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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당신이 눈을 뜨자,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마천루와, 달밤을 수놓은 별들을 가리는 형형색색의 LED. 

       낮선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말 없이도 지나가는 4륜 마차.

       

       복잡하고 소란스럽다는 인상.

       그러나 혼란 속에서도 질서는 있었습니다. 

       

       재질을 알 수 없지만 깔끔하게 닦인 검은색 도로는 오로지 4륜 마차만이 나다니고 있었습니다.

       검은색 도로 위에 그어진 흰색 선만이 예외입니다. 그 위로는 사람들이 지나다녔습니다.

       

       변형된 생김새의 가로등에 빨간 불이 점등하면 멈춥니다.

       파란 불이 점등하면 걷습니다. 직관적인 움직여 / 움직이지 마 의 표시였습니다.

       

       당신의 이 모든 추측이 옳다는 전제 하에⋯⋯.

       

       당신은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 교차하는 검은색 도로 한 가운데에 서 있고.

       또한 빨간 불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빵──! 빠앙──!

       

       시끄러운 소음이 쏟아집니다. 음악은 만국공통의 언어이고, 당신에게는 이 소음이 위협 내지는 경고로 들립니다. 4륜 마차에 탑승중인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면, 경고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낮선 세계에 난데없이 툭 떨어지고야 말았는데.

       

       ===============================================================

       

       “외국인이세요? 아니, 허, 나 참⋯⋯. 외국인이어도 빨간 불 파란 불은 알 거 아냐. 레드 라이트. 그린 라이트. 롸잇? 왜 도로 한 가운데서 우두커니⋯⋯ 태식아 너 토익 몇점이랬지?”

       

       “아이씨, 저 스피치 안 돼요!”

       

       “그럼 여기서 누가 쓰피치 할 줄 아는데. 토익 땄다며 인마! 아유, 나는 모르겠다. 네가 어떻게 말 좀 해 봐.”

       

       “아이, 씨⋯⋯ 진짜. 헤이, 얼 유 오케이? 엄, 히얼 이즈 폴리스 오피스. 앤드 유 어 크리미널. 비커즈 유, 유 돈트 무브 엣 뛰뛰빵빵⋯⋯.”

       

       “야, 뛰뛰빵빵이 뭐냐 이 새끼야!”

       

       “아 그럼 반장님이 해요!”

       

       

       뚱뚱이와 홀쭉이가 서로 성질을 내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니, 다시 보면 싸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눈빛에 악감정이 없었으니, 친한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다소 거친 커뮤니케이션에 가깝겠죠.

       

       두 사람은 갑작스레 생겨난 곤란을 처치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짐을 떠넘기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 ‘곤란’ 이었고요.

       

       당신의 명민한 지성은, 저들이 일종의⋯⋯ ‘경비대’라고 추측했습니다.

       뚱뚱이보다 계급이 낮은 것으로 보이는 홀쭉이는, 당신에게 종이와 펜을 내밀었습니다.

       

       “이름이 뭐에요? 왓츠 유어 네임?”

       

       이름이 무어냐.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당신과 이 세계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군요.

       

       종이가 확대되는 듯 합니다. 시야에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검은색 네모 칸. 이곳이 이름을 적는 칸인 것 같습니다.

       

       당신은 펜을 집어들어서 이름을 적었습니다.

       

       ‘유나 유렌스토 바이올렛아이리스’.

       

       ===============================================================

       

       “탑주님, 그런 이름이었어요?”

       

       귓가에 불쑥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자색 마탑주 유나는 놀라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마탑의 사고뭉치에게 익숙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닳아버린 것이다.

       

       녀석은 인간관찰이니 뭐니 하면서 수많은 장난을 쳐댔으니.

       길쭉한 이름에 대해 궁금해하는 눈치여서 디테일하게 대답해주었다.

       

       “응. 유렌스토 백작가의 사생아였고, 사실상 절연 상태지만 호적에서 지워지지는 않았어. 아버지는 유나 유렌스토를 싫어하지만, 자색 마탑주 딸은 두고 싶어 하니까.”

       

       “바이올렛아이리스는?”

       

       “마탑주로 인정받았을 때 황실에서 나한테 내린 성씨야. 가문의 성씨보다 우선해서 적용하기 때문에 ‘유렌스토 양’이 아니라 ‘바이올렛아이리스 양’이라고 불러야 해.”

       

       “긴데요.”

       

       “마탑주라는 좋은 대명사가 있잖아.”

       

       “알고 지낸지 8년쯤 지났는데 처음으로 이름을 알았잖아요. 써먹어 보고 싶어서.”

       

       “⋯⋯맘대로 하든지.”

       

       

       유나는 고개를 돌리면서 대충 대답했다.

       대화에 능숙한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이런 종류의 대화라면 어떤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게 된다. 

       

       그러면 이름으로 마음껏 불러보련, 하고 대답할 수도 없지 않은가. 부끄럽게시리.

       

       작은 마탑주의 눈동자에 세계가 비추었다.

       이상한 천재가 만들어 낸 신비한 세계다.

       

       이 사실적인 세계는 환상 마법일 것이다. 유나는 스스로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소리, 냄새, 엉덩이 아래로 닿는 의자의 감각, 저 앞에서 떠드는 이세계 경비병들.

       

       그 녀석이 지금까지 환상 마법으로 쌓아 온 행보를 본 적 없었더라면, 드디어 미친 마법사가 차원이동 마법을 개발했구나 착각했을 것이다. 이 세계가 어떻게 환상일 수 있겠는가.

       

       무시무시한 재능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집중해보면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다. 이세계 경비병들이 나누는 대화는 대륙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미는 머릿속에 때려박히듯이 이해가 되었다.

       

       이상한 상황을 이상하지 않게 느끼도록 만드는 환상마법의 기술,『흐리기』를 사용한 걸까.

       어쩌면 사고가 의심에 닿지 않도록 교묘한『인지둔화』를 사용한 걸지도 모른다⋯⋯.

       

       그럼, 벗어날 수 있을까.

       

       환상 마법의 승부처는 정해져 있었다. 피시전자가 마법으로부터 벗어나느냐 마느냐.

       보잘것 없는 환상이라도 벗어나기 어렵다면 좋은 환상 마법이고, 아무리 치명적이고 화려한 환상이라도 벗어나기 쉽다면 나쁜 환상 마법이다.

       

       이 세계는 이미 역사서에 남을 만한 환상 마법이었다. 이제는 -그러나 이 마법에는 이러한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라는 코멘트가 덧붙여지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마탑주 유나는 마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몽롱함이 느껴졌다. 마력을 움직이는 법이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애초에 이 세계는 마법이라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정성껏 구축해 놓은 마나 하트도 느껴지지 않았다.

       

       환상 마법의 작용이리라. [이 세계에는 마법이 없고 너 또한 마법을 쓸 줄 모른다.] 라는 내용의 『최면』이 가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최면은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는 있어도, 정말로 없앨 수는 없다.

       

       느껴지지 않지만 마나 하트는 있다. 떠오르지 않지만 나는 마법사다. 자신이 마법사라는 판단의 근거가 믿음뿐일지라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까지 노력해 온 시간들이 무가치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에.

       

       

       손 끝에서 비눗방울이 떠올랐다.

       

       비눗방울 안에서는 드래곤이 날아다니거나, 하트라는 이름의 홀로그램이 남자를 꼬시거나, 집사 군단이 자색 마탑을 무자비하게 유린하거나 하는 이미지가 스쳐지나갔다.

       

       파렛트 위에서 섞여가는 물감처럼, 이미지들도 느긋하게 소용돌이치며 섞여간다. 반짝이는 투명한 비눗방울에 조금씩 검은 액체가 차오르는 듯 했다.

       

       『바이올렛아이리스의 결집된 추억 마수정 폭발』이라는 풀네임은, 미학적일지는 몰라도 마법의 본질을 설명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이 기술을 마탑의 사고뭉치에게 보여줬을 때, 그는 『정보 폭탄』이라고 말했다.

       

       파삭.

       

       비눗방울의 표면에 실금이 갔다. 높아지는 내부 압력이 임계점을 넘으면 비눗방울은 폭발할 것이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응축된 정보가 환상 마법으로 구축된 이 멋진 세계를 찢어놓을 것이었다.

       

       만약 세계가 버텨낸다면, 유나는 마탑주 자리를 겸손하게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에렐렐렐레렐레.”

       

       “흐끼야──아아아아악!!”

       

       마탑의 사고뭉치가 마탑주 유나의 귀를 무자비하게 핥아대었다.

       집중은 깨졌고, 비눗방울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유나는 치명적인 습격에 공격당한 부위를 손으로 보호하며 땅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손 끝에서 묻어나는 미끌미끌한 액체에 한 번 더 비명을 질렀다.

       

       “무, 뭐뭐뭐 뭐하는 짓이야──!!”

       

       “기껏 만든 걸 왜 찢어놓으려고 하세요. 그거 터졌으면 박살났음.”

       

       “마, 말로 하라고오!”

       

       “말은 좀 부끄러워서.”

       

       “네가! 네가 지금 한 게 부끄러운 짓이야앗!!”

       

       “마법에 대한 테스트는 나중에 해요. 오늘 보여주고 싶었던 건 마법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세계⋯⋯ 제 고향이니까요.”

       

       “고향?”

       

       “제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말 안 했나요?”

       

       “안 했어!!”

       

       “뭐, 중요한 것도 아니고⋯⋯ 아무튼 풀 코스로 대접해 드릴테니까 가요. 지구는 이것저것 발전했지만, 식도락 문화가 또 엄청나니까.”

       

       “⋯⋯⋯⋯.”

       

       자색 마탑주 유나의 고성능 두뇌는 이세계 요리법에 대해 유의미한 기대를 해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냈고, 침샘 가동을 명령했다. 유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 가자.”

       

       “옙.”

       

       ===============================================================

       

       영업 개시한지 십 분도 안 되어서 좆될 뻔 했다.

       그 쪼그만 비눗방울이 터졌더라면 내 환상 마법은 그대로 찢겼을 것이다.

       

       내 피규어 진열장 위로 휘둘러지는 풀스윙 야구배트를 보는 것 같은 기분!

       이거 보여준다고 들어간 시약과 사전준비가 대체 얼만데⋯⋯!

       

       자색 마탑주는⋯⋯ 그러니까 자색 마탑주 유나 바이올렛 어쩌구는 이따금씩 몹시 호전적이었다. 지나가다가 시연중인 환상 마법을 보면 ‘차면 부러지나?’ 하고 한 번 툭 건드려보는 것이다.

       

       그렇게 마법이 박살나는 가엾은 피해자들이 일주일에 셋 쯤 된다.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식은땀이 쭉 났었다.

       마법적인 기교로 주문을 막아내는 건 무리였다. 내가 아무리 모든 마탑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마법천재라지만, 천재가 커서 된 게 마탑주니까.

       

       약자가 강자를 이기려거든 졸렬하게 의표를 찔러야 하는 바.

       

       내 뉴런이 내놓은 최적해가 바로 에렐렐레였다.

       남자에 대한 면역이 0에 한없이 가까운 마탑주에게는 먹히겠다 싶었지.

       

       이제 위험도 해결했으니 즐길 시간이다.

       김치, 삼겹살, 칼국수, 기타등등.

       

       여기까지 연구지원금을 서포트 해 준 마탑주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식』을 알려 줄 차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
    정말 기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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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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