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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흠.’

       

       팔짱을 끼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생각했다.

       

       ‘떨린다.’

       

       그야 성별이 변했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게 된 건 아니지 않은가.

       무서운 건 무섭고, 긴장되는 건 긴장된다.

       

       ‘오디션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솔직히 오디션은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이런 것도 다 경험이죠, 마인드로 했던 게 장점으로 작용했던 걸까.

       

       “어머, 서연아 긴장했니?”

       “아닌데요.”

       “긴장했잖아.”

       “안 했어요.”

       

       이런 때는 또 예리한 수아가 내 속마음을 알고 지적했다.

       내가 뾰루퉁한 눈으로 노려보자, 수아는 큰 가슴으로 꽉 안아주었다.

       

       흥, 됐다. 뭐.

       

       “여기가 스튜디오인가 보다, 들어가자.”

       

       아버지, 주영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튜디오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잘 짐작되지 않았다.

       

       이런 곳에는 처음 와보는 거였으니까.

       

       “아, 오셨군요.”

       

       스튜디오의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CF 감독인 조민태가 인사했다.

       간략하게 아빠와 엄마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우선 스튜디오 내부를 돌아보았다.

       

       ‘신기하네.’

       

       반사판과 촬영카메라 등등, 각종 소품들이 네모난 공간에 놓여있었다.

       거기다 스태프들이 미리 꾸며뒀는지, 꽤나 아기자기한 구성이다.

       

       단순히 좀 넓은 공간이었던 오디션장과는 전혀 달랐다.

       조금 더 전문적인 곳, 이라는 느낌이 확 와닿았다고 해야 되나.

       

       “안녕하세요.”

       “아, 네가 그 주서연이구나. 오늘 연기 기대하고 있어.”

       

       나는 종종종 돌아다니며 스태프들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아이들의 배꼽 인사는 아주 강력한 무기다.

       

       전생에 내가 조카들에게 당했을 때, 무심코 지갑을 열게 될 정도로.

       특히나 귀여운 내가 이렇게 인사를 했으니, 스태프들의 표정이 풀리는 것도 당연했다.

       

       ‘평판 관리는 중요한 법.’

       

       내가 또 버튜버로 성공해서 방송에 타게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때를 대비해 만일을 대비하는 것도 중요했다.

       

       “아이고, 귀엽네.”

       “우리 딸이 저 아이 반만 닮았으면…….”

       

       아니나 다를까 내 배꼽 인사에 탄식이 들려왔다.

       

       ‘응?’

       

       그렇게 인사하며 돌아다니고 있자, 눈에 띄는 여성이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전전긍긍한 얼굴로 고민하는 여성.

       

       ‘김정하.’

       

       내가 아는 김정하는 천만 배우 김정하다.

       이런 ‘성공하기 전’ 김정하의 얼굴은 무척 생소한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김정하 배우님.”

       

       역시 배꼽 인사를 하자, 김정하의 눈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그, 네가 이번 CF에 나온다는 아역이니?”

       “네, 맞아요. 주서연이라고 합니다.”

       

       아역이라는 말이 묘하게 어색했지만, 우선 수긍했다.

       

       “와, 진짜…… 사람이 다르긴 하구나.”

       “네?”

       “……아니야.”

       

       김정하는 물흐르듯 찌그러졌다.

       더 말하기 싫다는 듯 플라스틱 의자에 웅크린 김정하는, 내 생각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그 CF를 찍었다고?’

       

       어느 방송에서도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던 김정하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김정하는,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어떻게 밖으로 걸어 나왔는지 모를 히키코모리, 봇치의 화신 같은 여자였다.

       

       ‘호흡, 맞출 수 있겠지?’

       

       가뜩이나 긴장되는데 김정하까지 이럴 줄이야.

       선배의 위광에 기대려던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정하 씨! 서연 양!”

       

       그때 다른 스태프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게 보였다.

       

       “슬슬 촬영 들어갑니다. 대본은 미리 외워두셨죠?”

       

       대본이라는 말에, 나는 아까 차에 두고 온 것을 떠올렸다.

       오디션 결과가 나오고 우편으로 보내진 광고 촬영대본은 내가 생각한 대본과 많이 달랐다.

       

       빼곡한 대사들이 적혀있는 드라마나 영화 대본이 아닌, 광고 대본은 뭐라고 해야 되나.

       마치 웹툰 같았다.

       

       그림과 대사가 함께 적혀, 장면의 컨셉과 연출을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냈다.

       

       ‘그냥 연기랑은 다르다는 거구나.’

       

       광고 CF 감독은 미적 감각이 중요하다고 한다.

       연출.

       시각적, 청각적으로 사람에게 와닿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니까.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대본을 받아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버튜버할 때 도움 좀 받아야겠다.’

       

       미적 감각이 좋다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

       심지어 조민태는 CF 감독만이 아니라, 후에 천만 감독으로 대성공한다.

       

       게스트 출연까지 염두한다면 여기서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두는 게 중요했다.

       

       “자 그럼 촬영 들어갈게요!”

       

       조민태의 말에, 수많은 사람이 움직였다.

       그렇게 돈이 들어가지 않은 저예산 광고였음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파앗!

       

       조명이 일제히 켜지며,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반사판을 움직였다.

       CF에서 광원은 굉장히 중요하다.

       

       소품도, 배우도 전부 화사하게 나와야 하니까.

       

       “서연 양은 심장이 강철인가 봐. 하나도 긴장 안한 것 같은데?”

       

       그것을 보고 있자, 조민태가 웃으며 말했다.

       오디션장에서와 달리, 지금 그는 확실히 ‘감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럼요.”

       

       태연한 척 말하려 했는데 조금 떨었던 모양인지, 촬영을 지켜보던 아빠와 엄마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한마디 해줘야지.’

       

       어쨌든 목소리를 조금 떤 것을 제외하면, 내 무적의 포커페이스는 무너지지 않는다.

       당당히 팔짱을 끼고 서자, 옆에 김정하 배우가 구부정하게 발을 맞췄다.

       

       “우선 첫 번째 콘티부터 갈게요. 큐 들어갑니다.”

       

       첫 번째 콘티.

       아마 내가 보았던 장면의 첫 번째 대본인 것 같았다.

       

       “자, 액션!”

       

       조민태의 외침과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

       

       김정하는 서연을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다.

       아, 이게 모태 배우구나.

       

       태어났을 때부터 하늘이 배우하라고 점지해준 사람이구나.

       그런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 김정하는 그것을 여실히 느꼈다.

       이렇게나 무표정하던 아이의 얼굴에 단번에 꽃이 피는 광경을.

       

       손에 쥔 두유가, 마치 천상의 음료인 넥타르인 것처럼 달콤하게만 보인다.

       뭣보다 중요한 건, 단순히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언니, 이거 우유야? 두유야?」

       

       생긋 웃으면서 말하는 아이는, 서연이 아니었다.

       대본 속의 아이가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메소드 연기.’

       

       말이 안 되지만 정하는 본능적으로 그 말을 떠올렸다.

       마치, 서연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게 메소드가 아니면, 뭐가 메소드 연기일까.

       

       그런 서연의 연기 때문이었을까.

       김정하는 그런 서연의 연기에 급급하게 맞출 수밖에 없었다.

       

       “흐음.”

       

       그것을 보던 조민태의 입이 비뚤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컷컷, 다시 하죠. 정하 씨 좀 더 자연스럽게 부탁해요.”

       “네, 네.”

       

       촬영에선 보통 어린 아역의 연기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문제였다.

       

       ‘정적인 연기는 자신없는데.’

       

       물론 배우가 이런 걸 가리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김정하는 그랬다.

       

       ‘특히, 저런 괴물 같은 아이랑.’

       

       자신감이 더 떨어졌다.

       역시 자신은 배우랑 맞지 않는 걸까?

       

       “컷! 다시!”

       

       그렇게 몇 번을 더, 첫 번째 콘티를 찍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촬영장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조민태의 눈썹은 점점 찌푸려졌다.

       

       ‘더부룩해.’

       

       조금씩 먹은 두유도, 어쩐지 물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더부룩한 건 두유 때문만은 아니겠지.

       

       “저, 감독님.”

       

       그때, 잠자코 연기하던 서연이 손을 들었다.

       

       “전 두 번째 콘티가 더 좋았는데요.”

       

       천진하게 이야기하는 서연의 말에 주변 스태프들이 푸핫, 하고 웃음이 터졌다.

       보통 배우가 이런 말을 먼저 꺼내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웃은 이유는 하나였다.

       아직 아이니까.

       그리고 여태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서연이기에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느낌이다.

       

       “아, 두 번째 콘티 말이죠?”

       

       조민태는 서연의 말에 두 번째 콘티를 살폈다.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던 조민태로선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콘티였다.

       

       ‘너무 발랄한 컨셉인데.’

       

       그는 힐끗 정하를 봤다.

       

       ‘어렵지 않나?’

       

       정적인 연기는 정적인 연기대로.

       발랄한 연기는 발랄한 연기대로 어려움이 있다.

       

       정적인 연기는 잘못하면, 지금처럼 맹탕이 되어버리고.

       발랄한 연기는 잘못하면 극도로 유치해진다.

       

       지금 정적인 연기도 제대로 못하는 김정하가 발랄한 연기라…….

       

       “음, 그럼 한번 해봅시다.”

       

       어차피 계속 첫 번째 콘티로 해봐야 진도도 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식품 광고 찰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음식을 먹는 것.

       그나마 두유라 먹는 척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정하나 서연이나 먹는 쪽이 감정을 살리기 쉽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촬영이 시작되자.

       

       “어?”

       “괜찮은데?”

       

       스태프들의 눈에 놀람이 담겼다.

       활발한 연기로 바뀌자, 김정하가 놀랍도록 살아나기 시작했으니까.

       발랄한 연기가 시작되자, 그토록 우울하던 김정하의 연기가 살아났다.

       

       아니 살아나다 못해, 텐션이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쟤는 또 그걸 딱딱 맞추네.’

       

       이 광고에서 정하와 서연은 언니와 여동생이라는 컨셉이다.

       깨발랄한 언니와, 명랑한 여동생.

       

       서연의 연기는 이조차 훌륭했다.

       그야말로 생기발랄한 여동생 그 자체.

       

       ‘이거구나.’

       

       단순히 조금 감탄하는 것에 그친 스태프들과 달리, 조민태는 소름이 돋았다.

       지금 연기는 오디션장에서 서연이 보여주었던 연기와 판박이었으니까.

       

       ‘어떻게, 이렇게 똑같지?’

       

       말이 되나?

       대본이 유출됐을 리도 없고.

       

       연기를 멍하니 보고 있던 탓에, 컷트도 제대로 외치지 못했다.

       

       “아, 죄송합니다. 컷, 컷컷! 정말 좋네요. 이거면 되겠는데요?”

       

       여태 고생했던 게 무색하게,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덕분에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은 김정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한 번에? 정말?’

       

       그래도 발랄한 연기에 자신이 있어, 이 상황을 살리고자 필사적으로 연기했다.

       하지만 설마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이 나올 줄은 몰랐다.

       

       ‘얘는, 이럴 줄 안 건가?’

       

       새삼 두 번째 콘티로 하자고 한 서연이 놀라울 정도였다.

       

       ‘우, 우연이겠지?’

       

       설마 노린 거라면 무서울 지경이다.

       대체 자신을 언제 봤다고.

       

       “자, 그럼 한번 확인해볼 테니 정하 씨, 서연 양. 이쪽으로 와주세요.”

       

       정하는 서연과 함께 방금 광고를 촬영한 카메라로 다가갔다.

       작고 네모난 화면에, 방금 그들이 촬영했던 영상이 재생되었다.

       

       「언니, 이거 두유!」

       

       발랄한 서연의 외침과 함께 시작된 영상.

       그것을 보며, 스태프들은 짧게 감탄했고 정하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와, 너무 깔끔한데?’

       

       원래 촬영이라는 게 이렇게 쉬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정하는 슬쩍 조민태의 얼굴을 살폈다.

       

       ‘어?’

       

       조민태의 표정이 어쩐지 찌푸려져 있었다.

       그것은 비단, 조민태 만이 아니다.

       

       서연도 뭔가 생각에 잠긴 얼굴이다.

       

       “이상하네, 이거 분명 참 괜찮은데…….”

       

       조민태는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살폈다.

       김정하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었다.

       

       서연의 연기도 정말 좋았다.

       아닌가?

       이게, 괜찮은 게 맞나?

       

       “다시 찍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조민태가 말하기도 전에, 서연의 입이 먼저 열렸다.

       서연은 CF 촬영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막 촬영한 영상을 보는 것도 처음이다.

       

       하지만, 그래도 눈이 있는 한 이상한지 아닌지는 충분히 구별할 수 있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면.

       

       “제가 못했어요.”

       

       그런 서연의 말을 정하는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방금 촬영에서 뭐가 잘못됐다고…….

       

       ‘아.’

       

       그제야 깨달았다.

       서연이 다시 촬영하자고 한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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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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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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