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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언니, 대체 무슨 생각이시죠?”

         

         

        축제의 두번째 날.

         

        새벽부터 몸 치장을 하고 있는 아이비스에게 갸날은 따져물었다.

         

         

        “뭐가 말이니?”

         

        “약혼자를 두고서 외지인, 그것도 천민을 축제 파트너로 고르시고 모두 앞에서 그 남자를 갖겠다고 선언한 것 말이에요.”

         

        “약혼자? 아 겐드리?”

         

         

        내 약혼자 아닌데?

         

        아이비스는 환술이 꽤나 세세하게 짜여져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다시 말하지만, 그 사람은 나랑 어울리지 않아서 말야~.”

         

        “가문의 체통과 위신이 걸린 일입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 난 아이비스잖아? 내가 우선이야.”

         

         

        현재 마검이 누리고 있는 이 지위를 비롯한 모든 게 본래는 갸날의 것이었다.

         

        잠들어 있던 자신을 강제로 깨운 환술사는 고작 몇 구절의 주문만으로 즈라문 군도 전체에 강력한 환술을 걸었다.

         

        바로 자신을 프로텍 가문의 장녀인 아이비스 프로텍으로 인지하게 만들고, 갸날은 언니와 가문의 평화를 위해 후계 구도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속 깊은 동생이 되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흑마법이 먹히지 않은 겐드리는 갸날의 약혼자였다.

         

        그것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

         

        하룻밤만에 갑자기 어떤 여자가 당연하다는듯이 군도 제일 가문의 장녀 행세를 하고, 자신은 망나니로 인식되고 있고, 약혼녀는 그를 데면데면 대하며 그 지위조차 격하되어 하녀로 부림 받고 있었다.

         

        이 촌극을 되돌리라고 울부짖는 그에게 아이비스는 거래를 제안했다.

         

        그녀가 시키는대로 하면 축제가 끝날 때 모든 걸 복구시키겠다고.

         

         

        “그렇다면 언니가 우선으로 하고 있는 건 뭐죠?”

         

         

        아이비스는 킥킥 웃었다.

         

         

        “재미.”

         

        “네?”

         

        “이 지루한 섬에 내가 최고의 재미를 선사해줄게.”

         

         

        단연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환호가 터져 나오게 할 자신이 있었다.

         

         

        “기대해도 좋아.”

         

         

        아이비스의 눈이 불길하게 빛났다.

         

         

         

        —

         

         

         

        해가 중천에 떴을 즈음에 린과 루시의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아침 일찍 일어났음에도 아이비스는 치장을 끝내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빨리빨리!”

         

         

        등 떠밀리듯 저택 밖으로 외출한 그들은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온갖 잡상인들의 매대를 전부 돌아다녔다.

         

        이걸 왜 사나 싶을 퀄리티의 악세서리부터 기념품까지 하나하나 다 착용해보고 들여다봤으며 모든 길거리 음식을 다 사먹으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꼴은 영락없는 아가씨와 짐꾼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죽하면 멀리서 노려보던 겐드리조차도 질렸다는 표정으로 간섭해오지 않았다.

         

         

        “아가씨, 반나절만에 축제 거리를 다 도셨으니 이제 잠시 휴식하심이….”

         

         

        같이 붙어다니던 갸날조차도 숨을 헐떡였다.

         

         

        “아 맞다맞다! 사실 아까 사지 못한 아이템들이 있는데 말이지. 갸날 여기 적힌 거 모두 찾아서 저녁까지 가지고 와줘.”

         

        “예? 이걸 다요?”

         

         

        아이비스가 내민 종이는 길게 떨어져 손으로 들고만 있어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이였다.

         

         

        “경제의 선순환이야. 이런 장에서 우리가 소비의 모범을 보여야 다음에도 장사꾼들이랑 이벤트 기획자들이 잔뜩 와서 성공적인 축제를 만들어 내는 거라고?”

         

        “하지만 호위할 사람 하나도 없이….”

         

         

        그러자 영애는 린과 루시를 가리켰다.

         

         

        “여기 두 명 있잖아.”

         

        “이 사람들은 외지인입니다!”

         

        “갸날, 이 즈라문 군도에서 프로텍 가문 자제를 건드릴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축제 기간에는 외지인들이 군도 사람들보다 더 많습니다.”

         

        “신호탄 들고 갈게. 하늘에 신호탄이 펑! 터지면 구하러 와줄거지?”

         

        “하아, 부디 조심하세요 언니.”

         

         

        마지못해 물러나 축제 거리로 가는 갸날.

         

        아이비스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그녀가 싫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두려는 거다.

         

        가장 위험한 적인 자신으로부터.

         

         

        “자~.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들이 있는 곳은 한적한 해안가였다.

         

        축제 거리로 사람들이 집중된 탓에 그들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척봐도 본론을 꺼낼 것 같은 분위기.

         

        린과 루시는 서로 눈빛을 주고 받았다.

         

        어제 연습한대로 계획한대로 대처해보자.

         

        밤새도록 린의 기운을 보충한 루시도 오늘은 정신이 맑았다.

         

        절대로 실수도 잘못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루시는 영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자! 춘식 씨와 순이 씨! 우리는 이제부터 게레로 프로텍의 무덤을 찾는 겁니다!”

         

         

        아이비스의 요구사항 앞에서 두 사람이 전날 세웠던 계획과 연습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네?”

         

        “갑자기 그런….”

         

         

        린과 루시는 저마다 반문했지만 아이비스는 검지를 흔들며 이의를 받지 않았다.

         

         

        “아까 보셨죠? 프로텍 가문의 장녀이자 후계자인데도 사용인들이 감히 말대꾸를 한다구요!”

         

         

        아니, 네 동생이잖아.

         

        동생이면 그럴 수 있지.

         

        그리고 갸날의 반박은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들이었다.

         

         

        “후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가문에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달성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바로 가문의 염원인 게레로 프로텍의 무덤을 찾는 것이다. 라고 아이비스는 단언했다.

         

        하지만 린과 루시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비스를 마용사로 의심하고 있는 두사람은 그녀가 누구보다 빨리 마검을 획득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쌍검사인 그녀가 마검을 들어서 사용하면 용사 파티와 협공을 해도 막아낼 수 없다.

         

        창잡이가 루시의 라이벌로 만들어졌다면, 쌍검사이면서 흡혈귀인 그녀는 용사 파티 자체의 대적자였다.

         

        대인 공격도, 대군 공격도 어느 쪽도 빠지지 않는 만능형.

         

        판 전체를 조작하여 치고 빠지는데 능숙한 환술사, 용사 파티원 한 명을 물고 늘어지는데 탁월한 창잡이와 달리 쌍검사는 개인 무력과 흡혈귀 고유 마법으로 전장을 휩쓰는 병기 같은 존재였다.

         

        루시는 확신했다.

         

        이건 린의 눈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무조건 응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아이비스보다 빨리 게레로의 무덤과 마검을 찾아야만 했다.

         

         

        “어떻게 찾을 생각이시죠?”

         

        “사실 그동안 섬 안쪽은 전부 뒤져봤어요. 안쪽은 확실하게 없어요. 그러니 오늘은 해안가를 따라가면서 찾아보는 거죠.”

         

         

        아이비스는 자기 등 뒤를 가리키더니

         

         

        “저는 이쪽.”

         

         

        다시 앞을 가리킨다.

         

         

        “여러분들은 이대로 쭉~.”

         

        “호위도 없이 혼자서 반대편을 보시겠다고요?”

         

        “아하, 그럼 순이 씨를 제가 데리고 갈게요.”

         

         

        기다렸다는듯이 린의 질문에 치고들어오는 아이비스.

         

        루시는 크게 놀라 아이비스를 바라봤다.

         

         

        “네, 네?!”

         

        “그럼 귀족가의 영애가 호위도 없이 외간 남자랑 둘이 다니라고요? 그것도 외지인이랑? 아무리 파트너로 지목했다고 해도 그건 아니죠.”

         

         

        당했다.

         

        호위가 없는 걸 지적하면 린 자신이나 둘 모두와 함께 다닐 거라고 예상했다.

         

        자신과 함께 다니면 루시가 미행하게 만들면 되고, 다함께 다니면 루시의 뛰어난 시력으로 먼저 무덤을 발견해서 선수를 치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이비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로 루시를 골랐다.

         

        왜 본인을 고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루시와 래빈의 호감을 맛본 탓에 자의식 과잉이 되었다고 린은 한탄했다.

         

        까불지 말고 겸손했어야 했다.

         

        동료, 그것도 이성의 호의란 참으로 달콤한 독이었다.

         

        감정이 무뎌진 그조차도 이렇게 방심해버릴 정도니.

         

         

        “춘식이 혼자 두는 건 위험할 것 같아요. 어제 괜히 시비 걸었던 사람도 있고 차라리 다 같이 가는게….”

         

         

        루시가 시기적절하게 끼어들었지만 영애는 일언반구도 없이 린에게 커다란 폭죽을 내밀었다.

         

         

        “신호탄이에요. 무슨 일 생기면 하늘에 대고 쏘세요.”

         

        “그걸로는…!”

         

        “아무렴, 여자 둘보다 남자 혼자가 더 위험할까.”

         

         

        어제부터 이 여자의 억지에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아이비스가 웬만한 인간이었다면 차라리 루시와 함께 무력으로 제압했을 텐데 마족으로 추정되는 상대에게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이빨을 드러내는 건 하책 중에 하책이었다.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두 번이나 속절없이 당하는 건 뼈아팠다.

         

        침착하자, 위기는 곧 기회다.

         

        혼자가 되면 스킬 스크롤로 신체 강화부터 경계까지 떡칠을 하자.

         

        나답지 않지만 루시에게 마검을 정화해서 성검으로 습득할 때까지 자기 보신 위주로 가는 거야.

         

        내가 없으면 루시의 정신은 붕괴하고 말 테니까.

         

        긍정의 의미를 담아 눈짓을 하자 루시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면서 미끼를 물어야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로텍 가문용 신호탄이니 터뜨리면 군도 전체가 몰려올 거에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자! 그럼 안전 대책도 다 세웠으니 탐험을~ 시작해 볼까요오-!”

         

         

        둘로 나뉘어 서로 등을 돌린다.

         

        스킬 스크롤을 쓰기 위해 일부러 빠르게 멀어져 가는 린의 기척을 루시는 놓치지 않고 집중했다.

         

        그가 점처럼 보일만큼 거리가 되었을 때, 루시는 린에게 걸어놓은 붉은 실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헤에, 그렇구나. 그런 장치가 있었구나.”

         

        “…?!”

         

        “붉은 금빛이라… 내가 제대로 찾긴 했네.”

         

         

        진한 흥미를 품은 영애가 용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게 도약하여 뒤로 물러난 루시.

         

         

        “아, 안심해. 내가 너무 민감해서 느낄 수 있었던 것뿐이니까. 경지에 이른 대마법사도 알기 어려울 거야.”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오? 알고 있었어?”

         

         

        멍청하게 무력만 앞세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

         

        자신을 눈치챈 것이 마음에 든 아이비스는 기꺼이 자신을 소개하기로 했다.

         

         

        “그래 맞아! 내가 바로 마….”

         

        “알아, 마용사지.”

         

        “…헤?”

         

        “린한테 친한 척 굴 때부터 알아봤어. 너희 마용사년들은 하나같이 내 린을 노리고 있다는 거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실망.

         

        대실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비스는 친절하게 하나씩 짚어주기로 했다.

         

         

        “일단, 짐꾼의 이름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르고 다니는 건 삼가라고. 혹시라도 짐꾼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나중에 불편해질 수도 있을 걸?”

         

        “어차피 너희 마용사는 처음부터 린이라고 부르고 있었어.”

         

        “아, 물론 걔네들은 그렇지. 꿈에 그리던 왕자님이니까. 하지만 난 아니거든.”

         

        “아니라고?”

         

        “당연히 아니지. 난 마족이 아니니까.”

         

         

        검은 기운이 폭사되었다.

         

        무더위로 쨍하던 햇빛이 모조리 암막에 가리워지고 검은 공간에는 아이비스와 루시만 남았다.

         

        확실히 검기는 해도, 마기와는 다른 기운이었다.

         

         

        “마족 유사품이긴 해도 말이지~.”

         

         

        챙-!

         

        아이비스의 오른팔이 검으로 변했다.

         

        시커멓지만 날카로운 빛을 뿌리는 검으로.

         

        덕분에 어둠 속에서 윤곽이 보이기는 했다.

         

         

        “너도 하나 받아.”

         

         

        허공에서 붉은 빛의 검이 나타나 루시 발치에 꽂혔다.

         

         

        “넌 대체 누구지?”

         

        “하아, 증말.”

         

         

        감 좀 있나 싶더니만 이 모양 이 꼬라지다.

         

        앞날이 막막했다.

         

         

        “난 그저 재미를 추구하는 검이야. 속세에서는 마검이라고 부르지. 기억해주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검으로 변한 오른팔이 루시를 향했다.

         

         

        “짐꾼의 위치는 파악하고 있겠지? 그래야 할 거야. 네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거든.”

         

         

        당연히 그러고 있었다.

         

        새끼손가락의 붉은 실이 아직 린이 무사함을 알려줬다.

         

         

        “정식으로 소개할게. 나는 마검 ‘심연’, 제 1대 흐노니라고 하면 알아들을까?”

         

        “마검이라면 잘 알지. 린이 알려줬거든. 마용사년들 때려잡으려면 네가 필요하다고.”

         

        “오 그래? 그럴려면 날 성검으로 만들어야 할텐데? 방법은 알아?”

         

        “물론이야.”

         

         

        루시는 붉은 검을 뽑아들었다.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오랜만이다.

         

         

        “널 힘으로 굴복시키면 된다고 했어.”

         

        “하하하하하하!”

         

         

        이거 꽤 재밌네!

         

         

        “그렇지! 이 앞을 나아가려면 그래야 하는 게 맞긴 한데, 아 저 짐꾼 보기보다 화끈하네.”

         

        “너도 린을 좋아하는 거야?”

         

        “아냐, 난 재미를 좋아해. 인간에게는 관심 없어. 하지만, 그거 알아? 최고의 재미는….”

         

         

        촤촹-!

         

        왼손의 다섯 손가락이 모두 날붙이로 변했다.

         

         

        “소중한 걸 자기 손으로 상처 입힌 인간의 후회 어린 얼굴이라는 거.”

         

         

        마검은 루시에게 들어오라는 턱짓을 했다.

         

         

        “자, 이제 검으로 대화하자. 알려줄게, 이 앞에 즐비할 괴랄한 난이도의 편린을.”

         

         

        단,

         

         

        “날 이기지 못하면 린은 오늘 안에 죽어. 누구한테든.”

         

        “그 말….”

         

         

        붉은 금빛이 눈부실 정도로 뿜어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환히 발하는 루시의 마력.

         

         

        “후회하게 해주마.”

         

        “하하하하하하!”

         

         

        폭소를 터뜨린다.

         

        어둠 속에서 심연이 루시를 바라본다.

         

        돌풍과도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루시가 뛰어들었다.

         

         

        “방금 말해줬잖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재미가 후회라고!”

         

         

        조롱하는 흑빛의 마검과 붉은 금빛의 용사가 격돌했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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