠듯한 일정을 잡을 정도라면 말이야.”

    그러자 루크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아, 물론이지. 품질만큼은 그야말로 최상급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훗, 역시 그런가.”

    루크의 장담에 메를린의 인상이 살짝 풀어지기 시작했다.

    뭐어, 그녀가 저토록 장담한다는 것은,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헌데, 재료는 언제쯤 가져올 셈이지? 재료가 있다면야 바로 작업에 착수하겠지만, 지금은 빈 손이 아닌가.”

    메를린이 루크의 손을 가리키며 묻자, 루크는 자신의 목덜미를 장식한 푸른 보석에 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아아, 그거라면 걱정 말게. 어디보자…….”

    메를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빈 손이 아니면 대체 무어란 말이지?

    루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형점을 몇번 둘러 보더니, 이내 허공에 손을 뻗으며 재차 입을 연다.

    “그래, 이쯤이면 될 것 같군.”

    루크는 한번 가볍게 웃어보이고는 이내 손을 허공에 휘젓는 동작을 취한다.

    극도로 우아하고 절제된 동작, 그 모습은 마치 교향악단의 지휘자와도 같았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 새 들려 있었던 것인지 모를 검고 길다란 막대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루크의 손짓과 동시에, 놀라운 일이 메를린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

    -쿠구구구—.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

     

    “말도안돼!”

    메를린의 경악성.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베어내다니?

    이걸 별다른 도구도 없이, 눈 앞에서 손짓만으로 일으킨단 말인가?

    이는 제아무리 온갖 것들에 익숙한 메를린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루크는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무얼 그리 놀라나? 이는 그저 원시적인 아공간에 불과한 것을.”

    “뭐?”

    하지만 그 대답에 메를린은 오히려 기가 찼다.

    아공간.

    온갖 마법이 상품으로 가공되어 유통되는 현대에서도 아공간의 마법은 꽤 고차원적인 기술력을 요구했다.

    그 탓에 유명 브랜드의 아공간 주머니의 가격대는 가장 저렴한 것 조차도 천만 단위를 호가하는 수준이 아니던가.

    때문에 개인용 아공간을 갖기란 현대에서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헌데,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단순히 물체에 할당된 공간을 마법을 이용해 늘리는 술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공간 그 자체를 갈라내는 것은 잘 통제된 실험실에서나 가능한 일.

    헌데 그것을 단순히 아티팩트를 이용해 일으키다니, 그러한 광경은 그녀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게 그 아공간이라고?”

    공간 그 자체를 잘라 틈에 물건을 숨기는 것이 어떻게 단순히 수납공간을 늘리는 아공간 기술과 같단 말인가?

    이건 오히려 게이트나 포탈에 가까운 마법이 아닌가!

    허나 루크의 입장에서 그 둘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는 클래스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 둘은 확실히 구분되어지고 있으나, 서클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것은 동일한 원리와 권한을 공유하기 때문이었다.

    뭐, 지금은 자신의 권한이 부족하여 ‘컴퓨터’의 연산을 빌려야 하는 작업이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하지만 지금은 아공간과 포탈의 유사성과 서클마법의 확장성, 달 그림자의 원리 등을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굳이 입 아프게 설명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따라서 루크는 그저 손을 그 아공간을 향해 가리키며 입을 열었을 뿐이다.

    “재료는 이 안에 있다.”

    “…….”

    과연…….

    이런 것이 있다면 어딜 가든 빈 손은 아닐 터다.

    대체 이 틈 너머로 얼마나 넓은 공간이 펼쳐진 것일까?

    역시, 이 소녀는 허투루 볼 수 없는 존재, 영혼시로 읽을 수 없는 강대한 영혼에 걸맞는 수준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 정도는 되어야 ‘그’를 상대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메를린은 점차 고양되기 시작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이런 걸 보니 의욕이 솟는데? 좋아, 그럼 재료를 보여주겠나?”

    “뭐, 바란다면 그러도록 하지.”

    -딱-!

    루크는 그 검은 틈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 틈새에서 쏟아지는 것은 다름아닌…….

    “……솜과 천?”

     

    메를린은 크게 당황했다.

     

    솜과 천?

    솜과 천이라고?

     

    그것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아공간을 넘어 내려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심을 품고 그 솜과 천이 바닥에 쌓이는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었지만, 그 구멍으로부터 쏟아져내려온 것은 끝까지 솜과 천이 전부였다.

     

    “잠깐, 루크. 정말 이게 끝인가?”

    설마 그 경악스러운 아공간을 열고 기껏 꺼낸다는게, 정말로 솜과 천이라는 말인가?

    그녀의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흠? 그야 인형을 만들 때는 솜과 천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것도 나름대로 최고급품일세.”

     

    아린세이아의 기운을 이용해 재배한 목화로 만든 솜과, 틈이 날 때마다 구해둔 값비싼 원단.

    이 것으로 인형을 만들면 분명 굉장히 좋은 작품이 되겠지.

    그런데 갑자기 왜 저런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루크는 알 수가 없었다.

    설마, 갑자기 이제와서 못 하겠다고 한다면 곤란한데.

    “재료를 주면 인형을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또 뭐가 문제지?”

    하지만 루크가 아무리 그렇게 표정을 찌푸리며 바라본들, 메를린의 충격은 더더욱 증폭되기만 했다.

     

    “잠깐, 그럼 여태껏 그대가 말했던 것이……. 내게 정말로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일 뿐인 의뢰였다고? 솜과 천으로 만들어진, 폭신한 장난감 말이야?”

     

    메를린의 머리 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루크는 투덜댔다.

    “그럼 그걸 인형이라 부르지, 당연한 거 아닌가. 아니면, 내가 못 본 새에 인형을 대체할 다른 말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아니, 잠깐만.”

    정말 여태껏 이야기한 그건 키워진 암살자를 지칭하는 은어가 아니었단 말인가?

    말도 안돼, 그럼 대체 자신은 무슨…….

     

    순간 메를린은 그동안 루크가 보인 모든 반응들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설마, 다른 것 들도 단순히 자신이 착각해서 크게 부풀려 생각한 거라면?

    그야말로 부끄러워 죽어버릴 일들 뿐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그동안 한 이야기들은 다 뭐지?

     

    메를린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돈하며 더듬더듬 말을 골랐다.

    대체 어디서부터 서로의 인식이 어긋난 건지, 도저히 감도 오지 않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도 잘 모르겠다.

    메를린이 그러고 있으니, 루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보니. 기준이 될 샘플도 필요하겠군.”

    “뭐?”

    메를린이 황망하게 되묻자, 루크는 ‘보여주는 게 제일’이라고 중얼거리며 아직 열려있는 공간을 향해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딱-.

    “리브, 잠시 나와보겠느냐.”

    그러자, 그 공간의 틈 속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 그 샘플을 보면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메를린은 공간의 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뭐, 이 정도로만 만들면 되네.”

     

    그것을 본 메를린은 마침내 얼굴을 손으로 덮고 말았다.

    샘플조차도 정말로 작은 곰인형이 아닌가.

    상황이 뭐가 뭔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

     

    “그, 내가 그동안 말했던 인형이란건 암살자, 서드와 같은 살수를 말하는 거였단 말이다. 그런 게 아니었나?”

    “음, 전혀 아니었다만.”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과연, 인형이란 건 암살자로 키워진 이들도 칭하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거, 별난 우연도 다 있군 그래.

     

    하지만 메를린은 뒷세계와 꽤 깊은 연이 있어 보이니, 정말 암살자의 조직과 관련이 있어도 그리 이상할 정도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믿을 만한 인력은 있으면 있을수록 좋으니, 준비된 암살자가 있다면 그것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닐 수도 있다.

     

    루크는 약간 기대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대가 말한 ‘인형’은 몇이나 준비되어 있는 것이지? 단가가 괜찮다면 그 쪽도 고용할 의향이 있다만.”

    “아, 아니. 지금은 네게 보여줄 만 한 ‘인형’이 없어……. 예전에 말했다시피, ‘그’에게서 도망칠 때에 대부분 소비했으니…….”

     

    그때 말한 그 이야기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었나?

    틀림없이 단순히 인형을 칭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번의 오해가 이렇게 서로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었다.

     

    “……허. 괜히 기대했군.”

     

    루크는 잠시 혀를 찬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뭐어,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녀석들 보단 이 ‘인형’이 더 효율적일 테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메를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루크가 ‘리브’라고 부르는 그 인형이 스스로 움직이고 판단하는 것은 분명 신기하긴 하지만, 절대 장난감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체 이게 어떻게 자신의 ‘인형’들 보다 훨씬 효율적이란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루크는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이, 테이블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리브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잠시 후, 돌연 인형이 메를린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어떤 마법의 전조가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메를린이 놀라움에 몸을 일으키려던 그 순간, 그녀는 몸은 굳힐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자신의 어깨에 올라 날카로운 것으로 목을 겨누고 있는 인형의 감촉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나로 전투용 인형을 조종해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은 자신도 종종 다루는 방식의 마법이긴 했으나, 이건 완전히 다른 종류다.

    누군가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 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골렘에 가까운 인형.

    그렇기에 이 인형은 자신이 조종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다.

    …마치, 하나의 뛰어난 암살자처럼 말이다.

     

    루크는 무덤덤하게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어때, 이 정도면 충분히 효율적이지않나?”

    “……과연…….”

    결국 메를린은 그저 침을 삼키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뭐, 처음에 서로 생각하던 그림은 아니지만, 아무튼 결과는 비슷한 거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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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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