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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다행히 어젯밤에 보수를 해놓은 덕분에 목책이 완전히 뚫리지는 않았다. 정면을 공격한 고블린 본대는 대부분 목책에 막혀서 전부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소피아와 한스가 해야할 일은 명확했다. 바로 목책 너머로 도약하여 고블린들을 썰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아이작과 라스가 망루에 고립된 디그를 구출.

       

       

       태세를 정비한 뒤에 합류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거기다 지금은 혼란에 빠진 마을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진정하면서 지원을 올 것이다. 한스는 그렇게 믿었다.

       

       

       서걱!!

       

       

       뒤에서 들려오는 칼부림 소리에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마스터는 이미 시작한 것 같으니. 우리도 빠르게 우리 역할을 다 해야겠군. 한스는 검을 들었다.

       

       

       “이 앞은 그 누구도 지나갈 수 없다!”

       

       

       짧은 포효와 함께 바위처럼 떨어진 거대한 대검이 땅을 가르며 고블린들을 휩쓸었다. 이에 질세라 소피아 역시 활을 사용해서 고블린을 하나둘씩 저격하고 있었다.

       

       

       “뒤에 샤먼하고 아처가 있어.”

       

       

       “제대로 훈련받은 고블린들이군.”

       

       

       “아마 고블린 대군의 뒤에 배후가 있을지도?”

       

       

       “뭐가 되었든, 전부 토벌하면 그만이다.”

       

       

       “어련하시겠어.”

       

       

       한스와 소피아가 베테랑다운 모습으로 고블린 본대를 막아내고 있었던 그때. 라스는 멍한 표정으로 아이작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스터가 검을 뽑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갑자기 마스터는 검을 검집에 다시 넣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던 바로 그때.

       

       

       라스는 보고 말았다. 눈앞에 가득했던 고블린들의 머리가 몸에서 한꺼번에 달아나는 광경을. 즉, 마스터는 일격으로 수많은 고블린들의 목을 베어내버린 것이다.

       

       

       “라스! 멍하니 있지 마라!”

       

       

       “네, 네! 죄송합니다!!”

       

       

       “빨리 디그와 함께 후방으로 피신해라. 촌장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전하는 것도 잊지 말고.”

       

       

       아이작의 일갈에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라스는 아이작의 명령대로 재빨리 망루 위로 달려갔다. 그 와중에 디그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패닉에 빠져있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닥치고 가만히 좀 있어!”

       

       

       “너, 넌 뭐야?! 너도 고블린이야?!”

       

       

       “니 동기다. 이 개새끼야.”

       

       

       경악하며 삿대질하고 있는 디그를 보고 있으니, 순간 그냥 기절시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 라스였지만. 어젯밤에 들었던 마스터의 말 덕분에 어찌어찌 참았다.

       

       

       한편, 라스가 디그와 함께 후방으로 빠지는 것을 확인한 아이작은 천천히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곱씹었다. 발도술로만 싸우는 컨셉을 잡은 것은 본인이지만.

       

       

       설마 정말 생각대로 그렇게 구현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확실히 썩어도 준치라고, 길드 마스터를 할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래봤자 쓰레기였지만.

       

       

       ‘발도술 컨셉은 나중에 천천히 정하는 걸로 하고. 지금은 빨리 원군을 가야겠다.’

       

       

       한스와 소피아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아이작이었지만. 그렇다고 저 많은 고블린 본대를 둘이서 계속 상대하게 두는 것은 하책 중 하책이다.

       

       

       언제 어디서 더 강한 전력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하여 최대한 체력을 아껴놓아야 한다. 설령 상대가 잔챙이라고 해도 말이다. 아이작은 빠르게 움직였다.

       

       

       우연히 망루의 뒤에서 돌아가고 있는 고블린 무리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벌레라도 본 것처럼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쓰레기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마스터! 디그를 후방에 데려다놓고 바로 복귀했습니다!”

       

       

       “디그는 지금 어떻지?”

       

       

       “패닉 상태라서 그냥 두고 왔습니다.”

       

       

       “잘 했다. 너는 싸울 수 있겠나?”

       

       

       “네! 싸울 수 있습니다!”

       

       

       아이작의 질문에 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게 대답했다. 적어도 옛날에는 이렇게까지 남을 위해서 싸우고 싶었던 감정은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다르다.

       

       

       ‘마스터에게 인정받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실력을 보여줘야만 해……!!’

       

       

       마스터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라스로 하여금 행동에 용기를 부여하고 있었다. 거기다 베테랑들과 함께라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 또한 되어있었다.

       

       

       “좋다, 그럼 바로 그 둘에게 합류하도록. 나는 저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고블린들을 처리한 뒤에 합류하겠다.”

       

       

       “고블린들이 또 따로 있습니까?”

       

       

       “그래. 보아하니 뒤에서 습격하려는 놈들로 보이는군.”

       

       

       “쓰레기들 주제에, 용케도 거기까지 머리를 굴렸군요.”

       

       

       “저들에게도 지휘관이 있다는 뜻이겠지.”

       

       

       고블린 자체는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물론 아무 힘도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예외겠지만. 적어도 기드온에서 영웅으로 활동할 정도라면 위협은 안 된다.

       

       

       그러나 지휘관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애초에 고블린들은 인간들의 숫자에 맞춰 혼돈이 만든 병사들. 그렇기에 지휘관에 따라서 위험성은 차원이 달라진다.

       

       

       ‘아무래도 머리가 제법 굴러가는 녀석으로 보이는군.’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둘 생각은 전혀 없는 아이작이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기 위해서 아이작은 빠르게 따라붙었다.

       

       

       덕분에 아이작은 고블린들이 뚫어놓은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바깥에서 뚫은 게 아닌, 안쪽에서 뚫은 구멍이었다. 배신자가 있는 건가?

       

       

       그러나 의심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고블린들이 들어간 구멍은 마을 사람들이 대피한 피난처로 바로 통하는 구멍. 여기서 늦었다가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

       

       

       “어디를 들어가는 거냐?!”

       

       

       짧은 포효와 함께 내질러진 참격. 섬광처럼 쏟아진 발도가 또다시 고블린들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태산과 같은 포효 소리에 고블린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고블린들이 뚫어놓은 구멍은 참격과 함께 반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당연히 이미 안으로 들어간 고블린들 또한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고블린을 정리한 아이작은 그제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주저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설마 고블린들에게 해를 당한 것인가?

       

       

       아이작은 재빨리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단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아이가 자신보다 어린 아이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던지다니, 훌륭하다.”

       

       

       아무래도 이제 다 끝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질끈하고 눈을 감고 있던 아이의 눈이 그제야 떠졌다. 아이와 눈을 마주친 그 순간, 아이작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반짝거리는 황금색 눈동자.

       

       

       틀림없다. 이 녀석이 바로 주인공 지크였다.

       

       

       가만있자, 여기서 할 수 있는 멋있는 대사가…….

       

       

       * * *

       

       

       “나는 영웅이 되고 싶어요!”

       

       

       동화를 읽은 어린 아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꿈. 원래는 부모가 그 꿈을 긍정했겠지만. 애석하게도 아이에게 부모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는 마을에서 고아였다.

       

       

       가족이라고는 자신보다 더 어린 동생 한 명 뿐. 덕분에 아이는 아주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마을의 허드렛 일을 도맡아 해야했다.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잡일을 도와주고 약간의 음식과 생필품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시간대였다. 그래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은근슬쩍 사람들에게 흘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너는 될 수 있다는 응원을 듣고 싶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대부분 싸늘했다.

       

       

       [영웅이라고?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건가?]

       

       

       [네게는 가족이 있잖니.]

       

       

       [헛소리는 그만하고 일이나 돕거라.]

       

       

       그 누구도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천애고아의 꿈 따위, 긍정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차가운 현실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나 주제에 무슨 영웅이야.

       

       

       일단 동생부터 먼저 챙겨야지.

       

       

       머리로는 이미 포기했지만. 가슴은 아직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영웅들이 고블린을 물리치는 모습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그러나 그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피난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고블린들과 마주치고 말았던 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도망치면 그만이니.

       

       

       “뭐야? 왜 여기 혼자 나온 거야?”

       

       

       “야, 너……!!!”

       

       

       동생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동생이 갑자기 나타나 놀라는 바람에 소리를 흘리고 말았고.

       

       

       그 소리를 듣고 고블린들이 이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으니까.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동생을 끌어안고 말았다. 지금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벌써 죽어버렸나 싶어 눈을 살짝 뜬 그 순간, 아이는 보고 말았다.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발.

       

       

       차가운 표정으로 순식간에 주변의 괴물들을 모조리 정리해버린 남자의 모습을. 잠시 주변을 살펴보던 남자의 시선이 곧 아이를 향했다. 그리고 남자는 입을 열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던지다니, 훌륭하다.”

       

       

       “저도 영웅이 될 수 있을까요?”

       

       

       뜬금없는 질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겨우 했을 정도로, 아이는 절박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답을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나온 말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아이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남자는 이내 피식하고 웃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였다. 역시 나는 영웅이 될 수 없는 건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멋대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가족을 위해서 목숨을 던진 네가 영웅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냐.”

       

       

       “……네? 그 말은…….”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던진 그 순간부터.”

       

       

       하지만 아니었다. 멋대로 내려진 결론이 머릿속에서 다시 지워진다. 마을에서 잡일을 하면서 쌓이고 쌓인 울분과 부정을 지우고. 그 자리에 덧씌워진 단 한 마디.

       

       

       “너는 이미 영웅이다.”

       

       

       가장 듣고 싶었던 그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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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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