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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아니, 뭘 들은 건지는 잘 알고 있다. 

       그냥 안 믿겨서 하는 소리다. 

       

       ‘방금 태어난 해츨링이 인간 말을 한다고…?’

       

       내가 충격 받은 표정을 하고 있자, 해츨링은 정신 차리라는 듯 통통한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나 데려…뀨우우….”

       

       다시 한번 데려가 달라고 말하려던 듯한 해츨링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제서야 녀석의 입을 제대로 관찰했다. 

       

       “말하는 게…. 입으로 말한 게 아니었구나?”

       “쀼!”

       

       쀼 소리를 내며 벌어진 입안에는 그다지 날카로워 보이지 않는 유치가 뽈록뽈록 튀어나와 있었다.

       

       아직 이빨도 제대로 다 안 난 데다가 머리 모양도 성체와는 큰 차이가 있었으니 제대로 된 발음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즉, 이 해츨링이 말한 건.

       

       “마나를 사용해서 말한 거야?”

       “쀼우!”

       

       해츨링이 내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드래곤들은 해츨링 때부터 원래 이렇게 똑똑한가?’

       

       상태창에 따르면 이 해츨링은 타고난 고유 특성인 이해, 습득, 응용을 이용해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듣고 자신의 뜻을 전달한 모양.

       마치 어린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발음 구현이 조금 서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처음 구현한 타 종족의 언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수준이었다.

       

       드래곤이라는 종족이 언뜻 파괴적이고 무식해 보이지만, 그래도 10서클의 마법을 쓸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문득 실감이 났다.

       

       ‘하지만 그건 몇백, 몇천 년을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니었어?’

       

       태어나자마자 낯선 언어를 듣고, 이해하고, 응용해 마나로 음성화까지 할 수 있다니.

       

       마법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엄청난 재능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쀼, 쀼우!”

       

       내가 가만히 해츨링을 바라보고 있자, 녀석은 마치 어서 데려가 달라는 듯, 나를 향해 짧뚱한 두 팔을 쭈욱 내밀었다.

       

       ‘계속해서 음성화를 쓰지 않는 걸 보면, 방금은 아무래도 좀 무리를 한 모양이네.’

       

       아무리 드래곤의 새끼라고 한들, 알에서 방금 깨어난 참이다.

       

       레벨 1짜리가 마나가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방금 했던 말들이 아마 자기 딴에는 가장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마나를 힘껏 끌어모아 한 걸 거다. 

       

       ‘근데 데려가 달라니…. 대체 왜 나한테?’

       

       왜 이 녀석이 처음 보는 인간에게 데려가 달라고 하는 건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 엄마 아빠 없…뀨우….”

       “알았어, 알았어.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자꾸 이상한 사람이 되잖아.”

       “쀼!”

       

       알았다는 나의 대답을 데려가 주겠다는 걸로 받아들였는지, 해츨링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쀼웃!”

       

       녀석의 동그란 눈이 초승달처럼 접혔다.

       해츨링은 기쁜 듯이 나를 향해 뻗은 팔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 아니. 알았다는 게 그런 뜻이….”

       

       나는 당황해서 물러나려다가, 또 울어버릴까 봐 그만두었다. 

       

       ‘후우…. 일단 기분이라도 좀 맞춰 주는 수밖에 없나.’

       

       나는 해츨링을 안아 드는 대신, 아까부터 나를 향해 쭈욱 뻗은 녀석의 팔이 민망하지 않도록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녀석을 안심시키기 위해 두 손을 맞잡아 주었다. 

       

       말랑.

       

       짧뚱한 팔 끝에 달린 조그마한 손, 그러니까 앞발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 아주 크게 자랄 거라는 걸 암시하듯 통통하고 두꺼운 손바닥에 엄지를 올리자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감촉은 또 왜 이렇게 부드러워.’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눈앞에 있는 이 해츨링은 상당히 귀여웠다.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배제하고 외형만 보면 말이다.

       

       이게 나중에 무럭무럭 커서 화면으로만 보던 흉포한 드래곤이 될 거라는 상상이 잘 되지 않을 정도다. 

       

       여기가 만약 「레키온 사가」 속 세상이 아니었다면, 내가 살던 대한민국이었다면 이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어 영상으로 올리는 순간 조회수가 폭발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비록 직접 키워 본 적은 없지만, 엄선한 강아지 채널 23개, 고양이 채널 47개를 구독 중이던 프로 랜선 집사인 내 안목이 보증한다.

       

       ‘하지만 이 녀석은 어쨌거나 드래곤이야.’

       

       이 게임의 최종 보스급인 종족의 새끼다.

       

       ‘아무리 그래도 귀여움보다는 목숨이 소중한 건 어쩔 수 없잖아.’

       

       잘못 관여했다가 목숨이 날아가거나 스토리가 나락으로 빠져 버릴 수도 있는 안건이다. 

       

       게다가 정말 이 해츨링을 데리고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문제다. 

       

       지금 내가 살던 마을은 통째로 불타 없어졌고, 미친 사이비 종교 집단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

       

       하무트교 녀석들이 마을에서 철수했다고 하더라도, 돌아갈 집 없는 상황에서 맨몸으로 시작해 아득바득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요컨대,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거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신생아를 책임지라고?

       

       그러고 싶은지 아닌지를 논하기 전에 가능한 일인지부터 의문이다.

       

       ‘…근데 진짜 귀엽긴 겁나 귀엽네.’

       

       생각에 잠긴 동안 나도 모르게 발바닥 가운데에 있는 좀 더 쫀득하고 부드러운 부분을 엄지로 만지고 있었다. 

       슬쩍 그 정체를 확인해 본 내 눈이 커졌다.

       

       ‘세상에. 드래곤 발바닥에도 젤리가 있네.’

       

       랜선 집사 생활을 하면서, 볼 때마다 한 번만 만져 보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던 핑크빛 살을, 무려 드래곤 레어에서 만져 보게 될 줄이야. 

       

       역시 인생 오래 살고 빙의하고 볼 일….

       

       “아차.”

       

       나는 꿈에서 깬 사람처럼 고개를 휘휘 저었다.

       

       “쀼우?”

       

       내가 발바닥을 만져 주자 좋아하며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던 해츨링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올라갔던 입꼬리를 내리고, 진지한 얼굴로 해츨링을 바라보았다.

       

       “후우.”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녀석에게 말했다. 

       

       “자, 얘야. 잘 들어. 이제부터 내가 몇 가지를 물어볼 건데, 꼭 인간 말로 대답해야 되는 거 아니면 무리하지 말고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어도 돼. 말로 하더라도 웬만하면 짧게 하고. 알아듣겠니?”

       “쀼우!”

       

       내 말에 해츨링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좋아.”

       

       나는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왜 나야? 그냥 네가 깨어날 때 내가 앞에 있었어서?”

       

       일부러 잘 모르겠으면 그냥 고개를 저으면 되도록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의외로 대답은 인간의 음성으로 돌아왔다. 

       

       “처음 보인 사람, 따라가랬어!”

       “누가?”

       “몰라! 목소리 들려써!”

       “흐음.”

       “쀼우.”

       

       나는 검지와 엄지로 턱을 괴었다.

       

       내 판타지 게임 짬밥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아무래도 알을 낳은 드래곤이 해츨링에게 암시 같은 걸 해 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태어나자마자 자신에게 엄마 아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설명이 돼.’

       

       이 해츨링의 어미 드래곤은 아마 모종의 사정이 있어, 알을 혼자 남겨 두고 어딘가로 떠나야 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삶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지.’

       

       드래곤이 장수한다고는 하나 영원히 사는 건 아니니까.

       늘그막에 낳은 알이 걱정되어서 정보를 담은 암시나 깨어났을 때 어떻게 하라는 암시를 알에 담아 두었다면 이 상황이 말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게임을 하며 은빛 드래곤의 존재를 몰랐던 것도 말이 되고.’

       

       다만.

       

       ‘아마 어미 드래곤도 그 해츨링을 발견하는 게 인간이 될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을 텐데 말이야.’

       

       방금 해츨링은 그 목소리가 처음 보인 ‘사람’을 따라가라고 했다고 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츨링이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걸 인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선택된 단어일 뿐.

       실제 ‘인간’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원래 어미 드래곤은 나중에 다른 드래곤이 와서 거두어 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드래곤들이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곤 해도, 은빛 드래곤과 그나마 사이가 가까운 드래곤이 있긴 있었을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내가 데려가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닐지도….

       

       ‘…근데 알이 저절로 부화할 때까지 아무도 안 왔는데, 무작정 기다린다고 과연 임자가 나타나긴 할까?’

       

       벌써 말 몇 마디 한다고 마나 모아 쓰고 조금 피곤해 하는 거 같은데.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남겨 두고 가면 이 녀석이 과연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으, 어렵다. 어려워.

       

       “쀼우?”

       

       이런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츨링은 내 손가락을 잡고 기분 좋은 듯이 조물거렸다.

       

       ‘…자꾸 이러면 이제 와서 두고 가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는데.’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름의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그래. 제대로 상황을 알려주고, 선택하게 하자.’

       

       그리고 입을 열었다. 

       

       “얘야. 아무래도 그 말을 남기신 건 네 부모님인 거 같거든. 근데 보다시피 난 아무 힘 없는 평범한 인간이고, 날 따라온다고 해도 잘 돌봐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단다.”

       “쀼우?”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 일단은 같이 여기서 나가자. 나랑 같이 가고 싶어?”

       “쀼!”

       “…….”

       

       애써 설명한 게 무색하게도 녀석이 망설임 없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다.

       

       “내가 네 부모님이 원하던 보호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야. 정말 괜찮겠어?”

       

       그 말에 해츨링은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래. 이제야 이해했구나. 역시 드래곤 새끼를 인간이 데려가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약간의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럼 난….”

       

       그리고 그때, 해츨링이 눈을 꼭 감으며 힘을 모아 외쳤다.

       

       “여기 오는 사람, 자격 있는 사람이래써!”

       “자격이 있다고…?”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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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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