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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 * *

       

       

       땡그랑

       

       총도 살살 맞으면 안 죽는다를 증명하듯, 탄환은 찌그러져 바닥에 나뒹구라졌다.

       

       이것이 탄환인지 군납 비리로 인해 탄생한 엿 같은 물건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다시금 기적을 보게 되었다.

       

       

       “오.오오오. 과연 성녀!”

       “저것이 진정 기적이란 말인가!”

       

       

       얼떨결에 나를 따라온 시민들도 경악했다.

       

       솔직히 예카테린부르크를 완전히 이쪽 편으로 만들려면 당분간은 이런 쇼 정도는 해야 한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는 이런 소문을 듣고 황녀가 선전물 찍는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예카테린부르크만은 절실한 신의 은총을 받은 성녀 아나스타샤의 팬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나 기적이 멀쩡히 존재하는데, 이럼에도 아직도 나를 죽이고 싶어 하다니.”

       “대체 무.무슨 짓을 벌인 거냐! 마.마녀다!”

       “하찮구나. 그럼 너희는 마녀보다 못한 자들이라는 뜻이 아닌가.”

       “레닌 동지야말로 어머니 러시아의 희망! 당신은 죽어서 관짝에 들어가야 할 존재야!”

       

       

       물론 이렇게 마지막까지 개소리를 지껄이는 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총탄이 머리에 쐈는데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탄환이 찌그러져서 그대로 떨어졌다.

       

       선동 당한 젊은 볼셰비키든, 지령을 받고 나를 죽이려고 이곳에 있던 진골 볼셰비키든 간에 직접 본 이상 이들은 어쩔 수 없다.

       

       선동에 약한 빨갱이들이란 뜻이다.

       

       이런 갈대 같은 놈들은 적어도 이 내전기간에서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를 믿지 못 하는 이 가여운 자들도 어쩔 수 없구나. 참으로 딱하게도 신께서는 이들을 죽음으로 구원하라 하셨다.”

       

       

       이 명령 한마디면 끝이었다.

       

       마지막까지 현실을 인정치 못한 작자들은 결국 처형대상이었다.

       

       그리고. 일부 볼셰비키도 탄환이 찌그러지는 것을 보고 이쪽으로 전향했다.

       

       

       “죽음으로 구원이라 하시면?”

       “간단한 이치다.”

       “예?”

       “적군들에게도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항복하면 주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저들에게 일러줘야 할 것이다.”

       

       

       대가리 깨진 이들에게는 무슨 명령해도 듣겠지.

       

       그것도 기적을 행한 성녀의 명령이다.

       

       그러니 나는 정말 지독한 명령을 내릴 생각이다.

       

       

       “허면.”

       “볼셰비키의 시신들을 십자가에 내걸어라.”

       

       

       이렇게 하면 반응은 둘 중 하나다.

       

       분기탱천한 볼셰비키가 달려온다.

       

       오히려 질려 버린 볼셰비키가 학을 뗀다.

       

       나는 후자에 가능성을 두고 싶다.

       

       아직 트로츠키가 직접 나서서 적군을 손본 것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이곳을 치지는 못할 거다.

       

       하여 억지로 끌어모아서 이곳에 온다 해도 자기 미래도 십자가에 걸린 빨래 신세가 되지 않으려고 하겠지.

       

       원래는 시민들을 데리고 빠져나가는 방법도 있지만.

       

       예카테린부르크는 유럽러시아와 아시아를 가르는 중심지.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된다.

       

       본격적으로 표트르 브란겔 같은 백군 지도자가 힘을 쓰려면 이쪽에서 연계해야 한다.

       

       백군은 안 그래도 통합도 안 되어 있는데, 유럽러시아 지역을 잃어 버리고 나서 남은 시베리아는 인구도 적어 병력이 적군에 밀리게 되니까.

       

       기어이 주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볼셰비키들은 십자가에 매달려서라도 강제로 주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굴었는데, 과연 볼셰비키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 * *

       

       

       

       아나스타샤의 예상과 맞아떨어지게도, 예카테린부르크의 밖에는 볼셰비키들이 도시의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도시 외곽에 십자가가 세워진 것을 그들은 똑똑히 확인했다.

       

       그래. 정확히 말하면 십자가에 걸린 동지의 시신을.

       

       

       “저것들은 우리 동지들이 아닌가?”

       “저기 뭐라고 적힌 건가? 신의 뜻을 거스른 제국의 반역자?”

       “다시 한번 로마노프를! 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제국이 망한 지가 언젠데. 감히!”

       “동무들 지금 가면 위험하네. 저게 무슨 뜻인가? 이미 예카테린부르크가 황녀의 손에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거야.”

       “그래도 황녀를 그대로 둬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들어가면 저런 꼴이 될 것이네.”

       “아니, 대체 어째서 저들은 노동자의 해방을 거스른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차르에게 당하고 또 로마노프를 믿는다고요?”

       

       

       머리가 미치지 않고서야 또 로마노프를 믿는단 말인가?

       

       볼셰비키들은 이가 갈렸다.

       

       혁명의 방해가 되는 존재들이 왜 이리 많은  걸까.

       

       

       “도시에서 우리에게 호응하면 모르겠지만, 이미 예카테린부르크의 다른 동지들과 연락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네.”

       “그 말의 뜻은.”

       “우리들 만으로는 저 도시를 넘을 수 없어.”

       

       

       물론 우격다짐으로 도시만 노린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지만.

       

       이쪽 군대는 징집병들이 대다수다.

       

       저런 꼴을 보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

       

       제대로 병사 훈련도 되지 않은 징집병들이 제대로 싸울 리 없다.

       

       안 그래도 체코슬로바키아군단도 있고. 사방에서 반동들이 날뛰고 있는데, 황녀 하나 잡자고 예카테린부르크에 전력을 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지금, 이를 갈면서 훗날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

       

       

       * * *

       

       

       

       소비에트 인민위원장 블라디미르 레닌은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올라온 소식에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예카테린부르크가 황녀의 손에 떨어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간단했다.

       

       예카테린부르크는 아직도 차르를 그리워하는 바보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고. 이제 소비에트를 상대하고자 반동들이 황녀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로마노프를 잡지 말았어야 해야 했나.”

       “언젠가 척결해야 했습니다. 레닌 동지,”

       

       

       트로츠키는 차르일가에 대한 강경파였다.

       

       그들 황실을 쓸어내야 비로소 혁명이 완성된다.

       

       

       “하지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네. 듣지 않았는가. 예카테린부르크가 황녀의 손에 넘어갔네!”

       “아직도 로마노프에게 미래가 있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나중에 우리 붉은 군대가 반드시 되찾아야 합니다.”

       

       

       레프 트로츠키는 분노어린 목소리를 내지르며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묘한 기류를 눈치챈 스탈린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급한 일이라 차리친에서 오기는 했는데.

       

       정말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차라리 전향을 시키는 편이 나았을지도.”

       “스탈린 그게 무슨 소린가?”

       “확실히 다 죽이지도 못할 거면. 차라리 살려서 전향을 시켰어야 했네. 그도 아니면 미리 죽이던가. 하필 반동들이 날뛰는 시기에 죽이다니.”

       “인제 와서 딴소리인가?”

       “생각을 달리해야지. 이제 황녀가 어찌할 거 같나? 반동들이 어찌할 거 같아? 소비에트가 부모·형제를 죽였다고 방방곡곡 알리겠지. 암만 적국이라고 해도 왕실이 유지되는 제국주의 국가들은 하나 같이 차르일가와 친척 관계야. 그들이 어찌 나올지 뻔한 게 아닌가?”

       

       

       영국 왕실도, 독일 황실도 차르와 친척 관계다.

       

       당장 그들부터도 어떻게든 개입하려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제국주의자 놈들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 절대 개입할 수 없네!”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직접적인 군사개입은 글쎄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황녀가 살아남은 이상, 이 내전은 지지부진해질 것이고.

       

       내전이 지속할 수록 소비에트의 결속력도 무너지지 않을까.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노동자의 고혈을 짜낼 길고 긴 내전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네.”

       “그만들 하게! 지금 우리끼리 싸울 처지인가! 얼른 적군을 정비하게. 예카테린부르크가 그 모양이라면 우리 영향권의 도시도 어떨지 몰라!”

       

       

       온갖 짓을 해가면서 겨우겨우 세운 노동자의 나라다.

       

       여기서 다시 차르정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예. 동지. 그리고 제정 시절 장군들도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회유할 수 있으면 회유하되 불가능하다면 죽여야 할 겁니다. ”

       “어쩔 수 없지. 그리하게. 예카테린부르크는 어찌할 셈인가?”

       “붉은 군대를 모아 쳐야지요.”

       

       

       붉은 군대를 모아 친다.

       

       다시 병사들을 징집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스탈린은 판세를 읽는 능력이 탁월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렇게 서기장 자리에 올랐고, 피의 숙청을 벌여 자기 독재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하여 지금 스탈린이 보는 예카테린 공방전은 영 좋은 미래를 보기 글렀다.

       

       

       “그러다 실패하면?”

       “지금은 무리해서라도 예카테린부르크를 공격해야 하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예카테린부르크가 반공의 구심점이 되고 말아!”

       

       

       무리해서라도 예카테린부르크를 점령한다.

       

       실제 역사와 달리 황녀가 살아남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저항을 하고 있으니, 이건 싫어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대로 두면 반드시 백군이 예카테린부르크를 중심으로 규합될 것이다.

       

       어떻게든, 한동안은 원성을 감수해서라도 예카테린부르크를 탈환해야 했다.

       

       

       “예. 동지. 그리고 스탈린 동지는 차리친을 사수해야 할 겁니다.”

       

       

       이어서 트로츠키의 보고에 스탈린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외통수다.

       

       

       ‘이 자식이?’

       

       

       이쯤 되면 고의가 아닌가. 스탈린은 트로츠키가 일부러 자신을 쳐 낸다고 생각했다.

       

       물론 차리친 사수도 중요하긴 하지만 당장 예카테린부르크를 공략하기 위해 힘을 규합해야 하는 이때 자신을 차리친으로 보내겠다니.

       

       스탈린은 차리친으로 향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레닌 동지와 트로츠키가 황녀의 행동에 자극을 받았다고.

       

       아무리 봐도 예카테린부르크의 공격은 좋은 미래를 보기 글렀다.

       

       무언가에 쫓기듯 애타게 예카테린부르크 공력을 노린다 하더라도 점령은 다른 문제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황녀를 돕는다고 한다.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

       

       

       ‘어라, 그렇다면.’

       

       

       이거 잘 만하면, 트로츠키보다 자신이 우위에 설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예카테린부르크보다는 차리친 쪽이 차라리 낫다.

       

       그쪽에서 방어전만 펼쳐도 충분하겠지.

       

       트로츠키. 그 독한 놈이 알아서 몰락할 때까지만 기다려도 충분할 것이다.

       

       스탈린은 그런 더러운 야심을 속에 품고 차리친으로 향했다.

       

       

       * * *

       

       

       

       아나스타샤가 뿌린 전 볼셰비키들 역시 사방에 차르일가의 처형과 생존한 황녀 이야기를 뿌렸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이중 한 명인 안톤 데니킨은 몹시도 분개하여 소문을 퍼트린 자를 불렀다.

       

       

       “볼셰비키 놈들이 기어이 차르 폐하와 그 가족들을 죽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황녀께서 살아남으셨습니다.”

       “뭐라? 황녀께서 살아계셔?”

       “예. 황녀께서는 러시아의 성녀십니다. 볼셰비키의 무수한 총탄에도 결코 죽지 않으시고 살아남으셨습니다.”

       

       

       전 볼셰비키인 자신이 이런 말을 해도 웃기긴 하지만.

       

       이 전 체카요원은 안톤 데니킨에게 차르 일가에게 닥쳤던 불행과 아나스타샤 황녀의 생존에 대해 알렸다.

       

       

       “어쨌든 살아계시단 말이지?”

       “네. 지금쯤이면 예카테린부르크를 장악하셨을 테고, 저희에게 어떻게든 각국에 이 일을 알려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한때 체카요원이었던 사내는 자신들이 황제 일가를 죽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미 황녀가 용서해준 상황에서 굳이 지금 그걸 말해 봐야 눈앞의 남자가 죽일 테니까.

       

       이 소식을 들은 안톤 데니킨은 잠시 볼셰비키의 함정이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뭔 일이 터진 건 터진 것은 분명해 보이고. 볼셰비키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자기들이 차르 일가를 살해한 것을 대놓고 밝히고 다닐 리 없을 테니까.

       

       안톤 데니킨은 이 소식을 전쟁 중인 유럽 각국에 알리기로 했다.

       

       아무렴, 볼셰비키란 존재가 황녀 하나를 남기고 가족들을 다 죽였다는데, 위협을 느낄 왕정국가가 없지는 않으리라.

       

       

       “차르일가가 죽고 황녀만이 살아남았다고?”

       

       

       당연히 예카테린부르크 지척까지 와서 상황을 보던 체코슬로바키아군단도 황녀의 생존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 무렵,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은 시베리아에서 이도 저도 아닌, 독립적인 군대로 철도 위를 돌아다녔다.

       

       이들은 본래 역사에서도 동시베리아와 백군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 정도로 볼셰비키에는 위협적이었으며 시베리아 철도를 장악하며 장갑열차 오리크를 이용했다.

       

       원래 역사에서 볼셰비키는 이들에 의해 차르일가가 백군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해 차르 일가를 죽였지만, 아나스타샤의 생존으로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갔다.

       

       본래라면 콜차크를 볼셰비키에 넘기는 대가로 퇴로를 확보할 수 있던 체코슬로바키아군단의 총사령관 라돌라 가이다 장군은 이 소식에 큰 흥미를 느꼈다.

       

       

       “차르일가가 죽고 아나스타샤 황녀만이 유일한 생존자라. 흠.”

       

       

       실익만 보자면, 차르 일가를 확보하고 백군에게 넘기는 것이 이익이었지만. 전해진 정보로는 황녀가 아예 예카테린부르크를 장악했다고 하고. 볼셰비키들의 시신을 십자가에 내걸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긴 제 가족들을 죽인 놈들을 상대로 자비로울 순 없겠지. 그래도 그 어린 것이 제법 강단이 있어.”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황녀를 백군에 넘겨야 하는가.

       

       그도 아니면 다른 길을 봐야 하나.

       

       일단 아나스타샤 황녀와 직접 접촉해 보는 것도 좋겠지.

       

       그 무능한 차르와 다르다면, 선택지를 늘려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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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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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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