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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기숙사의 사감 자리는 대대로 시작의 층 전체를 통틀어 가장 연차가 높은 수습생이 맡아왔다.

        대부분의 수습생은 빠르면 0년차, 늦어도 1년차까지는 10층을 돌파하기에 4년차인 나는 꽤 오랫동안 기숙사의 관리를 해온 셈이었다.

       

        주 업무는 부지의 청소상태 확인, 불편사항 접수, 마족이나 기타 위험요소에 대비한 경비 점검 등.

        또 마탑의 행정부처가 모두 모이는 정기 회의에도 참석해야 한다.

        약간의 봉급과 함께 다른 수습생들보다 독립적인 생활공간이 보장되니 바빠도 나름 할만한 생활이었다.

        무엇보다 업무 중에도 이렇게 짬짬이 갤질을 할 수 있다는 게 내겐 중요했다.

       

        ====

        [오늘 글레시아 학파에서 한다는 강의 신청한 사람?]

       

        교수 정보도 공개된 게 없고 이름이 뭔 메테오 어쩌구 하는데 이거 들어도 되는 거임?

       

        — 이따 시연 한다는 그거?

        — 메테오면 최소 4위계인데 수습생 따리가 들어도 이해 못 할 듯

        — 소문에 의하면 교수가 순혈이라 함

         ㄴ 나도 그래서 신청함

         ㄴ 구라 같은데 문하생도 아니고 수습생 가르치는 순혈이 어딨음

         ㄴ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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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님한테 먹을 거 줘도 되나요?]

       

        유난히 키 작은 교수님이 제 4 구내식당 앞에서 침 뚝뚝 흘리고 계시던데

        막 저주가 어쩌구 저쩌구 혼잣말 하는 거 봐서 좀 이상한 사람 같았어요

        돈 없어서 줄도 못 스시는 거 같던데 사드려야 할까요?

       

        — 어어, 그거 함부로 밥 주지 마라

        — 눈 마주치는 즉시 해주학파로 끌려감

        — 황실에 억하심정 있거나 누구 저주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쁘지 않을 수도?

        — 좀 기다리면 기숙사 사감이 알아서 데려갈 거니까 절대 건들지 마셈

         ㄴ 맞음 모르는 사람 손 타면 안 좋음

         ㄴ 사탕도 안 될까요? 너무 귀여우셔서 ㅠㅠ

        ====

        ====

        [44층에 갇혀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44층에 갇혀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주세요 44층에 갇혀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주세요 44층에 갇혀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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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나와 헤어지고 며칠 뒤.

        오늘도 변함없이 평화로운 갤러리의 일상을 확인 중이던 내게 생활부장이 다가왔다.

        수습생들에게 마탑의 시설 안내 중인 그는 대광장 중앙에 세워진 전지의 비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클락, 비석에 이름을 적은 이들 중에 메릴랜드 관 소속은 먼저 기숙사로 데려가 주겠나?”

        “따로따로요?”

        “번잡한데 다 같이 이동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자네도 오후엔 글레시아 학파에서 주최하는 강연에 참석해야 하지?”

        “감사합니다.”

       

        초대 탑주가 만들었다는 비석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탑을 오르고자 하는 이들 뿐 아니라 관광객과 주변 상인들까지 잔뜩 모여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을 품은 마법사가 나타났을 때 석판의 빛이 퍼지는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거대한 나무처럼 뻗어있는 별자리판의 꼭대기에 일곱 개의 천체가 빛나고 있다.

        누군가 이름을 적고 비원을 읊으면 뿌리에서부터 별빛이 솟아난다.

       

        그 광경을 벌써 햇수로 5년째 봐 와서 별 흥미가 없던 나는 곧장 생활부장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내꺼 봤어? 적성에 맞는 학파가 4개나 나왔어.”

        “좋겠네 난 30층이 한계라는데. 빛이 더 이상 올라가질 않더라.”

        “그야 모르지. 비석이 정한 한계보다 높이 올라갈 수도 있다잖아. 칠현자들도 다 그렇게 해서 별을 새긴 거고.”

        “마리엘 님은 어떻게 나오셨나요? 분명 저희보다 높으셨겠죠?”

        “예? 저는…….”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귀족가의 여식들.

        다들 스스로의 재능의 편린을 확인한 이후여서 그런지 수습생들은 굉장히 상기된 상태였다.

        그들을 진두지휘하며 걷던 도중 갑자기 내 이야기가 갑자기 들려왔다.

       

        “차, 참! 그러고 보니 관리인에게 용건이 있었던 것이에요!”

        “또 기숙사 시설이 고장났나요?”

       “마리엘 님도 힘드시겠어요. 하필 가장 낙후된 방에 배정되어서.”

       “그러게요. 우연히도…… 푸훗, 아무튼 저희는 조만간 기숙사를 나가서 더 좋은 호텔에 묵으려고요.”

       “마리엘 님은 어떻게…… 어머.”

       

        기껏 병아리처럼 오와 열을 맞추어 놓았더니 한 사람이 치고 나오는 통에 죄 흐트러졌다.

        고개를 돌려 그 장본인과 눈이 마주쳤는데, 역시 익숙한 얼굴이었다.

       

        뛰어난 마법사일수록 빠르게 탑을 올라간다. 그러니 1층에만 있는 나와 서로 안면을 텄다는 뜻은 둘 중 하나였다.

        마법 실력이 나쁘거나, 아니면 자꾸 기숙사 사감을 귀찮게 하거나.

       

        당찬 표정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금발을 자랑하는 여식은 최소한 후자는 확실했다.

        하인을 데리고 들어오지 못하는 기숙사의 특성 상 마법사보다는 귀족에 가까운 수습생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일이 매년 나타났는데, 딱 그에 해당했다.

       

        “관리인!”

        “네, 마리엘 님.”

        “제 방 창틀이 휘어져서 소음 공해가 심각해요. 이건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에요!”

       

        지어진 지 오래 된 건물이다 보니 자잘한 불편함이 뒤따르는 건 당연했다.

        낙후된 시설을 그대로 두는 데는 ‘꼬우면 빨리 위로 올라가라’는 뜻도 담겨 있었기에 더욱.

       

        자잘한 보수로 정비팀을 부를 순 없었기에 이런 부분은 직접 방문해 수리해야했다.

        불편 사항에 대한 해소도 사감의 업무 중 하나였으니까.

       

        “오늘은 제가 약속이 있어 좀 어렵고, 내일 들르겠습니다.”

        “약속이라니요? 홀크로프트 백작가의 적녀인 저를 보필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되는 일정이 있단 것이여요!?”

       

        팔짱을 끼며 불만스런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는 마리엘.

        뒤에서 친구들이 보고 있어서인지 다소 과장된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기숙사였다면 모를까, 관리인 짬밥 5년차인 내게 권위에 의한 협박은 거의 통하지 않았다.

        나는 이후 일정을 곰곰이 생각한 뒤 마리엘에게 전달했다.

       

        “음, 지금부터 제 4 구내식당에 가서 칠현자 중 한 분인 아녜스 님께 점심밥을 사드려야 하고 오후엔 글레시아 학파의 순혈 마법사인 비나 님이 시연하시는 새 강좌에 조교로 참석해야 합니다.”

        “다음 주 쯤 천천히 오는 것이에요…….”

       

        꼬르륵 소리를 내더니 한 방에 침몰해 버린 그녀.

        아무리 백작이라 해도 적어도 마탑 안에서는 칠현자나 그 직계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고 보면 하인이 없는데 저 돌돌 말린 머리는 매일 스스로 만드는 건가?

        저걸로 사람을 찌르면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던 찰나, 마리엘이 또 다시 물었다.

       

        “관리인 관리인.”

        “네네.”

        “관리인은 알고 있나요? 비석 앞에서 거짓을 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마탑에 오르고자 하는 이유 말인가요?”

       

        비원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둘 중 하나라도 거짓될 경우 벌어지는 일이 궁금한 듯했다.

       

        “별 거 없습니다. 그냥 별빛이 길을 인도하지 않고 1층을 통과 못 하는 거죠.”

        “그런가요.”

        “네, 그뿐입니다.”

        “…….”

       

        보아하니 아까 비석에 이름을 적지 않았군. 이런 경우도 매 년 있다.

        마탑에 들어온 이유가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라거나,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부도덕한 일 때문일 경우.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전지의 비석은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설령 부끄럽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냥 눈 딱 감고 하시면 됩니다.”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어요. 그보다 전 이미 통과했는데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에요.”

        “광장엔 항상 사람이 많으니 얼굴을 가려도 되고요.”

        “어떤 마도구를 써도 제 미모를 숨길 수는 없는 것이에요.”

       

        남들이 못 알아봐 주길 원한다면 그 이상한 머리카락부터 똑바로 피던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나중에 갤러리에 적기로 했다.

       

        지금은 비나가 오후에 시작될 강의를 제대로 할 수 있을 지가 더욱 중요했다.

        곧바로 시간표가 배정된 것을 보아 글레시아 학파에선 승인한 모양이지만, 솔직히 메테오가 얼음마법이라는 주장은 아직 못 미더웠으니까.

       

       

       

        *

       

        마탑에서 가장 인기 있고 폭 넓은 전공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원소’다.

        칼레이도스, 미티어, 글레시아를 비롯해 원소학의 굵직한 학파들은 가지고 있는 실험 장비나 연구실의 수준이 다르다.

       

        입실론 관에 위치한 강의실은 어지간한 대형 강의도 열 수 있을 법한 크기였다. 

        그러나 강의 시작 10분 전까지 그곳을 채운 사람은 기껏해야 열 명 정도. 한 자리는 비나의 친구인 크리스티나였다.

       

        “사람이 적어요.”

        “그런가요? 첫날에 이 정도면 제법 많은 편이라 생각하는데.”

       

        이미 다른 강의들은 모두 2주 전에 시작 되어서 시간표가 겹치는 생도들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비나는 처음으로 교단에 섰기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지금 여기 와 있는 사람들은 글레시아 학파의 문하생이 되길 원하거나, 아니면 그냥 소문에 밝은 이들 뿐이다.

       

        “메테오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실망스러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위치 노트를 꺼내더니, 무언가 작성하기 시작했다.

       

        ====

        메테오는얼음마법

        [지금 입실론 관 108호에서 재미있는 강의를 하고 있어요]

       

        메테오가 왜 얼음마법인지에 대한 증명이에요

        들으면 후회 안 할 거에요

       

        — 가면 메테오 보여줌?

        — 저번에 현피 뜨고 발린 거 아니었음?

        — 탑주님 데려와라 ㅋㅋㅋㅋ

        — 응 들어도 이해 못 해~

        ====

       

        갤러리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간간히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나의 글을 평소와 같은 어그로로 치부했다.

       

        일방적으로 내적 친밀감을 쌓아왔던 유저들의 날선 대답이 서운한 것인지 볼이 작게 부풀려졌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나는 그녀에게 작은 도움을 주기로 했다.

       

        “비나 님, 잠깐 여기 좀 볼래요?”

        “이것만 작성하고요.”

        “글을 그렇게 많이 쓰시면 더 역효과일 거에요.”

        “모르는 일이에요. 사감보다 제가 갤러리에 대해선 더 잘 알아요.”

       

        ====

        [관리자에 의해 차단된 ID입니다 : 메테오는얼음마법]

       

        [기간 : 3시간]

       

        [사유 : 도배 ㄴㄴ]

        ====

       

        내가 더 잘 알 텐데.

        적어도 내 갤러리에서 도배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

        — 메테오는얼음마법 : 주딱, 당장 차단을 푸세요

        — 메테오는얼음마법 : 지금 중요한 순간이란 말이에요

        — 메테오는얼음마법 : 당신이 아무리 저를 핍박하려 해도 절대로 굴하지 않을……

        ====

        ====

        [관리자에 의해 차단된 ID입니다 : 메테오는얼음마법]

       

        [기간 : 3일]

       

        [사유 : 탕-!]

        ====

       

        “까드득……!”

       

        이 정도면 마탑에 거주하는 치과 의사들의 고용 창출에 이바지한 수준이군.

        잠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한 나는 이젠 눈물까지 맺히려 하는 비나에게 다가갔다.

        어줍잖게 바이럴이나 돌리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었으니까.

       

        “자자, 진정하시고 이쪽 보세요.”

        “훌쩍…… 뭔가요?”

        “그 각도 좋네요. 머리카락은 귀 뒤로 넘기시고, 손은 그대로 들고…… 네, 됐어요.”

       

        위치 노트로 비나의 사진을 찍은 나는 갤러리에 접속했다.

        그리고 시간표에 새로 추가된 ‘메테오가 얼음 마법인 이유’ 강의의 교수 항목에 비나의 사진을 업로드 했다.

        강의평과 교수의 이력은 본래 첫 학기가 끝난 뒤에 작성하는 것이지만 뭐 어때.

        칙칙한 증명사진, 혹은 공란 사이에 홀로 아리따운 독사진이 끼여 있으니 지나가다 한 번쯤 눌러볼 만했다.

       

        “이제 기다리죠.”

        “네?”

       

        누군가 한 명이 교수가 누구인지 퍼 나르기만 한다면 소문은 금세 빠르게 퍼질 것이다.

        수업 시간에 갤질하는 수습생들이라면 중간에 슬쩍 빠져 나오는 이들도 있겠지.

       

        예상대로 강의 시작이 1분도 채 남지 않은 시점,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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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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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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