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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화면 속 채수현은 한껏 기분이 좋아보이는 표정으로, 기자들에게 인사를 꾸벅하는 것이었다.

        분명 나에게 헤어짐을 통보한 것이 몇시간 전인데 아주 생글생글한 모습이었다.

       

        ‘하… 엄청난 프로정신인 건지. 아니면 어마어마한 썅년인 건지 모르겠네.’

       

        속으로 열불이 났지만 최대한 참기로 했다.

        지금은 화를 내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니까.

        게다가 형석이도 있고.

       

        “근데 형 언제 차이신 거예요…?”

        “오늘. 방금 전에.”

        “에? 방금 전이요…?”

       

        형석이는 화면을 보면서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덩달아 내 눈치를 보면서.

       

        “채수현 헌터.. 굉장하네요…”

        “하하.. 그치.. 아주 대단하지. 그치.”

       

        “오늘 제가 S급 헌터 1위 자리에 올라섰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전달해드리고자 기자님들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기존 1위셨던 S급 헌터 이수아 씨께는 죄송한 말씀이 되겠네요.”

       

        온갖 착한 척을 하며 방긋방긋 웃는 것이었다.

       

        “어휴. 저희 길드는 완전 난리가 났거든요. 이 일 때문에.”

        “난리?”

        “네. 당연히 간판 헌터가 1위에서 밀려났는데 난리가 안날리가 없죠. 이수아 헌터도 아주 정신이 나가버려서 눈에 보이는 걸 닥치는 대로 부숴버리고 말이에요. 말리느라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요.”

       

        ‘뭐야. 이 자식아. 나보고는 이수아 헌터네로 들어가라며. 사지로 몰아 넣으려는 거냐.’

       

        순간 온갖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형은~ 괜찮으실 거예요. 그냥 던전에서 보조만 하시면서 성장하시면 되거든요.”

        “저희 체계상 직접 마주치실 일도 얼마없을 거예요. 인사할 때 빼고는 아마 만날 일이 거의 없지 않을까 합니다.”

       

        대충 내 눈치를 빠르게 채고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었다.

        역시 처세술 하나는 뛰어난 놈이다.

       

        “제가 지금까지 언론 접촉이나 길드 가입 등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채수현은 이것 저것 소설을 떠들어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 거짓말을 아주 쉽게 쉽게 하시는 구만.’

        ‘애초에 이렇게 하려고 판을 짜놓고 나에게 매달렸었군.’

        ‘하하. 참 웃기게 돌아가네.’

       

        나는 차분히 채수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이 좋으니까.

       

        ‘일단 첫단추는 좋네.’

        ‘채수현이 백호 길드에 들어가고 말이야. 나는 그에 라이벌인 블루 길드에 들어가면 돼.’

       

        도대체 어디까지 준비를 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꽤 오랜 세월을 미리 내다보고 준비를 했던 건가?

       

        ‘애초에 백호 길드에 들어가려는 게 목적이었나?’

       

        살짝 혼자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금새 내 생각이 좀 더 굳어지게 되었다.

        화면에 이진혁이 등장하면서.

       

        백호 길드의 간판 스타 이진혁.

        물론 S급 헌터 중에선 랭킹이 많이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 놈에게는 하나의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재벌가라는 것.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는 태양 그룹의 후계자였다.

       

        ‘하…저게 목표였나…’

       

        나를 발판 삼아 S급 헌터 1위가 되는 것.

        그리고 백호 길드에 가입하는 것.

        그 후엔 이진혁을 꼬시는 것.

       

        그 과정이 너무 뻔하게 그려졌다.

       

        ‘하…장난하냐? 장난하냐고. 사람을 그냥 도구로 써버린다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채수현과 이진혁이 한 화면에 잡힌 것을 보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진혁 저 자식도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애초에 태양 그룹은 노동자 대우가 구린 것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그룹이었으니까.

        게다가 백호 길드는 태양 그룹의 빵빵한 지원을 받아서 성장했다.

        그들이 문화와 시스템을 그대로 공유하는 것은 뻔하다.

       

        던전에서 사람 몇 죽는 것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니까.

        이익만 난다면 사람의 목숨 따위는 관심없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아주 끼리끼리 모였구만 그래.’

       

        이 쯤되니 내 스스로가 아주 멍청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하… 아냐. 괜찮아. 포인트를 현명하게 잘만 사용하면 전세계 탑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나는 다시 한번 상태창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분명 어마어마한 포인트.

       

        채수현이고 이진혁이고 다 상관이 없어질 수도 있다.

       

        “저는 오늘 백호 길드에 가입하게 됨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아주 밝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이진혁의 손을 꽉 붙잡으며 어깨에 기대는 것이었다.

       

        ‘어? 시발. 설마 환승 연애냐.’

        ‘애초에 양다리였던 거 아냐? 시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 채수현. 너는 진짜 안되겠다. 내가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계속해서 내 마음 속의 불을 지펴대는 것이었다.

       

        “어… 이거 계속 보실 거예요?”

       

        형석이가 나와 기자회견 장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도 슬슬 내 심경이 불편해질 것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야. 나 당장 가입할게. 계약서 같은 거 없냐?”

        “넵. 여기 있습니다. 찬찬히 읽어보시고 작성해주세요.”

       

        계약은 아주 잽싸게 진행이 되었다.

        채수현이 방송에 까지 나와서 저런 짓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하.. 채수현.너 그래봤자. 이제 끝이야.’

        ‘이미 최 고점은 끝났어. 나한테 받은 포인트가 다 빠지고 나면 고작 C급 헌터가 될 뿐이라고.’

        ‘게다가 다시 노력해서 S급 헌터를 뚫는다고 해도 상태이상은 어쩌려고?’

       

        내 스스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상태이상을 해제하는 것.

       

        특이하게도 상태이상을 개선하는 문제에도 포인트를 투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채수현은 다른 S급 헌터들과는 달리 정신적인 부분에 큰 문제는 없이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너 다시 한다고 해도 그 자리엔 못 올라갈 걸?’

       

        이제는 시간 문제였다.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도 채수현의 스텟은 점점 빠져나갈테니까.

        그리고 나는 블루 길드에서 천천히 성장할 테니까.

       

        언젠간 우리 둘이 서로 크로스가 될 것이다.

       

        “저. 형. 그럼 이수아 씨랑 한번 인사 하시죠. 저희 계약하면 원래 한번 씩은 다 인사나누거든요.”

       

        내가 작성한 계약서 검토를 마친 형석이가 말을 꺼냈다.

       

        “응. 그러지 뭐.”

       

        ***

       

        “저 이수아 헌터님.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된 백지훈 헌터입니다.”

       

        형석이의 안내로 이수아 헌터와 만나게 되었다.

       

        ‘이수아 헌터를 가까이서 보게된 것은 완전 처음인데.’

       

        지금까지 다른 헌터들과는 친하거나 가까이 지내는 것은 좀 힘들었다.

        아무래도 수현이가 반대했으니까.

       

        ‘아. 오빠. 다른 헌터 봐서 뭐하게? 걔네랑 사귈거야? 놀거야? 뭐 걔네랑 뭘 하려고? 만나지 마. 지금 나랑 레벨업 하기도 바쁘잖아?’

        ‘아니. 어차피 내가 있는데, 왜 자꾸 다른 여자 헌터를 신경 써.’

        ‘오빠. 진짜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리지마. 자꾸 그러면 내가 뭔 짓을 할지 몰라’

       

        딱히 노력을 한 것이 아님에도 과거의 기억들이 슬금슬금 떠올랐다.

       

        ‘예쁘긴 예쁘네’

       

        한 때 전국을 아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S급 헌터.

        꽤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했던 헌터이다.

        아주 실력도 뛰어나고, 미모도 출중하다.

       

        하지만 정신적인 문제에 가로 막혔다.

        전세계 의사들도 알 수 없다는 그 정신적인 문제 말이다.

        유독 S급 헌터들에게서 그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요즘엔 신경질과 짜증을 잘 내는 사람으로 유명한 편이다.

       

        “안녕하세요.”

       

        역시나 살짝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E급이시라고요. 다치지 않게만 조심하세요. 혹여나 제가 신경을 못써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분명 목소리와 표정에는 짜증과 신경질이 담겨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따스함이 묻어나오는 느낌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했다.

       

        ***

       

        “예전에는 저정도는 아니었는데 날이 갈 수록 심각해지는 것 같아요. 좀 짜증내고 그렇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우리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오며 다른 장소로 향했다.

        형석이는 초면에 불친절한 반응을 했던 이수아에 대해 애써 포장을 하는 중이었다.

       

        “에이. 나도 알아. 어차피 이수아 헌터 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다 비슷한 처지라고 그러던데.”

        “네. 맞아요. 휴. 왜 그런지 아무도 모른다 하니까 답답하기만 하죠.”

        “뭐 어쩔 수 없지.”

        “음 근데 그러고 보니까 채수현 헌터는 괜찮은 것 같던데…”

       

        형석이는 뭔가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음. 아마 나 때문이 아닐까…’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내가 포인트를 잘 분배해서 괜찮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사실을 여기저기 말할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타인에게 포인트를 분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할 때마다 다들 미친 놈 보듯이 쳐다봤으니까.

        초반에는 열심히 말해본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귀찮아 지기만 할 뿐.

       

        “형. 근데 오늘부터 바로 나가실 거예요? 이수아 헌터팀 오늘 작업 일정 있거든요.”

       

        나에게 선택지를 주겠다는 듯한 뉘양스로 말했다.

       

        “뭐 그냥 오늘부터 나가지. 어차피 채수현이도…”

       

        나도 모르게 채수현을 언급해버렸다.

        괜히 그녀를 신경쓰는 것을 티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앗… 어… 음… 넵. 알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E급이시라고요?”

        “넵”

       

        앞으로 함께 일할 팀원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물론 던전 안에서 말이다.

       

        “허허. E급인데 어떻게 저희 팀에…”

        “그러게요. 초짜이신데 너무 어려운 팀에 보내진 것 아닌가…”

        “아하. 제가 초짜는 아니고요…”

       

        물론 사회적으로 E급은 초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채수현과 더불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어쩌면 이들 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기는 하다.

       

        아무래도 채수현과 나는 조용히 다녔기 때문에 나에 대한 정보를 왠만한 헌터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흐음. 다들 그렇게 말하기는 하죠. 뭐 어쨋든 반갑습니다. 지옥의 이수아 팀에 들어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지옥의 이수아? 왜? 분명 형석이가 괜찮다고, 추천한다고 했는데.’

       

        살짝 수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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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I Was Betrayed But It’s Okay haha

배신당했지만 괜찮습니다ㅎㅎ
Status: Ongoing Author:
"I was the one who boosted your rank. Yet you stabbed me in the back? Fine. Goodbye. I'm taking it back. You're finished now. Thanks to you, I now have an abundance of skill points for a prosperous hunter life. But... after spending some of those points, the S-Ranks are starting to get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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