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

       레벨은 강함의 척도라고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종합적인 전투력 수치를 두 자리 숫자로 간단히 정리해놓은 것이다.

         

       레벨 1은 그냥저냥 평범한 소시민 정도. 하지만 레벨 10은 숙련된 병사와 같았다. 스킬이나 장비 등의 변수가 있었지만, 글로리 판타지아의 전투 시스템은 대부분 레벨이 높은 쪽으로 기울었다.

         

       레벨이란 곧 신체 능력을 나타내는 척도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레벨이 높은 마법사라면 그보다 훨씬 레벨이 낮은 병사를 주먹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니까.

         

       이걸 게임 내에서는 ‘카르마(Karma)’라고도 표현했지만…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젖혀 두고.

         

       나는 손을 풀었다. 레벨 7에 달한 내 신체 능력은 어느 정도 훈련한 병사 수준이었다. 숙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밑줄은 됐다.

         

       그리고 눈앞의 꼬맹이는 덩치는 크나, 어디까지나 꼬맹이였다. 단순 신체 능력은 내가 훨씬 앞선다는 말. 키가 작거나, 몸이 더 작거나 같은 건 이 세계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카르마 수치가 상대방보다 높다.

       

       

       즉 레벨으로 찍어누를 수 있다는 거다! 단순 어린애 몸싸움은!

         

       “피떡을 만들어주마!”

         

       헥토르가 고함을 질렀다. 꾸득 하고 쥔 주먹이 무척 두꺼웠다.

       그러고 보니 저것에 한 대 맞았었지. 배로 갚아준다고 마음먹었었는데 까먹고 있었다.

         

       고맙다.

         

       다시 일깨워줘서.

       

       

       “입으로 떠들지 말고 덤벼. 새끼야.”

         

       헥토르가 달려들었다. 씩씩거리는 호흡과 함께 딸려 나온 큰 스윙. 공기가 매섭게 갈라졌다. 하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피해냈다.

         

       무를 배우지 않았음에도 보였다. 비어있는 복부와 흔들리는 다리. 상체는 더럽게 큰데, 따라오지 못하는 하체가 흔들거리는 것까지 전부 보였다.

         

       신체 능력이 상승한다는 건, 오감 또한 발달한다는 뜻.

         

       전부 보인다 새끼야! 이거 이거 이제 보니…

         

       상체충이네!

         

       “상체충은 지옥으로! 그것이 신의 뜻이다!”

       [‘라’가 그렇게 말한 적 없다며 이마를 짚습니다.]

         

       헥토르의 복부를 강타했다. 헥토르의 눈이 순간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그가 그대로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지만, 나는 보내줄 마음이 없었다. 쿨럭거리는 헛기침 속에 연이어 주먹을 틀어박았다. 다리를 걷어차고 녀석을 쓰러트린 뒤 힘껏 발을 들어 올렸다.

         

       “감히 내 빗자루를!”

       “자, 잠…!”

       “걷어차?!”

         

       나 또한 걷어찼다.

       녀석의 고간을.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났다. 녀석의 비명은 제법 웃겼다. 필사적으로 다리를 감쌌지만, 그 위로 몇 번을 더 짓밟아줬다.

         

       “라가 외친다! 네 부랄을 부숴버리라고!”

       “악! 악! 악! 그, 그마아아안!!”

       “이 개새끼! 꼴에 남자라고! 유세 떠는 건 좋은데! 나를 감히! 끌어들여?! 내가 시발! 노리지도 않은! 여자 때문에! 왜 맞아야 하는데?!”

         

       녀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깔이 그대로 뒤집혔다. 하지만 성이 차지 않아 그대로 몇 번 더 짓밟아 줬다.

         

       헥토르의 침이 줄줄 흘려 바닥에 닿았다. 다리가 일자로 쭉 뻗어,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기절했군. 아직 반도 안 했는데.

         

       나는 쓱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 날 비웃던 녀석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게 느껴졌다.

         

       “어딜 가?”

         

       나는 활짝 웃었다.

         

       “도망가면 두 배로 처맞는다. 당장 튀어 와라.”

         

       아아.

       이것이 성직자가 아니고 뭐겠는가.

         

       삐뚤어진 아이들을 일깨운다니.

         

       나야말로 진정 교단을 위한 인재로다!

         

       [‘라’가 왜 하필 이런 걸 데리고 왔냐며 이를 갑니다.]

         

       내 주먹이 하늘을 날았다. 아이들의 몸이 땅에 처박혔다.

       여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싱긋 웃었다.

         

       “뭐 해? 얼른 안 튀어 오고.”

       “어, 어?”

       “가르침에는 성별이 없거늘.”

         

       나는 남녀를 평등하게 대하는 사람이다.

         

       “방관자 또한 죄인이로다.”

         

       여자아이들 또한 아낌없이 때려눕혔다.

         

         

         

       . . .

         

         

         

       “…교회의 분위기가 바뀌었구나.”

       “전부 사제님 덕분이에요.”

         

       나는 활짝 웃었다. 열심히 빗자루질하는 헥토르의 다리를 툭 찼다.

         

       “저기 더러운 거 안 보여?”

       “미, 미안…”

         

       미어칸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아이들을 때렸느냐?”

       “설마요. 그냥 좀 친해진 거죠. 그렇지?”

       “마, 맞아요!”

       “마, 말하다 보니 잘 맞아서…”

       “차, 착한 아이에요! 자하드는!”

         

       일부러 안 보이는 곳을 팬 보람이 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잘하고 있어. ‘친구들’. 그렇게만 하자. 알겠지?”

       “으, 응!”

       “아, 알겠어!”

       “교회 제일 말썽꾸러기들이 자진해서 마당을 쓸 줄이야…”

         

       미어칸트가 감격스러운 듯 눈물을 또르륵 흘렸다.

         

       “역시 사람을 바꾸는 것엔 친구만한 것이 없구나. 다 네 덕분이다. 자하드야.”

       “하하. 별말씀을. 그런데 사제님. 달리 할 일이 있으셨던 거 같은데, 정원에는 왜 오셨어요?”

       “아, 그렇구나. 맞다. 까먹고 있었구나. 자하드야. 이리 오거라. 소개해줄 사람이 있단다.”

       “정말요? 누군데요?”

       “네 선배다. 너보다 먼저 들어온 입교 시기가 빠른 견습 사제지. 나간 이는 둘이었지만, 하나가 먼저 순례를 마치고 돌아왔단다. 널 보면 아마 기뻐할 게다.”

         

       그를 따라 교회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덜컥하고 기도실의 문을 연 미어칸트가 불현듯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신께 기도 중이니 조용히 하거라. 신실한 아이다. 네 선생으로서는 딱 알맞지.”

         

       나는 그의 등 뒤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보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여인을.

         

       스테인글라스 너머로 부서진 햇빛을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조용히 흐트러진 은발은 그녀가 입고 있는 낡은 사제복과는 달리 무척이나 고귀했다.

         

       손을 모아 기도한다. 그 단순한 행위가 그녀에게서 펼쳐진 순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한 폭의 그림처럼 세상이 작게 속삭였다.

         

       …성녀.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외모다. 내리깔린 긴 속눈썹도, 가느다랗고 긴 섬섬옥수도 전부 아름다웠다. 흠이라고 한다면, 한쪽 눈을 가로지른 흉터일까.

         

       하지만 그것마저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정도로 그녀는 예뻤다. 순수하고 찬란했으며, 범인이라면 그녀의 숨을 맡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게 분명했다.

         

       변방의 견습 사제로 있기엔 아까운 외모다. 그녀가 만약 사제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그 외모 때문이라도 분명 유명해졌겠지.

         

       거기다가 태양신의 사제라 그런지…역시 그곳도 훌륭…

         

       …그런데 왜 이렇게 낯이 익지?

         

       “……”

         

       그녀가 눈을 떴다. 미어칸트가 작게 속삭였다. 아름답지만 아직 피지 못한 꽃.

       내 또래처럼 보이는 그녀의 이름을 미어칸트가 손수 가르쳐주었다.

         

       “아이린이다. 교단에 입교했으니, 성은 버린 지 오래지. 가족관계가 꽤나 복잡한 아이니, 굳이 묻지 말아라.”

       “…아이린…이요?”

         

       잠깐.

       잠깐.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움에 홀렸던 눈을 바로잡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본 적 있는 외모. 은발에 푸른 눈. 훌륭한 몸매와 차가운 분위기까지.

         

       맞다.

         

       그녀가 맞다!

         

       보통 시나리오 끝부분에 제국의 기사로 이름을 떨칠 푸른 매가 왜 여기 있어?!

         

       “선배님이라고 부르거라. 아이린. 기도가 끝났으면 이리 오거라.”

       “…네. 사제님.”

       “이 아이가 네 후배란다. 며칠 전에 견습 사제로 들어온 아이지. 예쁘게 대해주거라. 착한 아이다.”

         

       목소리가 고왔다. 하지만 걸어와 나를 보는 시선은 딱히 곱지 않았다.

       오히려 철천지원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도움이 안 되는 짐 덩어리를 째려보는 듯한 눈빛.

         

       나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서둘러 먼저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선배님?”

       “감점.”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말을 절지 마세요. 허리를 똑바로 펴세요. 사제는 언제 어디서나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아, 네.”

       “짧게 대답하세요. 말을 늘리는 건 나쁜 버릇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원하지 않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했다.

         

       “아이린입니다.”

       “자하드입니다만…”

       “감점.”

       “…자하드입니다.”

         

       그녀가 나를 째려보았다.

         

       “바쁜 사제님을 대신해서, 후배님의 교육은 제가 대신 맡기로 결정됐습니다. 교육에 앞서, 말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린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조용히 다가와, 내 귀에 입을 가까이 댔다.

       느껴지는 숨결.

         

       그녀가 한 자 한 자 씹어먹듯이 말을 내뱉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당장 교단에서 나가시죠. 해충.”

         

       …일단 하나는 알겠다. 시나리오가 확 틀렸지만, 그녀의 인간성은 그대로라는 것.

         

       제국의 푸른 매. 철저한 합리주의자인 동시에…

         

       남성혐오증을 가진 여자.

         

       그녀가 내 귀에서 입을 뗐다. 표정은 태연했다. 전과같이 무표정했다. 눈썹이 살짝 찡그려져 있기는 했지만 그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녀에게 나는 일부러 웃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제가 한 말 못 들었나요?”

       “똑똑히 들었습니다. 선배님.”

         

       내가 있을 곳은 여기다. 아직 다 털어먹지도 못했고, 털어먹을 게 남아있는 이상, 떠날 수 없다.

       스킬을 잔뜩 늘리고, 어디 가서 얻어맞고 다니지 않을 정도로 힘을 키우는 게 1차 목표.

         

       거기다가…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세요. 선.배.님.”

         

       저렇게 대놓고 도발하면, 승부욕이 안 생길 수가 없잖아?

       나보고 해충이라니!

         

       라를 욕하는 건 참아도, 나를 모욕하는 건 참지 못한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인정하게 해주마!

         

       [자신을 모욕하는 것도 참지 말아 달라고 ‘라’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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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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