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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4 – 병약(아님)>

     

    전날의 소동으로 집사는 깨달았다.

    자신이 담당한 아가씨를 평범한 이맘때 아이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인력지원이라. 다른 사람도 아닌 자네가.”

    “손이 많이 가는 아이입니다.”

    “보스께서 탐탁지 않게 여기실 걸세.”

    “감수하겠습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나?”

    “검에 대한 재능은 천재적입니다.”

    “호오.”

    “활에 대한 재능도 그에 준합니다.”

    “그런데 왜 암살교관의 파견을 요청했지?”

     

    조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보스와 달리, 다른 ‘아가씨’들을 모실 경쟁자들은 오크노디 아가씨의 약점을 분명 쉬이 흘려듣지는 않을 것이다.

    와이히엠하이의 성을 하사받은 집사는 오직 자신뿐이니, 그를 질투하고 시샘하며 어떻게든 아가씨의 약점을 물어뜯으려 들 터.

     

    “은신과 균형감각을 잡는 움직임이 습관처럼 베여있습니다. 태어나기를 암살자로 자란 아가씨입니다.”

    “그렇군.”

     

    집사는 생각했다.

    불면증에 회피성 인격장애 따위의 정신병을 잔뜩 지닌 아가씨에게 대인관계는 어려울 거라고.

    그렇다면 대인관계가 무너져도 괜찮은 클래스의 직업을 얻으면 된다.

     

    “암살자는 검도 쓰고 활도 씁니다.”

    “좋지, 다재다능함은.”

     

    감독관이 결정을 내렸다.

     

    “한 명 보내주지.”

    “감사합니다.”

    “단, 파견한 교관이 아이의 적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시에는 대가를 징수한다.”

    “감수하겠습니다.”

    “어지간히도 자신이 있나보군. 그 자신감만큼의 재능만 있기를 바라지.”

     

    오크노디 아가씨를 맡아줄 암살교관 겸 도우미의 파견이 확정되었다.

     

     

    * *

     

     

    “야간외출은 절대금지입니다. 외출도 저와 동행이 아니라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집사의 취급이 불만스럽다.

    어제오늘 했던 생각도 아니지만 ‘돌 먹는 아이’ 취급 이후로 부쩍 감시빈도가 늘었다.

     

    언제 사고 칠지 모르는 불쌍한 아이.

     

    집사 조나의 머릿속에서 내 이미지는 완전히 이렇게 굳어버렸는지 한 시도 혼자 두려고 하질 않았다.

    덕분에 숨기 기능 경험치가 오르는 속도도 완전히 정체되고 말았다.

     

    “아가씨는 좀 더 자신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소중히 대접받지 못합니다.”

    “딱히 상관없지 않나요? 소중히 대접받는다는 거. 어차피 사람은 혼자 살다 혼자 가는 거잖아요.”

     

    남자일 때의 사고관을 조금만 드러내어도 집사의 눈이 착잡하게 변하며 ‘후…… 존나 잘해줘야겠다.’ 이런 결의를 다지는 눈으로 변한다.

    이러니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덕분에 열심히 수련만 거듭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요즘은 숨도 금방 차고 쉽게 지친다.

     

    ‘여자의 몸이라서 그런가?’

     

    이세계에 빙의되더라도 건장한 근육남캐 떡대라면 덩치와 힘 덕분에 고생을 덜 한다는 인터넷 밈을 본 이후, 근육남캐 외길만 파왔던 인생.

    한 주먹감도 안될 이런 자그마한 여캐는 해본 적도 없으니 여캐라서 그럴 것이다, 라는 가설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분명 여캐라서 스탯빨도 덜 받는 거겠지.

    해결책은 간단하다.

    스탯을 더 올리면 되는 것이다.

    안되겠다.

    옆 마을까지 스탯석 원정이라도 다녀오자.

     

    “외출하고 싶어요. 혼자서.”

    “절대로 안 됩니다.”

     

    문제는 집사다.

     

    “오크노디 아가씨는 몸이 약합니다. 바깥세계의 위협을 온전히 감당하기엔 아직 나이도 어리고 몸의 단련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 나이대의 또래들보다는 훨씬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걸요.”

    “집사인 제가 보기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바깥세상에서 마주할 상대들 또한 또래가 아닌 어른들도 많습니다.”

     

    팩트로만 승부하다니, 비겁해.

    그렇지만 이 게임의 운빨은 어디서 어떻게 억까를 당할지 모르는 위험요소가 있다.

    확률의 장난이 몇 번만 겹쳐도 순식간에 동레벨 대 위험을 아득히 넘어서는 정신 나간 억까의 폭풍이 몰아닥치는 것이다.

     

    “얌전히 식사나 하십시오. 열심히 먹고 훈련해서 충분히 강해졌다 싶으면 동행 하에 외출을 허락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밥은 맛있고.

    스탯석 모으기는 나중에 아카데미에서 바깥으로 외출을 나가거든 따로 하는 수밖에.

    그래도 나 정도면 이미 강하지 않나?

    검술이랑 궁술도 쭉쭉 오르고 있는데.

    그런 불평을 하던 손에서 물컵이 떨어졌다.

     

    “어?”

    “보십시오. 얼마나 팔이 가녀리면 컵도 제대로 들지 못합니까.”

    “아, 아니. 이런 적이 없었는데…. 수련을 너무 열심히 해서 팔에 힘이 빠졌나봐요.”

    “변명은 듣지 않겠습니다.”

    “진짠데…….”

     

    설마 물컵을 떨어뜨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탓인지 조금 충격이 컸다.

    그래, 이런 몸으로 무슨 외출이야.

    당분간은 훈련코스에 근력훈련도 2시간 추가해서 빡세게 해야겠다.

     

     

    * *

     

     

    암살교관이 파견되기 전까지 아가씨가 자신 몰래 외출하지 않도록 감시하려 들었다가는 밤에도 잠을 잘 수 없는 신세가 된다.

    그렇게까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싶지는 않았던 조나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일상생활에서 힘이 충분히 빠지면 밤에 헛짓을 할 체력도 남지 않겠지.’

     

    오크노디 아가씨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집기와 물체는 그 중량이 매일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방금 떨어뜨린 물컵의 무게만 해도 5kg.

    나무컵의 사이에 무게가 잔뜩 나가는 금속을 망간부터 철, 구리 등으로 점점 무거운 금속이 든 컵으로 교체하고 있다.

    적당히 나가떨어진다 싶을 때에 무게증량을 그만 둘 작정이었지만, 놀랍게도 아가씨는 엄청난 근성으로 무게를 올리는 족족 전부 견뎌내었다.

     

    ‘확실히 암살자의 소질이 있으시군.’

     

    장시간 한 자리에서 잠복하거나 무거운 물체를 들어올리는 훈련은 암살자에게 필수적이다.

    실제 암살자들이 어떤 훈련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조나가 생각하기에 암살자라면 그 정도는 할 거라고 생각했다.

     

    ‘교관이 보면 좋아하겠군.’

     

    스승이란 모름지기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제자를 좋아한다.

    암살교관이라도 다르지는 않으리라.

     

    ‘꼭 교관이 아니라도 아가씨 본인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이지.’

     

    길거리마법사에게 속아 아무 물약이나 마시고 주린 배를 채우겠다고 돌멩이까지 삼키는 불쌍한 아가씨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인권은 힘에서 비롯되는 법.

    다시는 위험한 아르바이트로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잘못된 식습관으로 건강에 해를 끼치게 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힘이 있다면 위험한 알바를 하지 않아도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번 돈으로 배불리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강해지십시오, 오크노디 아가씨. 제가 모시게 된 아가씨가 힘이 없어 버려지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

     

    이번 아가씨와는 부디 오래 갈 수 있기를.

    집사는 진심으로 바랬다.

     

     

    * *

     

     

    잘 먹고 잘 자면서 열심히 훈련한다.

    이쯤 되면 혼자서도 외출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이 될 법도 하건만, 오늘은 수프를 떠먹다가 그만 수저를 놓쳤다.

     

    “병약하시군요.”

    “제가요?!”

    “병약하십니다.”

    “아니, 이렇게 검을 잘 다루는 병약한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요? 달리기도 엄청 잘했잖아요!”

    “수저를 놓치셨습니다.”

    “놓쳤죠…….”

    “병약하십니다.”

    “우…….”

     

    집사의 말대로다.

    식사시간에 자꾸만 무언가를 놓치고, 때때로 옷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요즘은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약했나 싶을 정도로 때때로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마이너스 기능이라도 달린 걸까?’

     

    몸을 다루는데 둔한 [몸치]라거나, 쉽게 병에 걸리는 [병약함]이라거나.

    간혹 태어나기를 신체에 부정적인 보정효과를 주는 마이너스 기능을 지닌 캐릭터들이 있다.

    페널티를 감수해서 더 많은 혜택을 끌어내는 공격적인 투자방식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건든 적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몸은 다른가보다.

     

    ‘마이너스 기능은 원래 이런가보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지레짐작할 뿐.

    그치만 이거, 생각보다 경험치가 쏠쏠하다.

     

    [5분 이상 극심한 피로를 이기고 중단 휘두르기를 했습니다.]

    [검술 경험치+1]

     

    남자의 몸이었다면 강인한 근육이 팔을 지탱해주어서 경험치도 쉽게 오르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몸은 조금만 단련해도 팔이 떨리며 경험치가 오른다.

     

    ‘여캐는 남캐보다 능력치 보정효과가 약한 대신에 기능경험치가 잘 오르는구나! 아니면 마이너스 기능의 보상으로 수련효율이 더 증가했나?’

     

    그런 결론이 나올 정도로 경험치 쌓이는 속도로 고인물 기준으로도 몹시 마음에 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여캐로 할 걸 그랬다.

    그래도 식사시간은 불편해.

    하루종일 열심히 수련한 탓인지 포크를 드는 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면요리를 휘어 감으려는데 그만 힘이 빠져서 접시그릇을 포크로 찍었다.

     

    쩌저적

     

    접시에 금이 갔다.

     

    “병약하군요.”

    “…힘을 과하게 줘서 접시에 금이 갔는데요?”

    “접시가 깨질 정도로 힘을 주어야 포크질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분하지만 부정할 수가 없네요…….”

    “깨진 파편이 면에 섞여 들어가면 체내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으니 새 접시에 덜어드리겠습니다.”

     

    나, 병약한 건가…….

    훈련에서 검증한 체력능력치는 상당히 높은 편인데도 병약한 미소녀라니.

    모순적이지만 마이너스 기능의 존재가 있으면 납득이야 간다.

    오히려 힘과 체력이 좋아서 그나마 이 정도나마 버틸 수 있는 걸지도 모르지.

    오크노디의 신체에는 게으름을 부리면 침상에 누워서 골골대다가 죽을 정도로 심각한 마이너스 기능이 있을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아 하십시오.”

    ‘그래도 병약미소녀니까.’

     

    마이너스 기능 다 제쳐두고.

    이렇게 보호를 받으니 묘한 안정감이 든다.

    마치 어미새의 보호를 받는 아기새가 된 기분!

    집사가 떠먹여주는 스파게티를 받아먹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조금 어리광을 부리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중량 치는 병약미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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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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