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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올리비아는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심호흡했다. 그 덕인지 아니면 칭호의 효과 때문인지 두근거림이 차츰 잦아들었다.

       

       키엘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어느 쪽이냐고 물었다. 

       

       그렇게 질문한 의도를 올리비아는 알고 있다. 

       

       ‘나를 죽인게 너냐, 아니냐겠지.’

       

       키엘의 기억이 새롭게 덮어씌워졌다는건 이걸로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가 원래 역사대로, 몰살 루트의 올리비아에게 죽었다는 것 또한 알아낼 수 있었다.

       

       뒤돌아 있어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다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느 쪽이냐니?”

       “너라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텐데.”

       “마치 날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

       

       철컥.

       

       키엘의 손아귀에 힘이 약간 더 들어갔다. 칼붙이가 올리비아의 살갗을 조금 파고 들어갔다. 붉은 핏방울이 칼날을 타고 흘렀다.

       

       “날 떠보지 마라.”

       

       무시무시한 살기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십 초 안에 대답해라.”

       “대답 안 하면?”

       “베겠다.”

       

       키엘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올리비아는 당황하지 않고 최적의 답안을 구상해냈다. 

       

       키엘은 올리비아가 전 회차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여기서 만약 올리비아가 ‘너를 죽인건 내가 아니야’ 라는 식의 답변을 하면 키엘의 의심만 부추길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 회차의 기억을 모르는 행세를 해야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다.

       

       그렇다면 키엘이 질문한 의도는 무엇일까.

       

       ‘네가 날 죽인 올리비아가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전 회차를 모르는 행세를 하는 동시에, 키엘이 만족할만한 답변을 도출할 수 있을까.

       

       올리비아는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휘이이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올리비아의 머리카락이 키엘 쪽으로 나풀거렸다.

       

       스윽.

       

       올리비아는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올리비아의 목을 따라 붉은 실선이 생겼다. 갈라진 살 틈 사이로 핏방울들이 몽글몽글 맺히다 아래로 흘러내렸다.

       

       옷이 가슴팍에서부터 차츰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아프다.’

       

       하지만 방금 전 끔찍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버틸만했다.

       

       방금 것에 비하면 이건 바늘에 찔린 정도에 불과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보는 사람도 그렇게 받아들일까?

       

       ‘아닐걸.’

       

       비록 작은 상처라고 하지만, 목은 엄연한 인간의 급소다. 같은 크기의 상처라도,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다른 부위들과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리고 피는 감정을 동요시킨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살짝 현기증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시린 겨울 속에서 핏물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엉겨붙은 옷이 딱딱하게 굳고, 다시 흘러나온 피를 빨아들이기를 반복한다.

       

       칼붙이 너머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분명 방금 전까지 이런 떨림은 없었다. 키엘 정도의 검사가 검의 떨림을 잡지 못한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

       

       키엘이 동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올리비아가,

       

       “벤다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움찔.

       

       키엘의 칼끝이 크게 떨렸다. 그 여파로 칼날이 올리비아의 살갗을 조금 더 파고들었다. 화들짝 놀란 키엘이 칼붙이를 원래 위치로 되돌렸지만, 이미 난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주르륵.

       

       이제 핏방울은 맺히지 않았다. 그 대신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핏줄기는 쇄골을 타고 흘러, 옷을 제 색깔로 물들였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 흐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올리비아는 제 상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대신 키엘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키엘의 묵빛 눈동자는 고요했다. 그 안에 담긴 증오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계속 응시했다. 해 볼테면 해보라는 듯이.

       

       그렇게 영원같은 찰나가 흘렀다.

       

       마침내, 그의 증오가 흔들렸다.

       

       거기까지 온 순간 올리비아는 확신했다.

       

       적어도 지금은, 키엘은 검을 휘두를 수 없을 것이라고.

       

       [키엘 로트실드]

       – 레벨 : 93(회귀자 특전 적용 중)

       – 직업 : 검성

       – 호감도 : -100(+68)

       – 칭호 : 회귀자

       

       키엘의 호감도는 틀림없이 마이너스 100이었다. 호감도 90이 기사의 신념을 무너뜨릴 정도로 맹목적인 애정이라면, 마이너스 100은 어떠한 대가를 치뤄서라도 죽여버리겠다는 증오였다.

       

       그런데도 목을 베지 않았다는 건.

       

       죽이고 싶을 정도의 증오보다, 다른 감정이 더 크다는 뜻이다.

       

       물론 그 감정이 뭔지 올리비아는 알 도리가 없었다.

       

       “…….”

       

       여차하면 그대로 베어버리려던 키엘이었다.

       

       하지만. 

       

       꿀꺽.

       

       올리비아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그럴 수 없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이것부터 좀 치우지?”

       

       그 눈동자는, 그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특유의 무심한 듯한 말투도.

       

       확신이 어린 저 눈빛도.

       

       분명 그가 알던 올리비아가 맞았다.

       

       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이미 답을 한거나 마찬가지었다.

       

       둥둥둥둥둥.

       

       심장이 요동쳤다. 

       

       탁.

       

       올리비아의 손이 대검을 밀어냈다.

       

       “치우라니까?”

       

       대검이 천천히 옆으로 밀려났다. 키엘의 눈동자가 혼란으로 물들었다.

       

       힘 때문에 밀려난 것이 아니다. 올리비아의 팔에는 근육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대검을 쥔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풀린 탓이다.

       

       키엘은 작금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눈 앞의 올리비아는, 그가 알던 올리비아가 맞았다.

       

       황제 폐하를 시해하고, 수많은 대신들을 학살한 살인자가 아니라.

       

       그런데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처럼 증오스러운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인가.

       

       이 증오는 올리비아에게 향해서는 안된다. 그녀는 엄연한 피해자였다. 

       

       그걸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가 정녕 미쳐버린 것인가?’

       

       쿠웅.

       

       키엘의 검이 힘없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하지만 키엘은 차마 검의 손잡이까지는 놓지 못했다.

       

       타는 듯한 증오가 거기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면 안된다.

       

       이러면 안되는데.

       

       키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그녀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

       

       

       투둑. 툭.

       

       핏방울이 설원을 붉게 물들인다. 올리비아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목에 붕대를 감았다.

       

       키엘은 옆에서 그걸 지켜보았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과,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녀의 목을 보듬어 주고 싶었고, 동시에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

       

       그건, 참으로 끔찍한 감정이었다.

       

       대충 지혈을 끝낸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너, 나 알지?”

       

       키엘이 고개를 돌려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그녀의 푸르른 눈동자를 맞이하자 다시금 증오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다음 발언에, 끝없는 공허가 찾아왔다.

       

       “내가 어디가서 기억력이 딸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 같은 놈은 내 기억에 없단 말이지.”

       

       키엘은 그제서야 검 끝이 흔들렸던 이유를 알아냈다.

       

       원인 모를 증오의 힘은 분명 대단했다. 죽기 직전까지 만남을 갈구했던 동료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근데, 분명히 너는 나를 아는 것 같단 말야.”

       

       하지만 그 증오는, 슬픔의 공허 속에 잠겨버렸다.

       

       올리비아는 기억하지 못한다.

       

       함께 먹고, 대화하고, 웃고 떠들었던 그날의 기억들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사실이 비수가 되어 마음을 후벼팠다.

       

       그 모든 일들이, 올리비아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이 되어버렸다.

       

       ‘다 공(空)이 되어버렸구나.’

       

       그녀의 숭고한 희생은 허사가 되어버렸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이, 나라는 것이다.

       

       – 너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아니다. 그 때는 기억하지 못했다. 

       다 그 년의 잘못이다. 그 년이 정신을 헤집어 놓아서, 미처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다.

       

       – 매 순간 우리를 기만했고, 신뢰를 배신했지.

       

       그녀는 단 한 번도 우리를 기만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신뢰를 배신당한건 올리비아였다.

       

       – 그런데 또, 너를 믿으라고?

       

       미소를 지어주고 싶은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증오.

       

       이 빌어먹을 증오가 모든 것을 틀어막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칼을 뽑아, 저 목을 베어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사무친다.

       

       키엘은 몸을 돌렸다. 그녀를 계속 쳐다봤다간, 뭐라도 일을 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뭐. 대답해줄거라고 기대도 안했어.”

       

       나는 회귀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고문이라도 해서 알아낼 걸 그랬나.”

       

       나는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고 있다.

       

       “…….”

       

       키엘은 지긋이 눈동자를 감고는 얼음 속에 박힌 검을 빼냈다.

       

       휘이이이이잉.

       

       바람이 분다.

       

       둘의 구도는 처음과 정반대였다. 올리비아가 키엘의 등을, 키엘은 설원 너머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내 이름은 키엘 로트실드다.”

       

       지금은 안된다.

       

       이 상태로는 그녀와 대화도 나눌 수 없다.

       

       그녀와의 재회는 이런 식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

       

       “다음에 만날 때는 꼭 기억해다오.”

       

       정신을 어지럽히는 증오를 다 털어내면. 

       

       그 때.

       

       그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리라.

       

       키엘은 달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설원이 끝날 때까지.

       

       달리고 달렸다.

       

       

       

       *****

       

       

       “……잘 된거 맞겠지?”

       

       올리비아는 점이 되어 사라지는 키엘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덤벼들지 않은 것만 봐도 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제 키엘은 끝인가?’

       

       올리비아는 한숨을 내쉬며 포션을 들이켰다. 병자 행세를 위해 둘렀던 붕대도 풀어버렸다.

       

       “잘 됐겠지. 뭐.”

       

       올리비아는 터덜터덜, 제자들이 기다리는 레어를 향해 걸어갔다.

       

       이제 하나.

       

       앞으로 열 넷.

       

       아직은 쉴 때가 아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Ilham Senjaya님!

    드디어 키엘 파트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앞으로 간간히 등장할 예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메인일때보단 조금 나오겠지요.

    다음화부터는 멜리나 파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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