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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그럼 단 걸 사드릴 게요!”

       “알겠습니다. 근데 기다려주겠어요? 물어볼 게 많습니다.”

       

       가방 안에 있던 교재를 보이며 말했더니 엔리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제가 알려드릴게요. 저 한국어 잘하거든요.”

       

       그래 보이기는 한다만. 무언가를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텐데.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호의를 거절해서야 상대의 면이 서지 않으니.

       

       그리고 혹여 엔리의 교육 실력이 뛰어나다면 다음에도 도움을 청할 수 있을 터. 한 번쯤 도움을 받아보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

       

       엔리 스콧은 활발하고 수다스러운 여성이었다.

       

       내가 물어본 것을 알려주다 다른 갈래의 이야기를 꺼내더니 어느새 한국에 왔을 적 곤란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있을 정도로.

       

       지루하진 않았다. 그녀는 이야기꾼의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었으니까. 어디 시골 마을에 간다면 아이들은 물론이요 어지간한 어른들까지도 그녀의 이야기에 매달릴 테지.

       

       거기다 말만 많았을 뿐 엔리의 강의는 알아듣기 쉬웠다.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와 그녀의 1:1 강의여서 그런가 그녀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여러 설명을 들어가며 납득시켜 줬다.

       

       “우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궁금증을 모두 다 해결했을 무렵엔 해가 져가고 있었다.

       

       무림에서라면 이미 잠에 들었어야 할 시간이지만 현대는 다르다.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오르며 하루의 휴식을 만끽할 시간이지.

       

       오늘이 금요일이란 걸 생각해보면 휴식보다는 광란을 즐기러 갈 시간이려나.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잘됐네요.”

       

       머리가 아프긴 하다만 어떻게든 오늘 배운 내용까지는 이해를 했다.

       

       확신도 하나 생겼다. 앞으로도 엔리에게 물어 볼 것이 많을 거라는 것.

       

       엔리가 천천히 시간을 들여가며 설명을 해주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난 며칠이 지나서도 오늘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내 한국어 공부를 위해서라도 엔리와의 인연은 필요했다. 호의로 시작된 관계여서 다행이군. 이어나가기도 편할 터이니.

       

       “솔직히 감사한 걸로 따지자면 제가 더 고맙죠. 저를 구해주셨으니까요.”

       

       엔리는 터렛이라는 곳에서 방송을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방송을 키면 수천 명의 사람이 본다고 했으니 엔리는 경이로운 재능을 가진 이야기꾼이었다.

       

       그녀를 봐주는 시청자들은 대개 좋은 사람이지만 모두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이 다섯 모이면 하나의 쓰레기가 있듯. 수천 명의 사람이 모이니 정신병자가 뒤섞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 스토커였어요.”

       

       서국의 남자는 엔리가 어딜 가든 간에 집요하게 따라 붙었다. 집 앞에 편지를 남긴다거나. 벨을 누르고 도망친다거나. 외출을 하면 뒤따라 붙는다거나.

       

       결국 경찰에 신고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 덕분인지 그 날 이후로 요 몇 달 간은 그 남자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단다. 근데 대체 어디서 그녀가 어학당에 다닐 거란 이야길 들은 건지. 아니면 우연히 등록을 한 건지. 같은 어학당에서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처음 엔리는 그 남자를 무시하려 했으나 남자는 그녀를 가만 두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녀와 말을 섞어 보려고 발악을 했다. 며칠 정도는 이를 악물고 견뎠지만 엔리도 사람이었다. 한계는 찾아오기 마련이었고 내가 보게 된 엔리와 남성의 다툼은 엔리가 폭발한 결과물이었다.

       

       “아라 씨가 아니었다면 일이 커졌을 걸요. 주먹을 팍!하고 막아주실 때 정말 멋졌어요. 게임에 나오는 천마 같았다니까요.”

       

       손짓을 더해가며 이어지던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한 단어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천마.

       

       내 관심을 눈치 챈 걸까. 엔리가 자연스레 화제를 그쪽으로 돌렸다.

       

       “천마. 아세요?”

       “압니다. 근데 엔리가 아는 건. 내가 아는 거랑 다릅니다.”

       

       나에게 천마란 세상이 나에게 붙인 호칭이었다.

       

       바란 적도 없고. 얻고자 한 적도 없는 호칭.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나의 족쇄.

       

       하지만 엔리가 이야기하는 건 다른 내용일 터. 그녀는 내가 천마라 불렸다는 걸 모를 테니까.

       

       “그런가요? 제가 아는 건 아피스라는 게임에 나오는 천마에요. 아라 씨. 아피스 아세요?”

       “모릅니다.”

       “이게 말이죠. VR게임 시장을 몇 년 동안 제패한 게임인데. 어어엄청 재밌거든요!”

       

       잘은 모르겠으나 엔리가 아피스라는 게임을 좋아한다는 건 분명했다.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의 눈동자에 흥분이 새겨졌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개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전 격투 게임이니. 판타지 UFC니 뭐니. 그건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외계의 언어나 다름없었다.

       

       내 관심이 떨어지는 걸 느낀 건지 엔리가 스마트 폰을 꺼냈다.

       

       “영상으로 한 번 보시겠어요? VR게임을 해보신 적 없는 거 같으니까. 보면 흥미가 생기실 거에요.”

       

       영상은 게임이라기보단 영화 속 한 장면을 옮겨 놓은 것과도 같았다. 가히 현실과 비견될 정도의 생생함. 내가 기억하는 게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영상 속 주인공은 자신만큼이나 거대한 대검을 든 검수와 마교의 옷을 입은 단발머리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무위를 보이며 서로를 죽이기 위한 살수를 뻗고 있었다.

       

       그 중에 여성 쪽. 마교의 옷을 입은 이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분명했다. 머리카락이 좀 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겔 제외하면 모든 것이 똑같았다. 착각 일 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상 속에 나오는 여성은 분명 아직 젊었을 무렵의. 증오를 가진 채 무림을 떠돌아다니던. 어리석었던 시절의 나였으니까.

       

       지금에서야 여러 일을 거치며 성격이 유해졌다만 한창 시절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거슬린다는 이유로 피를 보길 주저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엔리가 보여준 영상 속의 나는 그 때의 나와 닮아 있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건 하건. 잔악하고도 무도한. 세상이 생각하는 천마의 모습과 한없이 닮아있던 나.

       

       “이 게임. 이름이 뭐라고요?”

       “흥미 생기셨나요?! 아피스에요. 아피스.”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게임에 나와 비슷한 캐릭터가 있는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확인해 볼 가치는 있었다.

       

       “어떻게 합니까?”

       “집에 VR기기가 있으시다면 설치만 하면 돼요.”

       “VR기기?”

       “VR해본 적 없으세요?”

       “네.”

       

       엔리는 별종이라도 쳐다보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리 신기한 일인 걸까.

       

       “집에 컴퓨터는 있으시죠?”

       “그렇습니다.”

       “성능은… 모르실 테고.”

       

       당연한 소리를. 나는 컴퓨터를 인터넷과 마이 튜브 영상을 보는 용도 이외로 쓴 적이 없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 지 알 리가 있나.

       

       “컴퓨터 성능만 괜찮다면 아피스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진 않을 거에요. 요즘에 보급형 VR기기가 워낙에 잘 나오거든요.”

       

       여기서 말로 하면 길어지니 따로 자료를 보내 주겠다 설명을 하며 엔리가 자신의 스마트 폰을 내게 내밀었다.

       

       “번호 주시면 커피톡으로 보내드릴 게요.”

       

       난 그걸 선뜻 받지 못했다.

       

       엔리에게 번호를 주기 싫다거나. 그녀의 진의가 의심스럽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저 제 전화번호 몰라요.”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았을 뿐.

       

       엔리는 눈을 끔뻑이다가 쿡쿡 거리며 웃더니 스마트 폰을 내어 달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전화를 걸면 된다면서.

       

       *

       

       “죄송합니다! 여러분 늦었습니다!”

       

       엔리의 채팅창은 화끈하게 불타고 있었다.

       

       글자를 읽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 적힌 내용은 대부분 -해 – 명 – 해. 혹은 -[불타는 이모티콘]이었다.

       

       7시에 오기로 약속한 엔리가 아무 말도 없이 8시가 되어서 방송을 킨 대가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정신이 아찔해질만한 상황이었지만 엔리는 태연했다. 그녀가 시청자를 화나게 만든 게 어디 한 두 번이던가.

       

       그녀는 수차례의 나락방어전을 펼친 장수였다. 이 정도 불길쯤이야 화제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 해명해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해. 명. 해.]

       

       “무슨 변명을 하겠습니까. 다 제가 게으른 탓이죠.”

       

       – 잘못 했으니 벌 받아야겠죠?

       – 벌칙 룰렛 가즈아아아.

       – 공포겜 가즈아아아아.

       

       벌칙 룰렛이라는 단어에 엔리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 흘렀다.

       

       엔리가 지각을 한 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각 상습범이었다. 오죽하면 터렛 스트리머들이 지각을 할 때면 ‘엔리’했다 라는 말이 나올까.

       

       계속된 지각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불꽃이 피워진 어느 날. 엔리는 사과 방송을 켜 재발의 방지를 약속하며 한 가지 공약을 내걸었다.

       

       그게 바로 벌칙 룰렛이었다. 그녀가 지각을 할 때마다 룰렛을 돌려 거기에 적힌 벌칙을 수행하겠다 말을 한 것이다.

       

       룰렛에 적힌 벌칙들은 하나 같이 끔찍했다.

       

       공포게임 켠왕. 살인 돈까스 먹기. 홍어코 먹기. 링헬스 일주일 간 하기. 뜀틀왕 켠왕. 24시간 방송 등등.

       

       하나하나가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었다. 마이 튜브 편집자야 기뻐하겠지만 벌칙의 당사자인 엔리는 아니었다.

       

       불꽃을 진압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지만 엔리는 지각을 할 때마다 그 날의 자신을 원망했다.

       

       나는 왜 그리 호기로웠던 걸까. 벌칙이라도 조금 약하게 하지.

       

       벌칙 룰렛을 돌리는 것만큼은 피해야 해. 그 앞은 지옥이란 말이야.

       

       “제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정을 듣고 싶으실 테니까.”

       

       – 뛰어라 엔리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어이. 엔씨. 개소리 말고 룰렛 돌려.]

       

       “말을 해보자면!”

       

       도네이션의 목소리건. 채팅창이건 난리가 났지만 엔리는 그걸 모두 다 무시했다. 저기에 휘말렸다간 꼼짝 없이 벌칙 룰렛을 돌려야 할 게 분명했다.

       

       “어학당에 입학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 ㅇㅇ.

       – 엔리 어학당 다님? 얘 한국인보다 한국어 잘하잖아.

       – 몰?루?

       

       사실 엔리는 어학당에 입학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영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의 핏줄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그녀이지만 한국의 문화를 사랑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심지어 한국 대학에 유학까지 다닌 그녀는 현지인이라 해도 문제없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 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어학당에 입학한 이유는 단 하나. 다른 외국인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엔리가 아무리 한국에 익숙하다한들 그녀는 기본적으로 이방인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녀를 어려워했고. 한국의 친구들과 있을 때도 애매한 거리감을 느꼈다.

       

       그래서 엔리는 항상 한국을 사랑하는 다른 외국인 친구를 원했다. 그녀와 감성을 공유할 현실의 친구를 바랐다.

       

       스트리머도. 마이튜버도. 외국인도. 뭣도 아닌. 그저 인간 엔리 스콧을 좋아해 줄 사람을 원했다.

       

       허나 그녀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빌어먹을 스토커 때문에.

       

       스토커는 그녀의 주변에 붙어 다니며 그녀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엔리는 자신의 것이여야 한다는 것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주 제대로 미친 놈이었다.

       

       “어학당에 노란 머리 스토커가 있어요. 예전에 저 괴롭히던 애.”

       

       – 아. 그 외국인 스토커 말하는 거임?

       – 정신 나간 새끼. 거기까지 따라 갔어?

       – 혹시 걔가 뭐 했어? 다친 건 아니지?

       

       방금 전까지 채팅창을 불태우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걱정을 표하는 걸 보고 엔리는 미소 지었다. 싫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니까.

       

       “걱정 마세요. 큰일은 없었어요. 사실 큰 일이 날 뻔 하긴 했지만 다행히 도와 준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녀는 백아라가 자신을 구해주던 광경을 떠올렸다. 자그마한 손이 남자의 거대한 주먹을 막아내던 모습을.

       자기의 두 배는 될법한 남성 앞에서도 당당히 서있던 백아라는.

       엔리가 상상하던 천마의 모습과 한없이 닮아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보러 와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재밌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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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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