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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아….”

        

        

        더운 날이었다.

        

        강원도의 더위와 추위를 1년 동안이나 견뎌온 복학생, 김현석마저도 플랫폼 바깥쪽에서부터 새어들어오는 서울의 여름을 온전히 견디기란 어려웠다.

        

        바깥 기온은 30도를 넘나들고, 가습기라도 틀어놓은 것마냥 피부는 끈적거린다.

        

        강원도의 그것이 따가운 햇빛 원툴이었다면 서울은 거기에 90%가 넘는 습도를 인심 좋게 끼얹어주었다.

        

        그는 딱히 자신의 생각에 필터링을 걸 생각은 없었다. 휴대폰을 들어올리는 것도 힘들 정도로 좋지 못한 날이었다.

        

        주변을 휙휙 둘러본 후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는 푸념하듯 내뱉었다.

        

        

        

       “날씨 지랄났네, 하….”

        

        

        

        전철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십여 분.

        

        지하철역 내의 편의점에라도 들어가있을까 했지만, 물건을 산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그 안에서 십 분씩 기다리고 있는 건 좀 그랬다.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는 말이야 얼마 전까지 그가 심심하면 듣던 말이었다.

        

        그러나 굳이 사회에 나와서까지 이런 날씨를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만 할까.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 되는 건,

        

        

        

       ──────────────

       [일반]날씨 좆박았네 ㅅㅂ

        

       [추천 0 비추천 0 조회수 53 댓글 7]

        

        

       (대충 아무 자짤)

        

       이딴 날씨에 학교로 짐가지러가는 내인생이 레전드다 시바…어디 더위 안타는 동물 없나 기우제 존내마려운데

        

        

        

       [전체 댓글][등록순]

       

       -이런날에 웨돌아다님????? 미쳣슴????

       ㄴ[작성자]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고애오

        

       -사막여우?

       ㄴ사막여우도 습도 높은 헬반도 앞에선 GG치지

       ㄴ보닌 친구중에 발현자 있는데 여름만 되면 맨날 뒤져감 ㅋㅋ 병신 호랑이색기

        

       -그냥 집가서 에어컨틀고 디비자라

        

       -ㄹㅇ 좆같이더움

       ──────────────

        

        

        

        나만 더운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휴대폰 화면 너머로 비치는 글.

        

        그 위로 하나둘씩 달리는 덧글을 보면서 그는 잠시나마 더운 날씨와 지루한 기다림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잠시나마 이목을 끈 사막여우라는 단어를 보며 그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만약 사막여우가 발현이 되면…그래도 덥겠다. 여우도 털이 없는 건 아니고.

        

        아무튼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니, 이는…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랬다.

        

        

        이 세상에는 아주 드문 확률로 동물의 특징을 가진 사람이 존재했다.

        

        이들은 정식으로는 에인션트Ancient라고 불렸으나, 사회에서는 발현자, 간단하게는 수인이라고 불렀다.

        

        뭐어, 그렇다고 해도 외형은 그냥 꼬리나 귀, 운이 좋으면 그 두 개가 같이 나타난 사람이지만. 힘 좀 많이 쎄고.

        

        

        

       “어으, 도저히 못 참겠다.”

        

        

        

        아무튼, 이 엿같은 더위를 조금이라도 참아보기 위해 잠시나마 발현자가 됐으면 했던 그였지만, 결국 어림도 없었다.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편의점 유리문을 가볍게 밀자 차랑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린다. 틈새에서부터 몰려드는 얼음장처럼 시원한 공기.

        

        지갑이 좀 가벼워질 예정이긴 했지만 뭐 어떤가, 시간을 돈으로 사는 세상이 된 지도 한참 되었는데. 음료수를 사서 잠시나마 편의점 안에 있는 권리를 얻는 거니까, 대충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차갑고 달콤한 음료수가 목을 넘어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금 몸이라는 엔진이 움직이는 감각을 느끼며 그는 재차 휴대폰을 들어올린다.

        

        

        

       <보닌 개꼴리는 백호눈나한테 꼬리로 찌찌 간지럽혀지는 게 꿈이다>

        

       <오늘자 호떡…3대 1050 돌파….jpg>

        

       <솔직히 머리카락에 무늬만 있는 애들은 일반인이랑 뭐가 다르냐?>

        

       <씨1발 발현자가 퍼리랑 똑같다고 생각하는 애들은 제정신임?>

        

        

        

        오늘도 개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맨날 보던 떡밥들이었다.

        

        이미 발현자 갤러리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을 상주한 그는 숙련된 갤창이었고, 하나의 떡밥이 끝난 후 다음으로 뭐가 이어질지도 예상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 중 눈에 띄는 글을 하나 클릭해 들어갔다.

        

        

        

       ──────────────

       [일반]아니시발 왜 자꾸 골격변형을 쳐하려고해 병신들아

        

       [추천 73 비추천 11 조회수 1153 댓글 53]

        

        

       액세서리 이상을 넘어가면 당연히 좆같지 병신들아

        

       까놓고 머리색 귀 꼬리 송곳니 뿔 눈동자모양 이상은 씹뇌절임

        

       그 이상은 제발 퍼리갤로 꺼져 ㅅㅂ 이세상에 몸에 털나고 얼굴까지 달라진 발현자가 한 명도 없는데 자꾸 묻어갈라하노 대가리 깨버리고싶게

        

        

        

       [전체 댓글][등록순]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고 기승전결이 완벽한 글이다…ㄱㅆㅅㅌㅊ….

       ㄴ응아니야병신들아~~

       ㄴ퍼리충검거

        

       -비추박는 새기들 싹다 메모했다 ㅋㅋ 개꿀

        

       -ㄹㅇ 이새끼들은 자기가 왜 욕먹는지를 모름 ㅋㅋ 저런 요소들 있어도 외관상 사람같은 거랑 퍼리랑은 아예 근본부터 다른데 아득바득 쳐우겨대고 지랄

        

       -그러면 파충류 발현자는 뇌절임?

       ㄴ[작성자]면상이 그렇게 생겼으면 뇌절이고 혀랑 송곳니 눈동자 꼬리 정도면 십가능

       ㄴ[작성자]근데 그쪽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슴ㅎㅎ;;ㅈㅅ;;ㅋㅋ!

       ㄴ가능?

       ㄴ[작성자]예쁘게 생겼으면 당빠가능이죠ㅆㅂ

       ㄴ파충류수인 사진으로 봤는데 비늘같은거 난 사람 한명도 없더라 그냥 우리랑 비슷하게 생김

       .

       .

       .

       .

       ──────────────

        

        

        

        

       “어휴.”

        

        

        

        휴대폰 화면은 자연스럽게 검어졌다.

        

        그야말로 투기장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안타깝다면 안타깝게도 이곳은 원래 이런 곳이었다.

        

        허구한 날 별의별 이유로 싸우고, 그나마 싸움이 좀 없다 싶으면 인터넷 상에서 유명한 발현자들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뭐 그런.

        

        그렇기에 그 역시도 그리 오랜 시간을 화면 너머의 사이버-세상에 머물러있지 않았기도 하고.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른 궁금증이 머릿속을 살살 간지럽히고 있었다.

        

        

        

       “뱀이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능성.

        

        잠깐 머리를 굴려 상상을 해보았지만 그렇게 마땅한 이미지가 도출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쪽 관련 인원들은 갤러리 내에서도 잘 다뤄지지 않는 편이었고, 결정적으로 한국에는 호랑이 관련 발현자들밖에 없었다.

        

        모르겠다.

        

        

        작게 숨을 쉬며 조심스럽게 편의점의 밖으로 나섰다. 어느새 시간이 꽤 흘러간 탓이었다.

        

        플랫폼은 여전히 더웠지만 아까보다는 참을 만했다.

        

        그렇게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전철을 눈으로 담으며 스크린도어가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을까,

        

        

        

       “어?”

        

        

        

        자연스럽게, 그러나 시선을 통째로 강탈하는 한 명의 인원이 있었다.

        

        한 명의 여성이 그와 교차하였다.

        

        누가 보아도 생기 있게 탱글거리는 피부는 백색이었지만 창백한 편까지는 아니었다.

        

        푸른색이 옅게 감도는 길고 검은 생머리는 피부와 자연스럽게 대조를 이루었으나, 둘 다 생기가 넘친다는 점에선 동일했다.

        

        그러나 옆머리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귀는 확실히 이질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빠르게 그의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사이 시선이 마주쳤다. 김현석은 그에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껴야만 했다.

        

        사파이어를 깎아 그대로 박은 듯한 푸른 시선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와….”

        

        

        

        엉덩이 부분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뻗어 나온 길다란 뱀의 꼬리가 여러 번 굽이치며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에 자신의 옷주머니 안에 꼬리를 집어넣고, 휴대폰을 자연스럽게 꺼내던 그녀가 작게 입을 열었다.

        

        

        

       “무슨 용무 있나요?”

        

       “안, 아니, 아니에요.”

        

        

        

        보이시함과 여성스러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생각보다는 낮은 목소리. 그러나 그렇기에 부드럽게 귀를 파고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학생, 탈 거면 빨리 타!”

        

       “아!”

        

        

        

        어우.

        

        저쪽에 시선이 팔려버린 탓에 하마터면 기껏 온 지하철마저 타지 못할 뻔했다.

        

        후다닥 탑승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 외의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김현석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는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녀가 내렸던 입구에서 재차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왠지는 몰라도, 군대에서나 맡을 수 있었던 화약 냄새와 세정유, 윤활유의 냄새가 공기 중에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부스럭부스럭.

        

        적당한 곳에 앉아 토스트를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계란과 잘게 썬 양배추, 햄, 달콤한 소스, 빵 등이 입 안에서 하나로 으깨지며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손가락을 타고 느껴지는 온기와 바삭한 감촉.

        

        아까 출발하기 전 다섯 개를 먹고, 돌아와서 또 먹었음에도 내 배는 여전히 밥 좀 더 달라며 내게 보채고 있었다.

        

        

        장비를 너무 오래 손질해서 그런지 몸에서는 여전히 세정유와 윤활유 냄새가 났다.

        

        손은 비누로 세 번씩 닦았지만 안타깝게도 안전가옥 내에 샤워실은 없었다.

        

        어디 보자, 대략 세네 시간 정도 있었나?

        

        

        

       “음.”

        

        

        

        이거 맛있네.

         

        안타깝게도 몇 번 베어물자 토스트는 금방 동이 났다.

        

        같이 준 티슈로 입가를 슥슥 닦고 텅 빈 포장지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와중 토스트로도 가리기 어려운 매캐한 냄새가 옷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있다. 갈아입는 정도로 냄새가 빠지면 좋을 텐데.

        

        

        그래도 옷에 냄새가 배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생각을 하기엔, 이미 나는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었다.

        

        거의 완전히 분해하다시피 한 기관총과 반자동 저격소총의 내부가 그야말로 새카만 상태였을 때부터 이렇게 될 것 같기도 했고.

        

        .338을 무지성으로 갈기다 보면 원래 그렇게 되지만.

        

        

        사실 오래간만에 건클리닝을 해서 그런 감도 없잖아 있긴 하다.

        

        앞으로 다시는 사격 기회가 없을 테니 총기 액세서리까지 말끔하게 닦아준 것도 있고,

        

        택티컬 베스트 등 돌가루가 많이 묻은 것도 에어브러시로 구석구석 털어주니 시간이 벌써 오후 세 시가 되었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 아직은 낯선 모습들이 나를 반겼다.

        

        내 기억 속에는 없는 여러 아파트들과 상가가 그 위세를 과시하듯 드높이 서있다. 대부분 외벽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었다.

        

        유리창은 깨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건물 내부에서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사격이 가능해서…아니, 이게 아닌가.

        

        좋은 기억은 아니네.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이란 하나같이 다 그 모양이다.

        

        

        그다지 좋지 않은 과거를 상기하며, 하늘 높이 떠있는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면서 집을 향해 걸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오늘이 습도가 높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태양빛은 너무 따가운 것 아닌가?

        

        앞으로는 팔토시 같은 거라도 껴야 하나.

        

        

        

       “날씨 좋네.”

        

        

        

        그래도 여름이라 다행이다. 겨울이었으면 많이 힘들 뻔했네. 소화도 잘 안 되고 막….

        

        겨울이 되면 난방비가 많이 나올 것 같다.

        

        아무튼 도대체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다시 돌아온 사회로의 적응은 상당히 빨랐다.

        

        쓰레기와 시체, 눈, 진흙…아니면 그 것들이 어중간하게 뒤섞인 덩어리가 널브러진 더러운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었을 땐 방아쇠울 옆에 손가락을 올려두는 것이 곧 휴식이었다.

        

        잡생각을 하다가 머리에 날 뻔한 구멍만도 수백 개가 넘었으니까.

        

        길을 걸으면서 오늘 아침 겸 점심으로 뭘 먹을까를 생각할 수 있다는 건 꽤나 큰 사치였다.

        

        

        

        조금 걷다 보니 어느덧 상가 건너편 –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

        

        

        

       [진짜 호랑이가 굽는 피자집]

        

        

        

        …저건 또 뭐야?

        

        저런 게 있었나?

        

        까놓고 근 며칠 동안은 집 안에서만 머물어서 그런지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지만, 여하간 나의 궁금증을 충실하게 자극하는 가게 이름이었다.

        

        가게 앞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간단하게 피자나 몇 판 포장해갈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건물의 한 층을 통째로 쓴 레스토랑이었다. 

        

        …불이 꺼져있는 건가?

        

        

        

       “아, 브레이크타임….”

        

        

        

        이런 것도 있었구나.

        

        그러면 저기 줄을 서있는 사람들은 장사가 재개되는 대로 들어가려는 건가? 사람이 꽤 많네.

        

        여기는 팁을 얼마나 주면 되려나…가 아니라, 여기도 팁 문화가 있나?

        

        

        사실 뉴욕에 있었을 때도 레스토랑을 가본 적은 거의 손에 꼽아서 그런지…애초에 음식점에 마지막으로 간 것도 기억이 안 나는 판에.

        

        허나 내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사이에도, 음식점과의 거리는 착실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호기심이 문제야.

        

        

        

        

        아무튼, 그렇게 나의 복귀 후 첫 동네탐방이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2.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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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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