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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암흑가의 지하에 있는 경매장, 슈바르츠.

         

       짐승을 가둘 때 사용하는 사육장과도 같은 철창으로 이루어진 감옥. 씻지 않아 생기는 악취와 음식의 썩은 내. 그리고 물 쉰내까지. 이러한 냄새들이 섞여 조화를 이룬다.

         

       그러한 곳에 나는 온몸을 구속당한 채 수감 되어 있다. 다섯 개의 구속구. 팔을 올려 들 수 없을 정도로 묶여 있는 바람에 코를 막을 수도 없다.

         

       방구석에서 게임 공략 뮤튜버나 하던 히키코모리가 갑자기 이런 상황에 놓이니 정신이 아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진 바렌베르크의 인격이 섞이고 플레이어의 능력을 계승 받아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 이상하리만큼 냉정하고, 침착했다.

         

       “조금 있다가 경매에 올라갈 예정이니 준비하고 있어라.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 지하 경매장에는 슈바르츠의 정예가 모여 있으니까.”

         

       간수는 그리 말하고 자리를 비웠다.

         

       슬쩍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많았다. 당연하게도 인종을 가리지 않았다. 엘프, 수인, 드워프. 등등.

         

       ‘어린 소녀도 있는 걸 보니 꽤 악취미를 가진 귀족들도 있나 보군.’

         

       병신 같은 게임답게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귀족들도 병신 같다. 뭐, 나는 노예 제도가 한참 전에 폐지된 시대의 사람이라서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지만.

         

       마음 같아선 그들을 구해주고 싶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없기에. 무엇보다 당장 나부터 신경 써야 했고.

         

       ‘예정대로라면 나는 프란체 데카르트에게 가겠지.’

         

       그런데 과연 정해진 미래대로 흘러갈까? 프란체 데카르트에게 간다면 익숙한 이들이기에 문제가 없다만, 혹시 모를 변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어쩌다 여기까지 들어왔쑤?”

         

       옆자리에 있던 한 중년이 물었다. 면도는 언제 한 건지도 모를 정도의 덥수룩한 수염과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을 가진 아저씨였다. 그의 머리에서 퀴퀴한 냄새까지 풍겨와 미간이 찌푸려졌다.

         

       “전쟁에서 졌으니까.”

         

       내 말을 들은 중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쟁이라 하면, 바렌베르크 출신이오?”

       “그렇다만.”

       “전쟁에서 져서 여기까지 오다니… 수뇌부나 귀족 나리 되시나?”

       “바렌베르크의 왕자였다.”

         

       중년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졌다.

         

       “허, 내 살다 살다 이런 곳에서 바렌베르크의 왕족을 다 보는군.”

         

       중년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살짝 꺾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당혹스러움이 대놓고 묻어난 걸 보니 어지간히도 놀라웠나 보다.

         

       “원래 운명이란 한 치 앞도 모르는 법이지. 나도 내가 이런 곳에 올 줄은 몰랐다.”

       “허허, 바렌베르크의 왕자님께서 체념하셨나 보군.”

       “이 상황에서 어찌 체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는 그대는 어쩌다 이곳에 들어오게 됐지?”

         

       중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허탈한 얼굴이었다.

         

       “도박에 빠지는 바람에 오게 됐소. 이럴 줄 알았으면 암흑가에서 돈은 빌리지 말걸 그랬소. 적당히 하고 빠졌으면 그저 빈털터리로 남았을 텐데. 뭐, 인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말이오.”

         

       중년은 그리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노예가 된 이유는 생각보다 더 한심한 이유였다. 돈을 빌릴 곳이 없어도 그렇지 암흑가에서 빌리다니. 도박이 이래서 무서운 겁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여기서 팔리게 된 다른 노예들은 보통 어떻게 쓰이지?”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만, 호기심은 참을 수 없는 법.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뭐, 아직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어린 엘프를 포함해 예쁜 수인, 인간은 높은 귀족 나리들의 성노예로 쓰일 것이고, 저 구석탱이에 처박힌 드워프들은 군수 공장에 들어가겠지. 가끔 좋은 주인을 만나, 전보다 쾌적한 삶을 살아가는 노예도 있지만 그건 드문 일이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이 병신 게임은 세계관마저 토악질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뭐,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게임들이 다 그렇긴 한데.

         

       ‘로맨스 판타지라면서 배경은 왜 이렇게 희망이 없어…….’

         

       사실 디렉터와 개발자들의 충돌이 생겨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닐까? 정통 판타지 소울라이크 장르를 만들고 싶었던 개발자와 미연시 로맨스를 보여주고 싶었던 디렉터…….

         

       ‘개씹똥좆망겜 수준.’

         

       중년과의 시덥잖은 대화도 잠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간수가 들어왔다.

         

       “나와라.”

         

       간수는 손에 들린 열쇠를 철창의 문에 꽂아 넣으며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내 목에 걸린 사슬을 끌어당겨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강제로 입에 재갈을 물리기까지. 기분 한 번 제대로 더럽네.

         

       “앞 잘 보고 걸어라. 넘어지기라도 하면 내가 귀찮아지니까.”

         

       오, 스윗하기도 하셔라. 상황만 이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여자 간수에게 이끌려 위층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빛이라 그런지 눈이 따가워 절로 감겼다.

         

       “눈 제대로 뜨라니까!”

         

       짜악! 간수의 손에 들린 짧은 채찍이 내 등을 강타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고통. 비명이라도 좀 지르고 싶은데 진 바렌베르크의 인격이 뒤섞여 옅은 신음만 나왔다.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계단을 올라갔다. 경매장의 단상으로 올라오니 가면을 쓴 귀족들이 좌석에 앉아 수군거렸다.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지금 나온 상품은 무려 이제는 멸망해버린 바렌베르크 왕국의 제1 왕자, 진 바렌베르크입니다!

         

       귀족들은 이미 내가 매물로 올라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입만 슬쩍 벌리고 감탄사 좀 내뱉었을 뿐.

         

       ―경매 시작가는 저희가 준비한 쇼를 보여드리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쇼? 그게 뭔 소리야?

         

       ―저희가 힘들게 준비한 마물들입니다!

         

       양쪽 끝에서 슈바르츠의 직원들이 커다란 철창을 끌고 등장했다. 그 철창 안에는 사나운 마물이 들어가 있었다. 어찌나 위협적인지 이빨로 철창을 깨부수고 나올 생각을 하고 있다.

         

       ―마물이 풀려나 위험할 수도 있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슈바르츠의 정예 간부들이 여러분들을 지켜드릴 테니까요!

         

       이런 얘기는 없었던 거 같은데.

         

       ―쇼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사가 다가와 내게 속삭였다.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정예 인원들이 쫙 깔려있고 노예 각인도 있으니까.”

         

       오늘 허튼짓하지 말라는 소리만 몇 번 듣는지 모르겠다. 잡혀 올 때부터 계속 들었던 거 같은데.

         

       철컹. 내 팔에 달린 다섯 개의 구속구가 풀렸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팔. 이리 움직여보고 저리 움직여보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자, 이거 받고 잘 해봐라. 경매 단가 올려야 하니까.”

         

       경매사가 내게 전해준 것은 검도, 창도 아니었다. 그냥 길게 늘어진 사슬 하나. 이걸로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그러나 불평불만 따위는 사치였다.

         

       쾅! 철창의 문이 열리며 마물들이 폭주한다. 철창을 끌고 왔던 직원들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슈바르츠의 전투 인원들이 단상의 곁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대기했다.

         

       크르르!

         

       사자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마수, 코어 라이언. 그리고 인간처럼 두족 보행을 하고 있지만 정작 생긴 건 악어인 엘리게이터맨.

         

       둘 다 로판소의 기본적인 마물들이었다.

         

       ―쇼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사가 호다닥 빠져나갔다. 마물한테서 도망치는 꼴이 좀 웃기긴 했다.

         

       마물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내게 다가온다. 모습을 보아하니 며칠은 굶은 듯하다.

         

       크아아!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마수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두근거림을 없앴다.

       

       “흡!”

         

       일단 높이 뛰었다. 달려오던 코어 라이언과 엘리게이터맨이 서로 충돌했다. 나는 내려오자마자 사슬로 코어 라이언의 목을 졸랐다. 크라락! 코어 라이언이 고통스러워하며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크르르!

       

       엘리게이터맨이 공격한다. 사슬을 움직여 코어 라이언이 대신 맞도록 유도했다. 엘리게이터맨에게 당한 코어 라이언이 상처가 난 상태로 몸부림을 친다. 이곳저곳에 피를 흩뿌렸다.

         

       차르륵! 사슬을 좀 더 조였다. 뿌득! 발버둥 치던 코어 라이언의 경추가 꺾이며 쓰러졌다. 시시한 전투. 이 정도 결과야 당연하지. 로판소의 가장 기본적인 마물이었으니.

       

       “후우!”

         

       열기가 가득한 숨결을 내뱉었다. 바로 사슬의 끝부분을 잡고 빙빙 돌렸다.

       

       엘리게이터맨이 침을 흘리며 달려든다. 사슬을 순간적으로 튕겨 놈의 미간을 강타했다. 빠악! 난데없이 사슬에 맞아 고개가 돌아간 엘리게이터맨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틈을 놓치지 않는다. 사슬을 다시 빙빙 돌렸다. 반동을 이용해 높이 올라간 사슬이 놈의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쾅! 육중한 소리가 나며 엘리게이터맨의 동공이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 두개골이 박살 난 것이다.

         

       이것으로 전투는 끝이 났다. 이런 마물들로 진 바렌베르크의 능력을 시험해보려면 무더기로 데려왔어야 했다. 겨우 두 마리를 가지고 시험을 하다니, 쯧

       

       싸움이 끝나고 흥분이 가라앉자 저놈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몹시 기분이 더러웠다.

         

       ―보셨습니까! 이게 바로 이제는 멸망해버린 바렌베르크 왕자가 가진 무력입니다! 강력한 노예 각인이 새겨져 있어 반항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경매사는 조심스레 단상에 올라오며 말을 이었다.

         

       ―보십시오! 얼굴도 반반하니 밤 시중에도 잘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밤 시중은 또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경매 시작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천만부터 시작입니다!

         

       게임의 돈 1천만 원, 한국에서 생각하는 가치로 환산하면 10억이라 보면 되겠다. 참고로 이 게임에서 평민 4인 가족 1년 생활비가 30만이다. 그런데 시작가부터 1천만이라니.

         

       아마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남에게 더럽혀지지 않은 엘프 종만이 나랑 비슷한 가격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저 좌석 위의 귀족들이 역겨워졌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응은 뜨거웠다.

         

       ―2천만!

       ―3천만!

       ―4천만!

       ―7천만!

       ―1억!

         

       어어. 가격이 점점 치솟는다. 나한테 붙은 가격표가 심상치가 않아. 이러면 좀 부담스러운데.

         

       신분이 전쟁에서 패배한 망국의 왕자인 것만 빼면 다 좋았겠다만.

         

       나는 익숙한 가면을 찾기 위해 눈알을 굴렸다. 원작의 그래픽에서 나왔던 그녀의 가면은 야시장에서 구매한 싸구려 토끼 가면. 왼쪽 귀가 접혀 있고 오른쪽 귀는 쫑긋 세워진, 그런 싸구려 가면이었다.

         

       열심히 고개까지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그 가면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 숨어있는 거야? 키가 작아서 안 보이는 건가?

         

       ‘설마 내용이 바뀌었다든지?’

         

       아니, 이러면 내 계획이 틀어지는데. 어차피 노예로 잡힌 거, 예정대로 프란체 데카르트의 휘하로 들어가 미래를 바꾸고 내가 최종 보스가 될 일도 없게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경매장에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니…….

         

       ‘이건 진짜 아닌데.’

         

       ―자, 1억! 더 없으십니까?!

         

       허어,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괜히 이상한 아줌마한테 걸려서 밤 시중드는 건 질색인데.

         

       ‘그럴 바엔 차라리 대들어서 죽고 말지.’

         

       최악보다 차악이 낫다고 했나. 밤 시중드는 것보다 사지로 내몰리는 전투 노예가 낫다. 무력도 보여줬겠다, 전투 노예로 들어간다면 괜찮은 취급을 받을 테니까.

         

       ―1억! 1억! 자, 5… 4… 3… 2… 1… 자, 더이상은 없는 것 같으니 입찰을…!

         

       입찰이 끝나간다. 푹푹 한숨을 내뱉었다. 1억 골드를 제시한 귀족의 모습을 보아하니 뚱뚱한 아줌마인데. 저 두꺼운 가면 뒤에는 탐욕스러운 미소가 숨겨져 있겠지.

         

       내가 체념한 그때.

         

       ―5억.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당돌하게 서 있는 한 여성이, 앞에서 나왔던 금액과는 차원이 다른 금액을 제시했다.

         

       게임에서 봤던, 익숙한 싸구려 토끼 가면.

         

       프란체 데카르트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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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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