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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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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사람의 시선이 안 닿으면 회복이 빠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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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당했을 땐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아 꿰매놓았었는데, 그 탓에 흉터가 생기고는 했던 걸 떠올리며 잘린 옷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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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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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고민하다가 방을 뒤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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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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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짇고리를 찾아 옷을 꿰매주었다. 순식간에 멀쩡한 옷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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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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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이 멀쩡해지긴 했지만 흥건하게 젖은 피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주부의 노하우로 핏물을 없애고자 화장실로 향하려던 순간, 토토겐의 옷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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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하는 김에 같이 빨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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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겐의 로브를 벗겼다. 위엄있는 분위기가 홀랑 사라지고 몸이 바짝 마른 흉측한 노인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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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겐은 노인이라 불리기엔 젊지만, 워낙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 노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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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브를 벗기자 얇은 옷이 드러났다. 저대로 두면 감기 걸릴지도 모르기에 소파에 걸쳐져 있는 양탄자를 몸 위에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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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기 전에 빨리 세탁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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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조에다가 물을 받아 로브와 옷을 넣고 세탁하기 시작했다.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고 로브와 옷은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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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을 빨리 말려야 하기에 물기를 짜낸 후 테라스로 나가 난간에 널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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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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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열기와 함성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옷은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옷이 마르는 속도만큼 리안의 얼굴에도 땀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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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층이 높을수록 덥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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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이 빨리 말랐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바짝 마른 옷을 껴입고 로브를 가지고 거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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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말,걸지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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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겐은 신음을 흘리며 악몽을 꾸는 듯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리안은 그의 몸을 덮고 있는 양탄자를 치우고 로브를 입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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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이제 다 끝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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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튀어있는 피가 보였다. 리안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토토겐을 덮고 있던 양탄자로 슬쩍 바닥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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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핏자국은 다 가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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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거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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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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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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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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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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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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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겐이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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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흑….내가 왜..누워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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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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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분명….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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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더듬던 그는 오싹한 기운에 눈동자를 굴려 제 로브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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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뿅,뾰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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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뭐,뭐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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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에서 꽃이 뿅하고 튀어나와 흐느적흐느적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분 나쁠 정도로 좋은 향기가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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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다 묘하게 분홍한 아우라가 은은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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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만금을 주고 산 내,내 로브가 어째서 이런…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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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겐이 사용하는 로브는 온갖 마법 효과가 덕지덕지 붙은 사치의 끝판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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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은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위화감을 주고, 행동 보정 효과까지 있는데다가 온도 조절은 물론 아공간까지 들어있는 만능 로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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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가장 비싼 물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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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귀한 로브에서 말랑한 아기 볼에서 날 것 같은 사랑스러운 향기가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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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누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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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게 고함을 내뱉으며 벌떡 일어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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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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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깔린 양탄자를 밟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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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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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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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소파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곤 눈을 뒤집은 채 기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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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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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비의 방을 나오자 멋들어진 복도가 길게 이어졌다. 복도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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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소파나 분수대 따위가 있는 걸로 봐선 쉬는 공간인 듯 했다. 아이리스를 포함한 오뚜기와 쥐 수인 모두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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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는 아이리스에게 무어라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쓸데없는 말이라 귀에 담지 않은 채 아이리스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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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네 녀석 어떻게 벌써 나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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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내가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 오뚜기가 펄쩍 뛰며 말했다. 나는 잠시 눈을 도르륵 굴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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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좀비가 예의 없이 제 배를 갈랐다가 제 장기에게 욕을 좀 듣고 충격을 받아서 쓰러졌다고 하면…으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 믿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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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의 법칙과 이곳 세계의 법칙이 헷갈린다고 해도, 장기가 말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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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녀석 설마 토토겐님께 무례를….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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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다가오던 오뚜기는 쥐 수인이 곁에 다가와 무어라 속삭여주자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헛기침하며 내게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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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오래오래 뽑아먹을 수 있겠군.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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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는 어느새 두 손을 파리처럼 문지르며 토토겐의 비서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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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토토겐님께는 앞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니 모쪼록 오래 – 오래 – 자기 집이다! 생각하고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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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 또한 그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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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오뚜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중간중간 토토겐의 취향 따위를 알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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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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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와 비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이리스가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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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려줘서 고마 -…우왓!”
     
     
   
   
   
   
   
   
   기특하게 기다려준 아이리스에게 칭찬을 잔뜩 해주려는 순간 잡힌 손이 잡아당겨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아이리스의 코가 내 목에 깊게 파고들어 킁킁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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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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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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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아이리스?”
   “냄,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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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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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몸을 굳히는 순간 뒷말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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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냄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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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새카맣게 타들어 가던 마음이 아름다운 꽃밭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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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피를 조금 흘렸거든 그래서 그랬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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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목에서 간지러운 통증이 느껴졌다. 아이리스가 내 목을 물어버린 것이다! 세상에 우리 애가 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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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이리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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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사 딸에게 뺨 얻어맞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아이리스를 부르자 아이리스가 내 목에서 얼굴을 떼곤 잔뜩 심통 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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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거짓말.”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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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내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제야 난 아이리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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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목에 칼 안 가져댄다고 했던 그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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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말에 아이리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심통 난 듯 볼이 씰룩거리는 게 귀엽다고 하면 더 화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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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물었어? 약속 안 지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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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 –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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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뺨 맞은 아버지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내가 걱정돼서 그랬다는 데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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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평생 마음이 아팠을 상처가, 늦게 집에 돌아와서 화가 난 강아지의 앙앙 이갈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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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모습을 보라, 슬쩍 눈을 굴려 눈치를 보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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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맛에 딸 키우는 건가 싶어 뒤늦게 살살 눈치를 보는 아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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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앞으로는 피 냄새 안 나게 조심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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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아이리스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말실수를 한 듯했다. 나는 열심히 손을 저어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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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그리고 칼 같은 거 목에 안 가져가고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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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잠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정답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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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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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는 그제야 이야기가 끝난 듯 큰 소리로 비서에게 인사를 건넨 후 우리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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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만 내려갈 테니 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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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나는 군말 없이 오뚜기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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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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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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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아이리스는 전보다 두 층은 높은 방에 배정되었다. 거실과 방이 두 개나 딸린, 거의 집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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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아이리스 방 하면 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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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방은 침실인지 침대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딱 봐도 한 방당 하나씩 쓰라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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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아이리스의 나이대쯤 되면 자기 방 하나쯤은 가지고 싶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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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자기 빨래랑 내 빨래랑 같이 돌리지 말라고 화내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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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서 흐르는 땀을 슥 닦아내고 있는데 아이리스가 마구 고개를 젓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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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이 방은 싫어? 그럼 저 쪽방으로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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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아이리스는 또다시 고개를 마구 젓더니 내 손을 놓고 방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그리고는 -…침대를 번쩍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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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이리스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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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집채만 한 괴물도 쓰러뜨리는 힘을 가졌지만, 침대를 들기엔 연약한 소녀일 뿐이다 -..라는 앞뒤 안 맞는 생각을 하며 침대를 들어 올리는 아이리스를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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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왜 그래 아이리스..!”
   “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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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참 뒤에야 아이리스가 나랑 같이 자고 싶어서 침대를 옮기려고 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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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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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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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안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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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층 이웃이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익명님! 혈소연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ㅂ’9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가르간도아 : 주인 제발…배고파…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확실히 사람의 시선이 안 닿으면 회복이 빠르네.’

실험당했을 땐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아 꿰매놓았었는데, 그 탓에 흉터가 생기고는 했던 걸 떠올리며 잘린 옷을 바라보았다.

‘이건 어쩌지?’

잠시 고민하다가 방을 뒤적거렸다.

“오, 찾았다.”

반짇고리를 찾아 옷을 꿰매주었다. 순식간에 멀쩡한 옷이 되었다.

“이다음에는…”

옷이 멀쩡해지긴 했지만 흥건하게 젖은 피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주부의 노하우로 핏물을 없애고자 화장실로 향하려던 순간, 토토겐의 옷이 보였다.

“음, 하는 김에 같이 빨지 뭐.”

토토겐의 로브를 벗겼다. 위엄있는 분위기가 홀랑 사라지고 몸이 바짝 마른 흉측한 노인만 남게 되었다.

토토겐은 노인이라 불리기엔 젊지만, 워낙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 노인처럼 보였다.

로브를 벗기자 얇은 옷이 드러났다. 저대로 두면 감기 걸릴지도 모르기에 소파에 걸쳐져 있는 양탄자를 몸 위에 덮어주었다.

“일어나기 전에 빨리 세탁해버리자.”

욕조에다가 물을 받아 로브와 옷을 넣고 세탁하기 시작했다.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고 로브와 옷은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옷을 빨리 말려야 하기에 물기를 짜낸 후 테라스로 나가 난간에 널어두었다.

와아아아 -.

뜨거운 열기와 함성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옷은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옷이 마르는 속도만큼 리안의 얼굴에도 땀이 맺혔다.

‘여기 층이 높을수록 덥구나…’

옷이 빨리 말랐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바짝 마른 옷을 껴입고 로브를 가지고 거실로 들어왔다.

“나…에게 말,걸지 -..으으..”

토토겐은 신음을 흘리며 악몽을 꾸는 듯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리안은 그의 몸을 덮고 있는 양탄자를 치우고 로브를 입혀주었다.

‘좋아, 이제 다 끝났…아.’

바닥에 튀어있는 피가 보였다. 리안은 눈동자를 굴리다가 토토겐을 덮고 있던 양탄자로 슬쩍 바닥을 가렸다.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핏자국은 다 가려졌다.

“에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거면 되겠지”

리안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탁.

리안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핫…!”

토토겐이 정신을 차렸다.

“크흑….내가 왜..누워있는거지?”

그는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나는 분명….허?”

기억을 더듬던 그는 오싹한 기운에 눈동자를 굴려 제 로브를 내려다보았다.

뿅,뾰옹 -.

“뭐,뭐,뭐야 이거..?!”

옷에서 꽃이 뿅하고 튀어나와 흐느적흐느적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분 나쁠 정도로 좋은 향기가 나고 있었다.

거기다 묘하게 분홍한 아우라가 은은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억만금을 주고 산 내,내 로브가 어째서 이런…이런…?!”

토토겐이 사용하는 로브는 온갖 마법 효과가 덕지덕지 붙은 사치의 끝판왕이었다.

입은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위화감을 주고, 행동 보정 효과까지 있는데다가 온도 조절은 물론 아공간까지 들어있는 만능 로브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 가장 비싼 물건이기도 했다.

그런 귀한 로브에서 말랑한 아기 볼에서 날 것 같은 사랑스러운 향기가 나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거칠게 고함을 내뱉으며 벌떡 일어난 그는.

“어…?”

바닥에 깔린 양탄자를 밟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꺼윽…!”

그는 소파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곤 눈을 뒤집은 채 기절해버렸다.

***

좀비의 방을 나오자 멋들어진 복도가 길게 이어졌다. 복도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긴 소파나 분수대 따위가 있는 걸로 봐선 쉬는 공간인 듯 했다. 아이리스를 포함한 오뚜기와 쥐 수인 모두 그곳에 있었다.

오뚜기는 아이리스에게 무어라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쓸데없는 말이라 귀에 담지 않은 채 아이리스에게 다가갔다.

“엇?! 네 녀석 어떻게 벌써 나온 거지?!”

갑작스럽게 내가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 오뚜기가 펄쩍 뛰며 말했다. 나는 잠시 눈을 도르륵 굴리며 생각했다.

‘그 좀비가 예의 없이 제 배를 갈랐다가 제 장기에게 욕을 좀 듣고 충격을 받아서 쓰러졌다고 하면…으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 믿겠지.’

개그 세계의 법칙과 이곳 세계의 법칙이 헷갈린다고 해도, 장기가 말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네 녀석 설마 토토겐님께 무례를….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다가오던 오뚜기는 쥐 수인이 곁에 다가와 무어라 속삭여주자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헛기침하며 내게서 멀어졌다.

“..생각보다 오래오래 뽑아먹을 수 있겠군. 크흠.”

오뚜기는 어느새 두 손을 파리처럼 문지르며 토토겐의 비서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저 토토겐님께는 앞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니 모쪼록 오래 – 오래 – 자기 집이다! 생각하고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꼭!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

쥐 수인 또한 그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오뚜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중간중간 토토겐의 취향 따위를 알려주기도 했다.

슥.

오뚜기와 비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이리스가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기다려줘서 고마 -…우왓!”

기특하게 기다려준 아이리스에게 칭찬을 잔뜩 해주려는 순간 잡힌 손이 잡아당겨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아이리스의 코가 내 목에 깊게 파고들어 킁킁거리고 있었다.

“으우..”

아이리스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소리를 냈다.

“저, 아이리스?”

“냄,새…”

“….!?”

내..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내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몸을 굳히는 순간 뒷말이 들려왔다.

“피…냄새.”

“아.”

그 말에 새카맣게 타들어 가던 마음이 아름다운 꽃밭으로 바뀌었다.

“아까 피를 조금 흘렸거든 그래서 그랬 -…윽!”

그 순간 목에서 간지러운 통증이 느껴졌다. 아이리스가 내 목을 물어버린 것이다! 세상에 우리 애가 날 물었다!

“아,아이리스 왜…?”

흡사 딸에게 뺨 얻어맞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아이리스를 부르자 아이리스가 내 목에서 얼굴을 떼곤 잔뜩 심통 난 얼굴로 말했다.

“약속..거짓말.”

“뭐..?”

아이리스가 내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그제야 난 아이리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아 -, 목에 칼 안 가져댄다고 했던 그 약속?”

내 말에 아이리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심통 난 듯 볼이 씰룩거리는 게 귀엽다고 하면 더 화내겠지?

“그래서 물었어? 약속 안 지켜서?”

끄 – 덕.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뺨 맞은 아버지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내가 걱정돼서 그랬다는 데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나?

순식간에 평생 마음이 아팠을 상처가, 늦게 집에 돌아와서 화가 난 강아지의 앙앙 이갈이처럼 느껴졌다.

저 모습을 보라, 슬쩍 눈을 굴려 눈치를 보는 모습을.

이 맛에 딸 키우는 건가 싶어 뒤늦게 살살 눈치를 보는 아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해. 앞으로는 피 냄새 안 나게 조심할게.”

그 말에 아이리스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말실수를 한 듯했다. 나는 열심히 손을 저어가며 말했다.

“어어, 그리고 칼 같은 거 목에 안 가져가고 맞지?”

아이리스가 잠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정답이었던 것 같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뚜기는 그제야 이야기가 끝난 듯 큰 소리로 비서에게 인사를 건넨 후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제 그만 내려갈 테니 따라와라.”

그 말에 나는 군말 없이 오뚜기의 뒤를 따라갔다.

***

“오오!”

나와 아이리스는 전보다 두 층은 높은 방에 배정되었다. 거실과 방이 두 개나 딸린, 거의 집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여긴 아이리스 방 하면 되겠다!”

“…!”

두 개의 방은 침실인지 침대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딱 봐도 한 방당 하나씩 쓰라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 아이리스의 나이대쯤 되면 자기 방 하나쯤은 가지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중에 자기 빨래랑 내 빨래랑 같이 돌리지 말라고 화내는 날이 오겠지?’

눈에서 흐르는 땀을 슥 닦아내고 있는데 아이리스가 마구 고개를 젓고 있는 게 보였다.

“응? 이 방은 싫어? 그럼 저 쪽방으로 할래?”

그 말에 아이리스는 또다시 고개를 마구 젓더니 내 손을 놓고 방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그리고는 -…침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아이리스 위험해!”

그녀는 집채만 한 괴물도 쓰러뜨리는 힘을 가졌지만, 침대를 들기엔 연약한 소녀일 뿐이다 -..라는 앞뒤 안 맞는 생각을 하며 침대를 들어 올리는 아이리스를 말렸다.

“왜,왜 그래 아이리스..!”

“으우…!”

나는 한참 뒤에야 아이리스가 나랑 같이 자고 싶어서 침대를 옮기려고 했다는 걸 깨달았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똑똑.

“저기 안에 있어?”

같은 층 이웃이 찾아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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