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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9

   알른 영지 인근에 존재하는 어느 자그마한 남작령의 삼녀인 에린은 알른 가문의 시녀로 들어오기 전부터 예술 교단의 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대륙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자신의 예술을 전파하는 사람. 자신이 수중에 얻은 것을 기꺼이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베푸는 사람. 악신의 추종자들에게 고통 받은 무수한 이들을 구원한 사람.

   

   과거 베네딕 알른이 자신의 무위로 대륙을 진동시키던 그 때에 예술 교단의 사도 프레테는 자신의 선함으로 대륙에 이름을 떨쳤다.

   

   어찌 보면 여자아이들 사이에선 베네딕보다 프레테가 더 유명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방랑하는 음유시인들이 전하는 프레테라는 인물은 수려한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를 지닌 예술가였으니까.

   

   그 때로부터 한참이 지나 만나게 된 프레테는 음유시인이 전했던 것보다도 수려한 사람이었다.

   

   제가 알기로 프레테님께서는 가주님과 비슷한 연배이신 걸로 아는데 어찌 지금도 스무 살의 청년처럼 보이는 것인지. 이것도 여신께서 내린 축복의 영향일까요?

   

   에린은 프레테를 보고 감탄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과거 영지에서 마을의 여자아이들과 재잘재잘 떠들 때라면 새된 소리를 내질렀을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루시 알른이라는 사람의 곁을 지키며 그녀의 아름다움에 익숙해진 에린은 프레테를 보고서도 무던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프레테는 그런 에린의 반응이 신선했던 듯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지만 그 이상 무어라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알른 영애의 전속시녀라 하셨지요?”

   “예. 그렇습니다.”

   “가르침을 드리기 전에 평소 어떤 식으로 하는지 볼 수 있을까요?”

   “아가씨께서 허락하신다면.”

   “싫은데? 허락 안 해 줄 건데?”

   

   대화 도중 툭하고 튀어나온 목소리에 앞으로 고갤 돌린 에린은 루시의 뒤통수 너머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봤다.

   

   아이다운 장난기가 서린 꼬마아이의 얼굴. 과거 막 루시의 시녀가 되었을 무렵 에린이 보았던 짜증어린 웃음이 아닌 기분 좋을 때의 웃음.

   

   떠맡듯이 아가씨의 시녀가 되었을 적에는 이런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어찌 안 되겠습니까?”

   “싫다고.”

   

   알른 저택의 다른 시녀였다면 루시의 날선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에린은 아니다.

   

   지금의 루시를 아는 그녀는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갤 숙였다.

   

   “아가씨. 부디 한 번만 재고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진지하게 나오면 어쩌잔 거야? 허접 에린. 진~짜 재미 없어.”

   “죄송합니다. 아가씨.”

   “됐어. 맘대로 해. 대신 마음에 안 들면 잔뜩 장난칠 거니까 그런 줄 알고.”

   “자비에 감사합니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보던 프레테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지만 에린이 루시를 꾸미는 것을 보고는 점차 표정을 엄하게 바꾸었다.

   

   “…어떻습니까?”

   “나쁘지는 않습니다. 어지간한 귀족 가문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로 충분하겠죠.”

   

   나름 칭찬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에린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프레테의 어투에 서린 노기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에린님. 당신의 주인은 어지간한 귀족 가문의 영애와는 격이 다른 사람입니다. 제가 본 그 누구보다 여신에 가까운 분께 통상적인 방식을 사용해선 안 되죠.”

   

   프레테의 딱딱한 어투와 날 선 시선은 방금 전 보았던 부드러운 웃음이 환상이었던 걸까 싶을 만큼 무거웠다.

   

   허나 어깨를 짓누르는 공기 속에서도 에린의 표정은 태연했다. 과거 바뀌기 전의 루시의 패악질마저도 견디던 그녀에게 이 정도 부담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보십시오. 알른 영애께서는 워낙에 완벽한 조형을 지니고 계시는지라 건드릴 곳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긴 합니다만 완벽한 조형이라 할지라도 더 아름답게 만들 방법은 존재하죠.”

   

   에린은 프레테가 가르쳐주는 것들을 들으며 감탄했다. 이런 방식도 있구나. 과연 대륙의 예술을 이끄는 사람이라 불릴 법해.

   

   “프레테님. 수첩에 따로 필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편한대로 하십시오. 아니지.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 드릴 테니 필기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알른 영애를 꾸미는 분께서 어설픈 건 제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눈썹 하나를 만지는 데에만 삼십분의 시간이 걸리는 가운데에서 지루함을 견디던 루시가 하품을 내뱉었다.

   

   그러자 설명을 하다 말고 굳어버린 프레테가 다급히 피가 흐르는 코를 틀어막았다.

   

   “변태 사도. 제발 나가 뒤져주라.”

   “영애.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일은 다 끝마쳐야하니까요.”

   “코피 흘리면서 그딴 말 해봐야 추한 쓰레기처럼 보일 뿐이거든?”

   “영애께서 추한 쓰레기라 부르신다면 그것이 옳겠죠. 영광입니다.”“…진짜 역겨워서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아.”

   

   *

   

   유릭 주교의 시체는 주교의 침실에서 발견됐다.

   

   평소 자신의 방에 다른 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불편히여겨 자기 홀로 모든 것을 처리하던 게 그의 발견을 늦춘 것이다.

   

   자신들의 동료가 바로 옆에서 죽었거늘 그 죽음을 알지 못한데다가 제 때 찾아내주지도 못했단 사실을 깨달은 예술 교단의 사람들은 악신의 토벌에 대해 왈가왈부하던 것도 잊고 자신들을 자책했다.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동료를 애도했다.

   

   유릭 주교의 시체가 발견되어 수습되었을 때부터 끝없이 애도의 행렬이 이어지다 노을이 질 무렵이 되었을 무렵 교단 본부의 문이 열리며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중함을 담고 있는 붉은 색의 눈동자. 노을의 따스함과 노곤함을 그대로 품은 하얀 색의 피부. 교단의 사도가 이야기하길 한없이 여신에 가깝다는 외견. 연약한 것처럼 보이는 육신과는 달리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듯 강렬한 시선.

   

   루시 알른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프레테마저도 세상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며 세상을 눈에 담았다.

   

   노을빛 앞에서도 루시의 눈빛은 흐려지긴커녕 오히려 빛을 발했다.

   

   바로 앞에서 그를 마주한 교인들은 경외가 마음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고 그들의 경외는 뒤편으로 또 다시 뒤편으로 퍼져 나가 어느새 거리 전체를 물들였다.

   

   그 광경을 본 루시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녀의 자그마한 발에, 잘못 건드리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작디 작은 걸음에, 그렇지만 무수한 시련 앞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은 굳건한 발걸음에, 교인들의 바람이 쌓여간다.

   

   죽어버린 동료에 대한 사죄가.

   

   부디 죽음 뒤에 여신을 만난 동료가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속죄를 위한 결심이.

   

   쌓이고 쌓여 루시 알른의 걸음을 짓누르지만 루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등 뒤에 짐이 있기나 하냐는 것처럼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서 유릭 주교의 시체가 모셔진 곳에 도착했다.

   

   자리를 지키던 교단의 주교는 루시와 눈을 마주하고는 꾸벅 허리를 숙인 후 길을 비켜주었다.

   

   모두의 바람을 안고 관 앞에 도착한 루시는 심호흡을 하고서 두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켠에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감은 순간 루시가 있는 곳을 기점으로 하여 따스한 온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후회와 슬픔과 한탄을 어루어 만지고 위안을 가져다주는 따스함. 그를 피부로 느낀 교인들의 눈에서 하나 둘 눈물이 흘러내린다.

   

   루시의 옆에서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은 프레테는 여신의 곁에 도착했을 유릭 주교가 웃음을 지었으리라 생각했다.

   

   이 자리에 머물던 교인들이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게 되었으리라 확신했다.

   

   이것이 주신의 사랑을 받는 분의 힘이군요.

   

   정말. 정말 저 분이 이 곳에 있어주셔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굳은 얼굴로 루시의 기도를 바라보던 프레테는 붉어진 눈시울을 손등으로 닦아내고는 다른 교인들이 그러하듯 눈을 감고 손을 끌어 모았다.

   

   *

   

   기도를 끝마치고 슬며시 눈을 뜬 나는 예술 교단 사람들의 분위기를 보고 다시금 눈꺼풀을 내렸다.

   

   거리에 무릎 꿇고 계신 분들은 왜 통곡을 하면서 기도를 올리고 계신 걸까?

   

   그리고 이 상황을 제어해줘야 할 교주랑 변태사도는 왜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거야?

   

   뭣보다 칼 저 허접견이랑 대머리 기사는 왜 내 옆으로 안 오고 멍하니 날 쳐다보고만 있는 건데!?

   

   너네 호위 일 안 해?!

   

   나 안 지켜?!

   

   아아악! 진짜!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난 그냥 목숨을 잃은 사람에게 애도를 바치고자 했을 뿐인데 왜 이런 분위기가 되어버린 거냔 말야!

   

   생각해보면 교회에서 막 빠져나왔을 때부터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어!

   

   문이 열리자마자 나한테 시선이 꽂히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왜 갑자기 다들 무릎을 꿇냐고!

   

   내가 무슨 왕이야?!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목을 날려버리는 폭군이야!?

   

   아니 그리고 왜 나한테 기도를 하는 건데! 너네가 모시는 사람은 까마귀 여신이잖아!

   

   나한테 기도를 올리면 그거 이단 숭배라고! 까마귀 여신의 질투가 무섭지도 않아!?

   

   으아앙! 숨막혀 뒤질 것 같아!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할아버지! 저 어떡해요!? 지금 분위기 너무 부담스러운데요!?’

   <괜찮다. 루시야. 그냥 입 다물고 있기만 하면 알아서 잘 해석해 줄 거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숨 막혀서 죽을 것 같단 말이에요! 맘 같아선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다고요!’

   <익숙해져라. 네가 주신의 사도인 이상 수도 없이 겪을 일이니. 음. 생각해보면 이거 네가 바라던 상황이지 않으냐? 보거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적의는커녕 경외를 네게 보내고 있잖냐.>

   ‘저는 칭찬을 듣고 싶은 거지 숭배를 받고 싶은 게 아니에요!’

   

   할아버지의 깐족거림에 화가 나서 소리를 내지르고 있으려니 띠링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뭔데! 허접주신!

   

   안 그래도 정신 없는 상황에 왜 너까지 끼어들고 난리야!

   

   일 다 끝나고 말 걸어도 되잖아!

   

   [정말 감사합니다. 주신의 사도시여. 덕분에 신도들이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

   

   [이것이 보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까마귀의 선심이라 생각하고 부디 받아주십시오.]

   

   아니. 네? 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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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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