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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그, 올리비아님.]

       “왜.”

        [납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

       […….]

       

       글레이시아는 황당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간다고?’

       

        아무리 세상 물정 어두운 드래곤이라도 납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알았다.

       

        은밀하게, 몰래 하는 게 납치 아닌가?

       

        다른 건 몰라도 대낮에, 그것도 드래곤 등에 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글레이시아는 더 묻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올리비아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걸 온몸으로(?) 체득한 결과였다.

       

        ‘생긴 건 무슨 귀족처럼 생겼으면서, 성격은 레드 드래곤보다 더하네.’

       

       솔직히 올리비아의 외형은 드래곤의 눈으로 보기에도 썩 괜찮았다. 은색 머리칼과 도도한 눈매는 자연스럽게 냉미녀 분위기를 연출했다.

       

        풍기는 마나도 인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정순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악마도 손사래칠 싸이코가 숨겨져 있다고 하면 과연 누가 믿을까.

       

        ‘완전 마녀야, 마녀.’

       

        글레이시아는 마음속으로 말을 삼켰다. 사실 마법사를 마녀라고 부르는 건 엄청난 실례다. 드래곤을 도마뱀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뒷담으로 마음을 달래던 글레이시아의 귓가에 짜증 난 듯한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더 부드럽게는 못 나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쯧. 안장이라도 구해야 하나.”

       […….]

       

        글레이시아의 눈이 흔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안장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한테 ‘나는 인간한테 따먹혔소.’라고 자랑하고 다닐 것도 아니고 말이다.

       

        [호, 혹시 어떤게 불편하신지요?]

        “비늘이 너무 딱딱해. 이거 몇 개 잘라 내도 되냐? 어차피 다시 나잖아.”

       […….]

        “싫으면 안장 채우고.”

       

        악마보다 더 한 새끼.

       

        결국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살살……부탁드립니다.]

       

        글레이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망할, 망할, 망할, 망할! 독립하지 말걸! 엄마 말 들을 걸!’

       

        드래곤은 부모의 레어에서 독립하는 순간 별개의 개체로 구별된다. 카르시안도 ‘성인까지 키워놨으니 알아서 잘 살아라.’ 라고 말하고는 글레이시아를 내보내버렸다.

       

        그때는 좋았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구가할 수 있었으니까.

       

        이런 악마를 만날 줄 알았더라면 백 년이고 독립을 미뤘을 것이다.

       

        ‘미안해요 엄마. 이번 생은 틀렸어요.’

       

        글레이시아는 눈을 질끈 감고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애써 무시했다.

       

        똑!

       

        비참했다.

       

        뚝!

       

        이건 아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자기 처지가 비참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흐어어어엉.]

        “그만 울어. 비늘이 워낙 커서 네 개밖에 안 뗐으니까.”

       

        올리비아는 마법으로 비늘을 떼어낸 비늘을 주섬주섬 쑤셔 넣었다.

       

        “이제야 좀 부드럽네.”

       

        그 말에 글레이시아의 몸이 감격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이딴 놈이 마법사라고?

        이딴 게?

       

        아무래도 몇 년 사이에 마법사의 정의가 뒤바뀐게 틀림없었다.

       

        “탑 근처에 도착하면 깨워라.”

       

        올리비아가 부드러운 맨살 위로 누웠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마탑. 

       

        뜻이 맞는 마법사들이 한데 모여, 학문을 탐구하는 지식의 보고. 

       

        적색 마탑은 불을, 청색 마탑은 물을, 녹색 마탑은 바람을, 흑색 마탑은 대지를, 금색 마탑은 시공간을 탐구했다. 

       

        그렇게 5대 마탑이 생겨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5개의 마탑은 모든 원소를 다루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빛, 얼음, 뇌전, 어둠……. 

       

        그렇게 몇 개의 마탑이 더 생겨났다.

       

        그 중 백색 마탑은 빛을 탐구했다. 

       

        빛, 통칭 백마법.

       

        판타지에서 빛 하면 보통 뭐가 생각나나? 

       

        신을 믿는 고결한 사제, 어둠을 밝히는 대마도사, 희망…….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백색 마탑에 몸 담은 마법사들은 독실한 빛의 신자거나, 천성이 순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착해 빠졌다는 소리다. 

       

        더럽게 높은 산꼭대기에 마탑을 세운 이유도, 대설산에 사는 마수들이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라고 하니 그 인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 맞다. 

       

        인성 점수를 높게 쳐줬다.

       

       기왕 납치할 거면,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도 예의 바를 놈으로 납치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납치할 리스트도 깔끔하게 정리해 뒀다.

       

        솔직히 처음에는 납치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십 몇 년은 숨어 살아야 하는 만큼 위치를 드러내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었으니까.

       

        ‘근데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

       

        시작의 도시에서 눈을 떴다면 모를까, 북부 대설산에서 눈을 떠버렸으니, 초반부터 대차게 꼬여 버렸다.

       

        ‘황녀라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겠지. 어쩌면 나도 회귀했다고 의심할 수 있어.’

       

       시작의 도시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상대가 회귀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과, 염두에 두는 것은 그 경계의 정도부터 비교할 수 없다.

       

        미래에 주요 인사가 될 인물들에 대한 접촉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측근들에게는 몽타주를 돌려 요주 인물이라고 주의에 주의를 주었을 것이다.

       

        조금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황녀다.

       

        ‘그러니까 네가 시작한 거야. 황녀. 나도 납치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미래의 주연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그 화살을 조연들에게 돌리는 건 당연한 이치.

       

        스스로 납치에 대한 합리화하던 올리비아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도착했냐?”

       [예.]

        “계속 제자리에서 날고 있어 봐. 확인할 게 있으니까.”

       

        거대한 결계가 마탑을 둘러싸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손을 뻗어 결계에 가져다 댔다. 다음 순간 전류가 번쩍이며 올리비아의 손을 밀쳐 냈다.

       

        ‘따갑네.’

       

        올리비아는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강한 결계는 아니다. 최고위 마법까지 갈 것도 없이, 글레이시아에게 사용했던 블리자드 선에서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블리자드를 사용할 수는 없다.

       

       결계만 파괴하고 끝나면 몰라도, 저 중에 한 명이 죽기라도 한다면 낭패다.

       

        “계속 돌아봐.”

       [네?]

        “쟤들이 열어줄 때까지 계속 주변 빙글빙글 돌라고.”

       

        글레이시아는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혼미백산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하긴, 저게 드래곤을 대면한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이다.

       

        근데 드래곤을 벌레 보듯 하는 인간한테 잘못 걸려서 이 꼴이 났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저놈들이 순순히 열어 주겠습니까?]

        “쟤들한텐 나 안 보여. 너만 보이지.”

       

        대설산에서 조용히 살던 드래곤이, 갑자기 마탑으로 찾아온 상황이다.

       

        하지만 아무런 공격도 않고, 결계 바깥에서 조용히 날갯짓만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드래곤씩이나 되는 존재가 결계를 부수지 못해서 저러고 있는 건 아닐 것 아닌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결계를 해제하고 글레이시아를 안으로 들일 것이다.

       

        잠시 후, 결계가 사라지며 들어갈 길이 열렸다.

       

        “천천히 착지해. 엉덩이 쑤시면 알지?”

       

       글레이시아는 구태여 지금이 최선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해 봐야 득 될 것도 없었다.

       

       사뿐.

       

       ‘……됐나?’

       

       글레이시아는 초조한 얼굴로 올리비아의 평가를 기다렸다. 드워프들이 레어로 재물을 상납하러 올 때마다 왜 그리 불안에 떠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막상 이런 상황에 부닥치자 납득이 됐다.

       

       ‘이런 기분이구나.’

       

       당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아주 못할 짓이다. 상대방이 생살여탈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별말없이 넘어가자 글레이시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기다려. 마탑주 나올 때까지.”

       

       

       *****

       

       

       백색 마탑에 비상이 걸렸다. 원체 조용했던 원로 마법사들도 드래곤 앞에서는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드래곤이…….”

       

       원로 마법사들도 그럴진대, 평법사들의 상태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으아아아악!”

       “다, 다 죽어버릴 거야!”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책상 밑으로 숨어들어가 덜덜 떠는 이들, 정신이 나간 듯 이빨을 딱딱거리는 이들.

       

       나름 진리를 탐구한다는 이들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드래곤에게는 격이 낮은 존재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래도 이건 정도가 심하군요.”

       

       수석 마법사 아라미스는 그런 그들을 한심하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너무 그러지 마라. 아라미스. 그들도 저러고 싶어서 저러는 건 아닐 테니. 여력이 있어 보이니 어서 부상자를 수습해다오.”

       “……예, 장로님.”

       

       백탑에 몸 담은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약자들을 도우라는 가르침만큼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아라미스 님.”

       “방해되니 뒤로 빠져 있어라.”

       

       이들을 도와서 도대체 무얼 얻는단 말인가?

       

       하물며 이들은 마법사들이다.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한 치에 물러섬도 없어야 하는 이들이, 고작 용 한 마리에 쩔쩔매면 어쩌겠다는 말인가?

       

       이런 이들도 품고 가려는 탑주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방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드래곤이 등장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소란이었다.

       

       “타, 탑주님이시다.”

       

       아라미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갔다. 인자한 얼굴의 노인이 인파를 뚫고 바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빛을 상징하는 순백색 로브. 현기로 가득한 얼굴.

       

       하지만 아라미스는 인자한 얼굴 속에 숨겨진 미약한 분노를 읽어냈다.

       

       실제로 백탑주는 분노하고 있었다.

       

       “3장로. 저 드래곤이 누군지는 알아냈소?”

       “예. 문헌에 따르면, 화이트 드래곤 글레이시아라고 합니다.”

       “허어……천 년도 살지 못한 어린 드래곤으로 알고 있소만.”

       “맞습니다.”

       “허허허…….”

       

       드래곤이 현신한 상태로 등장하는 때는 딱 두 가지 뿐이다.

       

       인간에게 분노했을 때, 그리고 레어에 재물을 채우고 싶을 때.

       

       백탑의 마법사들이 자신의 명을 어기고 드래곤의 분노를 살 짓을 했을 리는 없다.

       

       애초에 레어가 있는 산맥의 출입을 통제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분노를 산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답은 하나.

       

       재물을 뜯어내러 왔다.

       

       백탑주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이 꿈틀거렸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어떻게 하긴. 위대한 존재께서 원하는 재물이 있으시다면 내어 드려야지.”

       “하지만……!”

       “재물이라면 말이네.”

       

       백탑주의 말 뜻을 이해한 장로들이 입을 다물었다.

       

       드래곤은 레어를 황금으로만 채우지 않는다. 귀금속, 예술 작품, 특별한 사연이 있는 유물 같은 것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한다.

       

       드래곤에 대적할 바엔, 그런 재물을 건네주고 평화롭게 넘어가는 게 나았다.

       

       하지만 가끔씩, 재물 이외의 것을 요구할 때가 있었다. 

       

       드워프와 마법사가 그것이었다.

       

       드워프는 차라리 양호한 편이다. 죽을 때까지 드래곤을 위한 세공품을 만들어야 하지만, 적어도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일은 없다.

       

       하지만 마법사는 다르다. 레어에 끌려간 마법사들은 정신과 육체가 망가질 때까지 드래곤의 실험체로 쓰이다가 죽는다.

       

       말이 실험이지, 실상은 놀이와 별다르지 않았다.

       

       백탑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린 마법사들이다. 학문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이 외진 백탑까지 와서 수학하는 이들이다.

       

       이런 후학들을, 드래곤이 내어달라고 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절대로 안된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백탑주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문을 열어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7.20 수정했습니다

    빙의당한 설움을 빙닭한테 푸는 올리비아를 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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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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