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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소설 돈키호테의 결말은 새드 엔딩이다.

       

       이상과 광기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기사’라고 굳게 믿은 돈키호테─ 키하노 영감은, 광증에서 깨어나 ‘현실’이라는 마음의 병을 얻어 무기력하게 죽어간다. 돈키호테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은, 이제 돈키호테에게 제발 또다시 꿈을 믿어달라며 애원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현실에 지쳐 꿈을 놓아버린 사람의 말로가 늘상 그러하듯이 말이다.

       

       이 결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중세의 끝과 근대의 시작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적판에 시달리던 세르반테스가 더이상 쓰레기같은 ‘가짜 후속작’이 나오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2부로 이야기를 끝냈다는 견해도 있다.

       

       사실, 중요한 건 해석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면 누가 제정신일 수 있겠소?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오!”

       

       “돈키호테를 추모하자!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을 던지자!”

       

       

       그 결말이.

       

       마른 낙엽의 불씨같던 기존의 과몰입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

       .

       .

       

       주인공의 죽음만큼 과몰입에 방점을 찍는 결말이 또 없다.

       

       창문 바깥이 행진하는 사람들의 고함으로 시끄러웠다.

       

       중세 편력기사 복장을 하고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 저 사람들이 전부 ‘돈키호테’에 과몰입한 독자들이었다. 돈키호테를 추모하겠다며 돈키호테의 묘비명이 적힌 비석을 들고 거리에서 소란을 피우고있던 것이다.

       

       심지어 치안을 관리해야할 위병들조차 저 소란을 냅두거나 오히려 합류하고 있었다.

       

       

       “그나마 셜록처럼 작가를 협박하려고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도련님. 셜록이 누구입니까?”

       

       “성격 더러운 약쟁이 탐정.”

       “도련님께서 아실 정도면 굉장히 실력있는 탐정인가봅니다.”

       

       “실력은 확실하지.”

       

       

       나중에 원래 세계의 추리소설도 한번 ‘표절’해보고 싶긴 하다.

       

       이 세계에는 마법이라는 신비가 버젓이 존재하는만큼 자료조사에 더 힘을 써야겠지만… 생각해보니 추리소설은 좀 어려울 것 같네.

       

       

       “시온.”

       “네, 도련님.”

       

       “저작권법에 대한 입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현재 가주님께서 직접 의회에 편지를 쓴 상태입니다. 의회의 의원들 중에서도 돈키호테의 애독자가 많다고 하니, 입법에 어려움은 없을듯합니다.”

       

       

       과몰입 독자들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리기는 하지만, 돈키호테 2부를 출판하며 목표로 했던 ‘저작권법’의 입안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걸로 가장 골머리를 썩이던 문제는 해결이다.

       

       물론 제국 의회의 법률이 미치지 않는 몇몇 자치령이나 왕국들에서는 여전히 해적판들이 돌아다니겠지만… 그것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작권법이 제대로 자리잡으면 그때는 더 재미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겠지.”

       “…저, 도련님.”

       

       “응?”

       “그런데, 그 저작권법이라는 게 발효되면, 돈키호테를 따라한 재미있는 작품들은 더 볼 수 없게 되는 게 아닙니까? 그건… 도련님의 목표랑 조금 안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만.”

       

       

       시온의 질문에 순간 황당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이 시대 사람들의 평균적인 인식이겠지.

       

       애초에 나부터가 표절이라는 말조차 아까운 기사문학을 수백편씩 읽고 ‘기사문학’의 마스터피스라고 할 수 있는 돈키호테를 썼다. ‘표절이어도 재미있으면 그만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분명 있을 거다.

       

       

       “뭐어, 양산형 소설도 양산형 나름의 즐거움이 있기는 하지. 클리셰에 익숙하다면 더 적은 집중력으로 편하게 읽을 수도 있고, ‘장르적이다’라는 말 자체가 결국 일종의 ‘동일성’에 대한 부분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표절을 막는 건 결국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적어지는 일 아닙니까?”

       

       “시온.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 알아?”

       “분명 성경에서… 전도서, 맞습니까?”

       

       “신앙 생활을 허투루 하지는 않았나보네. 그 말처럼, 결국 모든 ‘작품’이라는 건 다른 작품의 모방일 수밖에 없어.”

       

       

       협탁 위에 놓여있던 책 한 권을 들어올렸다.

       

       출판사에서 직접 받아온 돈키호테 1부의 초판본이다. 그때는 규모가 작은 출판사였던 탓에 찍어낸 초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초판본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서, 만약 판다면 금화 열 개는 받을 수 있을 테다.

       

       

       “예를 들어, 이 돈키호테는 ‘기사문학’의 구조를 흉내냈지만, 그게 ‘돈키호테’가 다른 기사소설을 표절했다는 뜻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건전한 창작 환경이라는 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창작자가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받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영감의 씨앗은 무궁무진한 생명력을 얻는다.

       

       

       “누군가는 표절을 빗겨가기 위해 몸을 비틀 테고, 누군가는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창작물을 창조하기 위해 영감을 불태우겠지. 그렇게 해서 튀어나온 결과물이 정말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닐 거야. 오히려 미숙하고 엉터리같은 결과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시도’들이 작가들이 참조할 수 있는 새로운 영감이 되어 문학사에 꽃을 피울 것이라고 믿어.”

       

       

       돈키호테가 말했듯이─.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우선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하니까. 모두가 똑같은 시도만 한다면 결국 똑같은 결과물밖에 나오지 않겠지.”

       “…도련님께서는, 돈키호테 같으십니다.”

       

       “그거 칭찬이지?”

       “물론입니다.”

       

       

       돈키호테 같다라.

       

       사실 나는 돈키호테같은 이상주의자는 될 수 없다. 자신이 꿈꾸는 미래는, 어디까지나 ‘전생’의 인류가 이미 한번 밟아왔던 ‘이루어질 수 있는’ 미래다.

       

       그 결과물을 알고있기에 이처럼 자신할 수 있었을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돈키호테보다는 산초가 취향인데 말이지.”

       “산초…입니까? 하긴, 도련님께서는 전부터 산초를 굉장히 좋아하셨지요.”

       

       

       이상을 따라다니는 건 언제나 현실의 몫이다.

       

       내가 그릴 미래 역시 다르지는 않을 테다.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걸 창조해낼 창의력은 없지만, ‘전생’의 이상을 따라가고자 하는 열의 정도는 있으니까.

       

       

       “산초는 세속적이잖아? 인간적이기도 하고. 나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솔직히, 저에게 세속하고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을 꼽으라면 도련님을 꼽을 겁니다. 늘상 책 속에 파묻혀 사시는 모습만 봐왔으니까요.”

       

       “이런, 시온 네가 아직 내 진면모를 못 봤구나?”

       “그런 게 있습니까?”

       

       

       세속주의와 냉소주의로 가득 찬,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던 21세기를 살아오던 나다.

       

       이런 평가를 받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내 외투 챙겨. 외출한다.”

       “어디로 가십니까?”

       

       “인세로 많이 벌었으니, 돈 쓰러 가야지.”

       

       

       나는 위풍당당하게 플렉스를 선언하며 시온과 함께 외출했고.

       

       

       “도련님, 책은 여기에 꽂아두면 되겠습니까?”

       “….”

       

       

       책 몇 권과 책갈피 몇 개만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 취미 진짜 없구나….

       

       .

       .

       .

       

       돌링 킨더슬리에게서 급한 연락을 받고 출판사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저, 사장님. 제가 잘못들은 것 같은데… 누구한테서 초대장이 왔다고요?”

       “제3 황자 이드리스 님이요!”

       

       “그분께서 저한테 초대장을 보내셨다고요?”

       “네!”

       

       “왜요?”

       “그야, 호메로스 작가님의 팬이시니까요!”

       

       

       제3 황자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 이드리스는 황족이다.

       

       제위 계승 순위 최하위에 있을지언정, 엄연히 제국의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엄한 존재란 말이다.

       

       그런데 그 양반이 나를 찾는다고? 겨우 책 하나가 잘 팔린 작가에 불과한,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필부를?

       

       

       “이건 대단한 기회예요! 만약 이번에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두시면, 다른 책을 출판할 때 황실의 보증을 받을 수도 있을 테고요!”

       “으음, 잠시만요. 생각을 좀….”

       

       “아, 네! 제가 너무 흥분했죠? 헤헤….”

       

       

       좋아. 정리해보자.

       

       제국의 제3 황자가 나를 초대했다. 내가 쓴 ‘돈키호테’의 팬이라는 이유로.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조금 당황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 정도로 높으신 분이라면 작가 하나 정도 초대하는 게 그리 큰 부담은 아닐 테니까.

       

       중요한 건 내가 이 초대를 받아들여야하냐는 건데….

       

       

       “…만약 초대를 거절한다면, 킨더슬리 출판사에 불이익이 될까요?”

       “네? 거절하실 생각이세요?”

       

       “으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부담스럽네요.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꺼려지고요. 이왕이면 필명과 일상은 분리하고 싶으니까요.”

       “아하, 그렇다면 거절할게요.”

       

       “…네?”

       

       

       저렇게 간단하게 정해버려도 되는 건가?

       

       

       “저희는 작가님의 의사가 최우선이니까요. 작가님께 조금이라도 폐가 되는 일이라면, 단호하게 쳐내야죠.”

       “그으, 황실 측에서 불이익을 준다거나, 그럴 가능성은 없나요?”

       

       “으음,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반반? 이드리스 황자님이 너그러운 성격이면 문제가 없을 테고, 속이 좁은 인간이라면 문제가 되겠죠.”

       

       

       상대방 의사에 달려있다는 말을 참 태평하게 하네.

       

       정말로 별 것 아니라는듯 말해버리니 오히려 내가 더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작가님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시고 집필 활동에만 집중해주세요. 감당은 저희가 할 테니까요.”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후후, 기껏해야 삼족멸 정도 당하고 끝 아니겠어요?”

       

       

       그거 ‘기껏해야’로 퉁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저만 믿고 맡겨주세요, 작가님. 절대 작가님께 폐가 되지 않도록 할 테니까요.”

       “…네.”

       

       

       돌링 킨더슬리의 광신적인 열기에 짓눌린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믿고 맡겨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

       .

       .

       

       “그대가 호메로스 작가로군.”

       “작가님, 죄송해요….”

       

       

       황자의 초대를 거절했더니, 황자가 직접 출판사로 찾아왔다.

       

       어, 이거 꿈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가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매,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즉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서 살았고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돈키호테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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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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