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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끄아아악!”

        

       고아원 안쪽에서 그런 비명이 들렸다.

        

       “음?”

        

       마차를 세워두고 기다리던 두 남녀가 그 허름한 건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에서는 끔찍한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렸다. 남자는 그 비명이 여기 올 때마다 보던 그 노파의 목소리라고 판단했다.

        

       “무슨 일 일까요?”

        

       여자가 초조하게 물었다.

        

       얼굴에 두꺼운 화장을 하여 나이를 따라 생긴 주름을 최대한 감춘 그 중년 여성의 눈이 낡은 건물을 향해 있었다.

        

       비명이 컸는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옆 건물들의 창문에 하나둘 불이 들어왔다.

        

       고아원 창문 너머로도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불은 보통의 불과는 달랐다. 그저 촛불 하나를 켠 것처럼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는, 겨우 방 안을 비출 수 있을 정도의 불과는 다르게 창문 안쪽에서 붉은 혀를 넘실거리고 있었다.

        

       오래된 목조주택이어서 그랬을까. 요즘 들어 스플린 강의 유량이 적어질 정도로 가물었기 때문일까.

        

       바싹 마른 목조주택은 마치 땔감이 타듯이 타올랐다.

        

       “쯧.”

        

       남자가 혀를 찼다.

        

       일반기름의 불길이 아니다. 붉은 불꽃의 깊은 곳에 묘한 푸른 빛이 감도는 것을 보면 증기 기관의 연료로 쓰이는, 마력석 가루를 섞어 넣은 기름이다.

        

       공장 근처에서 몰래 주워온 마력석 조각이었을까? 그 노파라면 충분히 할법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고아들을 보냈던 거겠지.

        

       하지만, 마력석은 불꽃의 크기를 훨씬 더 크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한다. 램프 안에 있을 때는 더 밝고 크게 타올라 쓸만할지 몰라도, 그 램프 밖으로 나가버리게 되면 통제 불능이 되어버린다.

        

       저렇게 불이 붙어버린 이상 소방대가 와서 물을 들이붓더라도 소화가 쉽지는 않으리라.

        

       “……가지.”

        

       남자는 실크햇을 고쳐 쓰며 말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물건이…….”

        

       망설이는 여자에게, 남자는 평소처럼 별다른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분간은 유통처 없이 직접 구하기로 한다. 위험부담이 따르겠지만 어쩔 수 없지.”

        

       남자가 마부석을 향해 손짓하자 기다리고 있던 마부가 고삐를 쥐었다.

        

       “……그리고 새로운 유통처를 찾아봐야겠지. 일이 귀찮게 되었군.”

        

       여자는 불안하다는 듯 이제 완전히 불이 붙은 건물을 다시 한번 보았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여자는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고는 옷깃을 다시 한번 단단히 여미고 남자를 따라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

        

       건물에 불을 지르는 것이 좋은 생각이었을까?

        

       남자를 피하는 것은 성공했다. 시간이 지나도 남자가 억지로 들어오지는 않는 것 같았으니까.

        

       그럴만도 하다. 불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번져서 손쓸 틈도 없이 입구를 그대로 집어삼켜 버렸으니까.

        

       생각해보면 원작에서도 이랬다. 얼핏 보면 내가 살던 세상의 램프와 비슷하게 생겨서 화력이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지만 누가 손쓸 틈도 없이 마구 번져나간 불.

        

       클레어가 쓰러뜨린 램프 하나가 어떻게 그런 화재를 일으키냐는 말을 하던 플레이어들은 많다. 그리고 제작사는 그 이야기에 설득력을 불어넣기 위해 작품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자원인 ‘마력석’을 이용했다.

        

       램프에 들어가는 기름의 효과를 더 좋게 하려고 마력석 가루를 섞어 넣었고, 그 때문에 손쓸 틈도 없이 집에 불이 붙었던 거라고.

        

       불의 색깔은 평소에 라이터에서 볼 수 있는 주황빛이 아니라, 가스레인지에서나 볼 수 있을 푸른 빛이었다. 얼른 뒤쪽으로 물러났지만 그래도 얼굴로 열기가 확 달려드는 것이 느껴지는 뜨거운 불길.

        

       “언니?”

        

       뒤쪽에서 들려오는 불안한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노파의 숨은 이미 끊어졌다. 시체가 어떤 상태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가자.”

        

       나는 얼른 돌아서서 클레어의 손을 잡았다.

        

       일단은 여길 벗어나야 한다.

        

       내가 일으킨 화재가 이 구역을 통째로 태워버릴지도 모른다.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지도 모르고, 무고한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나와 클레어의 안전.

        

       일단 도망가자. 도망가고 난 뒤, 내 능력이나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적어도 한 가지 불행은 막아냈으니까—

        

       “언니.”

        

       하지만 클레어는 내 손을 잡고 반대쪽으로 끌었다.

        

       클레어를 보자, 그 아이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면서도 나의 손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애들이…… 애들이 아직 안에 있잖아.”

        

       “…….”

        

       내가 눈앞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클레어는 나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특별하게 잘해 준 것이 없는데도 클레어는 나를 따르고 있었다. 이건 아마 그 아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천성이리라. 어른들에 의해서 산산이 부서지기 전의 선한 천성.

        

       아니면 그저 자기를 때리고 학대하는 노파보다는 비교적 부드러운 태도의 내가 더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 클레어는 원작에서도 선한 성격이었다.

        

       그 지옥 같은 곳을 탈출한 뒤에도, 자기가 떨어뜨린 램프 때문에 수많은 집이 불타고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걸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죽기 직전에 진행된 에피소드들에서 뿐이긴 했지만, 클레어는 그 황제 밑에 있으면서도, 그리고 성격 나쁜 악역으로 나오면서도 무고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에는 황녀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

        

       이미 한차례 부서진 뒤에도 그런 성격이었으니, 부서지기 전인 지금도 그런 성격이었을지 모른다.

        

       “……그래.”

        

       나는 몸을 돌렸다. 불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만, 아직은 시간이 있었다.

        

       뒷문이 아니라, 2층을 향하는 계단으로 우리는 뛰어 올라갔다.

        

       클레어가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클레어에게 돌아서 클레어의 옷깃으로 입을 막게 했다. 그리고 몸을 낮추고 걸었다.

        

       그래도 아직 집 안이 연기로 가득 차지는 않았다.

        

       2층까지 올라오자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클레어의 손을 잡은 채 힘껏 뛰어서 문을 벌컥 열었다.

        

       “어서, 여기서 나가야 해!”

        

       내 말에 아이들이 비척비척 일어났다. 다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계단으로 다시 내려갈 수는 없었다. 문을 향하자 바로 열기가 확 느껴졌으니까. 아래쪽은 이미 불바다일 것이다. 불길이 아직 1층을 전부 집어삼키지 못했더라도 이미 복도가 연기로 자욱하겠지. 계단을 통해 올라오는 검은 연기는 심상치 않았으니까.

        

       나는 얼른 문을 닫았다. 불을 막을 수는 없어도, 이 방에 연기가 차는 것 정도는 한동안 막아줄 수 있으리라. 열린 문으로 마구 들어오는 것 보다는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쪽이 차라리 낫겠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나는 창문에 달린 낡은 커튼을 뜯었다. 곰팡내가 확 풍겼지만, 적어도 어린아이들의 몸무게 정도는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커튼을 뜯어내는 것을 보고 애들도 얼른 나를 따라 했다. 그렇게 모인 커튼은 총 네 개였다.

        

       커튼과 커튼을 서로 최대한 꽉 묶었다. 좋아. 그래도 어린아이 몸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창문을 열고, 가장 가까운 침대 틀에 커튼을 묶었다.

        

       다행히 불꽃이 건물 밖까지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얼른!”

        

       내가 고함을 치자 아이들이 모두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애들이 커튼을 쥐고 내려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나하나 다 내려보내 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내 멋대로 다 포기할 수도 없고.

        

       클레어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떠밀리듯, 나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불렀다.

        

       “제임스, 두 손으로 꽉 잡아. 내가 천천히 내려줄 테니까.”

        

       내 말에 마치 볏짚을 모아 만든 새 둥지 같은 색깔의 머리를 가진 남자애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끄덕였다.

        

       “다들 내 뒤에서 커튼을 잡아. 침착하게 한 사람씩 내려보내 주는 거야.”

        

       우선은 무거울 것 같은 아이부터. 한 명이 내려갈 때마다 뒤에서 끌어당겨 주는 힘도 약해질 테니까.

        

       그렇게 차례대로 내렸다.

        

       확실히 한 명 한 명이 내려갈수록 힘이 딸렸다. 힘을 받쳐주는 사람의 수가 줄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직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인 내 힘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한쪽 끝을 침대에 묶어놨으니 내 손의 힘이 풀려서 애가 떨어지는 없을 거다.

        

       “먼저 가 있어.”

        

       마지막 순번은 클레어였다.

        

       클레어는 겁먹은 표정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커튼을 꼭 잡았다.

        

       이미 방안 천장에는 연기가 가득했다. 아래쪽 상황은 살피지 못했다. 일단 커튼에 불이 붙지 않은 걸 봐서는 바깥까지 불이 번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

        

       “언니! 다 내려왔어!”

        

       아래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미약한 목소리였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온갖 소음 사이로도 잘 들렸다. 아마 클레어는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리쳤겠지.

        

       “아…….”

        

       하지만 손에 별로 힘이 없었다.

        

       애들을 몇 명이나 계속 내려 보이면서 손에 힘이 빠져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대로 커튼을 잡고 내려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우지끈,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방문에도 불이 옮겨붙었다. 눈과 목이 매웠다. 창문 바로 옆에 있어서 아직 숨을 쉴 수는 있었지만, 여기서 더 늦어지면 정말로 나도 죽게 될지 모른다.

        

       “…….”

        

       나는 커튼을 끌어 올려 내 몸을 묶었다.

        

       이 정도 길이로 충분할까? 아니, 오히려 너무 길면 문제가 생길 거다.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힐 테니.

        

       뭐, 그래도…….

        

       나에게는 몇 번이고 기회가 더 있을 테니까.

        

       나는 허리에 커튼을 묶은 채, 그대로 마지막 힘을 짜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

        

       결과는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했다.

        

       “아……!”

        

       커튼은 충분히 짧았다. 내가 묶은 것을 감안해도 내가 땅에 부딪히기 전에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릴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내 몸에 커튼을 묶었을 때 손에 힘이 별로 없어서 제대로 묶지 못했던 모양이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나는 한순간 커튼 덕분에 몸이 멈췄다가, 위로 가볍게 반동을 받는 와중에 허리에 대충 둘러 묶은 커튼이 풀려버렸다.

        

       덕분에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다만, 그래도 중간에 한 번 감속이 되었기에 나는 큰 상처는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프긴 했지만. 적어도 시간을 되돌려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아이들이 전부 나를 보고 있었다.

        

       뒤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져 돌아보니, 낡은 고아원은 이제 완전히 불길에 휩싸인 채였다.

        

       “불이야!”

        

       누군가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그닥, 다그닥, 말이 달리는 소리가 들리고 커다란 물탱크를 실은 마차가 달려왔다.

        

       “……가자.”

        

       나는 얼른 애들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이미 우리를 본 사람들은 많을 거다. 사방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고 이 동네 사람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으니까. 주변은 그냥 난장판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나도, 클레어도 마찬가지였다.

        

       지도에서 완전히 숨겨지듯 있는 사창가와는 다르게 여기는 그래도 마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 안심이다. 소방대가 왔다면 그래도 불길이 원작의 대화재처럼 번져나가지는 않으리라. 불을 붙이는 데 마법을 쓰듯이, 불을 끌 때도 마법을 쓰는 세계관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누군가에게 붙잡혔다가는 또 이상한 고아원으로 맡겨질 게 뻔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변 사람들이 자기 집에 불이 옮겨붙을까 두려워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와중에 섞여서 도망가버리는 편이 안전하리라.

        

       아이들은 내 말대로 했다.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나를 따르는 이유는, 이제 자신들을 조금이나마 돌봐줄 어른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어디로 가?”

        

       클레어가 물었다. 다른 아이들도 그게 궁금하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야 할 곳을 알아.”

        

       확실하지는 않다. 내가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아마 내 능력이 아주 많이 필요할지도 모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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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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