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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서준이 휘두른 나뭇가지를 반사적으로 막아낸 범죄자 친구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뭔…. 미친놈인가?”

   

    세상 어떤 미친놈이 나뭇가지 하나 들고 칼 든 놈한테 덤빈단 말인가. 지가 무림 고수도 아니고.

   

    “잠깐…! 타임! 진짜 잠깐만!”

   

    서준이 손을 휘두르자 범죄자 친구들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너네 뭔데! 그걸 어떻게 막아! 나름 기습이었는데!”

    “저런.”

   

    아무래도 정말 정신이 나가버린 놈인가 보다. 대화를 포기한 범죄자 친구들이 칼을 들었다.

   

    “이런 씹…! 야! 너 미쳤냐!?”

   

    춘봉이 소리쳤다. 서준도 나름 변명할 거리가 있었다.

   

    “쟤들이 내 배때지 갈랐다고!”

    “뭐!? 이런 쌍것들이!”

   

    춘봉이 바락 화를 냈다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뒤로 물러났다. 화가 나는 건 나는 거고, 자살은 좀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

   

    “야, 야. 존나 튀자.”

    “어떻게?”

   

    서준의 말과 동시에 범죄자 친구 중 하나가 성큼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성인 팔뚝보다 커다란 칼이다. 그 면이 넓어 흉악해보이기까지 했다. 모르긴 몰라도 연약한 나뭇가지 따위로는 못 막을 게 뻔했다.

   

    쉬익-!

   

    급히 허리를 숙인 서준의 머리 위로 칼이 지나갔다.

   

    “아, 진짜…!”

   

    지난 며칠 간 달라진 게 있다면 무공의 유무, 그리고 스스로의 몸에 대해 파악했다는 점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이길 수 있는 수에 대해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상대는 칼, 나는 나뭇가지. 무기는 상대가 훨씬 길고, 팔도 당연히 상대가 길고, 힘도 상대가 세고, 그러면 당연하지만 속도도 상대가 빠르다.

   

    “좆됐네.”

   

    쐐액-!

   

    뺨을 스친 칼에 서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쩔 수 없지.

   

    각오한 서준이 범죄자 친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게 미쳤나.”

   

    범죄자 친구가 무릎을 차올렸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 손으로 밀어내며 몸을 옆으로 굴린 서준이 벌떡 일어섰다.

   

    횡소천군. 간단히 말해 가로베기다.

   

    하지만 키가 작은 어린 아이가 구부린 자세에서 휘두른 나뭇가지는 예상보다도 훨씬 낮았다.

   

    뻐억-!

   

    “윽…!”

   

    무릎 옆을 제대로 맞은 범죄자 친구가 휘청였다. 서준은 그대로 오른발을 앞으로 주욱 밀었다. 춘봉의 가르침이 머리를 스친다.

   

    ‘천天은 하늘. 거기에서 따온 태산압정은 말 그대로 태산 같은 기세로 머리를 내리누른다는 뜻이야. 뭔 소리냐고? 그냥 세로베기라고.’

   

    별 도움은 안 됐다. 하지만 이어지듯 삼재심법의 구결이 떠올랐다.

   

    ‘본디 사람은 땅에서 나 하늘로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물이요, 하늘에 닿아 천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인人을 이룸이라. 그 첫째는 검끝의 하늘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문학 작품마냥 해석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저 구결이 머리에 새겨짐과 동시에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가 있었다.

   

    “태산압정太山壓頂.”

   

    검끝이 하늘을 끌고내려온다. 진짜 그랬다는 건 아니고, 이미지가 그랬다.

   

    홀린 듯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리친 검이 범죄자 친구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콰직-!

   

    터져나간다. 나뭇가지가, 사람의 머리가.

   

    사방으로 튀는 다양한 파편들과 붉은 피, 희뿌연 뇌수가 선명히 두 눈에 각인된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듯 범죄자 친구의 목숨이 꺼져가는 찰나가 선연히 보였다.

   

    “덕구야…! 이 씹…! 개새끼가…!”

   

    남은 범죄자 친구 하나가 달려온다. 뿌연 의식 속에서 몸이 움직인다. 손에 쥔 나뭇가지를 검 삼아…,

   

    “아.”

   

    나뭇가지도 같이 터졌지? 지금 맨손이네?

   

    무아지경이 깨져나가고 기겁한 서준이 급히 몸을 날렸다.

   

    쐐액-!

   

    칼이 머리칼을 한 뼘쯤 자르고 지나간다. 서둘러 땅바닥에 몸을 굴렸다. 데굴데굴 굴러 벌떡 일어나자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범죄자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오….”

   

    차가운 시체가 된 범죄자 친구도 저기 있다. 저 친구가 쓰던 검이라도 쓰고 싶지만 그러려면 저곳으로 다가가야 하는 상황.

   

    하지만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살아남은 범죄자 친구가 달려든다.

   

    “쉣.”

   

    어떻게 해야 되지? 복잡한 머리로 일단 피하려던 찰나,

   

    타닥-

   

    춘봉이가 옆을 스쳐지나갔다.

   

    “와, 선생님 최고!”

   

    사내가 검을 내리찍는다. 춘봉은 겁도 없이 그 앞에 손을 뻗었다. 예리한 검날. 그 옆의 넓적한 검면에 손바닥이 붙는다.

   

    쐐액-!

   

    살포시 밀어낸 검의 궤적이 틀어진다. 경악한 사내 앞에서 춘봉이 허리를 틀며 손바닥을 펼쳤다.

   

    “이게…!”

   

    사내는 무시했다. 기껏해야 애새끼. 한 대 맞아주고 저 머리통을 쪼갠다.

   

    무지의 대가는 가혹했다.

   

    투웅-

   

    사내의 복부에 손바닥이 닿았다. 옅은 바람이 퍼져나간다. 그대로 굳어있던 두 인영. 이내 사내의 몸이 굳어진 채 쓰러졌다.

   

    쓰러진 사내의 입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온다. 서준은 무협지의 지식으로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도 같은 이름으로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저것이 장법掌法일 것이라고.

   

    “하아…. 괜찮냐?”

   

    춘봉의 물음에 서준이 픽 웃었다.

   

    “당연하지. 스치지도 않은 거 못 봤냐?”

    “몸 말고. 사람 처음 죽여봤을 거 아냐.”

    “응? 완전 멀쩡한데?”

   

    멀쩡함을 과시하듯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춘봉이 픽 웃는다. 하지만 서준은 오히려 그런 그가 이상해보였다.

   

    “너야말로 괜찮냐? 안색이 새하얀데?”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보고 사실 자기가 안 괜찮은 거 아니야? 건방진 꼬맹이지만 은근히 마음이 여린 꼬맹이기도 하다.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이 이만저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괜…, 커헉…!”

   

    춘봉의 입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내렸다.

   

    “미, 미친….”

   

    당황한 서준이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그러는 중에도 피는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 타는 서준에게 춘봉이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우, 운기조식 할 거니까…. 호법 좀…, 서줘….”

    “어, 어.”

   

    어영부영 춘봉이의 옆자리를 지키고 서자 춘봉이가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서준은 춘봉의 호흡이 안정되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큰일나는 줄 알았네.”

   

    크게 숨을 들이쉬자 피냄새가 확 올라온다.

   

    이제 와서 보니 참 화려하게도 저질러놨다. 머리가 깨져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진 꼴은 빈말로라도 보기 좋다 하긴…, 아닌가? 무림이면 몇 명 정도는 보기 좋다 할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에 비해 춘봉이가 해치운 놈은 깔끔했다. 입에서 피 좀 흘린 게 전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시체였다.

   

    “어?”

   

    진짜 살아움직이네? 놈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서준의 시선이 흘끗 춘봉을 향했다. 춘봉이는 아직 운기조식 중이다.

   

    서준의 상식으로는 운기조식 중에 방해하면 큰일이 난다고 알고 있다. 기맥이 뒤틀리든 그러다 더 나아가서 주화입마가 오든 한다나?

   

    “에잇.”

   

    신속하고 조용하게 움직인 서준이 사내의 머리를 밟았다. 터뜨릴 생각은 아니다.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

   

    대신 춘봉이의 한 수를 떠올렸다. 잘은 몰라도 그런 게 내가중수법이겠지. 겉이 아닌 내부를 타격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퍽-

   

    작은 소리와 함께 사내의 손끝이 축 늘어졌다. 그의 코에서 피가 왈칵 흘러나왔다.

   

    “어휴, 깜짝 놀랐네.”

   

    이마의 땀을 닦아낸 서준이 문득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크게 할 것도 없겠다, 재산이나 좀 불려봐?

   

    ‘어디 보자.’

   

    우선 커다란 칼부터 챙겼다. 무려 칼이 두 자루!

   

    이내 두 친구들의 전신을 샅샅이 뒤지자 나름 쏠쏠하다 할 정도의 돈이 나왔다.

   

    ‘여기 돈은 이렇게 생겼구만?’

   

    누가 봐도 돈처럼 생겼다. 굳이 비슷한 걸 찾자면 엽전? 

   

    무협지에서 흔히 보던 은원보니 금원보니 하는 것까지는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그런 게 있는 놈들이면 여기 안 살겠지.

   

    알뜰살뜰 친구들을 벗겨먹으며 한 십 분쯤 흘렀을까? 여전히 춘봉이는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언젠가는 깨겠지.’

   

    그동안 뭐 할지 생각이나 해야겠다.

   

   

    *

   

   

    뭐 할지 생각하며 반나절 정도가 지났다. 시계가 없어서 정확한 건 아니고, 푸르던 하늘이 붉게 물들었으니 그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진짜 뭐 하지?’

   

    426번 째 고민을 하던 중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 일어났냐?”

    “…얼마나 걸렸어?”

    “글쎄. 반나절?”

   

    꼬르륵-, 뱃속에서 소리가 난다. 춘봉이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윽….”

    “어허, 조심 좀 해라.”

   

    비틀거리길래 부축해주니 아예 몸을 기대온다.

   

    “야, 좀 업어봐라. 힘들다.”

    “이게 존나 당당하네.”

   

    일단 업었다. 꽤 가볍다. 그대로 걸음을 옮기니 춘봉이가 꿍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죽겠네 진짜….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되는 건지….”

    “아, 거 고맙습니다 그려. 덕분에 살았네.”

    “그렇지? 그러면 내일 빙탕호로 하나만 더 뽀려봐라. 아쉬워 죽겠네.”

    “이 새끼.”

   

    당당하기 그지없다. 

   

    “알았다, 인마.”

   

   

    *

   

   

    춘봉이는 집에 와서도 힘을 못 썼다. 농담이 아니라 황천길이 눈앞에 있는 것마냥 골골거리니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다.

   

    “야, 진짜 괜찮은 거 맞냐?”

    “아, 좀…. 괜찮다고….”

    

    괜찮은 놈은 보통 땀을 저렇게 안 흘린다. 거적대기 직전의 옷이 땀에 축축하게 젖은 꼴은 누가 봐도 찝찝했다.

   

    애초에 춘봉이 몸에서는 신기하게도 좋은 냄새가 나지만 옷은 아니다. 춘봉이 땀이 방향제가 아닌 이상 저러면 냄새가 장난 아닐 게 분명했다. 물만 적셔도 기괴한 냄새가 날 텐데.

   

    “하, 새끼 안 되겠네.”

   

    물? 있다.

    천? 저걸 천이라 해도 된다면 일단 있긴 있다.

   

    그러면 준비 끝.

   

    “춘봉이 이놈아 이리 와봐라. 형이 좀 씻겨주마.”

    “…너 건들면 진짜 죽여버린다.”

    “어허, 안 아프니까 와보래도.”

    “하지 마라. 하지 말라 했다.”

   

    춘봉이가 아픈 몸을 이끌고 꿈지럭꿈지럭 멀어진다.

   

    “지, 진짜 하지 말라 했다!? 야! 야! 하지 말…! 이 씹새끼야…! 꺄아아악…!”

    “허허, 어찌 그런 계집 같은 비명을 지르는고.”

    “이 미친 변태 새끼야…! 버, 벗…! 꺄악! 이 씨발!”

   

    거봐, 이 새끼 남자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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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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