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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흐, 흐흥~ 흥~”

       

       [독자님,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그야 당연하죠. 주인공이랑 안면을 텄는데.”

       

       

       이야,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어.

       

       생각해보니까 주인공도 마수 한 마리 잡았잖아.

       

       그러니 당연히 주인공도 오는 거였는데. 작가님 때문에 까먹고 있었단 말이야.

       

       단둘이 있을 때 악수도 했고, 안면도 텄으니까. 천천히 친해지면 되겠지?

       

       

       “다들 그만 떠들고 자리에 앉아라.”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생님.

       

       ···아마 아카데미의 주연, 담임이겠지.

       

       

       “앞으로 너희들의 담임을 맡게 된, 클레어라고 한다. 잘 부탁하마.”

       

       “크, 클레어라면 설마···.”

       

       “그 유명한 영웅···?”

       

       “은퇴했다고 들었는데, 교사였구나.”

       

       [으음···. 일단 다른 아카데미 소설처럼 유명하고 강한 사람을 담임으로 설정하긴 했는데, 왜 그런 사람이 고작 아카데미의 교사···?]

       

       “그거야 당연한 걸 물으시네요.”

       

       

       뭐긴 뭐겠어?

       

       오래 싸우기는 힘든, 그러나 잠깐은 싸울 수 있다는 편의주의적인 치명상을 입어 은퇴했다던가.

       

       부하나 동료가 죽는 걸 보고 마음이 꺾였다던가.

       

       대충 그런 느낌으로 하면 되겠지.

       

       

       [역시 독자님···! 설정 바구니라니까요! 고마워요! 헤헤, 역시 누나 스타일 냉미녀에 피폐 향이 살짝 첨가된 담임선생님은 언제봐도 맛있는 설정!]

       

       

       작가님의 말은 대충 흘려들었다.

       

       맨날 헛소리네.

       

       

       “우선 어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마. 학교를 대신해 내가 사과하지.”

       

       

       꾸벅, 하고.

       

       자신들의 우상인 담임선생님이 고개를 숙이자 학생들은 잔뜩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 일어나세요! 선생님!”

       

       “맞아요! 저희는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학생들의 만류에도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클레어는, 결국 학생들이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이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뭔가 부족해 보이는 눈치다.

       

       아무래도 더 사과하고 싶은 것 같은데.

       

       

       “서, 선생님! 오늘의 수업 내용은 뭔가요!”

       

       “맞아요! 하하, 빨리 배우고 싶다!”

       

       “···수업? 아, 맞다.”

       

       

       잊어버린 거냐고.

       

       진짜 어처구니없네.

       

       머쓱하게 목덜미를 쓸어내린 클레어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너희가 지금껏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서 선택하는 무기는, 앞으로 너희들이 계속 배우게 될 무기니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아, 이거 그거다.

       

       무기 고르기.

       

       아카데미 첫 수업에 잊을만하면 나오는 그거.

       

       

       “그런데 작가님, 이거 조금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네? 문제요? 왜요?]

       

       “아니, 저는 무기 쓸 줄 모르는데?”

       

       [···어? 맞다.]

       

       

       머리가 아파져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또, 또 시작이네!

       

       

       [하, 하지만 독자님은 그냥 대충 아무거나 집어도···!]

       

       “이 세계, 영웅이나 빌런은 각자 능력 하나씩 가지고 있는 거 아니었나요.”

       

       [어, 네. 맞는데요.]

       

       “불 뿜는 능력자 같은 사람이 무기 들어서 어디다 써요?”

       

       [···어?]

       

       

       아니, 그렇잖아.

       

       입에서 불을 뿜을 수 있는 능력자가 굳이 근접해서 칼 휘둘러야 해?

       

       그냥 걸어가다가 등 뒤에 불 한번 쏴 재끼면 다 죽일 수 있을 텐데?

       

       차라리 무기를 들지 않는 게 이득 아냐?

       

       무기 들면 괜히 경계심만 높아지잖아.

       

       차라리 무기가 아니라 개인 능력을 단련시키는 쪽이 아카데미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냐?

       

       아까 아카데미 유능하다며. 설정 충돌이잖아.

       

       

       [마, 마나! 마나 때문에 그런 걸로 해요! 어, 음···. 능력자들은 마나가 몸에 순환해서 신체 능력이 높아지는 걸로! 쉽게 안 죽게! 능력을 안 쓰면 마력을 아낄 수 있어요!]

       

       “하아···.”

       

       [그리고 그렇게 따지자면 총은요?! 사람은 총에 맞으면 죽어요! 그러니까, 능력자들은 총에도 잘 안 죽는 설정! 와! 완벽하다! 그리고 총은 마나가 안 담겨요! 방금 정했거든요!]

       

       

       솔직히 완벽히 납득할 수 있는 설정은 아니긴 한데.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웹소설을 읽은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왜 이 세계에서는 능력이 있는데 굳이 무기를 써요? 가 아니라.

       

       아, 이 세계에서는 능력도 쓰고 무기도 쓰는구나! 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으니까.

       

       다만 그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라는 게 문제지.

       

       

       “자, 나를 따라오도록. 창고에서 원하는 무기를 골라야 하니까.”

       

       

       그러고 보니까 무기 고르는 방식의 아카데미 소설 말이야.

       

       A반 B반 C반으로 나뉘는 식이 아니라, 무슨 무기를 골랐는지에 따라 반이 나뉘는 거 아니었나?

       

       설마 눈치채지 못하고 설정 잡은 거 아니지?

       

       일말의 기대감을 담고 귀에 신경을 집중했지만 들리는 말은 없었다.

       

       즉,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다. 젠장.

       

       

       “작가님, 무기 고르는 소설들은 무기 고르고 나서 반이 배정되는데요.”

       

       [아, 아?! 그랬던가?!]

       

       “아마 대부분 그럴걸요?”

       

       

       당연하잖아···.

       

       교사들이 무슨 학생 한 명당 하나씩만 붙는 방식이겠냐고.

       

       그게 교육할 때 훨씬 효율적이잖아.

       

       

       [어, 어···. 그래! 방과 후 동아리! ㄱ, 그런 형식으로 해요! 평범하게 반에서 수업하다가, 하루의 몇 시간은 따로 무기 든 교수들이랑 집중 수업! 에, 에헤헤···!]

       

       

       아, 힘들다.

       

       우리 작가님은 왜 이렇게 멍청할까.

       

       설정 쓸 때 생각 한 번씩은 해줬으면 좋겠다!

       

       

       “자, 이곳이 무기 창고다. 원하는 무기를 고르도록. 앞으로 너희들이 아카데미에서 쓸 무기니까.”

       

       

       그래, 이미 설정 잡혀버린 거 어쩔 수 없지.

       

       우리 주인공은 무슨 무기를 고를지 한번 볼까.

       

       왁자지껄 무기를 고르는 학생들 사이에 숨어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역시 검이구나.

       

       마수 잡을 때 검 쓰고 있는 거 봤으니까, 당연하겠지.

       

       주인공은 대부분 검을 사용하니까. 정석적이네.

       

       

       “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까부터 무기를 보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아, 선생님.”

       

       “부담 갖지 말고 내게 말하도록.”

       

       “···혹시, 단검은 어느 쪽으로 배정되나요?”

       

       “단검?”

       

       

       그래, 단검.

       

       솔직히 나는 검을 쓸 자신이 없다.

       

       그냥 날이 세워진 몽둥이랑 다를 바 없을 것 같고.

       

       활? 되겠냐.

       

       창은 그나마 낫겠지만, 보관이 영···.

       

       그나마 단검이 낫지.

       

       크기도 작아서 케이스에 잘 씌워두면 휴대하기도 편하고.

       

       딱히 필요한 기교랄 것도 없이, 그냥 들고 찌르면 되니까.

       

       뭘 배워야 한다고 해도 긴 장검보단 훨씬 편할 것 같아.

       

       만약에 검술 쪽으로 배정되면 유시우를 감시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사실 이게 크지.

       

       

       “단검도 검술의 일종이니, 아마 검술 쪽 교관에게 배정될 것 같은데.”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오, 좋은 이야기를 들었네.

       

       주저하지 않고 단검을 쥐었다.

       

       

       “그래, 짝사랑인 모양인데. 사랑을 좇아 무기를 고르는 건 추천하지 않지만, 응원은 해주마.”

       

       “···네?”

       

       

       유시우를 바라보고 있던 게 들킨 건가.

       

       다행히 수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이상한 쪽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런 거 아닌데?

       

       선생님께 반박하려 했지만, 어느새 다른 학생들에게 조언하러 자리를 옮긴 이후였다.

       

       그냥 내버려 둘까?

       

       어차피 사실도 아니니까.

       

       검을 잡고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시우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 혹시 검을 고르신 건가요?”

       

       “···?! 어, 어. 그, 그런데···?”

       

       

       뭐야, 왜 이렇게 떨어?

       

       춥나? 창고라서 선선하긴 하지만 저렇게 떨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 추우신가요?”

       

       “아, 아니. 조금 떨려서···. 아카데미의 첫 수업이잖아.”

       

       

       그런가? 이건 수업이라기보단 준비 같은데?

       

       그리고 목소리도 살짝 떨리는 것 같고.

       

       ···뭐, 상관없나.

       

       감기라면 나중에 알아서 약이라도 챙겨 먹겠지.

       

       

       “그래도 검을 고르신다니, 우연이네요! 저는 단검이거든요.”

       

       “그, 그렇구나. 단검. 응, 좋은 무기지.”

       

       “후후, 이것도 인연이네요. 같은 마수를 처치한 사이인데, 같은 무기술 수업을 듣는다니.”

       

       “그러게. 아, 아하하···.”

       

       

       너무 표정이 창백한데.

       

       이쯤 되면 감기라고는 해도 조금 걱정되는걸.

       

       너는 건강하게 성장해서 누군지 모를 최종 보스를 처치해야 한다고.

       

       

       “괜찮으세요? 많이 아프신 것 같은데.”

       

       “응. 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렇게까지 괜찮다고 하는데 더 들이대는 것도 예의가 아닌가.

       

       어쩔 수 없지. 만약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때 작가님께 해결 방안을 물어보면 되니까.

       

       

       “얼굴이 창백하시니, 푹 쉬시는 게 좋을 거에요. 그럼!”

       

       

       식은땀을 잔뜩 흘리는 시우를 뒤로하고 무기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이런 무기들은 처음 보거든. 엄청나게 신기해.

       

       

       “넌 창? 하하, 이거 완전 창녀잖아.”

       

       “야! 너 무슨 농담을 그런 식으로···!”

       

       “왜? 맞잖아. 창 든 여자. 창녀.”

       

       “너, 너···! 거기서!”

       

       

       어느샌가 긴장이 풀려 서로 장난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활기차네.

       

       

       [후우, 다행이다···. 설정, 아슬아슬하게 충돌이 없다···!]

       

       

       완전 끼워 맞추기지만요, 작가님.

       

       그렇게 말하면 울어버릴 것 같아서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불쌍하잖아.

       

       

       “다들 골랐으면 교실로 돌아가도록!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이다!”

       

       

       클레어의 말에 삼삼오오 모여 교실로 돌아가는 학생들.

       

       물론 나는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서럽네, 진짜.

       

       

       

       ***

       

       

       

       “후, 후우···! 후우···!”

       

       

       죽는 줄 알았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르테, 저 여자···. 분명히 나를 보고 있었어···!”

       

       

       내가 검을 고르는 걸 보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단검을 쥐는 걸 보았다. 확실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내게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었다.

       

       그게 좋은 쪽일까, 나쁜 쪽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쪽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저런 여자에게 노림받을 법한 행동을 한 기억도 전혀 없었다.

       

       그녀를 피하기 위해 검을 버리고 다른 무기를 쥘 수도 없어.

       

       지금까지 내가 사용해 본 무기는 검 하나뿐이니까.

       

       이제와서 다른 걸 쥐어봤자 뒤처질 뿐.

       

       영웅이 되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한 시우로서는, 그것만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내게 왜 관심을 보이는 거지···?”

       

       

       알 수 없었다.

       

       아카데미의 데이터베이스를 순식간에 해킹하고 신입생으로 잠입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길래 나에게 저리 관심을 보이는 걸까.

       

       입학하고 나면 아카데미에서 친구도 사귀고, 열심히 대련도 할 줄 알았는데.

       

       시우는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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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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