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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아침훈련을 끝내 그는 꼼꼼히 몸을 씻었다.

       주변에서 땀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후에는 다시 밥을 먹어줬다.

         

       운동만큼 중요한 게 그만큼 영양분을 섭취해주는 것이니까.

         

       스튜.

       고기와 야채, 토마토소스 등을 잔뜩 넣고 어젯밤 푹 끓여둔 것이다.

       의외로 스튜는 재료의 영양분을 확실히 섭취할 수 있는 요리 중 하나였다.

       값싼 재료만 사용했지만, 오랫동안 푹 익혀주면 재료도 부드러워져 소화도 쉽고, 토마토소스나 바질 등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허브가 맛을 돋아주니 맛도 풍부해서 좋다.

         

       “후우, 잘 먹었다.”

         

       먹은 다음에는 휴식이다.

       이한은 먹은 만큼 휴식도 꼼꼼히 챙겨주는 편이었다.

       30분간의 짧은 가수면.

         

       숙면만큼 효력은 없지만, 그래도 가수면을 취하며 얻을 이점은 수두룩하다.

       짧지만 강렬한 효과를 보이며, 몸의 체력과 정신적 피로회복을 도와주니까.

       이한은 정확히 가수면을 취한 후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취했다.

         

       숙면 후 깨어나자마자 스트레칭 후 전력 운동 뒤 영양분 섭취.

       검술 수련 후 씻고 다시 영양 섭취.

       가수면 후 스트레칭.

         

       이한의 하루 시작을 책임지는 루틴.

         

       약 3년 동안 이어진 루틴이며 하루도 이것을 빼먹은 날은 없다.

       원수와도 같은 기사단장에게 반죽되듯 두들겨 맞은 다음 날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맞고 다음날 회복하면 몸이 더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기분 더럽지.’

         

       이토록 그가 미친 훈련을 이어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한다고 이한은 답하리라.

       몸이 부서질 정도로 훈련하고, 트롤의 회복력으로 몸을 회복시키면 몸이 한층 더 좋아진다.

       달팽이가 기는 만큼의 발전에 불과했지만, ‘발전’이 있다는 게 중요한 지점이다.

         

       0.01의 힘과 체력이 늘지라도, 그것이 백일이 넘으면 1의 힘과 체력이 느는 것이다.

       천일이면 10의 힘과 체력이 느는 것이고.

       이를 확실하게 경험한 이후부터 이한은 꾸준히 훈련했다.

       0.01의 발전이 누군가에겐 절망일 테지만, 귀족도 아닐뿐더러 마땅한 스승조차 없고, 가진 거라곤 멀쩡한 몸뚱어리밖에 없는 그에게 있어 이러한 미묘한 성장법조차 희망의 등불과 같을 따름이다.

       또한 가끔은 발전성이 0.05일 때도 있으며, 0.1일 경우도 있다.

       발전에 의한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바가 아니었고, 이한은 자기완성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고 여겼다.

         

       “…어휴, 근데 진짜 언제 이겨보냐.”

         

       그러나 사람은 기계가 아니었고, 가끔은 우울한 기분이 뜬금없이 찾아올 때가 많더라.

       하필 오늘이 그러했고.

         

       기분이 그다지 안 좋은 하루였다.

         

       * * *

         

       성 외곽에 위치한, 농민과 천민 등이 사는 것으로 알려진 구역에서 벗어나 이한이 걸음을 옮길수록 번화한 도시가 드러났다.

         

       팬드래건 왕국의 수도다운 압도적인 위용.

         

       왕성에 가까워질수록 번화가가 즐비하며, 현대 못지않은 엄청난 건물들과 미술작품 같은 조형물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크지 않았지만. 전쟁 후 왕국으로 탈바꿈한 이후 왕국의 이름에 맞게 수도를 발전시킨 것이다.

       예전 풍경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지금의 풍경을 보여주면, 아마 믿지 못하고 잠시 혼란을 겪으리라.

         

       어느새 수도 귀족들이 사는 도시에 들어서니, 웅장한 형태를 갖춘 왕성이 보였다.

       누군가는 동경 어린 시선을 볼 왕성.

       멋들어진 것은 이한도 동감하는 바였으나.

         

       “…가기 진짜 싫네.”

         

       이한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구겨졌고, 가기 싫은 티가 팍팍 났다.

       혼자서 미묘한 신경전을 치르듯 잠시 멈춰있길 몇 분.

       그는 어쩔 수 없다며 성문까지 갔다.

       그러자.

         

       “충! 리한 경을 뵙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리한 경.”

       “그래, 모두 수고하네. …그보다 내 이름은 리한이 아니라 이한이라니까.”

       “…그게 그거 아닙니까?”

       “…….”

         

       아아, 할아버지.

       명예스러운 덕수 이씨가 중세월드에게서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두들겨 패야 할까요?

         

       [헛소리 말고, 그냥 일이나 해, 인마.]

         

       ‘…예에.’

         

       왠지 (前生)할아버지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아서 이한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표식을 내밀었다.

       군번줄 같이 생긴 목걸이.

       병사는 마법물품으로 표식을 비추니 표식이 푸른색으로 빛났다.

       마치 지문 또는 홍채 인식장치가 연상되는 기술.

       마법이란 게 참 신기하긴 신기하다.

         

       “문제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하십시오, 리한 경.”

       “…고생하기 싫다.”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

         

       이 양반은 뭐가 그리 웃기는 걸까.

       이한은 자기 빼고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것 같은 느낌에 아니꼬움을 느끼며 성 안으로 들어갔다.

       타인은 모르겠으나, 스트레스가 제법 쌓인 상태였고. 지금 이 순간 이한을 건드리면 폭발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 놈만 걸려라.

         

       이를 기대하며 이한은 빠르게 기사단이 위치한 외곽으로 향했다.

         

       “리한이다.”

       “왔다.”

       “오늘은 어떻게 되려나?”

       “단장님 있으시지?”

         

       이한과 같은 갑옷.

       백색 사자가 그려진 백은의 갑옷을 입은 일련의 무리가 그를 환영(?)했다.

       물론 이한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면서.

         

       ‘하여튼 배알도 없는 놈들.’

         

       평민 놈이 왔으면 막 눈도 부라리고, 욕도 내뱉으면서 시비도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서 그를 함정으로 밀어트리고, 암살자도 보내야지.

       이것들은 왜 다들 그만한 기개도 없을까?

         

       ‘옛날 놈들이 기개는 좋았지.’

         

       막 그에게 칼침도 날리려 하고, 암살자도 보내며 죽이려고 들었던 귀족 출신 기사들.

       그들과는 참 재밌게 놀았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이한이 정당하게 사람을 두들겨 패도 될 명분을 만들어줬으니까.

       허나 지금은 다르다.

       워낙 그런 종자들을 많이 두들겨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시비를 거는 이들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격세지감이라고.

       세월이 흐른 것을 느낀다.

         

       ‘좀 남겨둘 걸.’

         

       시비 좀 걸어도 나중에 팰 수 있도록 바락바락 대들 치와와 같은 것들을 놔뒀어야 했다.

       자그마한 후회와 함께 미간이 찌푸려질 쯤.

         

       “이한, 오늘은 누구를 죽이려고 그런 표정 짓고 있냐?”

       “…너라도 나한테 시비를 걸어주지 않을래?”

       “싫다. 어떤 미친 인간이 너 같은 괴물한테 시비를 걸까.”

       “엄살은.”

       “……엄살 아니야, 인마.”

         

       제이크, 귀족 출신이지만 이한을 평민이라고 무시하지 않는 드물기 그지없는 인성 좋은 놈 중 한 명이며, 얼마 되지 않는 이한의 기사단 친구였다.

       이름도 정상적으로 불러주는 놈이기도 하고. 실력도 기사단 내에서 상위권 안에 들며, 화풀이, 아니 대련 상대로도 괜찮을 테지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너랑 대련하면 뼈가 시려.”

         

       제이크는 사전에 미리 위기를 차단하듯 들어갈 틈도 주지 않았다.

       하여튼 눈치 좋은 놈이다.

         

       “귀족이란 녀석이, 평민이 건방지게 굴면 기분 나빠하면서 막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패기도 있어야지, 쯧쯧!”

       “…다른 건 모르겠고, 네가 생각하는 귀족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편협한지는 알겠네.”

         

       제이크는 이한과 기사단 입단 동기였다.

       그렇기에 이한이 기사단 초창기 시절 귀족 출신들과 얼마나 부딪쳤는지도 안다.

         

       …결과적으로 이한과 부딪쳤던 귀족들이 어떤 꼴이 되었는지도 확실하게 알고 있고 말이다.

         

       ‘으음, 아직도 소름 돋네.’

         

       그날의 충격을 여전히 제이크에게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한을 괴롭히다가, 기어이 이한에게 도가 넘는 시비를 걸었고, 이후 이한은 말 그대로 ‘악귀’란 말이 어울리는 짐승이 되어 놈들을 죽일 듯이 두들겨 팼다.

       폭주한 이한을 말리려고 다른 이들이 달려들었지만, 도리어 달려든 놈들이 모조리 다 한동안 정양해야할 정도로 크게 다친 것을 떠올렸을 때 말리느니 만도 못한 결과가 아닐 수 없으리라.

         

       만약 그날 단장이 나서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있던 놈들 중 셋은 확실히 죽었을지도….

         

       이후 기사단 내부에서 이한을 퇴출시켜야 한다, 벌해야 한다는 말이 돌았으나, 이는 기사단장에 의해 모두 무시당했다.

       기사단장 나름 이한을 지켜준다고 그런 것 같지만, 제이크를 비롯해 눈치 좋은 단원들은 안다.

       도리어 이한은 보복당하길 원했고. 퇴출을 기꺼이 환영했으리란 것을.

       만약 단장이 아니었다면 골백번은 더 퇴직하고도 남을 이한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단장은 도리어 이한을 골탕 먹이기 위해 방패막이가 되준 셈이었고, 제이크도 단장이 참 너무하다 싶지만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도 그럴 게.

         

       ‘강하긴 확실히 강하니까.’

         

       포기하기엔 무척이나 확실한 인재였으니까.

         

       그와 싸우고 싶지 않다는 발언, 이는 제이크의 마음 속 깊이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 * *

         

       기사단의 훈련은 솔직히 말해 그저 그랬다.

       가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힘겹지도 않은.

       오히려 자율성에 맡기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누가 보면 메이저리그인 줄.’

         

       전생에 들었던 내용인데, 메이저리그의 훈련은 대부분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비를 들이고 개인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누어 개인 역량을 철저히 갈고닦아 메이저리그란 무한경쟁의 환경에서 살아남고, 메이저리거란 이름을 쓸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메이저리그 선수의 삶이란 내용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사란 직함을 유지하는 이들은 대부분 어느 고명한 기사의 제자거나 가문의 원조를 받는 귀족 출신들이 참 많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개인 수련을 하는 편이며, 결코 타인의 앞에서 제 수련법을 선보이지 않는다.

         

       수련법 자체가 비법이자 재산이니까.

         

       ‘확실히 다들 한 가닥 있는 것들이지.’

         

       수백 년 동안 대대로 전통을 이어온 레시피처럼, 기사란 놈들은 보물 고블린 같은 것들이었다.

       가끔씩 손을 섞다 보면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놀라움을 선사하니 말이다.

         

       지금처럼.

         

       화악!

       카아앙!

         

       날이 전혀 갈리지 않은 훈련용 검을 든 채 마주한 두 기사가 대련을 벌였다.

       검을 부딪칠 때마다 피어나는 불꽃은 화려했고, 그러한 불꽃보다 더욱 화려한 고급 검술의 향연은 서커스보다도 신기했다.

         

       파앗!

         

       어느 기사가 펼치는 검이 채찍처럼 휘며 상대를 압박했다.

       놀라운 점은 압박을 받은 상대가 이를 거침없이 파훼하며 검을 휘두르니 일순간 세 번의 휘두름을 보인 것이다.

         

       “화려하다 화려해.”

         

       저와는 전혀 연이 없는 화려한 검술의 향연.

       보는 것만으로 눈이 즐겁고 대리만족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다.

         

       …물론 검술을 본다고 해서 따라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소설 보면 환생한 놈들은 다 재능러고 카피 천재들이던데, 난 왜?’

         

       한때는 기사들과 대련하며 그들의 검술을 훔쳐보고자 했지만, 훔치긴커녕 도리어 더 의문만 들더라.

       왜 저리 움직이고, 왜 저 자세에서 저런 파괴력이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듣기론 역사가 제법 있는 가문에는 투기법(鬪技法)이란 수련이 있는데, 이를 배우면 일반 장정 열 명과도 맞먹는 역량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오러에 닿기 위한 발버둥이란 얘기도 있는데, 발버둥이든 뭐든 확실히 대단하긴 하다.

       마치 전생 시절 취미로 읽은 무협지 속 무림인이 사용할 법한 검기(劍技)의 향연.

         

       ……부럽다.

         

       “다들 재주도 좋아.”

       “네가 할 말이냐?”

       “응?”

       “어휴.”

         

       이 녀석은 갑자기 왜 시비일까?

       혹시 싸우고 싶다는 신호가 아닐-.

         

       “참고로 난 너랑 대련 안 해, 절대로.”

       “…으음.”

         

       이한은 실망했다.

         

       제이크만 이런 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모두 대련을 기피하고 있으니, 이한으로선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없는 셈이었으니까.

         

       ‘하여튼 요즘 것들은─.’

         

       “-리한 선배님!”

       “…응?”

       “대련을 청하겠습니다!”

       “……오.”

         

       아니네?

         

       ‘있구나, 쓸만한 놈.’

         

       이한은 활짝 웃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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