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

       “제기랄…”

         

        이시현는 짙은 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의 회귀.

         

        그리고 또 한 번의 튜토리얼.

         

        또 한 번의 몬스터 웨이브.

         

        많은 사람이 죽었다.

         

        “… 으득.”

         

        이가 갈렸다.

       

        다행히.

         

        아이들은 전부 살렸다.

         

        하지만.

         

        아이들을 신경 쓰느라 다른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또였다.

         

        회귀자.

         

        그녀는 모두를 지킬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힘이 없었으니까.

         

        모두를 지킬 힘이 부족했다.

         

        속이 쓰렸다.

         

        “언제… 언제 쯤이면… 전부…”

         

        살릴 수 있는 걸까.

         

        내뱉지 못한 말의 뒷맛이 썼다.

         

        회차를 반복해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수백 회차에 걸쳐 그녀가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이들을 전부 지키는 것 뿐이었다.

         

        이곳에 소환된 100명이 넘는 인원들 중, 아이들은 모두 아홉 명.

         

        그래도 그녀는 아이들을 전부 지켜냈-.

         

        ‘없어?’

         

        하나가.

         

        없었다.

         

        왜?

         

        ‘분명히 전부 막아냈는…’

         

        아 생각났다.

         

        이쪽으로 세 마리가 달려들 때, 튕겨져 나갔구나.

         

        그럼.

         

        그럼 그 아이는?

       

       

       

        이시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몬스터의 시체, 몬스터의 시체, 몬스터의 시체, 사람 시체, 사람 시체.

         

        아이는 없었다.

         

        ‘도망간 건가?’

         

        제발.

         

        그래야 했다.

         

        도망치는데 성공해야 했다.

         

        살았어야 했다.

         

        ‘씨발…!’

         

        병신같은 년.

         

        또 실수를 저질렀다.

         

        이러면 안 됐다.

         

        이곳에 없는 그 여자아이를 미치도록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었다.

         

        ‘씨발…’

         

        그녀는 그리 욕을 내뱉으며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 설은…’

         

        없다.

         

        없었다.

         

        그도 없었다.

         

        최우선으로 이곳에서 경계해야 할 대상이 이곳에 없었다.

         

        ‘그 새끼… 도망치는데 성공한 건가?’

         

        으득.

         

        이가 갈렸다.

         

        사실, 실패하는 것보다 성공하는 것이 반드시 나았다.

         

        이 새끼가 죽지 않는 것이, 세계 멸망을 막는데 꼭 필수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살아남는 것 역시 화가 났다.

         

        그 천하의 개새끼는 죽어 마땅하니까.

         

        ‘설마… 아니겠지?’

         

        갑작스럽게 든 마주 끔찍한 생각.

         

        아동 성범죄자 새끼가 그 아이를 데려갔다면?

         

        ‘씨발…’

         

        그럴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설마 하는 생각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반드시.

         

        아니어야 한다.

         

        ‘두 번째 웨이브 전에는 다른 곳으로 피난할 수 있으니까 그때 찾아보는 거야…’

         

        제발.

         

        제발.

         

        그녀는 그렇게 빌며 이 설에게 분노를 느꼈다.

         

        신은 왜 저딴 새끼한테 저런 운명을 쥐어준 걸까.

         

        죽는 게 마땅한 새끼지만 죽어서는 안된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그리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저 그가 사지가 잘려 숨만 붙어있기를 희망하며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일단… 무기는 아직 괜찮고… 새로 얻은 능력이 뭐지?’

         

        [‘염탐’]

         

        [상대방의 상태창을 염탐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쓸만한 능력이 나왔다.

         

        남의 상태창을 본다.

         

        이것은 동료를 영입할 때도 굉장히 유용할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도 적의 능력치와 특징을 파악할 수 있기에 굉장히 유용했다.

         

        ‘그나저나 3년이라…’

         

        그녀는 시야 한쪽에 자리 잡은 카운트 다운을 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봉인 해제: 2Y 11M 29D 23H 49M]

         

        이상하게 후반부가 막혀있는 이전 회차의 기억.

         

        그녀의 능력에 의해 기억이 일시적으로 봉인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뭔가…’

         

        굉장히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을 것 같다.

         

        잊으면 안되는 그런.

         

        후회스럽고.

         

        처절한.

         

        속죄해야 할 그런 무언-.

         

        찌릿!

         

        “윽!”

         

        갑작스럽게 머리가 아파왔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자 금방 괜찮아지는 고통.

         

        봉인을 강제로 열려고 했던 대가였다.

         

        “쯧.”

         

        3년.

         

        그리 길지는 않다.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열릴 것이다.

         

        그러니 새로 생겨난 그 기억에는 반드시 멸망에 대한 해답이 있기를.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다음 몬스터 웨이브가 오기 전에 이동할 준비를 했다.

         

        ***

         

        “허억! 허억! 허억!”

         

        얼마만큼 뛰었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커다란 미로 속을 계속해서 뛰었다.

         

        “저, 흐아… 저 힘들어요…!!”

         

        뒤에서 아이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쳐다봤다.

         

        다행히 쫒아 오는 괴물은 없었다.

         

        잘 따돌린 것 같았다.

         

        이내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흐아… 흐…”

         

        “하으… 흐으… 흐으…”

         

        나와 아이 둘 다 거친 숨을 쉬며 숨을 골랐다.

         

        그렇게 1분 정도.

         

        나는 아직도 지쳐있을 때였다.

         

        “저기…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어? 어, 어 나, 나도, 아니 저, 저도, 고마워… 요…”

         

        두 번째.

         

        살면서 두 번째로 들어보는 감사 인사가 들려왔다.

         

        우와.

         

        감사 인사를 받았다.

         

        앞으로 평생 못 받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내가 누군가한테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

         

        “…”

         

        대화가 끊겼다.

         

        아이는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아직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이를 봐준 적은 단 한 번 밖에 없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아이를 보면 무섭다.

         

        아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아이와 같이 있는 상황이 무서웠다.

         

        또 같은 순간이 반복되면 어떻게 될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으니까.

         

        죄책감도 나를 괴롭혔다.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가 자꾸 나를 건드렸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이겨내야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 이름이 어, 어떻게 되… 는지 알려줄 수 있어…? 아니, 있어요?”

         

        그렇기에 나는 그 침묵을 깨기 위해 그 아이의 이름을 물어봤다.

         

        다행히 그 아이는 내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제 이름은 신서아에요… 나이는 12살이구요… 그리고… 서울에 살고 있어요…!”

         

        살짝 울먹거리는 목소리.

         

        아직 어린 나이에 이런 곳에 갑자기 오게 돼서 꽤나 무서울 텐데도 꿋꿋이 울음 참고 있는 것이 기특해 보였다.

         

        서아.

         

        이름이 굉장히 잘 어울렸다.

         

        그런 서아를 향해 나도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물론, 내가 키가 많이 작아서 서아보다 더 작아졌지만 말이다.

         

        “어, 어… 저는 이 설, 이라고 하고… 나이는 45살이구… 그, 그리고 저, 저도 서울 살고 있어요…”

         

        서아가 나를 내려다 봤다.

         

        그 살짝 눈물 고인 똘망똘망한 눈이 의문을 표했다.

         

        “45살이요…? 저희 아빠보다 나이가 4살은 더 많은데…”

         

        믿지 않는다는 그 표정이 굉장히 귀여웠다.

         

        생긴 것도 예쁘게 생겨서 미래에는 많은 남자들을 울릴 것처럼 생겼다.

         

        음…

         

        의심 받는 건 안 좋겠지.

         

        “사, 사실 거짓말이에요… 그냥 기, 기분 풀어주려고 장난, 좀 쳐봤어요…”

         

        “그런 거에요…?”

         

        “네, 네 그런 거, 에요…”

         

        “그럼 몇 살이에요?”

         

        나는 이 아이의 순수한 질문에서 턱 막힐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몇 살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저 매끈해진 손을 보고 나이가 어려졌을 거라 추측하는 거지, 어느 정도로 보이는 지는 나도 몰랐다.

       

       

       

        ‘으, 음… 20살 정도려나?’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이제는 많이 죽어버렸던 다른 사람들 모두 20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들 앳되어 보이는 그 나이대.

         

        분명 처음에 머리가 터… 졌던 그 사람들도 입은 옷이나 말투를 봤을 때는 전부 나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외모는 아니었다.

         

        ‘다, 들… 여기서 젊어져서 온 건가?’

         

        잘 모르겠다.

         

        그냥 이럴 때는 서아한테 물어보는 게 답일 것 같다.

         

        “저, 저 몇, 살로 보여요…?”

         

        솔직히, 말을 내뱉는 게 너무 힘들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 말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애초에 어렸을 때는 말을 먼저 꺼내면 먼지 나도록 맞는 입장이었고, 감옥에서는 완전히 말을 안 하고 살았으니까.

         

        어색했다.

         

        음… 좀 연습을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음… 한 15살 정도로 보여요…”

         

        이제는 완전히 울음을 그치고 대답해 주는 서아.

         

        이 아이와 이야기 하는 게 정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으니, 어쩌면 서아는 괴물보다 내가 더 무서웠을 수도 있다.

         

        조심해야겠다.

         

        “여, 열 다섯…?”

         

        내가 그렇게 어려 보이나?

         

        키가 작고 원래부터 어려 보이기는 한데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서아의 입에서 나온 말인 만큼 거짓말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마, 맞아… 요.”

         

        “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저보다 나이 많으면서 왜 존댓말 써요…?”

         

        어.

         

        그러게.

         

        왜 그러고 있었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게 익숙해서 그랬나?

         

        “그, 그러게… 요…”

         

        “저랑… 반모 할래요…?”

         

        “반모…?”

         

        그게 뭐지?

         

        무슨 모임 같은 건가?

         

        “반말 모드요…! 서로… 말 놓자구요…”

         

        “아, 아 네, 네 아니, 어… 응… 그, 그렇게 해요, 아니 하… 자…”

         

        “좋아…!”

         

        갑자기 밝아진 서아가 참 귀여웠다.

         

        만약 내가 평범하게 살아서 딸을 나았더라면 이 정도 나이일까.

         

        이런 아이를 가진 부모가 부러웠다.

         

        분명 그 잔혹하고 끔찍한 장면을 모두 보고 겪었을 텐데도 티내지 않고 이렇게 씩씩하게 구는 아이였으니까.

         

        “그럼… 언… 니? 오… 빠? 우리 이제 어디로 가…? 원래 있던 곳… 은 가기 싫은데…”

         

        “어, 으, 음… 그 그러면 더, 더 멀리 가, 가볼까요? 아니, 갈까…?”

         

        “응…! 그러자…!”

         

        “어, 응…”

         

        나는 몸을 일으켰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서아.

         

        그 잡은 손이, 정직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많이.

         

        무서워 보였다.

         

        “…”

         

        솔직히.

         

        나도 무서웠다.

         

        이곳은 누가 봐도 커다란 미로였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그 무엇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를 터.

         

        잘못했다가 괴물이라도 튀어나오면 대참사였다.

         

        하지만.

         

        덜덜덜.

         

        이 손을 떨고 있는 서아를 보니, 나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이 아이도 씩씩하게 구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어.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서아와 미로 끝자락을 향해 갔다.

         

        ***

         

        “시현 씨 이제 저희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 저 바깥은 미로라고 하네요.”

         

        “우선 아이들도 많이 남아있고 괴물들이 더 안 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차라리 미로 끝자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네요. 아직 그래도 생존 인원이 많이 있으니까 그리하면 비교적 안전할 수 있겠네요.”

         

        이시현은 그리 말하는 붉은 머리의 여자, 강아현을 바라봤다.

         

        175는 넘어 보이는 큰 키, 시원시원한 예쁜 외모.

         

        자신 역시 키로 꿇리지 않을 텐데도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아현의 시선을 느끼며 그녀는 생각했다.

         

        ‘강아현… 이 여자는 언제 봐도 적응되지 않네.’

         

        강아현은 지난 500번이 넘는 회귀 동안 매번 자신의 동료가 되었던 여자였다.

         

        그녀는 상상 이상으로 똑똑하고 유능했기에 언제나 자신의 옆에서 새로운 조언을 해주었으니까.

         

        매 회차마다 영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그녀를 봐왔는데도 정작 그녀에 대한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여자였다.

         

        ‘지금 뭘 생각하는 거냐… 아직 할 게 많은데.’

         

        그녀는 잡생각을 털어내고는 괴물들이 들어온 회색 벽의 반대편, 미로로 통하는 공간이 있는 벽을 바라봤다.

         

        ‘일단 미로 끝자락으로 가는 거야… 그러면 몬스터 웨이브는 무난하게 피할 수 있을 거고.’

         

        그녀는 이미 끝자락으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몇 시간만 투자하면 생존자들과 함께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터.

         

        ‘67명… 이전 회차보다는 많아…’

         

        현재 이곳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존자의 수였다.

         

        67명.

         

        처음 28명 밖에 살아남지 못한 1회차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 나는 잘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그리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두 문제를 떠올렸다.

         

        ‘그 둘…’

         

        좆같은 새끼와 신서아.

         

        그 둘을 찾아야 했다.

         

        우선 생존자들을 끝자락에 피신시키고.

         

        그 이후에 곧바로 찾기 시작해야 한다.

         

        나 혼자서라도.

         

        그리 계획을 세우며 이시현은 외쳤다.

         

        “지금부터 미로의 끝자락으로 가겠습니다!!”

         

       왜인지 모를 가슴 아픈 죄악감은 뒤로 묻어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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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The Regret of the Regressor Who Killed Me 523 Times

나를 523번 죽인 회귀자가 후회한다
Status: Ongoing Author:
After being falsely accused of being a sex crime murderer and serving time, I was summoned to another world. There, I awakened the ability to read minds and found out there was a regressor. But that regressor was regretting something about me. Why is he acting this way towards me?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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