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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9

       처음 돌격을 시도했던 그 순간 파이스는 일종의 경외를 느꼈다.

       

       방패를 막아낼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다. 뻔한 공격이기도 했고 이 돌진은 충격과 함께 주도권을 잡기 위함일 뿐이기도 했으니.

       

       허나 그 방식은 파이스가 생각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화령의 주먹이 방패에 닿는 순간 그대로 방패가 멈춤과 동시에 돌격에 담겨 있던 모든 힘이 바닥으로 흘러내린 것이다.

       

       대체 얼만큼의 무를 쌓아야 이런 기행이 가능한 것일까.

       

       그 한 수 만으로 파이스는 확신을 가졌다.

       

       자신이 화령을 이길 수 없을 거란 확신을 말이다.

       

       그 확신은 한 수 한 수가 더해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

       

       돌진이 끝나기 무섭게 파이스가 선택한 수는 검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두터운 오러를 덧씌운 일검을 통해 데미지를 넣을 생각이었지.

       

       허나 이 또한 너무나도 가볍게 파훼되고 말았다.

       

       화령은 오러가 덧씌워진 검을. 손을 대는 순간 그대로 베여나갈 날카로운 검을. 장난감을 다루듯 가뿐하게 밀어버렸으니까.

       

       정신이 나가버리겠군. 이것이 드높은 경지의 무인이라는 것인가.

       

       검을 되돌리려 해봐야 틈을 줄 뿐이다.

       

       여기서 최선은 검을 포기하고 방패로 다시 공격을.

       

       하려는 순간 화령이 훌쩍 걸음을 뒤로 물렸다.

       

       한 걸음 뒤로 향했을 뿐이거늘 벌어진 거리는 최소한 3미터 이상.

       

       파이스가 내지른 방패가 허공에 부딪히기엔 충분한 거리였다.

       

       “쯧.”

       

       혀를 차는 소리에 파이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상상 이상으로 차이가 크다.

       

       아무리 이 곳에서 파이스가 전력을 낼 수 없는 상태라지만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

       

       현실의 화령에 비하여 이 곳의 화령은 약해진 상태다.

       

       분명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은 현실의 파이스와 아피스의 파이스가 지닌 간격보다 거대하겠지.

       

       허나 그럼 무얼 하겠는가.

       

       힘이 약해졌다 한들 화령의 몸 안에 머무르는 무의 경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어니.

       

       장비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파이스로써는 도저히 화령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호기롭게 도전한 거고. 패배할 거란 것도 알았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클 줄이야.

       

       현대에 오고 나서 여러모로 녹이 슨 것은 사실이지만 이 차이는 그 이전의 문제다.

       

       한창 필사적으로 투쟁을 반복하던 시절이라도 화령님을 쓰러트릴 수는 없었을 테지.

       

       “안 되지. 안 돼. 이래서야 곤란해.”

       “…예?”

       “정신 상태가 썩어 빠져 있지 않으냐.”

       

       화령의 주변을 가만 관찰하던 파이스는 그녀의 주위에 넘실거리는 기운을 볼 수 있었다.

       

       검붉은 색의. 주변의 모든 기운을 집어 삼키려 드는. 패악스러운 내기.

       

       “마음에 들지 않아.”

       

       그것이 점차 세를 넓혀가며 투기장 안을 잠식해간다.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파이스가 다급히 자신의 마력을 주변에 퍼트리지만 거기에도 한도가 있으니.

       

       “그대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천마다.”

       

       어느새 파이스의 주변은 화령이 퍼트린 기운으로 가득해진 상태였다.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만마의 앞에 짓눌려 버릴 터.”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생각하며 파이스가 식은땀을 흘리던 그 때에 백화령의 눈이 파이스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 순간. 주변에 퍼져 있던 내기가 송곳이 되어서는 파이스를 꿰뚫었다.

       

       죽는다.

       

       등줄기를 타고서 올라가는 싸늘한 느낌.

       

       죽을 거야.

       

       덜덜 떨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내는 턱.

       

       갈기갈기 찢겨서 죽을 거야.

       

       이마에서 솟아나는 식은 땀.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을 거야.

       

       검을 쥔 손에 들어가는 강한 힘.

       

       죽을 거라고.

       

       “전력을 다해 덤벼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잠식되어 버린 파이스의 뇌리에 자리 잡은 것은 하나 뿐이었다.

       

       눈 앞의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

       

       이미 그는 이 세상이 아피스의 세상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게 되었다.

       

       과거 생과 사를 마주하며 발악하던 때로 돌아간 그는 한 치 망설임 없이 화령의 목을 향해 살수를 내질렀으나.

       

       그 또한 무용했다.

       

       파이스가 내지른 검을 화령이 목을 비트는 것만으로 피해낸 것이다.

       

       뒤를 생각하지 않은 공격이었기에 파이스의 몸에 드러난 틈은 거대했고 화령은 그걸 놓칠 만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녀는 진득한 미소와 함께 파이스의 옆구리를 툭하고 건드렸다.

       

       그 순간 파이스는 보았다.

       

       자신의 복부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는 것을.

       

       막을 잃어버린 내장이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입가에서 터져 나오는 피가 말문을 가로 막는 것을.

       

       “자. 이걸로 그대는 한 번 죽었다.”

       

       허나 화령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 순간 그 모든 풍경이 사라졌다.

       

       파이스의 복부는 멀쩡했고 그의 갑옷은 제 형상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다만 화령이 손이 왔다간 흔적처럼 살짝 구부러져 있을 뿐.

       

       “몇 번 기회를 더 주마. 계속 와 보거라.”

       

       …그러니까 방금 전의 광경은 환상이었다는 거군요.

       

       자신의 살기만으로 상대에게 죽음을 확신하게 만들다니.

       

       화령을 향한 경외와 공포로 파이스의 발이 멈췄지만 화령은 그에게 짧은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흩뿌린 살기는 파이스에게 한 순간이라도 멈추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협박했으니.

       

       파이스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무작정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파이스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죽음을 마주했다.

       

       자신의 검을 두 손가락으로 붙잡아 부러트린 화령이 검날로 자신의 목을 꿰뚫는다.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지르려는 그 틈 사이를 파고들어서는 손가락으로 기도에 구멍을 낸다.

       

       권을 막아내려던 방패가 두동강이 나며 그 너머로 날아든 권에 의해 절명한다.

       

       이외에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죽음을 마주한 파이스는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걸 잊었다.

       

       이 곳이 판타지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도.

       

       지금의 자신은 용사가 아니라는 것도.

       

       눈 앞에 있는 적이 세상에 죽음을 전하려는 사악이 아니라는 것도.

       

       모두 다 잊어버린 채 예전처럼 사고하고 판단하여 검을 휘둘렀다.

       

       과거의 날카로움을 그대로 지닌 검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화령이 내비친 자그마한 틈새를 지나쳐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그마한 자상이 생긴 화령의 뺨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화령의 입가에 미소가 스민다.

       

       “그래. 이래야지. 이 정도는 되어야 상대할 맛이 나지. 암.”

       

       화령의 진득한 미소를 본 순간 파이스는 자신에게 새겨져있던 공포마저 잊고서 이리 생각했다.

       

       “그럼 이젠 나도 좀 힘을 내어보마.”

       

       아무래도 자기는 진짜 좆 된 것 같다고 말이다.

       

       “버텨보도록.”

       

       *

       

       화령과 파이스의 대결은 시작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끌어 모았다.

       

       한 쪽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아피스 프로게이머 역사의 레전드이자 최강자인 사람.

       

       그리고 다른 한 쪽은 혜성처럼 등장해서 VR세상에 큰 충격을 가져다 준 사람.

       

       서로가 지닌 압도적인 무재로 유명세를 떨친 두 사람이다. 이 둘이 대결을 한다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만 사전에 시청자들이 예상한 바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은 파이스가 승리할 가능성을 더 높게 봐 두는 듯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파이스가 여태까지 쌓아 온 업적이 얼마나 많은가.

       

       아무리 화령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프로의 세계에서 몇 년이나 1위를 지킨 괴물을 만나자마자 쓰러트릴 수 있을 리 없잖은가.

       

       “한서우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윤의 물음에 해설로 불려 온 한서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전 화령님이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 왜죠?”

       “아무리 생각해도 저 분이 지는 광경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아하하. 같은 천마 유저라 화령님을 엄청 고평가 하시는 군요?!”

       

       방금 전의 말은 한서우의 가감 하나 없는 진심이었다.

       

       자신의 스승님조차도 감히 닿지 못하는 것이 화령이라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패배한다? 한서우로써는 그 풍경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허나 사람들은 한서우가 농담을 한다고 여겼다.

       

       파이스와 누구보다도 많이 맞붙어 보았던 한서우가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할 리 없다 생각했기에.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게 증명된 것은 화령과 파이스의 첫 격돌이었다.

       

       파이스가 자랑하는 방패돌진과 화령의 권이 맞부딪힌 것이다.

       

       한서우는 파이스의 돌진을 몇 번이나 받아보았기에 저게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알고 있었다.

       

       피하려 들면 추적해서 박살내고. 어설프게 받아내면 그대로 주도권이 넘어가서 패하는.

       

       그래서 최선은 애초에 사용할 거리를 안 내어주는 것인 돌격.

       

       “저게 어떻게 된 거죠?! 파이스가 자랑하는 돌진이 가로막혔습니다!”

       

       화령은 그 돌격을 너무나도 가뿐하게 자신의 주먹으로 받아냈다.

       

       거창한 준비도 없이. 거센 일격도 없이. 가볍게 주먹을 내지르는 것으로 파이스를 멈춰 세운 것이다.

       

       그 광경을 본 도윤이 중얼거리듯 의문을 표하자 한서우가 애써 상황을 설명해보려 노력했다. 그것이 그가 맡은 역할이었으니까.

       

       “아마도 입니다만. 권격으로 돌격을 멈춘 후. 돌격의 충격을 다른 곳으로 흘려버린 것 같네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도 말하면서 이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되네요. 놀랍게도.”

       

       경이로운 장면은 거기서 그치지 아니했다.

       

       오러를 두른 검을 손으로 밀어내는 것.

       

       그 후에 가해지는 연격을 훌쩍 물러서는 것으로 피하는 것.

       

       그 광경을 살펴보던 한서우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하고 머리를 쥐어 싸맸다.

       

       짧은 움직임 사이사이에 너무도 많은 이치가 담겨 있어서 말로 전하는 게 너무도 어려웠던 것이다.

       

       한서우에게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일전의 수싸움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화령의 움직임도. 파이스의 움직임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빠르고 예리하게 바뀌어 갔으니까.

       

       파이스 선수가 저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나? 나를 상대할 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것 같은데?

       

       그걸 상대하는 화령님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야.

       

       아니. 이 사람. 저 무시무시한 검을 상대하면서 상대를 가지고 놀고 있잖아.

       

       승부를 결정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일부러 위협만 가하고 놓아주고 있어.

       

       이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눈으로 따라잡는 것조차 버거운 싸움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처음으로 파이스의 검이 화령에게 닿았다.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간 검은 자그마한 자상을 만들어냈고 화령의 뺨을 타고서 피가 흘러내린다.

       

       “파이스 선수! 드디어 흐름을 잡은 걸까요?! 승부의 향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려는 걸까요?!”

       

       한서우는 도윤의 외침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화령의 눈을. 먹잇감을 바라보는 짐승의 눈을. 마주해버렸기에.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령이 무어라 중얼거리나 싶더니 그녀의 신형이 자취를 감춘다.

       

       시청자들도. 도윤도. 한서우도. 심지어 화면 너머의 파이스까지도 그녀의 움직임을 놓쳐버린 그 순간.

       

       화령이 갑작스레 파이스의 등 뒤에서 나타났고.

       

       그의 허리를 걷어차 저 멀리로 날려버리더니.

       

       이제까지는 몸풀기였다는 듯 가뿐히 기지개를 켰다.

       

       그 광경에 해설자고 시청자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말을 잃어버린 그 순간 한서우는 자신이 지금 앉아 있는 곳이 해설석이라는 것조차 잊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미친.”

       

       저걸 나보고 따라하라고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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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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