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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내가 커다란 강아지에게 달려드니 주변은 아주 난리가 났다.

     

    “망나니가 개 목을 졸라 죽인다!”

    “불쌍한 개를 때려 패고 있어!”

    “대낮부터 술을 먹었나? 누가 말려봐!”

     

    거 참 편견 심한 사람들일세.

     

    진료야 진료.

     

    자격증은 없으니 돌팔이 진료지만 별 수 있어? 한시가 급한데.

     

    막스의 목을 만져보니 확실하게 느껴진다.

    주먹만 한 뭔가가 걸려있다.

    커다란 나무 열매나 돌멩이를 삼켰다가 기도에 걸린 모양이다.

     

    이 세상은 이게 문제다.

     

    아픈 건 치유술로 고치는 게 상식이고, 치유술은 외상이든 질병이든 구분 없이 치유한다.

     

    그러다 보니 다친 원인을 파악하는 건 뒷전으로 미뤄놓는다.

     

    치유술 만능주의가 본래부터 팽배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배우지 못한 일반 시민들이 치유술에 의존해야 그만큼 종교의 힘이 강해지니까 생겨난 현상이다.

     

    종교로 나라를 통치하는 법국에서 시작한 풍토라고 하는데, 몇백 년이 지나니 사람들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혔다.

     

    문제는, 치유술은 만능이 아니다.

     

    어떤 부상이든 고치지만 효율이 떨어진다.

    이런 경우에는 특히나.

     

    숨구멍이 막혔는데 산소가 통하지 않는 폐나 뇌를 고쳐봤자 죽음까지 고통받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지.

     

    ‘뭐, 시대상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지만.’

     

    위생이나 감염에 대한 개념도 없는 시대다.

     

    해부학도 발달하지 않아 신체구조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다.

     

    ‘이건 치유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해.’

     

    응급처치다.

     

    방법은 간단하다.

     

    나는 양팔로 막스의 허리를 감아 안아 들어 뒷다리가 위로 오도록 일으켜 세웠다.

     

    “도련님! 당장 그만두십쇼!”

     

    치유사들이 내가 미친 짓을 한다고 생각하여 난리가 났다. 아버지도 당황하며 땀을 뻘뻘 흘린다.

     

    하지만 한 명.

     

    아셀라는 어쩐지 조금 다른 눈빛이다.

     

    반쯤은 혼란. 반쯤은 기대.

     

    내가 뭘 보여줄지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나는 허리를 숙인 채 막스를 껴안은 상태다. 두 손을 겹쳐 왼손은 주먹을 쥐고 단단히 잡는다. 무릎은 살짝 구부려 힘이 잘 전달되도록 한다.

     

    주먹을 막스의 명치에 가져다 놓고 있는 힘껏 당겼다.

     

    “흡!”

     

    막스가 컥컥대는 소리가 커진다.

    다섯 번 압박을 반복하지만 변화는 없다.

    첫 번째는 실패인가.

     

    “아이고야!”

    “도련님이 개를 죽인다!”

     

    즉시 팔에 힘을 뺀다.

    다시 강하게 힘을 주고 한 번에 팍!

     

    ―켈록!

     

    이번엔 막스가 조금 다른 기침소리와 함께 입에서 툭, 커다란 덩어리를 뱉어냈다.

     

    허억허억 급히 숨을 몰아쉬는 막스. 녀석이 뱉어낸 걸 보니 단단한 과일이었다.

     

    원, 달콤한 냄새에 급하게 입안에 넣다가 목이 막힌 건가.

     

    막스가 비로소 네 발로 서서 바닥을 향해 몇 번 더 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어느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짓고 꼬리를 흔들었다.

     

    뭐, 아픈 티를 안 내는 것도 강아지들의 특징이지.

     

    나는 진이 다 빠졌기에 잔디밭에 주저앉았다. 막스가 너무 무거워서 땀범벅이었다.

     

    몸이 너무 허약해. 운동을 좀 해야겠다.

     

    막스가 내게 와서 얼굴을 부비적대길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니, 이게 대체….”

    “도련님이 지금 뭘 하신 거지…?”

     

    얼을 타는 치유사들에게 대답해줬다.

     

    “하임리히 요법이라고 해. 이물질에 의한 기도폐쇄 상황에 쓸 수 있는 응급처치법이야. 흔히 쓸 수 있으니 알아둬.”

     

    내 말이 뭔지 알아듣지 못한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나중에 얘들 모아서 인공호흡하고 같이 강의라도 해볼까?

     

    혹시 모르지. 내가 위급할 때 살려줄 녀석이 하나쯤은 있을지도.

     

    “세상에, 대단하구나. 이런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쓸 줄이야.”

     

    아버지가 성서를 접으며 감탄했다.

    평생을 치유술만 써온 그에게는 신선한 장면이긴 했을 터다.

     

    “이 강아지를 못 살렸다면 황녀 전하, 나아가 황비 전하께도 큰 실례가 됐겠지. 가문의 망신이었을 게다. 네 덕분에 위기를 넘겼구나, 아들아.”

     

    아버지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나를 부축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제가 고트베르크 가문의 장남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발 벗고 해야 할 일이었지요.”

     

    “허허,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듬직하게 변했는지. 치유술을 독학하기라도 했느냐?”

     

    “아, 치유술은 아니었습니다.”

     

    내 대답에 아버지가 깜짝 놀랐다.

     

    “그럼 어떤 기술이었느냐?”

     

    “의학입니다.”

     

    “의학이라… 기술이 아니라 학문이었군.”

     

    아버지가 기분 좋게 웃으며 감탄했다.

     

    상태창에 메시지가 뜬다.

     

     

    [No. 004 : 달콤한 독 71% → 0%]

    [변동됨]

    [엔딩이 삭제되었습니다.]

     

     

    ‘와.’

     

    배드엔딩 하나가 삭제됐다.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기억난다. 아셀라가 마법으로 공기를 없애 질식사하는 엔딩이었어.’

     

    어우, 끔찍한 기억이었지.

     

    여기서 막스가 죽지 않고 살아서, 아셀라가 질식에 대단한 인상을 가지지 않게 됐단 뜻인가.

     

    내 트라우마도 하나 같이 사라진 기분이다.

    머릿속에 산소가 확 들어온 듯 상쾌해졌다.

     

    ‘생각보다 할 만한데?’

     

    배드엔딩 지우기… 좀 재밌을지도.

     

     

    내 다리에 몸을 부비던 막스가 반대편으로 폴짝 뛰어갔다.

     

    다름 아닌 자신의 주인, 아셀라에게였다.

     

    아셀라는 조금 전 당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평소의 냉혈한 분위기로 돌아와 있었다.

     

    겨우 열네 살 소녀가 내뿜는 위압감에 자리의 모든 이가 긴장한다.

     

    그녀가 나를 향해 까딱, 손가락을 올렸다.

     

    “주치의, 얘로 할게.”

     

    뭐라고?

     

    “예?!”

    “황녀님?!”

     

    아셀라의 발언에 전원이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보좌역을 겸임하는 시녀들이 가장 먼저 주군을 말린다.

     

    “황녀님, 잠시만….”

    “공자님은 치유술 공부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재고해 보시는 편이….”

     

    아셀라가 재릿, 눈빛을 쏘아내자 그들이 입을 다물었다.

     

    반발은 우리쪽 치유사들에서도 일어났다.

     

    “가, 가주님! 아직 주치의 시험은 진행중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찾아온 황실에 입성할 기회를…!”

    “공자님이 황녀님의 주치의로 가셨다가 사고라도 치시면 큰일 납니다!”

     

    아버지도 아셀라의 발언은 꽤 갑작스러웠던 모양이다. 발언을 조심하려는 태도다.

     

    확실히 이때의 나는 치유사 육성소에 소속되어있긴 해도 공부도 거의 하지 않고, 진탕 술이나 먹는 망나니였다.

     

    아셀라의 혼약자가 된 것도 황실과 가문의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건 너희들 사정이고.’

     

    내 알 바는 아니다.

     

    ‘근데 나도 가기 싫은데.’

     

    황실에 가서 주치의로 있으면 아셀라와 계속 엮이게 될 거 아니야.

     

    그럼 배드엔딩을 지울 기회야 더 많아지긴 하겠지.

     

    물론 사회적 지위도 높아진다.

     

    그렇다고 이 여자를 매일같이 봐? 주치의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얼굴 보고 마력계 체크부터 해야 할 텐데?

     

    심장마비로 요절할 일 있나. 그럴 거면 내가 10년 전으로 회귀 안 했지.

     

    ‘가문의 멸문을 막고 여기서 성공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야.’

     

    주치의?

     

    주군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바로 옆방에서 24시간 대기하는 주치의?

     

    인수인계가 힘들어서 평생업이라고도 불리는 주치의?

     

    사실상 정치파벌이나 다름없어서 황가가 멸하면 본인 의지 상관없이 같이 처형당하는 그 주치의요?

     

    ‘내가 미쳤다고 하냐.’

     

    황실의 주치의가 들어가는 내의원은 비유하자면 대학병원이다.

     

    황제는 주치의만 세 명을 끼고 산다.

     

    잡다한 황제의 사돈 팔촌까지 하나씩 주치의를 데리고 있고 그들은 조수도 우르르 몰고 다닌다.

     

    치유사가 득시글거리는 곳이다.

     

    자뻑만 들어찬 치유사들이 정치질하는 곳이 황실 내의원이다.

     

    원래 대학병원 교수보다 개인병원 원장이 돈도 잘 벌고 건물도 세우는 법이다.

    정치할 일도 없어 스트레스도 안 받고.

     

     

    배드엔딩은 10년 후에 발생하는 것들이니 기회 될 때마다 하나씩 지우면 된다.

     

    아셀라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보면 족하다.

    1년쯤 후에 파혼해서 영원히 안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더 좋고.

     

     

    상황을 정리해야겠어.

     

    내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황송한 제안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녀님. 허나 치유사들의 말도 일리가 있지요. 저희 가문에서 황녀님께 가장 적합한 인재를 가리기 위해 엄선된 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니 기다려주시면….”

     

    나도 모르게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에 무심코 말을 멈췄다.

     

    상태창에서 숫자가 불길하게 붉은색으로 깜빡인다.

     

     

    [No. 056 : 악녀의 증오 21% → 64%]

     

     

    ‘아이 시발.’

     

    아주 마음에 안 들면 칼 들고 협박이지.

     

    슬쩍 눈치를 살피니 아셀라의 표정이 아주 험악해졌다.

     

    자리의 모두가 분위기를 느끼고 입을 꽉 다문 상태다.

     

    그녀가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안 한다고?”

     

    “…들으신 대로 저는 치유사 공부를 거의 한 적 없는지라.”

     

    “그래서?”

     

    “치유술은 쓸 줄 모릅니다.”

     

    “안 해?”

     

    점점 확률이 올라간다. 64%에서 72%까지.

     

    말을 안 들으면 당장에라도 목을 쳐버리겠다는 기세였다.

     

    우선 시간이라도 벌어야겠어.

     

    “그럼 이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한 발짝 물러서자 아셀라가 슬쩍 턱을 치켜들었다.

     

    “제가 가장 걱정되는 건 저의 미숙함입니다. 행여나 황녀님의 옥체에 실수가 있어선 안 되니까요.”

     

    아셀라가 내 말에 흥미를 보인다.

    내가 당당히 가슴을 펴고 선언했다.

     

    “저도 지금 진행 중인 주치의 선발 시험에 참가하겠습니다. 공정한 경쟁에서 자격을 증명해낸다면 황녀님의 주치의 직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성실히 임한다고 맹세할 수 있어?”

     

    “맹세하겠습니다.”

     

    아셀라는 내 대답을 듣고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성실하게 하면 당연히 뽑히겠네?”

     

    “…예?”

     

    “탈락하면 내게 거짓말 한 죄를 물을게.”

     

    아셀라가 보좌관 역을 겸임하는 시녀장에게 손짓했다.

     

    “지금부터 주치의 시험을 빠짐없이 감독해. 부정이나 밀어주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받들겠습니다, 황녀님.”

     

    음.

    더 귀찮아졌네.

     

    우리 가문에서 진행하는 시험이었으니 적당히 떨어질 생각이었는데.

    빼도박도 못 하게 됐다.

     

    아셀라 폰 뷔르템펠트. 제국 최강의 악녀를 너무 우습게 봤다.

    소녀일 때도 이미 내 머리 위에 있었다.

     

    “불만 있는 사람?”

     

    아셀라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단두대에 마침 구멍이 있는데 모가지 집어넣어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질문에 누가 저요저요 손들겠어.

     

    “다 돌아가. 넌 내 방으로 오고.”

     

    “아 왜요.”

     

    아셀라가 나를 콕 찍어 가리켰기에 무심코 반발해버렸다.

    그녀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다.

     

    “아까 내 방으로 오라고 했잖아. 원래 오던 중 아니었어?”

     

    아, 그랬지.

     

    “물론 말씀대로입니다, 황녀 전하.”

     

    그녀를 뒤따라 힘없이 걷는다. 어째 시녀들에게 호위받는 모양새가 됐다.

     

    막스는 이미 완전히 기운을 차려서 아셀라의 옆에서 헥헥대며 꼬리를 힘차게 흔들어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신나서는. 역시 개 팔자가 상팔자다.

     

    먼저 테라스를 통해 자기 방으로 들어간 아셀라가 내게 손짓했다.

     

    “들어와.”

     

    그 무심한 태도에 조금 벙쪄버렸다.

     

    빌린 방이고 혼약자이긴 해도 어쨌든 자기 방인데 보통 남자를 들이나?

     

    별 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나는 테라스를 통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는 단차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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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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