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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쿠구궁-

       

        별안간 천둥 소리가 울린다 싶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이상한 일이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평소와 같이 영하를 웃도는 한겨울 날씨였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고? 눈이 내리는 것도 아니고?

       

        “안녕! 나는 송수아야.”

       

        우산을 챙기지 않은 덕에 지폐가 젖게 생겼다.

       

        문 닫은 가게 앞, 불량배 무리에게 얻어낸 현금 다발을 주머니에 대강 넣고 있으니 누군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

       

        외국인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유창한 발음이다.

       

        내게 인사를 건넨 것은 금발 머리에 에메랄드 빛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였다.

       

        독특한 사실은 그녀가 입은 옷이다.

       

        노란색 우비.

       

        이 맑은 겨울 날씨에도 비가 내릴 걸 알았던 건지, 그녀는 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우비를 입고 있었다.

       

        “……그래.”

       

        떨떠름하게 그녀를 마주한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하다만…… 기억에 없다. 적어도 아카데미 내에서 알던 사이라면 반갑게 인사를 받았겠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처음 본 사람이다.

       

        “나, 너 봤어!”

       

        생글생글.

       

        반면 상대는 나를 아는 모양이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소녀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날 봤다고?’

       

        나는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

       

        당장 학교 내에서도 친구라 부를 사람도 없었고, 평소 수업을 마친 후에는 기숙사에 틀어박혀 은거기인에 가까운 삶을 보낸다.

       

        그런데 나를 봤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응! 유리몬이 동영상 보여줬어. 동영상 안에서 봤던 남자, 너구나?”

        “…….”

       

        ……유리몬?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보면, 한유리를 그런 별명으로 부르던 녀석이 있던 것 같다.

       

        ‘설마?’

       

        <히사있>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출연한다. 자연히 비중이 적고, 초반에 일찍 퇴장하는 캐릭터도 있기 마련이다.

       

        “송수아라고 했나?”

        “응, 수아라고 불러도 돼!”

       

        쿡쿡, 장난기 가득한 웃음소리를 내던 소녀가 말했다.

       

        ‘송수아……. 이제야 기억 났다.’

       

        내 예상이 맞았다.

       

        한유리를 별명, ‘유리몬’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

        <히사있>의 초반부, 불치병에 걸려 이르게 퇴장하는 조연.

        앵커이자, 기상… 그러니까 날씨를 다루는 힘을 가진 <비를 내리는> 송수아가 바로 그녀였다.

       

        “갑자기 비가 내려서 놀랐지? 미안, 유치원 아이들이 오늘은 꼭 화분의 식물을 화단에 옮겨 심어야한다고 했거든!”

        “…….”

       

        송수아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에 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 이 한겨울의 날씨에 식물을 옮겨 심는다고? 거기다 이 비의 원인이 유치원 아이들의 부탁이었고?

       

        “……착하네.”

       

        딱히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나는 그리 말했다.

       

        송수아는 히어로의 ‘약점’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기후를 조종한다는 세계구급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녀는 불현듯 찾아온 불치병에 의해 죽으니까.

       

        또한 그녀의 죽음이 트리거가 되어 <재창조>의 한유리를 각성시킨다. 친구의 죽음에 피눈물을 흘린 한유리는 감정이 없는 기계처럼, 진정한 ‘여왕’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나 하나 정도는, 그녀에게 살갑게 굴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정말? 후후, 칭찬받았다. 유리한테 자랑해야지!”

       

        내 짧은 감상에 송수아가 환하게 웃었다.

       

        “…….”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것이 제 친구인 한유리와 꼭 닮은 모습이다.

       

        저런 해맑은 녀석이 불치병 환자라니. 진짜 작가의 농간이 선을 넘어도 제대로 넘은 일 아니겠나.

       

        ‘원래, 이런 밝은 애였나?’

       

        송수아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히사있>에서 가장 먼저 퇴장하는 캐릭터. 자연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찍이 떨어져있었고, 공개된 정보 역시 없다시피 했으니까.

       

        ……그냥, 한유리의 각성제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러고보니, 네 이름은 뭐야?”

        “내 이름? 갑자기?”

        “응! 비겁하잖아? 나는 이름을 알려줬는데!”

       

        밝은 목소리에 입이 다물어졌다.

       

        아니, 딱히 궁금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을 아낀 것 뿐이다. 그런데 이걸 두고 비겁하다고 하다니.

       

        “임혜성. D 급이야.”

        “우음, 그렇구나. 신기하네? 유리는 보통 레벨에 따라 사람을 사귀는데.”

       

        푸흐흐, 오랜 친구의 험담을 한 그녀가 다시 한번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참 활달한 녀석이다. 성격도 좋고 낯도 가리지 않으니, 함께 대화하는 타인을 즐겁게 만드는 매력을 가졌다고 해야 하려나.

       

        “혜성이는 어떤 사람이야? 유리가 엄청 관심있어 보이던데?”

        “…….”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처럼, 훅 들어오는 송수아의 질문에 할 말이 없어졌다.

       

        아아, 나는 네 친구를 납치했던 사람이야. 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냥, 평범한 D급 나부랭이.”

        “거짓말. 이건 거짓말이지?”

       

        아니, <비를 내리는>이 아니라 독심술 능력자라도 되는 건가? 

       

        “나는 유리를 잘 알아. 가끔씩 멍청이 같은 소리를 하긴 해도, 그 아이는 절대 평범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

       

        송수아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미약한 경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번쩍!

       

        쿠구구궁-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린다.

       

        보나마나 <비를 내리는> 송수아, 그녀가 자신의 능력으로 날씨를 조종한 거겠지.

       

        ‘더이상 한유리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인가?’

       

        분위기가 급변한다.

       

        송수아의 ‘친절한 미소’가 거짓된 가면이라는 걸 깨닫는데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

       

        괜스레 나를 협박하는 기분이 든 탓에 퉁명스러운 말투가 절로 나왔다.

       

        설마하니 D등급의 능력자가 그런 어투를 구사할 줄은 몰랐던 건지, 송수아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송수아가 한유리보다 한단계 높은 5위의 랭커이며, 전세계에 몇 없는 희귀 능력자 중 하나라는 사실은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 그런데…… 어쩌라고?

       

        “하아, 이제야 본모습을 드러내는구나?”

       

        순간 서늘함 가득한 목소리가 송수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본모습? 황당한 개소리다.

       

        나는 단 한번도 가면을 쓴 적이 없는, 순진무구한 아카데미 학생이란 말이다.

       

        휘오오오-

       

        일순간 기후가 급변한다.

       

        천둥과 번개, 먹구름이 가득하던 하늘이 옷을 갈아입는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지독한 ‘한기’다. 마치 이 거리의 모든 걸 얼려버리겠다는 듯, 뼈가 시릴듯한 냉기가 공간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말해. 유리에게 접근한, 그 근본적인 이유를.”

       

        조금 전만 하더라도…… 천진난만한 함박미소를 짓던 녀석이 맞을까? 

       

        송수아는 섬뜩하고 차가운 표정을 짓고 말했다.

       

        “하.”

       

        절로 한숨이 나왔다.

       

        <비를 내리는> 송수아가 대뜸 내 앞에 나타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설마하니 절친한 친구인 한유리를 보호하기 위함인가? 나는 한유리를 노리는 악의 사도로 점 찍었고?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

        “나, 네 친구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거든?”

       

        뭐,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은 아니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한유리와 송수아는 걸음마를 뗀 순간부터 함께해왔다고 알고있다.

       

        다만 문제는 한유리의 출신 성분이다. 

       

        강력한 ‘창조’의 힘을 가졌기에 그녀는 아카데미 입학 전부터 <재창조>의 한유리라 칭송받았고, 일평생 온갖 금은보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검은 마수를 뻗어왔다. 

       

        그뿐인가? 집안 역시 전세계를 두고 보아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부유하다. 

       

        자연히 그런 주인공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에겐 시기와 질투, 갖은 음모와 유혹이 쏟아지는 법.

       

        예상컨대 송수아는 한유리를, 그러니까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를 온갖 위협에서 지켜오던 버팀목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경계심이 누그러지지 않은 듯, 말을 뚝뚝 끊어서 하는 송수아.

       

        명백한 적대감에 나는 이 대화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극성 진상이네.’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내 반응에.

       

        툭.

       

        비가 내리던 게 거짓말처럼, 새하얀 눈꽃이 내 어깨에 맞닿았다.

       

        “……눈?”

       

        고개를 든다.

       

        그러자 보이던 것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함박눈이었다.

       

        불과 몇분 전만 하더라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 해괴한 날씨의 변화다.

       

        이 함박눈은 송수아가 직접 날씨를 조종한 결과물일까, 아니면…… 그저 그녀의 심상세계의 무의식이 표출된 걸까.

       

        “<비를 내리는> 송수아…… 사람들은 네 칭호를 보고 비를 내리는 능력자라고 착각하지. 현실은 날씨를 조종하고, 번개를 떨어트리는 전능한 존재인데 말이야.”

        “……그걸 어떻게?”

       

        내 말에 꽤나 놀랐는지, 송수아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사실 뻔한 일이다.

       

        그녀의 능력은 ‘비’를 내리는 것이 아닌, ‘날씨’를 조작하는 힘. ‘랭커’에 연줄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는 정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한유리는 물론, 랭킹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꿰고 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송수아에 대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네 과격한 언행은 용서해주지. 나도 알아, ‘시한부’인 네가 얼마나 친구를 아끼고 걱정하는지. 한유리가 걱정되서 이런 말을 하는 거잖아?”

        “……!”

       

        충격적인 사실을 언급하는 내 모습에 송수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아는 거야? 그건 유리도 모르는데!”

       

        처음, 내게 인사를 건네던 때의 여유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송수아는 악에 받친 사람처럼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말해! 너 뭐야? 누구야? 어떻게 그걸 아냐고!”

        “진정해. 그냥… 예언 관련 능력자라고 생각해.”

        “예, 언……?”

        “그래. 한유리가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모두 그런 느낌인 거지.”

        “예언… 또 예언……!!”

       

        예언은 무슨, 물론 거짓말이다.

       

       더군다나, 예언이라는 단어에 발작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송수아의 모습을 보니 묘한 감정도 들었고.

       

        그런데.

       

        “예언……. 진짜 싫어.”

       

        ‘랭커’라는 거인이 허물어진다.

       

        주르륵.

       

        작게 중얼거린 송수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린 것이다.

       

        ……가만히 보고 있기엔 참 불편한 장면이었다.

       

        ‘예언을 들은 적이 있는 건가? 그 예언은 자신의 죽음이었고?’

       

        송수아가 시한부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있기에 내린 판단이다.

       

        히어로이자, 랭커이기 이전에 한명의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처량하게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예언을 들은 적이 있나?”

        “흐윽! 그래. 안젤리카 ‘더 글로리아’ 플리머스. 그 여자한테 들었어.”

        “안젤리카…….”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자,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안젤리카 ‘더 글로리아’ 플리머스.

       

        이명은 <성녀>.

       

        당해에 입학한 1학년 학생이자, ‘신성’의 힘을 각성한 그녀가 이 녀석에게 예언을 전했던 모양이다.

       

        딱히 물어보지 않아도 송수아가 받은 예언은 뻔했다. 죽음, 그 잔혹한 형벌이겠지.

       

        “……그랬나. 그랬던 거였어.”

       

        안젤리카, 그녀는 대단한 존재다.

       

        Z급 중에서도 수위에 이르는 3위의 랭커이며, 예언은 물론 온갖 기적에 가까운 사기적인 힘을 보유했다.

       

        그런 그녀가 송수아의 미래를 예언했으니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게 이 세계의 ‘법칙’이다.

       

        “……예정일은?”

        “나흘… 뒤. 크리스마스.”

       

        훌쩍 거리던 송수아의 목소리에 정신이 멍해졌다.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왜 송수아가 내 앞에 나타나서 한유리와의 관계를 묻고, 검은 속내를 드러내길 원했는지.

       

        그녀는 조급했던 것이다. 

       

        자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홀로 살아갈 친구, 한유리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안젤리카, 그녀의 예언이 죽음이 찾아올 날까지 명확히 짚는 건 차치하고.

       

        ‘미친.’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너무나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문 감사합니다!!!!

    다음 회차는 금일 밤 11시에 올라갑니다.

    [ 예솔지 -> 송수아 ] 로 개명했습니다.

    다음화 보기


           


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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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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