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99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 사이.

     

   탁탁-

     

   펜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푸른색 특유의 머리카락.

   새하얀 백색의 눈동자.

     

   그의 이름은 크라슈 발하임.

   올해 스물다섯이라는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청년이었다.

     

   그를 부르기를 세계를 구한 영웅이자.

   세계 유일의 네 명의 강자.

   천상사황, 용황이라 일컫는다.

     

   세계는 대개척 시대.

   대개척 시대를 이끄는 이카루스의 총단장인 크라슈는 지금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뭘 그리 또 생각에 빠져 있더냐.”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들려온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푸른 바다색의 머리카락이었다.

     

   양쪽으로 땋아 묶어 올린 머리카락.

   크라슈와 동갑내기임에도 한참 어려 보이는 외모와 체구.

   더불어 입에 걸린 잔망 맞은 미소까지.

     

   예전에는 참으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이였으나.

   이제는 다른 의미로 그 속내까지 전부 알고 있는 이.

     

   3황녀 시즐리 에파니아였다.

     

   “……요즘 기척 지우는 연습이라도 하고 있어?”

     

   어느새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온 시즐리를 보며 크라슈가 질문하자 시즐리는 방긋 웃었다.

     

   “낭군의 침소에 몰래 들어가려고 최근 연습을 하고 있긴 하지. 다른 아내들한테 걸리면 워낙 말이 많으니 말이다.”

     

   시즐리가 허리를 펴며 우쭐거리듯 말하자 크라슈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세계에서 금역을 종식하고, 아벨라와의 격전에서 승리한 뒤.

   크라슈는 한동안 금역 전보다도 더 정신없는 삶을 보냈다.

     

   그리고 그 삶을 보내게 된 중심점에는 시즐리의 영향이 가장 컸다.

     

   세계 최고의 두뇌라고 불리는 그녀에게 크라슈는 사전에 고해놓았다.

   자신은 성검을 완전히 개안한 뒤, 지닌 힘을 모두 잃게 될 것이라고.

     

   실제로 크라슈는 자신의 주된 힘인 세계 침식의 힘과 아우라를 전부 소실하며 그릇이 텅 비어 버렸다.

     

   그나마 그릇으로서 온전히 남아 있는 것도 크림슨가든의 불사를 받은 덕분이지.

   그것도 아니었다면 필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즐리는 크라슈가 힘을 잃었다 해서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크라슈가 그동안 쌓아 올린 위상과 전적을 이용해 이카루스의 단장으로 끌어 올리고, 천상사강의 자리에 앉혀 놓았다.

     

   솔직하게 말해 크라슈 입장으로서는 힘을 전부 잃은 마당이니 천상사강이라는 자리고 뭐고 내팽개치고 싶은 기분이지만.

   세계 정치와 너무 연루되어 버린 만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 것의 가장 주된 이유는 눈앞에 그녀 탓이라고 볼 수 있었다.

     

   “왜 그리 보더냐. 낭군의 아내가 그리 예쁘더냐?”

     

   시즐리가 특유의 잔망 맞은 웃음을 방긋 짓자 크라슈는 가만히 보다가 따라 웃어줬다.

     

   “예전에 엉엉 울었던 녀석이 침소에 들어온다고 까불대길래. 조금 같잖아서.”

     

   그 말을 들은 순간 시즐리의 몸이 처음으로 움찔거렸다.

   시즐리는 눈을 데구루루 돌리더니 이내 곧 볼을 꾸욱 부풀렸다.

     

   “……그럼 어떡하느냐. 내 몸이 작은 만큼 안도 짧으니. 너무 깊숙이 닿는단 말이다.”

     

   시즐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배를 살며시 눌렀다.

     

   그 말대로 시즐리와 거사를 치른 그날.

   당시에 아주 대놓고 유혹이란 유혹은 다 하며 첫날밤까지 주도적으로 이끈 시즐리였지만.

   정작 시작하고 나서 시즐리는 한동안 크라슈의 품에 안긴 채 엉엉 울어야 했다.

     

   이는 크라슈로서도 난처한 일이었기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며 키스해 주는 둥.

   시즐리를 열심히 달래줘야만 했다.

     

   물론 그 뒤로 익숙해지고 나서는 결국 하룻밤을 꼬박 새며 보내긴 했지만.

   당시에 시즐리가 많이 고생하긴 했었다.

     

   그런 시즐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괜히 그날이 떠오른 크라슈가 헛기침을 삼켰다.

   그러자 이를 본 시즐리가 슬쩍 웃더니 크라슈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크라슈의 무릎을 앙증맞은 엉덩이를 대며 앉더니 그의 가슴팍에 뒷머리를 툭 기대었다.

     

   “원한다면 나는 지금도 침소로 가도 좋다마는?”

   “……안 돼. 오늘 네 차례 아니잖아.”

     

   크라슈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시즐리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예전에 비하면 참으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쪽-

     

   그 순간 크라슈는 자신의 볼에서 느껴진 부드러운 감촉에 시선을 돌렸다.

     

   “지금 내가 옆에 있는데 어떻게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더냐?”

     

   그러자 놀림 반, 은근한 질투 반이 섞인 시즐리가 거기에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쪽-

     

   “낭군한테.”

     

   쪽-

     

   “이쁨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쪽-

     

   “낭군도 나를 예뻐해 줘야 하지 않느냐.”

     

   볼 입맞춤이 멈추지를 않는다.

   끊임없는 시즐리식 유혹에 크라슈는 결국 두 손을 들고는 그녀를 당겨 안았다.

     

   “예뻐하고 있어.”

   “그럼,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더냐.”

   “3황녀 시즐리 에파니아.”

   “흐.”

     

   시즐리가 만족스레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머리 좋은 녀석이라 불리면서 이럴 때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녀였다.

     

   “그래서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했던 게냐.”

     

   드디어 본론으로 이야기가 돌아왔다.

   그녀의 말대로 크라슈는 시즐리가 오기 전까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에 관해 크라슈도 시즐리에게 말해보기로 하였다.

     

   “신계와 관련된 문제야.”

     

   크라슈는 최근 들어 마황, 그리고 크림슨가든과 함께 신계에 관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문제들이 최근 들어, 특히 크라슈의 머리를 골치 아프게 했다.

     

   묵시록의 4기사.

     

   최흉이 완전히 피어났을 때 나타나는 네 명의 기사들.

   크라슈는 어째서 최흉이 피어났을 때 그들이 나타나는지가 줄곧 의문이었다.

     

   크라슈가 그들의 존재를 처음 목격한 건 이전 회차에서였다.

   최흉에서 나타난 그들은 세계를 부수고, 결국 멸망으로 이끌었다.

     

   그들을 마주한 크라슈는 처음에는 묵시록의 4기사란 결국 세계 침식이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존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벨라와의 격전에서 크라슈가 신에 도달한 그날.

   크라슈는 신계 너머에서 묵시록의 4기사의 존재를 느꼈다.

     

   왜 그들이 거기에 있었는가.

   이 점은 크라슈에게 있어 줄곧 의문이었다.

     

   이는 혹여나 세계에 드리울 수 있는 다음 위험이다.

   그러니 이를 대처하고자 크라슈는 줄곧 신계에 관해 나름대로 줄곧 알아보고 있었다.

     

   “마황과 크림슨가든이 아벨라가 사용한 성위 마법에 관해 연구하며 진척을 이뤘다는 모양이야. 머지않은 시간 안에 신계와 접촉할 가능성이 높아.”

   “흐음, 기어코 성과를 거둬냈구나.”

     

   좋은 머리와는 별개로 마법과는 거리가 먼 시즐리다.

   그래서인지 이번 성과에 관해 굉장히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 그전에 신계에 관해 조금이라도 정보를 모으려고, 알아보는 중이었어.”

   “이쪽은 후보군을 뽑았겠고.”

     

   신계에 관해 계속해서 정보를 모으고 있던 크라슈긴 하지만.

   당장에 들이닥치는 일들이 워낙 바빴던 만큼 본격적으로 신계를 알아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 끝에 기어코 마황과 크림슨가든이 신계를 열 수 있는 성과를 거둔 만큼.

   이제는 언제까지고 뒤로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 그래서 일단 두 사람을 만나볼 생각이야.”

     

   크라슈가 뽑아낸 후보군.

   그 둘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해왕, 다이노 바르돈.

   그리고 세피라의 공주 세이랑 세피라다.

     

   다이노는 유일하게 자신이 계약한 신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이다.

     

   본래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의 사후에 재능을 받아 가기 위하여 스킬을 부여한 뒤 방치하는 것을 고려 하면 다이노는 굉장히 이례적인 존재였다.

   그러니 그를 통해 물의 신과 대화할 수 있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세이랑 쪽은 점성술사다.

   신계는 아벨라의 성위 마법을 통하여 성위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냈다.

   그녀의 점성술과 성위 마법을 함께 응용한다면 신계에 관해 보다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더불어 세이랑 쪽에는 한 가지 시기가 오고 있다.

     

   ‘본래대로라면 올해였지.’

     

   이는 다름아닌 본래 크라슈가 막아 주기로 약속한 세이랑의 죽음이다.

   크라슈가 익시온을 격퇴해 버린 만큼, 이제는 그녀의 목숨과 관련된 문제는 사실상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긴 하나.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다.

     

   이 시기에는 크라슈도 세이랑의 곁에 있을 생각이었다.

     

   물론 크라슈 본인이 지닌 힘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만큼.

   솔직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긴 했지만 말이다.

     

   “또 한동안 바빠지겠구나.”

   “나보다 더 바쁜 게 너 아니었느냐.”

     

   크라슈가 이카루스의 단장이라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이카루스는 물론 세계 정세를 암암리에 이끄는 인물이 바로 시즐리였다.

     

   그녀가 마음을 먹고, 세계 정세 전체에 손을 뻗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년.

   이러한 5년 안에 시즐리의 입김은 이제 세계 어느 곳이든 안 닿는 곳이 없었다.

     

   그렇기에 시즐리도 크라슈와 마찬가지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머리가 좋은 만큼 그녀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 탓이다.

     

   “다 낭군과 잘살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셈 아니더냐. 오히려 뿌듯하면 뿌듯했지, 바쁘다고 해서 앓는 소리 할 생각 없다.”

   “나로서는 이카루스 단장과 용황 자리는 전부 반납하고 싶은데.”

   “싫다. 그렇게 되면 다른 여자들이랑 매일같이 향락의 삶만 보내고 있을 것 아니더냐. 나는 낭군의 남은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게 무슨 망언인지.

   결국 크라슈가 다른 아내들과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싫으니 일 시키고 있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크라슈는 한숨을 내쉬며 시즐리의 어깨에 턱을 기대었다.

     

   “내가 애정 표현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말이야. 시즐리 네게 부족할 만큼 해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처음에는 시즐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조차 황당해한 크라슈였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크라슈도 시즐리에게 확실히 마음을 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뺏겼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크라슈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크라슈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그녀의 도움이 가장 컸던 만큼 이를 분명히 인지했다.

     

   게다가 특유의 잔망스러운 시즐리만의 어프로치는 크라슈마저 꾸준하게 흔들어 놓았다.

     

   세계를 지켜내고, 대개척 시대가 열리며 이카루스의 단장이 되고 난 뒤.

   이카루스의 단장식 날 시즐리는 크라슈의 앞에 당차게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낭군이 어떤 모습이든 필요 없는 세계 따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시즐리는 허리를 곧추세운 채 크라슈에게 환한 미소를 보였다.

   달빛 아래에서 달빛보다도 환하게 빛나는 시즐리의 미소는 확실히 황녀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름답다.

   크라슈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게다. 혹은 그렇게 만들 거니. 잘 알아 두거라.」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최고로 만들 거니까 알아둬.

     

   통보에 가까운 그 말을 듣고, 크라슈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신, 나도 무상으로 일하는 것은 조금 섭섭하니. 어떻느냐. 뽀뽀 정도는 해줘도 좋은데.」

     

   세계 연합 집단의 단장으로 올려놨으면서 원하는 건 뽀뽀 하나라.

   너무 수지 단가가 맞지 않은 것 같지만.

   저쪽이 그리 말하니.

     

   크라슈는 시즐리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턱을 잡아 올리며 입을 맞추었다.

     

   설마하니 크라슈가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시즐리의 눈은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커다랗게 변했다.

   이 모습을 자신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한테 조금 혼나게 되긴 하겠지만.

   이 황녀의 매력은 결국 크라슈마저 녹여 버리고 말았다.

     

   크라슈가 입술을 떼자, 얼굴이 풀어진 시즐리는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크라슈 쪽에서 직접 입술을 맞춰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만큼 시즐리의 동공은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몇 포인트냐.」

     

   시즐리가 종종 이야기했던 포인트를 묻자, 시즐리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크라슈의 옷깃을 꼼지락거리며 쥐었다.

     

   「……만점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만점이지 않은가 싶다.

     

   그렇게 크라슈는 시즐리와의 관계를 받아들였다.

   그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황제 쪽에서는 두 손을 들고 환영했다.

   크라슈의 장인어른은 참으로 한결같은 인간 군상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요즘 들어 유달리 시즐리의 질투가 강해진 기분이다.

     

   “내기했으니까.”

     

   그 순간 시즐리가 고개를 들어 크라슈의 볼을 손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크라슈의 귀에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는 듯이 속삭였다.

     

   “이번에 아이를 먼저 가지는 사람이 앞으로 다음 기간 가장 첫 번째 아내가 되는 게다. 황녀 된 사람으로서 첫 번째를 노리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

     

   이는 얼마 전 리리나를 통해 은근히 들었던 이야기였다.

   대체 자신이 없는 사이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여러모로 걱정되는 크라슈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계 편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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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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