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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9

        

       별빛이 반짝였다가 세를 줄였을 때 나는 소리.

       깜깜한 밤하늘에 갑자기 별빛이 불쑥 튀어나와 자신의 존재감을 발하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돌과 쓰레기, 나무에 부딪히며 물이 물체를 깎아내리는 소리.

       물이 포말을 일으키는 소리.

       물보라를 일으키며 허공에 솟았다가 바닥에 비처럼 떨어지는 소리.

       썩어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물방울의 소리.

       진성의 손에서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며 소리를 발하는 방울의 소리.

       천천히 움직이며 바닥을 긁고, 오물을 튀기고, 쓰레기를 긁고, 자르는 소리.

       

       소리.

         

       소리가 들린다.

         

       온갖 소리가 들린다.

         

       저벅.

       저벅.

         

       쓰레기 섬에서 나는 소리에 호응하듯 저 멀리에서도 소리가 느껴진다.

       방울 소리를 이정표로 삼고, 별빛을 안내원으로 삼아 이곳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그 걸음걸이는 사람의 것과 흡사하되 한없이 가벼워 사람의 것이라 볼 수 없었고, 동물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본능이 묻어 있으되 명백한 증오가 묻어있으니 이 역시 아니었고. 동시에 산 자의 것이라기에는 숨소리가 없고, 죽은 자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육신이 없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사람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귀를 기울여 정체를 알아내려 하는 순간 사람을 홀리게 만들어 죽음으로 향하게 만드는 끔찍한 악의(惡意)를 품고 있으니.

         

       이 소리가 바로 귀신의 발걸음 소리라.

         

       다리가 없음에도 발소리를 내고, 둥둥 떠서 옴에도 손을 좌우로 흔들며 움직이는 듯하고, 땅에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으니 사람의 눈을 현혹하고 소리를 흉내 내 옛 살아있을 적을 그리워하는구나.

         

       그리워하고 그리워한들 어쩌랴.

         

       육신이 없고, 영혼은 떠났고, 정신은 풍화되고 있는 것을.

         

       오직 있는 것이라곤 산 자에 대한 악의밖에 없으니, 이것이 바로 귀신이다.

         

       저벅.

       저벅.

         

       육신이 없어 오감을 현혹해 존재하게 착각하니 악령(惡靈)이요.

       육신을 빚어 사람을 찢으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악귀(惡鬼)라!

         

       발걸음 하나하나가 삿되고, 사악하고, 끔찍하도다.

         

       “자아, 이곳으로 오라. 뭍에 있는 귀신들아, 물로 발을 디뎌 이곳까지 걸어오라. 물살을 헤치고, 영혼을 짓누르는 수기(水氣)를 이기고, 그렇게 여기까지 와서 나의 앞까지 오라.”

         

       딸랑-

         

       진성은 그렇게 모여든 귀신의 무리를 보며 방울을 흔들었다.

       작게 한 번을 흔들어 악령을 홀렸고, 작게 또 한 번을 흔들어 악귀를 유혹했다. 그것은 굶주린 자에게 고기 굽는 냄새를 맡게 해주는 것과 같았고, 악취에 고생하는 자에게 꽃향기를 맡게 해주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귀신을 유혹하는 소리요, 귀신의 풍화된 정신으로도 따를 수밖에 없는 속삭임이라.

         

       이성이 있다면 진성이 행한 주술 의식의 무게에 이기지 못하고 자리할 것이요, 이성이 희미하다면 본능에 지배당하는 동물처럼 진성의 앞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악한 부름이다.

       사마외도(邪魔外道)의 힘이요, 사람보다 귀신에 친숙하게 살아가며 죽음을 탐구하는 강령술사와 빙의술사의 비전이 바로 이것이다.

         

       꼭꼭 숨어있는 귀신을 자신의 앞까지 끌고 오는 것.

       이것이 바로 귀신을 부리는 일의 시작이니.

         

       딸랑-

         

       물가에 다다른 귀신들은 진성의 속삭임에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괴한 형체를 지닌 채, 그렇게 허우적대며 그들은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악령은 허공을 부유하며 물에 들어가기를 망설이다가 물 위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악귀는 사람 형체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몸뚱이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첨-벙.

       첨-벙.

         

       귀신이 물길에 뛰어드는 소리.

       불에 홀린 듯 달려드는 나방처럼 그들은 물속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녹아들어 갔다.

       물 위를 날아가려 하는 악령은 수기(水氣)와 음기(陰氣)가 진성에 의해 증폭된 물을 건너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했고, 물에 닿자마자 눈사람이 뜨거운 물에 닿은 것처럼 손쉽게 녹아내렸다. 그렇게 악령은 물에 휩쓸린 채 녹아내렸고, 물결이 뭍에 닿고 나서야 형체를 그러모아 다시 뭍에서 나타날 수 있었다.

         

       첨-벙.

         

       악귀 역시 마찬가지.

       홀린 듯 물속에 뛰어들었다지만, 악귀들은 물을 건너지 못했다.

       물은 악귀들의 몸을 녹였고, 얼어붙게 했고, 물이 허깨비를 흩어버리듯 그들의 몸을 흩어버렸다. 물은 그 자체로 악귀를 막는 천혜의 방벽이었으며, 증폭된 수기는 자신의 청명함을 유지하려는 듯 삿된 귀신의 존재를 용납하려 들지를 않았다.

         

       그렇게 귀신은 녹고, 녹고, 또 녹았다.

       촛농처럼 녹았고, 눈사람처럼 녹았고, 허물어지는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모양을 잃었다.

       그렇게 모양을 잃었다가도 뭍에 도착하면 그 형상이 다시 돌아왔고, 그렇게 형상을 되돌린 귀신들은 다시 물에 뛰어든다.

         

       그렇게 귀신들은 녹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며 무의미한 시도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딸랑-

         

       진성의 의도에 따라서.

       주술 의식을 벌인 진성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그렇게 귀신은, 영원할 것만 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부글.

       첨-벙.

         

       강의 물이 들끓고, 강의 중간지점에서 누군가 물장구를 치듯 물보라가 확 일었다.

       수면을 누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팡-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수초 같은 것이 수면에 잠시 드러났다가 모습을 감추었다.

         

       첨-벙.

       첨벙!

       첨벙!

         

       그리고 이러한 일은 곳곳에서 일어났다.

         

       물에만 닿아도 녹아내리는 귀신들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곳.

       그곳에서 무언가 존재하기라도 하듯, 물장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들은 수초처럼 검은 터럭을 꿈틀대며 수면에 가까워졌고, 정수리를 꼿꼿하게 든 채 솟아올랐다. 수면 위로 드러낸 눈깔은 비린내를 가득 품고 있었고, 팅팅 불어 터진 피부는 슬쩍 훑어내리기만 해도 녹아내릴 것처럼 연약해 보이기 짝이 없었다.

         

       다만 그 눈에 서려 있는 것은 표독함이라.

         

       무어가 그리도 원망스러운지 눈에는 사람에 대한 증오와 집착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자신의 안식을 방해하는 귀신들이 밉기라도 한지 뭍을 강렬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꿈틀.

         

       물귀신.

       물귀신들이다.

         

       물에서 죽어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귀신.

       사람 하나를 제자리로 채워 넣어야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 악독한 귀신.

       이 악독한 심성의 귀신은 원수가 아닌 사람조차도 끌어들여 길동무로 만들고, 그런데도 만족하지 못해 장소 자체에 깃들어 계속해서 사람을 홀려 죽여버린다.

         

       실제로 차가운 음기를 품고 죽었기에 어지간한 양기로는 퇴치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며,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물속을 제집처럼 여기기에 상대하기도 매우 까다로웠다. 게다가 그 집착이란 너무나 끔찍하고 질긴 것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에서 죽은 귀신만큼 독한 귀신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 악독한 심성을 가진 귀신들은 진성이 내는 방울 소리에 이끌려, 진성이 발을 구를 때 나는 진동에 이끌려, 그렇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령강의 밑바닥에서 산 사람이 들어오기만 기다리는 대신, 본능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귀신은 뭍에서 물로 들어오려는 귀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녹아내렸다가 조립되기를 반복하는 저 귀신들을.

         

       그리고 진성은.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귀신이란 것은 사람이 죽어서 생기는 것인데 그것의 형상이 사람을 닮은 것에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은 살아있던 과거를 그리워하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거울처럼 산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까?”

         

       딸랑.

         

       “…그러자 스승이 이르기를 제자야 너는 알아야 할 것이니라. 네가 본 것들은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일지는 모르나 실제로는 그러지 아니하니. 귀신이란 무릇 정해진 형체가 없고, 정해진 형상이 없고, 정해진 형질이 없도다. 색은 천변만화하며, 그 형상 역시 짐승에서 나무까지 다채로우니 제자야 너는 나의 말을 잘 귀담아듣고 쉬이 홀리지 아니하도록 하여라….”

         

       두 귀신의 대치에 기껍다는 듯 검과 방울을 흔들었다.

         

       딸랑.

         

       검이 허공을 가르고, 방울이 다시 흔들리며 기기묘묘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딸랑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 딸랑거리는 소리 중간중간에 있는, 비어있는 듯한 소리.

         

       공기를 흔들었을 때 나는 듯한 미미한 존재감.

       하지만 분명히 있다는 듯 발하고 있는 존재감과 그 기묘한 탈력감.

         

       방울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귀신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었고, 그 소리에 따라 귀신들은 다시 움직여 진성의 뜻에 따라 조립되기 시작하였다.

         

       [ 끄그그극. ]

         

       [ 거어기 섬사람 뱃가죽도 튼실하이 좋은 거 먹었구나 나에게도 나눠주오 강냉이밥 한술이라도 나에게 다오….]

         

       귀신은 단말마를 내지르듯 악의를 품은 말과 비명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렇게 토해낸들 무엇이 억울할까.

       소리에 이끌려 온 것은 그들이고, 사람을 해치겠다고 몰려든 것은 그들이다.

         

       그렇다면 진성의 주술에 의해 조립이 되는 것 역시 달게 받아들여야 하리라.

         

       첨벙.

       첨-벙.

         

       다시 한번 귀신들이 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앞서 그러했듯 악령이고 악귀고 물에 닿자마자 녹아내렸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물결이 일어 그들을 뭍으로 보내도 다시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 것이다.

         

       귀신들은 자신의 형체를 되돌릴 수 없이 물에 녹아내린 채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 진성의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조형되며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은 채 특정한 형상이 되었다.

         

       그 형상은 부레옥잠이나 풍선과 비슷한 것이라.

       사람을 부풀리고, 고깃덩어리에 공기를 넣어 부풀린 듯한 형상에 이목구비가 달렸고, 손과 발이 달렸다.

         

       그 크기는 사람의 머리통만 한 크기에서 애드벌룬 크기까지 다양하였으나 그것에 공통점이 있다면 물 위를 부유하는 귀신이라는 것.

         

       “가련한 중생들아, 너희가 물에 고통받으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힘을 사용하겠노라. 마라(मार)의 손길로 반죽하여 형상을 이루고, 물에 닿아도 녹지 않도록 물 위를 떠다니게 했으니 너희는 마땅히 눈물을 흘리며 나를 찬양하라. 찬양하고 또 찬양하여 정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너희는 나의 군세로 움직여 미혹에 빠진 이들을 거두고 악을 퍼뜨리도록 하라.”

         

       진성은 물 위에 부유하는 귀신들을 보며 웃었다.

         

       “자, 귀신들아.”

         

       뒤틀려버린 시간 속, 한반도의 바다에 떠 있던 것과 같은 형상을 한 귀신들아.

         

       “가자.”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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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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