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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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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하하하하-! 과학자! 좋은 아침이다!”

    “네? 네… 좋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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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름에게 자양강장제를 넘겨준 다음 날. 빌런 조직으로 출근한 나는 이상하리 만치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갈름을 보며 흠칫 놀랐다. 사람이 저렇게 갑자기 바뀌어도 되는 걸까 싶을 만치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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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뭘 잘못 먹은 걸까. 호랑이 수인이니까 풀떼기를 주워 먹어서 저렇게 된 걸지도 몰랐다. 내가 그렇게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갈름을 바라보자 그는 내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잠시 멈춰섰다가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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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하-! 겁 먹을 필요 없다! 시비를 걸러 온 건 아니니까!”

    “아, 예. 그렇겠죠.”

    “오히려 너한테 시비를 거는 녀석이 있다면 내게 말해라! 내가 대신 해결해줄 테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다. 과학자. 부탁이 하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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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랬구만. 나는 갈름이 내게 친근한 척 말을 걸어온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 없지. 내게 원하는 게 있으니 저리 친절하게 말을 걸어온 거였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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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사무적이던 갈름이 이렇게 친근해진 이유는 뭘까? 돈이라도 빌려달라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꼴보기 싫으니까 이 조직에서 나가라는 부탁일까. 아니, 후자를 부탁하기엔 안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

    놀랍게도 갈름이 부탁한 건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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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만들어준 물약. 몇 개 더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네? 아, 자양강장제요.”

    “자양강장제? 그걸 고작 자양강장제라고 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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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름이 대단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뭐가 문제인지 몰라 고개만 연신 갸웃거렸다. 그러나 의문이 드는 것과는 달리 마음은 편해졌다.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보증을 서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양강장제 좀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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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너무나도 쉬운 부탁이었다.

    ​

    “갈름 씨가 쓸만하다고 생각하시면 보스에게 정식으로 말씀하시면 돼요. 그럼 보스가 공식적으로 생산을 지시하실 테니까…….”

    “과학자. 너는 그런 걸로 만족하는 거냐?”

    “만족이요? 딱히 만족이고 자시고 할 거 까지는…….”

    ​

    나야 뭐 지구에 있던 물건을 성분 그대로 베껴서 만들어다가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 물약을 만드는 데 내가 머리를 감싸맨 것도 아니고 돈을 쏟아부은 것도 아니니 만족이니 아쉬우니 말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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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마음 같아선 아무것도 시키지 말고 돈만 퍼줬으면 좋겠지만─ 레갈리아가 자신을 조직의 과학자로서 스카웃한 이상 최소한의 업무는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 수준이 학부생 수준이건 어쨌건…….

    ​

    그러나 갈름은 내 말을 무어라 오해한 건지 얼굴 표정을 붉으락푸르락 바꾸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

    “그렇군. 내가 보스에게 말하면 된다. 이거지?”

    “네. 몇 개 만들어드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꾸준한 공급을 원하시면 아무래도…….”

    “그래. 걱정마라. 네 처우에 대해서도 금방 해결해주마.”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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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무서운 기세를 풀풀 풍기며 떠나는 갈름을 본 나는 내가 무언가 말실수를 했던 게 있나 고민했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건 없었다. 덕택에 갈름 씨가 왜 저렇게 화가 난 건지 이해할 수 없어 한참을 머리를 감싸맸다.

    ​

    ​

    * * *

    ​

    ​

    기업 이블스의 빌딩 최상층. 

    회장의 집무실이 존재하는 이 계층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

    ─멋대로 들어가시면 안…….

    ─시끄럽다-!

    ​

    콰아앙-!

    매섭게 문을 박차고 들어선 호랑이 수인을 본 레갈리아는 매번 있는 일임을 직감하곤 쥐고 있던 깃펜을 내려놓았다.

    ​

    “어이-! 보스! 할 말이 있다!”

    ​

    “……갈름. 아무리 여가 보고 싶어도 그렇지. 여기가 어딘지 망각한 건 아닌가? 엄연히 절차라는 게 있을 텐데?”

    ​

    “그깟 절차에 소비할 시간은 없다.”

    ​

    레갈리아의 말에 코웃음 내뱉으며 소파에 자리 잡은 갈름은 자연스럽게 소파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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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라면 내가 왜 찾아왔는지쯤은 이미 알고 있겠지?”

    “아아…… 어제 그 소식이라면 들었네.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건가? 축하하지. 그렇게나 많은 자원을 쏟아부어도 안 되던 일인데…….”

    “그거, 과학자 녀석이 만든 물약 덕분이다.”

    “……무어라?”

    ​

    레갈리아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듯 두 눈을 껌뻑였다. 잠시 후, 다시금 눈뜬 그녀는 진심이냐는 듯 갈름을 바라보았다. 갈름은 제가 거짓말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고.

    ​

    물론 그녀가 갈름이나 아일레에게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만들라고 에이트에게 지시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도움’이 되는 물건이었다.

    ​

    ‘갈름의 신체를 전성기 수준으로 돌려놓는 물약을 만들었다고? 그것도 일주일만에?’

    ​

    그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인지는 설명조차 하기 힘들었다. 갈름은 이깟 빌런 조직 따위에 소속 되어 있을 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수인왕獸人王 갈름Galeum.

    전직 군인이요 온갖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전설. 수인족만 아니었다고 한다면 지금쯤 원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

    허나 수인족이 받는 종족적 차별과 작전 중 터트린 몇몇 사고 때문에 전역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감옥에 가 있어야 할 인물이거늘 이렇게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부터가 그가 세운 전공이 너무나도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

    그런 갈름이 군인 시절 손에 넣었던 재력이요 인맥, 모든 걸 사용해서도 치료할 수 없던 게 그의 몸이었다. 사실상 세상에 있는 그 무얼 쓰더라도 고칠 수 없는 몸이라는 뜻이다. 

    ​

    ‘그게 말이 되나?’

    ​

    쉬이 믿을 수 없었지만 갈름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어제 보여준 광경은 그가 전성기 때의 힘을 되찾았다는 선명한 증거였다.

    ​

    물론 억지로 믿고 집어 삼키려고 해도 쉬이 믿을 수 없을 만치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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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군…… 역시 여가 주워온 인재야.”

    “그 인재 말인데─ 딱히 본인 대우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뭣이-? 여의 조직이 뭐가 어떻다고-! 업계 최고 복지를 갖췄다고 생각한다만!”

    “녀석쯤 되는 과학자라면 그 정도 복지는 당연한 수준이지. 안 그러냐? 일주일만에 나를 전성기로 되돌리는 약을 만드는 천재라고?”

    “으으으…… 그건 그렇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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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대체 무얼 해주어야 하는 걸까. 레갈리아가 한참 골머리싸매며 고민하고 있을 무렵 갈름은 씨익 웃으며 자신이 과학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달했다.

    ​

    “녀석이 말하기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기는 고작 이 정도 보여주는 걸로는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그만한 업적을 세웠음에도 말인가?”

    “그래. 그리고 하나 더. 보스에게도 적잖은 실망을 내비치더군.”

    “으으음……?”

    “고작 이 정도로 만족할 거냐? 나는 더 할 수 있다!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으니 뭐든지 맡겨라!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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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한 적 없다.

    에이트는 그렇게 말한 적 없었으나, 갈름의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그가 생각한 적 없는 속마음이 수인왕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던 것이다.

    ​

    갈름은 사내로서, 그에게 은혜를 입은 수인족으로서 이를 보스에게 전달해주러 찾아온 것이었다. 물론 이건 에이트뿐만 아니라 보스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에이트가 보스에게 실망을 느끼고 다른 조직으로 떠나가버린다면 크나큰 손실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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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갈름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여도 조금은 더 에이트를 믿어줘야겠군.”

    “그래. 그거다. 우선은 녀석이 만든 물약을 조직원 전부에게 배급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마시면 일반 전투원도 어지간한 C급 D급 히어로는 상대할 수 있을 거다.”

    “……그 정도란 말인가? 여도 한 번 마셔보고 싶군.”

    ​

    무언가를 칭찬하는 모습을 딱히 본 적 없는 갈름이 저렇게나 말하니 레갈리아도 에이트가 만들었다는 물약 자체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그만한 효과가 있다면, 그걸 다운그레이드해서 민간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

    무얼. 레갈리아 그녀는 빌런 조직의 수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세계를 호령하는 세계적인 공룡기업의 회장이기도 했다. 좋은 상품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

    ‘뭐, 당장 중요한 건 에이트에게 더 많은 연구를 주는 건가.’

    ​

    에이트가 들었다면 기겁할 생각을 하며, 레갈리아는 그에게 맡길 의뢰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

    ​

    * * *

    ​

    ​

    “─그렇게 되었으니, 다음은 아일레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만들도록!”

    “……예?”

    ​

    빌런 조직에 가입한 지 일주일.

    아직 한 달도 채 지나기 전이거늘 벌써 두 번째 의뢰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정말 하기 싫다는 듯한 눈빛으로 레갈리아를 바라보았지만, 레갈리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래서? 하기 싫어? 길바닥에 나앉고 싶니?

    ​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네에…… 알겠, 습니다.”

    “아─ 그렇지, 참. 자네가 만든 물약 말일세. 그걸 우리 조직에 공식적으로 배포하기로 했네.”

    “예? 그 말씀은…….”

    “음. 양산도 같이 부탁하네. 그럼 이만.”

    “아, 아아-.”

    ​

    글썽거리던 눈물이 기어이 터져나왔다.

    나는 곧 닥쳐올 과로를 상상하며 절망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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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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