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

        앨리스와 헤어진 후.

        이리저리 궁상을 떨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되었다.

        

        ‘입학 시험’이라 불리는 테스트를 치를 시간이.

        

        

        ‘이것도 15년만이네.’

        

        

        별 대단한 시험은 아니었다.

        특수한 결계 내에서 치러지는 환상체와의 10단계 모의 전투 시뮬레이션.

        1단계, 슬라임 한 마리라도 잡으면 통과.

        

        부정 입학한 일반인을 걸러내기 위한 테스트기에 가능한 난이도였다.

        

        하지만, 그 쉬운 난이도에도 불구.

        곧 입학 시험을 치를 신입생들은 대부분 잔뜩 긴장한 채였다.

        

        

        -웅성웅성.

        

        “저기 기자들 와있는 거 보여?”

        “저거 봐봐, 헤드헌터들도 와 있어!”

        “하, 긴장되네….”

        

        

        …각성자들이란 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직업군이자, 동시에 아이돌 같은 거니까 말이야.

        히어로 같은 존재라고 할까.

        

        때문에 기자들은 뭐라도 건져 기사 쓸 생각에 몰려들고.

        ‘클랜’에서 파견 나온 헤드헌터들도 눈을 부라린단 말이지.

        

        즉, 지금은 햇병아리 각성자들이 처음으로 세상 앞에 서는 순간.

        긴장하는 게 당연했다.

        

        나 또한 약간은 긴장됐다.

        

        

        ‘앨리스한테 좋은 첫인상 심어주기는 망했지만… 잘 싸우는 모습 보여주면 좀 다르지 않을까?’

        

        

        1화차에서의 내 아내 중 한 명, 앨리스.

        그리고… 또 한 명.

        둘한테 잘 보여야 한단 말이야.

        

        폼 잡는 건 중대 사항이었다.

        

        때문에 난 차례가 올 때까지 묵묵하게 스트레칭이나 했다.

        

        

        “크흠. 그럼, 지금부터 호명하는 순서대로….”

        ‘하나, 둘. 하나, 둘.’

        

        

        다들 카메라를 의식해 멋지게 차려입고 기다리는 와중, 홀로 운동복 차림으로 스트레칭.

        

        …조금 처량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주요 능력치는 3점 초반대. 딱 성인 남성 평균보다 조금 강한 정도.

        이 풋내기들 중에서조차 중하위권일 테니까.

        

        

        ‘아니, 나보다 낮은 애들은 전투계 각성자가 아닐 거 아냐. 사실상 내가 꼴찌인가?’

        

        

        정정. 나, 꼴찌.

        

        각성자들은 각성의 순간, 자기 고유 재능에 맞는 능력치가 꽤 올라간단 말이지.

        근접 계열이면 힘, 원거리 계열이면 민첩, 마법 계열이면 지능과 마력이 오르는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내 고유 재능은 최면.

        제일 쓸모없는 능력치인 운만 ‘우효~ 럭키~’ 하듯 쓸데없이 오른 상황.

       ​ 

        즉, 여기서 난 능력치만 따지면 사실상 꼴찌였다.

        20대 여자애들이 꺄꺄거리는 와중에. 성인 남성인 내가.

        

        

        ‘…입학하면 바로 스텟 펌핑 들어가야지. 서러워서 살겠나, 이거.’

        

        

        스트레칭에 더 탄력이 붙었다.

        

        그래도 내가 전직 S급 1위인데, 고작 능력치 딸려서 밀릴 수는 없잖아.

        무조건 10단계 찍겠다는 각오로 간다.

        

        

        -웅성웅성.

        

        “남자 각성자는 드문데, 거기에 존잘? 하. 카메라 좀 더 큰 걸로 들고 올걸.”

        “회장님. 외모만으로도 쓸만한 남자가 한 명 있는데…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기자들은… 뭐, 상관 없겠지.’

        

        

        지금쯤 기자들은 웬 생도 하나가 난리 법석이라고 뒷담이나 까겠지만, 신경 쓰진 않았다.

        쇼 앤 프루브. 보여줘서 증명하면 될 일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스트레칭하다 보니,

        

        

        -후다닥.

        

        “지,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오. 이번엔 옷 예쁘네.’

        

        

        고정 이벤트. 지각 엘리스도 등장.

        멀쩡해진 옷차림을 보아, 급히 갈아입고 오느라 지각한 게 맞는 듯했다.

        그 여자들한테 복장 지적당했던 게 어지간히도 신경 쓰였나 보지.

        

        그런 생각에 그녀를 멀뚱멀뚱.

       ​

        두리번거리던 앨리스와 눈이 맞았다.

        

        

        “아! 유진!”

        “……?”

        

        

        왜 반가워하는 거지? 첫인상 망하지 않았었나?

        음료수 하나 줬다고 이렇게까지…

        

        

        “음료수 고마워요. 솔눈 동료를 만나서 기뻐요!”

        “아.”

        ‘음료수 줬던 게 그렇게 보였나 보네.’

        

        

        …음료수 때문 맞네.

        

        나야 앨리스의 최애 음료를 알고 있지만, 그녀는 사정을 모르니까.

        

        어라? 이 호불호 최강 음료를 초대면인 사람한테?

        대체 어째서…

        아! 이 사람도 나랑 같은 송충이 과구나!

        이 멋진 음료를 전도하고 다니는 게 분명해!

        

        이런 생각이라도 한 거겠지, 분명.

        

        물론 내게 그런 취향 따위 없었다.

        회귀 전에도 앨리스가 권해서 몇 번 마셔봤는데, 아저씨가 되고 나서도 영 입에 안 맞더라고.

        못 마실 건 아니지만, 굳이?

        

        

        ‘하지만… 앨리스와 친해지기 위해서라면, 솔잎 정도야 감수해야지.’

        

        

        굳이는 무슨. 오늘부터 난 송충이다.

        내 몸엔 솔잎의 눈이 흐른다…!!

        

        

        “어라, 너도 좋아했어? 솔잎의 눈.”

        “예! 영국까지 해외배송 해서 마셨어요!”

        “헤에. 조금 기쁘네. 내가 마시라고 건네주면 다들 싫어하던데.”

        “정확히요! 왜 모르는 걸까요? 이 차가운 맛을!”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한 대가는 달콤했다.

        깎인 호감도를 복구하는 걸 넘어, 이리 얘기할 정도로 친해지는 데 성공했으니까.

        

        오가는 대화 속, 긴장이 점점 풀렸다.

        

        

        ‘얘는 낯을 가리니, 한 달은 지나야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이네.’

        

        

        2주 동안 그야말로 몸을 갈아 넣으며 지낸 탓일까.

        오래간만에 맛보는 호의가. 사랑하는 아내와의 시간이.

        너무나도 달콤했다.

        

        …하긴. 내가 언제 전투할 때 긴장하고 했다고.

        스승님이 말한 내 최고의 장점은, 뭐든지 즐긴다는 거였잖아.

        그런데 꼭 이기겠다고 긴장하다니.

        나답지 않았네.

        

        

        ‘처음부터 잘 할 필요는 없지. 이제부터 강해질 거니까.’

        “그럼… 21번, 서유진 생도. 앞으로.”

        

        

        송충이 모드로 힐링하다 보니 호명된 이름.

        씩 웃으며 일어섰다.

        

        알게 모르게 나를 좀먹던 조급함 없이, 여유롭게.

        

        

        “차례네. 다녀올게, 앨리스.”

        “예! 최선을 다하세요!”

        ‘직역투 느낌 나는 앨리스도 귀여워.’

        

        

        저벅저벅.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시뮬레이션용 결계가 쳐져 있는 대련장 중앙으로.

        

        교관이 입을 열었다.

        

        

        “서유진 생도, 20살. 맞지?”

        “예.”

        “시험 내용은….”

        “숙지하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이 중에서 하나 골라서 시작하도록.”

        

        

        이 중에 하나를 골라라.

        근처 테이블에 쭉 늘어선 무기들 이야기.

        

        여유롭게 눈으로 훑었다.

        롱소드. 대거. 레이피어. 시미터. 망고슈. 해머 등등의 지상 무기. 

        장궁. 투창. 투척용 도끼. 권총…?

       ​

        아니, 총은 왜 있어.

        이딴 엑스트라 전용 무기는 제끼고. 다음.

        

        스태프 류는… 역시 이번에도 별로 준비 안 해뒀네.

        마법사가 귀하긴 귀해, 정말.

        

        

        “아직도 안 정했나? 정한 게 없다면 어울리는 무기를 추천해 줄 수도….”

        

        

        요즘 애들은 이런 걸 쓰는구나- 하며 구경하다 보니 훌쩍 흐른 시간.

        내가 고민 중이라 생각했는지, 교관이 단도 하나를 건넸다.

        

        단호히 거부했다.

        

        

        ‘모양 빠지게 단도가 뭐야. 단도가.’

        “괜찮습니다. 뭘 쓸진 이미 정했으니.”

        “그런가. 무슨 무기지?”

        “이거요.”

        

        

        그러며 척 집어 든 무기.

        노골적인 한숨이 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카타나… 하아. 말리진 않으마.”

        ‘이 정도야? 여전히 이미지 최악이구먼. 카타나.’

        

        

        내가 집어 든 무기는 카타나.

        

        …영 한국에선 취급이 좋지 않은 무기였다.

        

        각성 후 부동의 S급 1위를 차지 중인 내 스승님.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거든.

        당연히 그녀를 동경해 따라 하는 각성자들도 대다수였다.

        

        하지만, 실상은?

        

        

        ‘하긴. 스승님도 별 같잖은 것들이 꼴값 떤다면서 싫어하셨지.’

        

        

        카타나가 무슨 무기인가.

        

        절삭력에 집중한 탓에, 잘 베이긴 하지만 오직 그것뿐인 무기.

        얇은 검신은 아무리 마나로 강화해도 툭 하면 부러지기 일쑤.

        방패도 못 드는 양손 무기인데, 공격 방식은 베기 원툴인 무기 아닌가.

        평가가 좋을 리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도 저평가에 한 몫했다.

        무게란 곧 공격력.

        게임에서도 대검 휘두르면 100 대미지 나오는데, 카타나는 20 뜨고 그랬으니까.

        

        그만큼 장점도 있지만…

        적어도 갓 각성한 초짜가 쓸 물건은 아니다.

        모든 업계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 S급 1위 따라 하겠다며 매년 카타나 들고 설치는 부류가 한가득이니.

        카타나 혐오가 만연한 것도 당연한 결과겠지.

        

        

        ‘반대로 말하면, 잘 쓰면 된다는 말씀.’

        

        

        하지만 난 굳이 카타나를 고집했다.

        

        카타나 쓰는 현 S급 1위?

        내 스승님이자 아내.

        그녀의 직전제자인 내가 카타나를 못 다루겠냐고.

        

        스승님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어디 가서 꿇리진 않았다.

        

        

        ‘애초에 능력치 모자라서 이것 말곤 선택지 없고.’

        “힘이 아직 좀 모자라서요. 무거운 건 좀.”

        “그래서 짧고 다루기도 쉬운 단검을… 하아. 아니다.”

        

        

        카타나를 들고 웃자, 교관의 한숨이 더 커졌다.

        

        그녀만의 반응은 아니었다.

        

        

        -중얼중얼.

        

        “카타나…?”

        “아이카가 또 사람 버렸네. 에휴.”

        “어째 매 년 나오네요. 카타나 고르는 애들.”

        

        

        헤드헌터들도, 기자들도.

        다들 애매한 미소를 띄고 이쪽을 바라보는 중.

        그만큼이나 카타나는 한국에서 멸시받는 무기였다.

        

        …맞는 말이긴 한데, 저런 눈으로 보니 좀 열받네.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무시당하는 건.

        

        반항하듯, 검집에서 칼을 확 빼내들었다.

        멋들어진 발도였다.

        

        

        ‘뭐, 이딴 짓 해봤자 결국 겉멋….’

        

        -띠링!

        

        [반복된 경험으로 숙련도를 획득합니다! 패시브 스킬 자하검법 개改 Lv.4294967295….]

        [오류 발생. 스킬 레벨이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시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킬 레벨을 재지정합니다….]

        [성공! 패시브 스킬 ‘자하검법 개改 Lv.Max’를 획득합니다!]

        

        『자하검법紫霞劍法 개改 (S Rank) – 검리劍理에 통달한 달인이 제자를 위해 개량한 검법. 일본도 사용 시 능력치 추가 보정.』

        

        ‘…뭐고 이게.’

        

        

        발도하는 순간, 카타나에 보랏빛 불길이 눈부시게 뿜어져 나왔다 사그라들었다.

        스승님이 내게 가르치셨던 자하검법의 상징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이 말씀하셨지.

        중요한 건 스킬이니 뭐니 하는 잔재주가 아닌, 진정으로 검을 익히는 거라고.

        그리하면 스킬 따위 없어도 넌 강해질 거라고 말이야.

        

        

        ‘진짜였네….’

        

        -웅성웅성.

        

        “방금 그거 뭐였어!?”

        “고유 재능인가? 근접계?”

        “아니, 그럼 저 교관이 단검을 권할 리가 없잖아. 서포터 계열 각성자한테나 그러는걸.”

        

        

        나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얼떨떨.

        

        오직 한 명만이 박수 칠 뿐이었다.

        

        

        “와, 유진. 너무 멋있었어요!”

        “앨리스?”

        “멋진 모습 보여주실 거라 믿을게요!”

        

        

        앨리스. 내 아내였던 여자.

        이번엔 지키겠다 맹세한, 사랑하는 사람.

        

        …뭐, 잘 됐네.

        덕분에 폼 좀 잡을 수 있겠어.

        

        

        “응. 기대해, 앨리스.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처억.

        

       

        “실은 나, 좀 세거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이파리 님 50코인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의 시오후키를 푸슛

    + 개연성 충만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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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2회차 최면교배 아저씨가 능력을 안숨김
Score 5.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Since I regressed, I decided not to hide my abilities.

“Hypnosis, huh? That’s amazing! Hypnotize me too!”

“How about me, instead of that sly fox? If you join our clan… you, you can hypnotize me!”

…Maybe I exposed it to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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