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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리디아가 차가운 어조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내 지갑 훔쳐간 도둑놈 찾아서 흥분해버렸어.”

       

       “아.”

       

       들켰나?

       

       은근슬쩍 도망치려 했으나 실패했다.

       

       “요나! 너 설마…!”

       

       입을 쩍 벌린 엘리가 내 뒷덜미를 잡아챘기 때문이다.

       

       공중에서 대롱거리는 팔다리를 휘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엘리! 제가 다른 누구도 아닌 리디아 님의 지갑을 훔쳤겠어요?! 걸리면 죽을 텐데!”

       

       “응.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솔직히 말해봐. 리디아의 반응에 상처받고 충동적으로 슬쩍한 거 아냐?”

       

       “진짜 아니라니까요! 제가 조오금 겁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누울 자리는 보고 다리를 뻗거든요?! 뭣보다 제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그런 놈으로 보여요?”

       

       “으음. 그건….”

       

       잠시 고민하던 엘리가 나를 들어올린 채, 리디아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는데? 일단 이 꼬맹이는 나랑 친분이 있어서 말이다. 미안하지만 증거도 없이 요나를 넘겨주긴 힘들 것 같다 리디아.”

       

       “…증거? 있어.”

       

       덤덤한 표정으로 갸웃거린 리디아가 품에서 작은 아뮬렛 하나를 꺼냈다.

       

       평범한 은색 원판에 빨간 보석이 박혀있는 디자인. 하지만 뭔가 있는 건지 엘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난 방지의 아뮬렛이네. 빨간색으로 변한 걸 보면 잃어버린 게 아니라 누가 훔쳐 간 건 확실하고.”

       

       “…응. 나도 길드에 토벌 보고 하고 알았어.”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아?”

       

       “지갑에 추적 마법 걸어 뒀어. 베니에게 부탁해 위치 확인하니 여기. 우연 아냐.”

       

       “빼박이군.”

       

       “빼박이야.”

       

       이쪽을 향해 내리꽂히는 엘리와 리디아의 시선.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자 엘리가 나를 높이 들어 올려 강제로 시선을 마주했다.

       

       “요나. 지금껏 즐거웠어. 잘 가렴.”

       

       “에, 엘리?!”

       

       방긋 웃으며 나를 집어 던지는 엘리. 바닥에 발이 닿기도 전에 리디아가 나를 붙잡았다.

       

       확 가까워진 무표정한 리디아의 얼굴. 그 엄격 근엄 진지한 모습에 비명이 절로 튀어나왔다.

       

       “끼야아아악! 엘리! 절 팔아넘겼군요!”

       

       “그러길래 누가 리디아의 지갑을 털래? 난 최선을 다했어!”

       

       “그렇긴 한데…그렇긴 한데! 아니, 지갑에 추적 마법을 걸었을 줄은 몰랐죠! 보통 그렇게까지 해요?!”

       

       내 억울함에 대답한 것은 엘리가 아닌 리디아였다.

       

       “보통 안해. 하지만 모험가는 예외. 전재산을 들고다니는 일이 많으니까…나 같은 고위 모험가는 보안에 진심이야.”

       

       “큿….”

       

       이런 설정 난 넣은 적 없는데!

       

       지금이라도 품에 있는 리디아의 돈을 전부 가챠 시스템의 뽑기권으로 교환할까 고민했지만….

       

       이미 다 썼는데 어쩔거냐고 뻗대다간 진짜 큰 일이 날 것 같아 얌전히 돌려주기로 했다.

       

       “여기요…거의 안 썼는데 목숨만은 살려주시면 안 될까요?”

       

       “?”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디아. 세상에….

       

       물론 이 세계가 소매치기하다 걸리면 뒤지게 처맞고, 심하면 손목을 잘리는 세상인 건 맞다. 하지만.

       

       “정말 죽일 생각이에요?! 그래도 제 덕분에 두목을 잡을 수 있었잖아요! 에, 엘리…! 살려주세요! 당신의 남편 후보가 죽게 생겼어요!”

       

       “그게 무슨 소리니 요나요나야. 우리가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

       

       냉정하게 나를 손절치는 엘리. 틀렸다. 정말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이네.

       

       엘리를 너무 믿고 있었던 걸까? 기본적으로 선하긴 하지만, 그렇기에 명백한 내 잘못이라 판단하고 감싸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리디아에게 울면서 빌어야지 뭐.

       

       억지로 끌어올린 눈물이 글썽이며 시야를 흐릿하게 지워낸다. 그리고 동정심을 유발하도록 떨리는 목소리를 꾸며내며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리디아 님!”

       

       “…오해야.”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닥에 내려놓는 리디아.

       

       그녀가 흐트러진 내 옷을 바로잡아 주며 입을 열었다.

       

       “요나라고 했지? 분명 내 지갑을 훔쳐간 건 잘못. 하지만 내가 요나 덕에 의뢰 완수한 것도 사실.”

       

       “그럼…?”

       

       “한번씩 주고 받았으니 쌤쌤이야. 감정적인 부분은 잊고 손득만 따지자.”

       

       그리 말한 리디아가 손가락을 하나 펼치며 말을 잇는다.

       

       “우선 쌍단검 클랜장의 목이 1골드. 길드 공적치와 신용도를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30실버.”

       

       “클랜장 토벌 유무의 보수 차이가 생각보다 크네요?”

       

       “그래야 본보기가 되니까.”

       

       하긴. 대부분의 클랜은 클랜장의 의지대로 굴러가니 괜한 조무래기보다 대가리 하나 확실히 잡는게 낫다.

       

       그나저나 1골드 30실버인가. 이는 상당한 거금이다. 나한테 쓴 포션이 비싸 보이긴 했지만, 이를 감안해도 잘만하면 오히려 돈이 남을지도….

       

       “손 치료에 쓴 중급 포션이 50실버. 고위 모험가인 내 하루 일당은 최소 30실버. 추적 마법 의뢰비 60실버. 돌려받았지만 그 사이에 요나가 쓴 금액이….”

       

       담담히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하나씩 펴는 리디아. 그럴 때마다 훅훅 뛰는 액수. 내 안색 또한 그만큼 창백해지고 있으리라.

       

       당연한 말이지만 1골드 30실버 따위는 진작에 훌쩍 뛰어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엘리를 돌아보자, 전부 맞는 말이라는 듯 연신 끄덕이고 있을 뿐.

       

       정말 제대로 계산하면 이 정도 나오나 보다. 대체 왜 거기까지 해서 날 잡으려는 건데?!

       

       내가 어버버하는 사이에 계산을 끝마친 리디아가 결론을 정리했다.

       

       “…얼추 계산하면 80실버 손해였네.”

       

       “어, 얼추라는 건 정확히 계산하면 다르다는 거죠…?”

       

       “정확히는 83실버 27쿠퍼인데?”

       

       “계산하기 편하게 80실버로 하죠! 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외침. 그게 적당히 깎아준 금액이었구나….

       

       호달달 떨고 있자니 리디아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80실버. 갚으면 더는 문제 삼지 않을게.”

       

       “어, 음. 그게….”

       

       내게 그만한 돈이 어디 있겠는가. 설령 있어도 진작에 가챠에 꼬라박았을 거다.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에 리디아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없어?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어. 몸으로 갚게 해야지.”

       

       “제, 제 배를 가르고 장기를 마탑에 팔아버릴 생각인가요?!”

       

       “…불법 장기 밀매는 범죄.”

       

       “그럼…헉! 저한테 야한 짓을 할 생각이군요?! 엘리의 책상 세번째 서랍에 숨겨진 빨간 책처럼…!”

       

       “…아닌데.”

       

       뒤에서 엘리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방방 뛰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정색하고 부정하는 리디아.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표정 변화가 적어 조금 무섭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단정한 외모다.

       

       오….

       

       그 자리에 발라당 드러누워 외쳤다.

       

       “좋아요. 그렇게 제 몸이 목적이라면 어쩔 수 없죠!”

       

       “아니라니까.”

       

       “하지만 기억해 두세요! 제 몸은 마음대로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어쩔 수 없다는 걸…!”

       

       “헛소리 그만. 더 하면 강제로 일으킬 거야.”

       

       “넹.”

       

       한 대 때릴 것처럼 주먹을 꾸욱 쥐길래 잽싸게 일어섰다.

       

       그 당당한 태세 전환에 질렸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감싼 리디아. 그녀가 조금 피곤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궁에 갈 거야. 요나는 내 짐꾼.”

       

       “짐꾼으로 쓰신다고요…?”

       

       “응. 그 보수로 갚아. 필요한 장비가 있으면 가불해줄 수도 있어. …단, 전부 갚기 전까지는 계속 짐꾼.”

       

       “그건.”

       

       좋은 조건이다. 좋아도 너무 좋아서 의심이 들 정도로.

       

       나라고 짐꾼 일을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설정 대부분은 미궁에 관한 것 아닌가. 이를 활용하려면 결국 모험가가 되어 미궁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미궁은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크건 작건 힘을 얻을 수 있는 장소. 이는 짐꾼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에 짐꾼이 되어서라도 미궁에 들어가려는 이는 생각보다 많고, 나 같은 다 자라지도 않은 응애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뭐, 찾아보면 나라도 좋다고 데려가려는 파티가 있긴 한데…그쪽은 좀 뒤가 구린 파티더라고.

       

       아마 나를 짐꾼 겸 휴대용 딜도 정도로 써먹으려는 게 아닐까. 그러다 상황이 급박해지면 몬스터 앞에 버리고 가겠지.

       

       실제 사례가 꽤 있으니 파티는 신중히 골라야 한다. 미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리디아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엘리처럼 내가 공들여 설정한 사람은 아니지만, 고결한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훌륭한 품성은 유명하니까.

       

       실제로 직접 보지 않았던가. 자신의 실적을 포기하고 후환을 남겨둬서라도 나를 살리려던 모습을.

       

       …어라? 그런 사람의 지갑을 소매치기한 나는 혹시 쓰레기인게?

       

       고개를 휘휘 저어 미혹을 털어냈다. 나는 나쁘지 않다. 나쁜 건 세상이다.

       

       “알겠어요. 리디아의 짐꾼이 돼서 갚을게요. 그런데 몇 층까지 가시려고요? 아시다시피 제가 좀 연약해서 항상 가시던 곳은 감당 못할걸요.”

       

       “파티원인 베니가 지금 휴식기. 혼자 위험한 곳은 안 가. 요나도 걱정 마.”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리디아. 그녀가 희미한 미소로 말했다.

       

       “…좋아. 그럼 내일 아침 여기서. 혹시 필요한 거 있어?”

       

       “짐꾼 일을 하려면 갈무리용 단검이 필요해요.”

       

       “내가 갖고 있어. 다른 건?”

       

       “…혹시 갑옷이나 무기 사달라고 하면 사주시나요?”

       

       “길드의 하급 모험자 지원용이라면 얼마든지. 물론 이것도 빚.”

       

       “리디아 님…!”

       

       잔뜩 감동받은 눈빛으로 올려다보자, 부담스럽다는 듯 시선을 피하는 리디아.

       

       “착각, 곤란. 원래라면 길드에 넘겨서 재판에 부쳤을 거야. 하지만….”

       

       “하지만?”

       

       “요나는 아직 어려. 재능도 있어. 갱생의 여지가 있다면 계도하는 것이 기사의 일.”

       

       자랑스레 그리 말하고는 콧김을 뿜으며 가게를 떠나는 리디아.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엘리에게 물었다.

       

       “엘리. 혹시 이렇게 될 걸 알았나요?”

       

       “대충은. 리디아는 누구랑 달리 감정적이지도, 영악하지도 않으니까.”

       

       “윽…아니, 그보다 리디아 님이랑 아는 사이였어요?! 엘리 생각보다 대단한 모험가였나 봐요?”

       

       “별거 아냐. 그냥 리디아가 막 모험가가 됐을 때 몇 번 도와준 게 전부니까. 그나저나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돼? 미궁은 만만한 곳이 아냐. 지금부터라도 준비하는 게 나을걸.”

       

       “아, 제가 지금 가진 게 없어서요. 준비할 것도 없어요.”

       

       “저번에 돈 좀 모았다고 숙소 빌렸다며?”

       

       “며칠 갇혀있었더니, 제가 죽은 줄 알고 물건은 죄다 팔아버리고 방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던데요? 항의했다가 두들겨 맞을 뻔했다구요. 뭐, 예상은 했지만요.”

       

       덕분에 내 전재산이라고는 리디아가 몰살시킨 쌍단검 클랜에서 회수한 새 옷과 그 주머니 안에 든 32쿠퍼가 전부다.

       

       나도 다 먹고 살기 위해 훔쳤던 거란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화난다는 이유 하나로 리디아의 지갑에 손댄 건 아니었구나?”

       

       “엣헴.”

       

       “칭찬 아냐.”

       

       쯧쯧 혀를 차며 마력초 한 개비를 더 꺼내는 엘리. 그녀의 빈 소매를 살살 잡아당겼다.

       

       “엘리 엘리.”

       

       “응?”

       

       “저. 잘 곳이 없어요.”

       

       “이런. 불쌍해라.”

       

       “집만 없는 게 아니라,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힘도 없고, 돈도 없네요. 있는 거라고는 이 귀여운 얼굴 정도?”

       

       “…….”

       

       “하룻밤 재워주면 안 될까요? 대신 오늘 하루 제 얼굴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드릴게요…!”

       

       “필요 없거든! 위층에 방 하나 비워둘 테니까 거기서 자고 가! 단, 내일부터는 유료니까 그렇게 알고!”

       

       “사랑해요 엘리! 역시 저랑 결혼하실래요?!”

       

       “빚쟁이는 좀….”

       

       까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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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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