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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4. 드래곤? 아니, 도마뱀.

       

       

       현재.

       나는 전설의 드래곤과 대치하고 있다.

       아니, 내 손을 깨문 아주 발칙한 도마뱀과 대치하고 있다.

       

       “샤아악-!”

       “어쭈, 하악질 안 멈춰?”

       “샤아아악-!!”

       “이 자식이… 아빠를 알아 보지도 못하고…!”

       

       애지중지 돌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애지중지 돌봐주려 했는데.

       감히 아버지의 손가락을 물어?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

       “샤아악-!”

       “그만 안 해? 이 쪼그만 도마뱀 자식이!”

       “샤아악-!!”

       “그래, 해보자 이거지?”

       “샤아악-!!!”

       

       나는 행동을 멈추고 도마뱀을 아무말 없이 노려봤다.

       그러자, 녀석도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

       “…”

       

       이건 나와 한 번 해보자는 거다.

       이른바 기싸움이라는 녀석이다.

       

       ‘태어난지 10분밖에 안 됐으면서. 23년을 살아온 나를 이기려고 들어?’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

       먼저 시선을 피하거나, 눈을 감는 쪽이 패배하는 거다.

       나는 붉은 도마뱀의 찢어진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

       

       한 2분 정도 지났을까.

       점점 눈이 아파오고, 눈꺼풀이 떨리기 시작했다.

       

       ‘흠.’

       

       솔직히 말하면 곧 한계에 가까웠다.

       

       ‘꽤 잘 버티네.’

       

       반면, 저 도마뱀의 눈은 단 한 치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슬슬 눈앞에 패배가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지는 건가?’

       

       태어난지 12분밖에 되지 않은 드래곤에게 지는 건가?

       내가?

       

       ‘아니, 이겨.’

       

       나는 내 눈을 뚫어져라 보는 빨간 도마뱀에게 당당하게 선언했다.

       따가웠던 눈을 살며시 감으면서.

       

       “…다음에 아빠를 알아보지 못하고, 또 손가락을 물면 봐주지 않겠어.”

       “샤아악-!!”

       

       나는 지지 않았다.

       이번 한 번, 저 빨간 도마뱀을 용서한 거다.

       

       ‘애초에 태어난지 12분밖에 안 된 애를 이기려고 드는게 더 추하잖아. 안 그래?’

       

       어린이를 진심으로 이기려고 드는 어른이 더 추한 법.

       나는 아주 쿨하게 저 빨간 도마뱀을 봐주기로 했다.

       

       “나는 여유로운 어른이니까.”

       “샤아악-! 샤아악-!”

       

       빨간 도마뱀이 뭐라 반발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녀석을 무시하고 시선을 옆쪽으로 옮겼다.

       어느새 파란 드래곤이 알에서 기어 나와 아무런 움직임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나운 녀석과 달리 조용한 성격으로 보였다.

       

       “…”

       “너는 좀 얌전한 성격인가 보구나. 저 성격 나쁜 도마뱀처럼 ‘샤아악-!’거리지도 않고.”

       

       옳지.

       이리 온.

       나는 파란 드래곤을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녀석은 다가오는 내 손을 보더니 재빠르게 몸을 뒤로 움직였다.

       

       “어라?”

       “…”

       “지금 아빠 손을 피한 거니?”

       “…”

       

       파란 드래곤은 ‘샤아악-!’같은 대답조차 하지 않고, 나를 가만히 노려봤다.

       그리고는 이내 관심을 거두었다는 듯, 훽- 고개를 돌려버렸다.

       보아하니 저 빨간 도마뱀과 똑같이 나를 아버지라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애초에 저 파란 도마뱀과 나는 종족 자체가 다르긴 했으니, 아버지라 여기지 않는게 당연하긴 했다.

       

       “알에서 태어나면 처음보는 사람을 아빠로 봐준다고 했는데… 다 거짓말이었나…”

       

       항상 옳은 말만 하던 교과서에 배신당한 기분이다.

       그러나, 내게 항상 낙심하고 있으라는 법은 없는 걸까.

       

       “샤아아- 샤아아-”

       

       가장 늦게 알에서 나온 초록 드래곤이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샤아악-! 샤아악-!”

       

       붉은 도마뱀의 사나운 만류에도.

       초록 드래곤은 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왔다.

       설마.

       

       “너는 저 도마뱀들과 다르게… 나를 아버지라 생각하는 거니…?”

       “샤아아-!”

       

       초록 드래곤은 내 말이 맞다며 화사한 울음 소리를 내었다.

       표독한 빨간 도마뱀과 차원이 다른 울음 소리였다.

       

       “그래도, 너만은 나를 아버지라 생각하는구나… 풀 타입은 쓰레기라 해서 미안하다… 취소할게…”

       

       감격이다.

       나는 초록 드래곤의 행동에 화답하듯, 녀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녀석은 내 손가락을 유심히 보더니 붉은 도마뱀이 물었던 손가락을 열심히 핥아 주었다.

       욱씬거렸던 손가락의 통증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드래곤의 침은 치유 효과도 있는 건가?”

       “샤아아-! 샤아아-!”

       “맞다고?”

       “샤아아-!”

       

       벌써부터 내 말을 알아듣는 드래곤.

       녀석은 내 말이 맞다며, 신이 난 것처럼 방방 뛰었다.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겠지만. 귀여우니 너는 오늘부터 내 딸이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늘 그렇듯.

       다른 누군가의 행복한 모습에 불편함을 가지는 녀석도 있는 법.

       

       “샤아악-!!”

       

       나와 내 딸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거슬렸던 걸까.

       붉은 도마뱀이 갑자기 나타나 내 딸의 꼬리를 물고, 저 반대편으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ㄴ, 내 딸!”

       

       나는 딸을 잃은 심봉사처럼 애절하게 소리쳤다.

       

       “내 딸아…!!”

       “샤아아-!”

       

       나와 내 딸은 서로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우리는 서로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내 딸의 손이 아직 짧기도 했고, 붉은 도마뱀이 내 딸을 끌고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드래곤인가.’

       

       그 이후로도 나는 내 딸을 되찾기 위해 원룸을 뛰어나디니며 노력을 해보지만.

       가까이 가면 멀어지고.

       멀리 가면 더 멀어질 뿐.

       심지어 옆집에서 시끄럽다 벽을 두드리고 있었으니.

       내 딸을 되찾을 수 없었다.

       

       “…”

       “샤아아…”

       

       그렇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는 표독한 빨간 도마뱀으로 인해 잠시 멀어져야만 했다.

       참고로 파란색 드래곤은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딱히 우리가 뭘 하든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 또한 최후 통첩을 내릴 수밖에.

       나는 녀석들에게 등을 돌린 채, 최대한 위엄있는 말투로 선언했다.

       

       “그래, 너희들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알겠어. 나도 너희를 약속 때문에 키우게 됐지, 딱히 너희들의 아빠가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거든? 이불 깔아줄 테니까 자든 말든 알아서 하고. 너희 드래곤이니까 알아서 해.”

       

       나는 나의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며, 깨진 알의 껍질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구석에 치웠다.

       그리고, 좁디 좁은 원룸에 이불을 폈다.

       내 구역과 드래곤의 구역을 철저하게 나눠서 말이다.

       

       “여긴 내 거. 저기는 너희 거. 넘어오기만 해. 봐주지 않을 거니까.”

       “샤아아…”

       

       서운하게 우는 내 딸에게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내 딸은 잠깐 넘어와도 좋아.”

       “샤아악-!!”

       

       물론 빨간 도마뱀이 중간에 훼방을 놓았지만.

       나는 나와 내 딸 사이에 끈끈함을 잠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튼, 너희들은 알아서 해. 나는 잘 테니까.”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기도 하고.

       6개월 동안 바깥 생활을 해서, 몸도 지쳐있던 참이라.

       잠시 바닥에 눕기만 해도 졸음이…

       

       “알아서… 자라… 드래곤이잖아… 나는 피곤하니까… 잔다…”

       

       풀썩-

       나는 바닥에 누워 털이 다 빠져 푸석푸석해진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는 정말 머리로 생각하고, 몸을 움직일만큼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들 잘 자라…”

       

       

       ***

       

       

       짹짹- 짹짹-

       내가 눈을 뜬 건, 내 구식 핸드폰에서 울리는 새의 울음 소리 때문이었다.

       반지하도 아닌 지하에서 살고 있어, 지금이 아침이라는 걸 알기 위해서는 알람과 숫자에 의존해야만 했다.

       

       “일단 인위적인 새 소리는 그만 좀 듣자…”

       

       나는 눈을 찌푸리며 핸드폰 알람을 껐다.

       뚝-

       그제서야 원룸이 고요함을 되찾았다.

       그건 그렇고.

       

       “어쩌다 보니 일찍 일어나게 됐네.”

       

       그동안의 피로를 녹이기 위해 더 자려고 했는데.

       평소 습관처럼 일찍 일어나고 말았다.

       다시 바닥에 누워 잘까 생각도 했지만, 컨디션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6시라. 내겐 아주 정겨운 시간이지.”

       

       돈도 갚아야 하는데.

       그냥 일이나 하러 가야 하려나.

       이 도마뱀 녀석들이 먹을만한 음식도 사야 되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 밥을 살 돈도 없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마른 세수를 하고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쿠우울- 쿠우울-”

       “…잘 자네.”

       

       드래곤은 서로 사이좋게 이불 위에서 좋은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파란 녀석은 살짝 떨어져 있는 상태로.

       

       “근데 얘네들을 두고 출근해도 되려나.”

       

       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태어난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괜찮으려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살짝 걱정되긴 했다.

       하지만.

       

       “…알아서 하겠지 뭐. 도마뱀도 아니고 드래곤이잖아. 그 녀석도 드래곤은 스스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했고.”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저 드래곤의 아빠는 아니니까.

       약속대로 저 녀석들이 성체까지 자랄 때까지 최소한의 안전만을 지켜주면 된다.

       이건 절대 내가 아빠로 인정받지 못해 삐졌기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오늘 일 안 하면 당장 먹을 걸 살 돈도 없으니까 말이지.”

       

       어쨌든 오늘 일을 해야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출근을 하기 위해 아주 간단하게 이빨을 닦고, 세수를 했다.

       어차피 땀을 흘려야 하니, 굳이 샤워는 하지 않았다.

       그 작은 수도세조차 아깝기 때문이기도 했다.

       

       “식탁에 쟤들이 점심으로 먹을 초코바도 뒀고… 이제 가볼까.”

       

       나는 아주 지겨운 밖으로 나가기 위해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 했다.

       하지만, 저 멀리서 나를 보고 있는 찢어진 눈동자 하나가 들어왔다.

       

       “파란 도마뱀. 깼어?”

       “…”

       “더 자고 있지. 혹시 나 때문에 깬 거야?”

       “…”

       

       녀석은 아무말 없이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그래도 내 말을 알아듣긴 하네.

       

       ‘지금 깼으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많을 텐데.’

       

       흠.

       심심하니 뭐라도 틀어놓는 편이 좋겠지.

       나는 원룸에 기본으로 딸려온, 한 번도 킨 적이 없지만 관리비에 의무적으로 포함되었던 수신료의 가치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딸깍-

       

       “오, 나온다.”

       

       벽면에 설치된 작은 TV 화면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나왔다.

       나는 개인인 이유로 TV를 보기 싫어,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쓰일 곳이 있긴 하구나. 수신료의 가치가 없지는 않네.”

       “…”

       “채널을 뭘 보여주는게 좋으려나… 드래곤이니까… 세상 돌아가는 내용이 나오는 뉴스가 좋으려나…? 넌 어떻게 생각해?”

       “…”

       

       파란 드래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겠지.

       애초에 뉴스가 뭔지 모르고 있을 거다.

       나는 리모컨을 책상 위에 두고, 신발을 신었다.

       

       “그럼, 잘 보고 있어. 나는 갔다 올 테니까. 괜히 사고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알겠지? 나 간다!”

       “…”

       “…어차피 대답도 안 하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 거야.”

       

       에너지가 넘치는 기분이다.

       비어있는 방을 두고 출근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기분이다.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만이 나를 맞이하지 않을 테니까.

       누군가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나는 삶이 충실해진 기분을 느끼며, 걱정되는 마음과 함께 문을 닫았다.

       

       “뭘 좋아할지 모르는데. 고기부터 한 번 먹여봐야 하려나… 아니, 쟤네가 뭐가 이쁘다고 고기를 줘… 그리고 아, 맞다.”

       

       쟤네 이름도 생각해야 겠네.

       언제까지 빨간 도마뱀, 파란 드래곤, 초록 드래곤이라 부를 수는 없으니까.

       나는 그들의 이름에 대해 고민하며 저 멀리 보이는 계단으로 향했다.

       깜깜한 지하에서 벗어나 빛을 보기 위해서.

       어째선지 오늘따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느린 다르팽이입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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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Dragon Egg

I Picked up a Dragon Egg

드래곤의 알을 주웠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picked up an Egg from the Dragon’s Nest. “Shakk!!!!” “Should I just sell?” I should have picked some other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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